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굽 아래의 세계사 - 말은 어떻게 인류의 역사가 되었는가
윌리엄 T. 테일러 지음, 김승완 옮김 / 사람in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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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신석기 시대 자신들의 모습을 영구히 바꿀 몇 가지 시도를 한다. 농경과 가축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때 길들인 가축들 중 일부는 식량자원으로 지금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소, 닭, 돼지, 양, 염소 등이 그러하다. 반면 말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승마나 경마, 일부 목장주들에게만 말은 의미가 있다. 반면, 일반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말을 거의 보지 못하고, 영향력도 전혀 느끼질 못한다. 하지만 과거 말은 식량, 운송, 전쟁, 정치, 지정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 문명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책 '말발굽 아래의 세계사'는 바로 이런 내용을 다룬다.


1.말의 진화

 공룡의 대멸종 이후, 포유류의 세상이 시작되며 최초의 새벽말이 등장한다. 이것의 크기는 키 30cm 정도로 매우 작았다. 당시 이 새벽말은 발가락이 뒷 다리 3개, 앞다리 4개였다. 하지만 지금 현대말은 발가락이 1개, 코뿔소는 3개, 맥은 뒷다리 발가락 3개, 앞다리 발가락 4개다. 

 대멸종 이후 풀은 광범위하게 번성한다. 풀은 건조하고 배수가 잘 안되는 환경에서 살아가며. 실리카 함량이 높고 억새서, 동물 입장에서는 나뭇잎에 비해 씹거나 소화가 어려웠다. 풀은 원래 열대식물이었으나 대멸종으로 발생한 생태적 공백을 차지해 지구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초식동물은 당연히 풀을 먹기 시작한다. 하지만 풀로 충분한 열량을 얻으려면 소화가 잘 안되기에 매우 방대한 양을 섭취해야 했고, 소화에도 특별한 능력이 요구되었다. 특히, 풀은 거칠어 그 자체가 동물의 치아를 마모시켰고, 땅에 붙어 있어 먹는 과정에서 흙과 모래도 다량 먹게 되어 이에 대한 처리도 필요했다. 그리고 풀이 자라는 초원은 나무로 둘러싸인 곳과는 전혀 다르게 초식동물 자체가 완전히 노출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런 풀의 등장은 원시말의 진화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말은 우선 치아를 강화한다. 핀서처럼 생긴 앞니가 풀을 줄기에서 잘라내고 어금니와 앞어금니 6개가 한 줄로 늘어선 뺨이 발달해 여기서 식물이 갈리고 으깨지며 보호막이 부서져 흡수된다. 원시말 집단인 말아과에서 힙소돈트가 발생했는데 이들은 치관이 긴 치아형태가 발달했다. 힙소돈트는 이솜선 위 아래에 숨겨진 이빨의 추가 부분이 있어 치아가 마모되어도 이를 나중에 쓸수 있다. 

 그리고 말은 위가 1개다. 반추동물은 억센 풀을 소화하기 위해 위가 4개다. 여기서 풀을 소화, 발효하고 다시 씹어 소화시킨다. 말은 1개의 위지만 맹장에서 미생물군 유전체가 풀을 소화한다. 다만 위가 4개나 되는 반추동물보다는 소화효율이 떨어지기에 말은 풀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 무려 하루에 체중의 2.5%를 먹어야 한다.

 그래서 말은 하루 종을 풀과 수원을 찾기 위한 지구력이 필요했다. 동시에 개활지 초원에서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속력도 필요했다. 말의 길고 강한 다리, 탁월한 근육, 독특한 인대구조는 모두 이를 위해 진화한다. 그리고 빠른 출발과 속력 유지를 위해 발가락 3-4개가 하나인 발굽으로 변형한다.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려면 빠른 속력도 필수이나 수적 우위도 중요하다. 그래서 말속에 속하는 동물은 집단 사회구조를 갖는다. 말은 암컷과 그 새끼 무리, 또는 수컷과 그를 따르는 다수의 암컷으로 집단을 이룬다. 말은 안정적, 장기적,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로 인해 높은 지능과 독특한 의사소통능력을 갖고 있다. 말은 다른 말 집단의 의사소통을 엿듣는 것도 가능하고, 복잡한 학습과 암기, 개념 형성 능력이 있다. 


