달 위의 낱말들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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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달이 첫 표지와 책등을 넘어 뒷장까지 이어진다. 달 위에 작은 금색 점은 무엇을 의미할까? 달 위의 낱말들이라는 제목 그대로 이 점이 낱말일까? 파랑과 보라색 어디 지음의 색상과 질감이 다른 종이가 또 다른 감탄을 자아낸다.

세 번째 만나는 황경신 작가의 책이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깊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한참 에세이에 빠져들어있던 20대가 아닌 30대 중반부를 지나면서 에세이에 대한 감흥이 적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그만큼의 경험이 책을 읽는 내내 투영되어서일 것이다.

책 안에는 두 종류의 글이 담겨있다.

단어의 중력이라는 주제와 함께 담긴 제목만큼이나 짧은 소설. 그리고 사물의 노력이라는 제목과 함께 담겨있는 사물과 작가의 기억이 담긴 짧은 글.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책의 장르가 뭔가 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히(무슨 생각이었을까?) 에세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었는데,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단어의 중력 속의 글의 경험이 각양각색이었다. 황경신의 이야기 노트라는 부제가 책의 장르를 알려주는 것 같다.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선택할 수 없어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으로 인해 삶의 미세한 결이 달라진다.

그 결이 물결치며 소란함과 고요함을 만든다.

그러므로 너는, 네게 허락된 삶의 좁은 통로를 걷는 내내,

마음을 다해 가늠하고 구별하고 뽑아야 한다.

선택이라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나그네와 곰에 등장하는 곰이 등장해서 색다르고 신선했다. 익숙한 것이 갑자기 이별을 고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글 속의 화자는 익숙한 것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떠난다. 떠나는 것 또한 그의 선택이니 말이다.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도착한 그에게 안내자는 주의사항을 이야기한다. 곰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곰이 자주 출몰하나 보다.) 나그네와 곰 이야기의 나그네처럼 죽은 척해야 할까? 아니. 온 힘을 다해 싸워달란다. 설령 죽더라도 말이다. 곰에게 인간은 아주 피곤하고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켜야 한다고... 곰 스스로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해 학습해야 한다니... 놀랍다. 신선했다. 실제 그런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1부보다는 2부가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아마 익숙한 사물들이고, 저자의 경험담이 실제적으로 녹아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읽는 내내 피식피식 웃음이 솟아났다. 유머집이 아닌데, 자꾸 상상하면서 읽다 보니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닿았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때론 더 진한 기억을 남기는 것일까?

다양한 토끼 인형을 100마리가량 선물 받은 저자의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책을 열몇 권씩 내면서 바꾸어갔던 컴퓨터의 변천사도 흥미로웠다. 집. 전화. 피아노. 그리고 우리 집에도 있었던 미니 컴포넌트라 불린 오디오 세트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이야기였다.

덕분에 앞으로는 황경신 작가하면 앞으로는 "달 위의 낱말들"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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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에서 중세 유럽을 만나다 - 십자군 유적지 여행 여행자의 시선 1
임영호 지음 / 컬처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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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혔다. 조금씩 열린다 하지만, 아직도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데 두려움이 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덕분에 시도하지 못하고 상상으로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형편인지라, 요즘은 시간적인 제약도 많은 터라 아쉬움을 책이나 프로그램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책 속에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이 여럿 있었다. 지중해. 중세 유럽 그리고 십자군.

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에 들어본 십자군 전쟁이지만, 딱히 떠오르는 내용은 없었다. 기독교와 연관된 십자군이지만, 상당한 피해를 줬다는 것과 전쟁에서 패했다는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십자군 유적지를 여행한다는 부제를 통해, 이 기회에 유럽 여행뿐 아니라 십자군 전쟁에 대한 지식을 조금은 확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2011년부터 시작한 여행의 마지막을 2019년에 마무리했다고 한다. 책 속에는 3개의 큰 주제와 여행지가 담겨있다. 아무래도 십자군이기에, 기독교 성지와 대부분 겹친다. 성경을 통해 익숙하게 들었던 지명들이 등장해 머리로만 알고 있던 지역과 실제 지역이 합쳐져 더욱 흥미로웠다.

