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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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결론을 죽음이나 소멸로 해석하니 현실 세계의 모든 가치가 발아래로 향했다.

손을 잡고 거니는 사람들도 삶에서 주어진 시간이 다하면

각자 추운 곳에 누워 다닥다닥 붙은 납골당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불만까지 생기자 더는 내 힘으로 나르 ㄹ구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유명 연예인 중에도 가족의 자살로 자신 또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가족의 자살은 그 어떤 것보다 남겨진 가족들에게 주는 파급력이 큰 것 같다. 한데, 가족을 잃은 아픔은 일반적인 상처와 결이 다른 것 같다. 더 이상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들과 갖고 있던 소중한 기억들을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픔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드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세상에 가족을 떠나보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만, 아직 가까운 가족을 떠나보낸 적이 없는 나인지라 그녀의 글을 읽으며 그 슬픔과 고통의 깊이를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23살 너무 어린 나이에 저자의 동생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으레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화살이 겨눠진다. 보통의 경우 자살을 하기 전에 사인을 보낸다고 하는데, 뭘 했느냐는 화살 말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도 감당이 안 되는데, 주위의 시선까지 견뎌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 같다.

처음 동생의 소식을 경찰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저자는 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아마 죄책감에 대한 해방구를 찾기 위한 방편일 테지만, 가족과의 사별은 단시간에 털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오랜 가정폭력과 큰일을 겪으며 마음이 많이 다친 상태였고, 조울증으로 약을 처방받아먹고 있는 상태였다. 동생과의 사별 후 저자는 동생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평소에도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자주 털어놨고, 저자는 그런 동생을 부모 대신 챙기며 살아왔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가족을 되레 책임감으로 보살피는 사람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 용기를 내 글을 쓴다.

당신이 자책감과 죄책감을 그만 뭉쳤으면 좋겠다.

집에 머물지 않고 집과 가까운 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은 우리 집이 굳건히 버텨 이웃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우울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힌다. 어쩌면 가장 편안하고, 치유가 되어야 할 집단에게 도리어 상처를 받은 이들 자매의 이야기는 참 씁쓸했다. 동생의 부재로 상처를 받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다시 제주의 집으로 들어갔던 기간 동안 저자는 참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다시 짐을 싸서 나왔고, 가족과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리를 가지자 마음의 무거운 납덩이가 조금씩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동생이 아닌,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아버지의 죽음이었다면 과연 느끼는 감정이 달랐을까? 아버지의 부재를 상당히 많이 상상했다는 그녀지만, 글쎄... 미운 정도 떼기 어렵기에 그 또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자살력이라는 말이 있단다. 자살한 가족을 둔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자살할 확률이 8배나 높다고 한다. 그렇기에 나라에서는 그런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의 치료를 돕는다고 한다. 물론 예방이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상처를 더 내는 상황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과연 그런 조사가 필요할까 의심스럽다. 모두의 상황이 같은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어쩌면 자신의 치부를, 상처를, 고통을 있는 대로 드러내야 하는 민감한 내용이기에 그런 용기를 낸 저자의 글에 공감하고 용기를 얻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타인의 상처를 통해 나는 덜 아프구나! 혹은 내가 더 심한 상처를 받았구나!라는 판단을 내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싶었다. 마지막 장의 한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 또한 극단적인 자살로 청년 자살 퍼센티지를 높이겠다는 말에 상담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솔직하게 말할까요. 한 명 죽는다고 퍼센티지 안 올라요.

아득바득 살아서 여기 존재한다고 보여 주는 게 이기는 거예요."

세상의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없다. 또한 살지 말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도 없다. 자신이 만들고 생각하기에 따라 살아야 할 이유도, 살지 말아야 할 이유도 생기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오늘도 살아야 할 이유를 계속 생각해 내며 삶을 사는(때론 버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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