2. 말의 확산과 가축화

 현존하는 말은 400만년 전 북미에서 갈라져 나왔다. 유럽인들이 미대륙에 도착했을 때 말이 없었던 상태였기에 말의 원산지가 북미라는 점은 의외의 면이다. 말의 한 갈래는 카발라인 말로 현대의 길들인 말과 유사계통이며, 다른 하나는 얼룩말과 야생당나귀와 당나귀의 계통이다. 플라이스토세의 첫 빙기에 양 집단이 베링육교를 거쳐 아시아로 들어온다. 200만년 전에는 아프리카로도 진출했다. 당시는 춥고 건조하여 다른 동식물에겐 불리한 환경이었으나 말은 이 기후가 초원확산에 적합하여 전성시대를 맞는다. 그래서 플라이스토세 후기가 되면 말은 호주와 남극에 제외한 세계 전역으로 확산한다. 

 초기 얼룩말은 사바나에 잘 적응했고, 야생당나귀는 아프라키와 유라시아의 중간 위도에, 말은 아시아와 유럽 고위도 초원과 삼림에 잘 적응했다. 초기 인류에게 말은 식량자원이었다. 말의 척추와 뇌, 혀, 골수까지 섭취했다. 그리고 말의 골반뼈와 다른 뼈는 무른 망치 제작에 사용되었다. 무른 망치는 무뎌진 돌칼을 날카롭게 만드는 도구였다. 그리고 말의 가죽은 옷이나 물건, 의류에 소재였다. 초기 인류는 말의 속도를 제한하기 위해 물가의 골짜기, 계단지형, 얕은 물길로 몰아서 사냥했다.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어 퇴로를 막고 집단학살하는게 방법이었다. 

 주요 식량이었기에 구석기인들은 뼈, 돌, 상아 등 거의 모든 도구에 말을 그리고, 새기고, 조각했다. 그림속의 말은 짝짓기, 배변, 달리고, 사냥당하는 등 다양한 모습이다. 그림에는 회갈색과 흰색이 섞인 패턴의 말이 가장 많았는데 이들은 프로제발스키말이다. 말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해서 유럽 구석기 예술 4700점 중 말이 전체 이미지의 1/3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데 2만년전부터 기온이 상승한다. 고대 말의 개체 수를 감당한 광대한 초원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따뜻한 기후와 생태계 변화로 매머드, 낙타, 등소, 말등의 대형 초식동물이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이들에 의존하던 검치호랑이와 다아어울프등도 타격을 입는다. 결국 이들은 홀로세 초기 수백년간 멸종한다. 북미의 야생 말들은 먹이와 서식지의 감소로 인해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 

 유라시아에서도 말의 개체수가 급감한다. 그래서 인간의 식단과 고고학 유적에서도 말의 등장 빈도는 크게 줄어든다. 개가 이 시기에 길들여지는데 아마도 늑대 역시 대형초식동물의 급갑으로 먹이가 줄자 인간의 서식지 인근의 먹이 찌꺼기를 찾다 접촉 빈도가 올라가서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개는 1만 6천년 정도에 길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인간은 정착하며 양, 소, 염소 등 대형초식동물을 잡아서 길들인다. 

 암나야 문화는 카스피해 북졲과 동유럽 서아시아에 걸친 넓은 초원지대에 분포했다. 기원전 4천년 암나야 문화에서 해체된 바퀴달린 수레와 길들인 동물의 흔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 문화에서도 말을 길들인 증거나 나오지 않는다. 

 기원전 4천년기 말엽 유라시아 서부에서 고대 농민들은 생활과 농업 노동에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적 혁신을 이룬다. 바로 동물이 끄는 수레다. 처음에는 수레를 끈 동물은 소였다. 수레는 이후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 수레는 무거운 사람, 상품의 장거리 운송에 효율적이었다. 초기 수레는 통짜바퀴 4개의 무거운 것이었다. 풀은 넉넉하지만 경작지가 부족해 늘 이동이 중요했던 스텝 유목민에게 수레는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도구였다. 이들은 수레를 이용해서 수백년간 4000km를 넘게 이동하여 내륙 아시아 몽골까지 이동한다. 하지만 우차는 느리고 짧은 시간 이동거리에 제약이 컸다. 그래서 초기 스텝 유목민들은 더 습한 북쪽 지역과 풀이 넉넉한 산림초원 변두리에서 어지간하면 이탈할 수 없었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당나귀를 운송수단으로 길들인다. 당나귀는 동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으로 확산한다. 당나귀는 소보다는 힘이 약하지만 여러마리를 사용하면 소보다 빨랐다. 그리고 당나귀는 사막에 강했다. 소보다 물을 적게 소비하고, 고온에서도 잘 견딘다. 