첫 번째 지역은 요르단이다. 요르단 하면 떠오르는 곳은 단연! 페트라다. 개인적으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보면서 고고학자의 꿈을 키우기도 했었고(워낙 겁이 많은 관계로 얼마 안가 포기하긴 했지만 말이다.), 십여 년 전 부모님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성지순례를 다녀오셨는데 페트라 앞에서 찍은 사진과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저자의 책을 통해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두 번째 지역은 로도스, 보드룸, 몰타다. 지명으로는 책 속에서 제일 낯선 곳이었지만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그리스와 터키 등이 담겨 있어서 더 흥미로웠던 부분이었는데 특히 몰타는 몰타 기사단이라는 이름과 기사단이 최후를 맞이했던 지역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마지막 세 번째 지역은 그 유명한 이스라엘이다. 십자군 이전에 예수가 나고 자라고 십자가 처형과 부활이 이루어진 본고장인지라, 상당수 유적을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비롯하여 십자군의 해안요새인 카이사레아도 기억에 남는다.

책 속에는 참 많은 사진이 등장한다. 한 장 걸러 한 장이 사진일 정도로 마치 내가 직접 십자군 유적지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와 여행이 겹쳐지니 그 안에 깊은 의미를 풀어내는 저자의 글을 통해 또 다른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는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지만, 천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그들의 여정을 어렵지 않게 다니며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니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던 것 같다. 물론 상당수 파괴되고 오랜 시간으로 터만 겨우 남아있는 곳들도 상당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곳은 유적지로의 존재감을 강하게 내뿜고 있는 것 같다.

책 덕분에 십자군과 그들의 유적지에 대해 돌아보며, 여행 이상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은 타 종교와 문명의 땅이 되어버린 지역이 주는 아이러니가 역사와 어우러져서 색다른 모습을 담아냈던 것 같다. 천년 전 이야기지만 역사가 주는 교훈이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배타성과 적대감은 변하지 않는 걸 보며 씁쓸하기도 했다. 물론 나 역시도 나와 다른 생각과 모습에 적대감을 적잖이 느끼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역사의 자리를 마주하며, 다시금 곱씹을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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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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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지는 않았지만, 충고 하나 하겠습니다.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들을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끝내지 마십시오.

당신이 찾는 게 변화라면, 여기 그대로 머무르세요.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류가 시작한 이래 미래를 안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관심사였던 것 같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꽤 똑똑하지만, 늘 이용만 당하는 남자. 자신이 가진 것을 풀어내기 쉽지 않고, 타인과 함께 지내는 것이 어려운 남자. 즉, 사회성이 결여된 남자. 사랑이라곤 짝사랑이 전부이고, 그래서 자존감이 바닥을 파고 들어간 남자 벤 슈워츠맨.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하임 울프라는 사람이 사망하며 그에게 남긴 것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건네받은 위스키 두병. 술을 안 먹는 그에게는 굳이 필요한 선물이 아니었지만, 변호사의 강권에 한 모금을 들이켠다.

서점에 갔다가 만나게 된 책 뒷면에서 발견한 이름 벤 슈워츠맨. 본인에게 일어날 일들이 책 안에 담겨있다. 방금 전에 있던 일과, 현재의 일까지... 책 속의 이야기에서는 그에게 닥쳐올 위험을 이야기한다. 책을 사들고 나온 벤은 책을 펴보기가 두렵다. 그때 하임 울프의 변호사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 벤은 위스키를 살펴보다가 한 가게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바 없는 바. 그는 책과 위스키를 들고 바 없는 바로 향한다. 울프가 자신에게 남긴 유품인 위스키 두병.

이 책은 SF적 요소가 상당히 가미되어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기억이라는 요소와 음식이 맞물려있다. 물론 우리 역시 과거에 먹었던 음식을 다시 접하게 되면(가끔 프로그램 중에 엄마의 손맛. 예전에 어머니가 해주던 맛입니다. 하는 멘트가 나오는 것처럼...) 옛 기억이 떠오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억이다. 근데, 울프가 남긴 위스키는 기묘하다. 위스키를 마시는 순간 타인의 기억을 접하게 되니 말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상당히 헤맸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헷갈렸다. 여기저기 중구난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렇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읽어보자. 쓸데없는 내용은 없으니 말이다. 접점을 발견하면 빠져들 수 있다.