 고대 근동에서는 말이 아니라 당나귀와 오나거를 운송용으로 사용한다. 당나귀와 오나거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탈 것이 이들에게 맞게 변화한다. 소에게 씌우는 멍에는 멍에 안장으로 네바퀴는 두 바퀴로 핸들과 탑승자 1인이 않을 수 있는 일종의 자전거 안장이 추가된다. 굴레나 재갈의 발명 이전이라 소처럼 코와 입에 고리를 걸어 제어했다. 

 잘 길들여진 최초의 말은 흑해와 그 인근 동유럽, 아나톨리아 지역의 야생 카발라인 분류군이다. 시기는 기원전 2900-2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당나귀와 오나거는 유용했지만 따뜻한 사막 지역에 살아서 추운 지역에 부적합했다. 그래서 이들이 끄는 수레는 흑해 북쪽으로는 확산하지 않았다. 그래서 말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말의 길들임은 쉽지 않았다. 지난 50만년간 말에게 인간은 주요 포식자로 제1의 경계대상이라 인간이 조금만 접근해도 투쟁 도피 반응이 엄청났을 것이다. 그래서 말에 직접 타는 것을 말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유발해 매우 위험한 행위였다. 다만 수레를 끄는 경우는 사람이 뒤쪽에 멀리 떨어져있기에 말에게 공포감을 덜 유발했다. 그리고 말은 무리 짓는 동물이기에 같이 있으면 안정되는 효과도 있었다.  

 말이 이 지역에서 수레를 끌기 시작하자 수레는 다시 변화한다. 신타시타 문화에서는 입술-고리를 대체하는 굴레와 재갈을 발명했다. 제어의 정밀도가 크게 올라갔다 .또한 바퀴살이 개발되었는데 이로 인해 수레의 고속안정성도 개선된다. 말수레의 이동성 개선으로 스텝 유목민은 이동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말은 이동수단이자 식량, 마유를 제공했다. 그리고 발굽으로 주변 얼음을 깨서 유목민이 끌고 다니는 가축들이 겨울에도 풀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유목민은 이런 말 수레로 인해 시베리아, 카자흐,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진출하게 된다. 


3. 전차와 말타기의 등장

 기원전 제2천넌기에 스텝 지역에서 전차가 탄생한다. 전투용은 아니었고 가볍고 빠른 실용적 탈 것으로 수레를 경량화한 것에 가깝다. 전차는 기원전 2000년부터 고작 2-3백년 만에 유라시아로 확산한다. 

 말과 전차 기술은 군사력에 이점을 제공했다. 기원전 17세기 히타이트는 근동에서 최초로 전차를 사용한다. 전차로 적의 도시를 포위하여 고립하고 빠르게 이동하며 투사체를 발사했으며 부대를 빠르게 운송할 수도 있었다. 힉소스인은 기원전 18-17세기 북쪽에서 내려와 이집트를 침략한다. 이들은 아프리카 북부 지역의 길들여진 말과 전차를 도입했다. 

 말은 스텝에서는 대량 사육이 가능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아니었다. 이런 말의 생태학적 지위가 기후에 따른 지역의 지정학적 차이를 낳게 된다. 말은 대부분의 농경 및 정착 지역에서 기후상 사육이 어려워 희소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부와 사회적 위신, 군사력의 표상이 된다. 

 한편 전차는 높은 속력을 내기 위해 후방 차축으로 변경된다. 말에 대한 신뢰가 커지면서 오나거와 당나귀의 이용은 감소한다. 근동에서는 말과 당나귀의 잡종인 노새가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근동은 말을 키우기 어려운 자연환경이지만 말의 중요성이 워낙 대단하여 대규모로 사육하고 관리하는 것에 무척 힘을 쓰기 시작한다. 