사실 주인공인 벤은 안타까울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에도, 사회에 나와서도 그는 어찌 보면 이용만 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울프의 위스키와 책을 만난 후 삶이 바뀐다. 어쩌면 벤이기에 책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은 더 효과를 내뿜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레 겁먹고 포기했다면 변화를 경험할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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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비 - 금오신화 을집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9
조영주 지음 / 폴앤니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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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 태어났다.

단지 이렇듯 웃고, 재주넘고, 하늘을 보고, 또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 태어났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금오신화 을집이라는 부제가 눈에 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알고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이 갑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작가는 이에 착안하여 금오신화를 모티브로 실제 인물들을 차용하여 금오신화 을집 이라는 이름의 비와 비라는 작품을 썼다.

익숙한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성종 이휼을 비롯하여 사육신 중 한 명인 취금헌 박팽년, 매월당 김시습, 압구정 한명회, 월산대군 이정, 공혜왕후 한씨 그리고 박일산(박비).

전라감영에는 관노비 박비(박노비를 줄여서 박비라 부른다)가 있다. 관노비임에도 수려한 외모를 가졌기에, 자신의 사노비와 바꾸려고 하는 마님들이 많을 정도다. 하지만 박비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라도 관찰사 이극균의 수양딸인 이비를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양에서 한명회의 측근이자, 분수 어사 정훼가 내려온다는 소식에 박비는 이비를 찾으러 온다. 하지만 친 딸이 아닌 터라 이씨 부인은 말썽쟁이 이비가 영 못마땅한가 보다. 어머니의 불호령에 이비는 단장한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까지 벗어던지고 밖으로 나간다. 사실 정훼가 전라도까지 내려온 대는 이유가 있다. 이극균의 치부를 알아오라는 한명회의 명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극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정훼는 사망한 공혜왕후를 닮은 이비를 보게 되고, 전라감영 내의 미인들을 다 불러 모으라는 명을 내린다. 하지만 이비는 발견할 수 없다. 별당아씨라는 이름의 여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훼는 별당아씨를 데려오라 명하고,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비를 숨겨야 하는 이극균은 김시습을 찾는다. 김시습은 박비에게 이비를 데리고 떠나라 한다. 사실이 알려지면 이비는 물론이고 이극균의 가족들 모두가 극형에 처할 수 있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남장을 한 이비와 박비는 김시습이 알려준 주막에 머물지만, 주모의 욕심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 주모와 추노꾼 두 명까지 해치운 박비는 갑자기 사라진다. 이비에게 피하라는 말을 전하고는 말이다. 이비를 거둔 김시습은 한양으로 올라온다.

아내 공혜왕후를 잃고 울적해 하는 성종을 위해 형인 월산대군은 안견의 아들인 안소희를 불러 자신이 꾼 꿈을 들려주고는 그림을 그리라고 명한다. 그가 요청한 그림에는 죽은 공혜왕후의 얼굴이 담겨있어야 했다.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의 얼굴을 그리라는 말에 안소희는 당황하지만, 월산대군의 명인지라 전전긍긍한다.

결국 안소희는 몽유도원도를 완성한다. 몽유도원도에 발문을 적어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 안평대군이 비슷한 일로 극형에 처한 것을 아는 선비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결국 김시습이 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김시습과 함께 온 한 선비는 멋진 시를 읊지만, 그 시가 어디서 들어본 듯하다. 선비로 변장한 이비는 스승 김시습이 알려준 시를 또 틀리게 읊고, 그 시는 과거 안평대군의 유언과 닮은 사실을 아는 월산대군은 이비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를 보고 그녀가 죽은 공혜왕후와 닮았음을 깨닫는 월산대군은 성종과 이비가 만날 자리를 주선하는데...

역시 소설 속 가장 큰 줄거리는 출생의 비밀이다. 성종과 닮은 박비. 공혜왕후와 닮은 이비. 이들 간에는 무슨 기묘한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또한 그 비밀을 풀어가며 마주치게 되는 이들의 인연의 끈은 과연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 것일까?

금오신화 속 환생에 대한 이야기나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도 담겨있다. 실제 역사에 작가의 상상이 가미되니 또 흥미로운 한편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요 며칠 쏟아지는 비를 보며 비와 비를 읽었는데, 처음에는 하늘에 내리는 비를 의미하는 줄 알았던 제목이 두 주인공의 이름을 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들의 인연만큼이나 특별한 이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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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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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결론을 죽음이나 소멸로 해석하니 현실 세계의 모든 가치가 발아래로 향했다.

손을 잡고 거니는 사람들도 삶에서 주어진 시간이 다하면

각자 추운 곳에 누워 다닥다닥 붙은 납골당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불만까지 생기자 더는 내 힘으로 나르 ㄹ구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유명 연예인 중에도 가족의 자살로 자신 또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가족의 자살은 그 어떤 것보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주는 파급력이 큰 것 같다. 한데, 가족을 잃은 아픔은 일반적인 상처와 결이 다른 것 같다. 더 이상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들과 갖고 있던 소중한 기억들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픔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드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세상에 가족을 떠나보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만, 아직 가까운 가족을 떠나보낸 적이 없는 나인지라 그녀의 글을 읽으며 그 슬픔과 고통의 깊이를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23살 너무 어린 나이에 저자의 동생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으레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화살이 겨눠진다. 보통의 경우 자살을 하기 전에 사인을 보낸다고 하는데, 뭘 했느냐는 화살 말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도 감당이 안 되는데, 주위의 시선까지 견뎌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 같다.

처음 동생의 소식을 경찰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저자는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아마 죄책감에 대한 해방구를 찾기 위한 방편일 테지만, 가족과의 사별은 단시간에 털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오랜 가정폭력과 큰일을 겪으며 마음이 많이 다친 상태였고, 조울증으로 약을 처방받아먹고 있는 상태였다. 동생과의 사별 후 저자는 동생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소에도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자주 털어놨고, 저자는 그런 동생을 부모 대신 챙기며 살아왔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가족을 되레 책임감으로 보살피는 사람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용기를 내 글을 쓴다.

당신이 자책감과 죄책감을 그만 뭉쳤으면 좋겠다.

집에 머물지 않고 집과 가까운 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은 우리 집이 굳건히 버텨 이웃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우울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힌다. 어쩌면 가장 편안하고, 치유가 되어야 할 집단에게 도리어 상처를 받은 이들 자매의 이야기는 참 씁쓸했다. 동생의 부재로 상처를 받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다시 제주의 집으로 들어갔던 기간 동안 저자는 참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다시 짐을 싸서 나왔고, 가족과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리를 가지자 마음의 무거운 납덩이가 조금씩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동생이 아닌,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의 죽음이었다면 과연 느끼는 감정이 달랐을까? 아버지의 부재를 상당히 많이 상상했다는 그녀지만, 글쎄... 미운 정도 떼기 어렵기에 그 또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자살력이라는 말이 있단다. 자살한 가족을 둔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자살할 확률이 8배나 높다고 한다. 그렇기에 나라에서는 그런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의 치료를 돕는다고 한다. 물론 예방이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상처를 더 내는 상황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과연 그런 조사가 필요할까 의심스럽다. 모두의 상황이 같은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치부를, 상처를, 고통을 있는 대로 드러내야 하는 민감한 내용이기에 그런 용기를 낸 저자의 글에 공감하고 용기를 얻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타인의 상처를 통해 나는 덜 아프구나! 혹은 내가 더 심한 상처를 받았구나!라는 판단을 내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싶었다. 마지막 장의 한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 또한 극단적인 자살로 청년 자살 퍼센티지를 높이겠다는 말에 상담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솔직하게 말할까요. 한 명 죽는다고 퍼센티지 안 올라요.

아득바득 살아서 여기 존재한다고 보여 주는 게 이기는 거예요."

세상의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없다. 또한 살지 말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도 없다. 자신이 만들고 생각하기에 따라 살아야 할 이유도, 살지 말아야 할 이유도 생기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오늘도 살아야 할 이유를 계속 생각해 내며 삶을 사는(때론 버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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