 말과 전차는 몽골고원으로도 전파된다. 카라수크 문화는 길들인 말을 운송에 사용했다. 몽골 최초의 말 문화인 사슴돌-헤렉수스 지구가 등장한다. 이 문화는 사람을 닮은 형태로 조각한 신돌이나 돌기둥인 사슴돌을 젲가했다. 이 사슴돌에는 하늘을 나는 사슴 이미지가 장식되었다. 이 지역의 말은 DOM2 계통의 초기 분파다. 신타시타의 길들인 말과 관련한다. 사슴돌-헤렉수스 말들의 두개골의 코 부분은 운송으로 인한 변형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들은 처음엔 말을 운송에 쓰나 곧 말타기를 시작한다. 

 말타기는 장거리 이동을 수월히 하고, 변두리 쪽의 환경을 활용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말의 사육과 마유의 이용을 늘리고, 부를 축적 가능하게 하여 부의 불평등도 촉진했다. 말타기는 중국의 상왕조로도 전파된다. 상에 들어온 말과 전차는 큰 인기를 끌었다. 상의 전차는 바퀴살을 비롯하여 한개읜 견인 막대와 중심 차축이 있고, 멍에를 말의 목에 맞춰주는 멍에 안장을 사용했다. 상은 청동이 있었음에도 유기물 굴레 마우스 피스를 사용했다. 이는 스텝도 같은 방식이었다. 

 상나라의 북쪽 지역은 스텝과의 교역 및 말 사육에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것이 힘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기원전 11세기 중엽 스텝 출신의 제후국 서주가 상을 무너뜨리고 장안을 수도로 삼아 주를 건국한다. 중국에서는 이 후 수백년간 북쪽 변두리가 정치적, 군사적 힘을 주도한다.

 전차는 유용했지만 부서지기 쉬웠고, 유지 보수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전차는 1대에 최소 2기의 말이 필요했다. 그래서 말 공급은 꾸준히 부족했다. 기원전 제2천년기에 말 제어 방식이 변화한다. 뽀죡한 볼피스가 있는 재갈은 단순한 코걸이 보다 말을 효과적으로 제어했다. 마부는 고삐로 말을 제어하고 방향을 전환했다. 말타기가 본격화하자 말도 개량된다. 말의 공격성을 줄였고, 말의 척추부위에 사람의 하중이 실리기에 척추 부위의 강화도 이어졌다. 

 금속재갈은 개량되어 고삐를 당기면 재갈이 말의 입속 민감한 부위를 자극해 마부에 의한 섬세한 조작이 가능해졌다. 기원전 제1천년기 새로운 굴레 기술이 아시아 깊은 곳 까지 전파한다. 처음으로 기병대를 직접묘사한 유적은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 벽화다. 말 두마리와 마부둘이 짝을 이루었는데 한 명이 두 마리 말을 제어하고 다른 한명이 공격을 담당했다. 당시 안장이나 등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DOM2계통의 말은 다부지고 힘이 강했으나 효과적인 기마술에는 부적합했다. 그래서 향후 능력가 지구력, 속력, 심지어 외모에도 초점을 두어 개량을 한다. 키가 큰 말에 대한 선호도 급증하여 기원전 제1천년기 내륙 아시아에서는 말의 키가 1.5m달하게 된다. 말로 인해 기마 유목민은 분쟁, 질병, 생태 파괴의 위기에서 신속한 이탈이 가능해진다. 이들은 전쟁에서 패배해도 사실상 농경 제국과는 달리 멸망하지 않는다. 넓은 초원지대로 이탈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초원 세력의 이탈이 큰 변화를 낳는다. 기원전 8세기 스텝에서의 압박으로 흑해와 카스피해로 이탈한 킴메르인이 아나톨리아 동부를 점령한다. 기원전 5세기에는 스키타이인이 흑해에 등장한다. 중앙아시에에서는 페르시아-타클라마칸 사막의 넑은 지역에 말을 타는 사카인이 등장한다. 

 기원전 700-400년 사이 초기 안장이 등장한다. 파지리크 문화에서였다. 기원전 제1천년기 효과적인 마구와 활과 화살, 가벼운 방패와 도끼로 무장하고 가벼운 비늘 갑옷을 입은 치명적 집단이었다. 말의 이런 중요성으로 인해 내륙 아시아의 비옥한 말 서식지를 통제하는 것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해진다.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등 제국의 확장은 동유럽, 중앙아시아 초원의 말과 그 말에 기반한 상업, 통신 시스템 덕분이었다. 기마를 일찍 수용한 아시리아를 중동 대부분을 점령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내륙 아시아 정복전 트라키아부터 접수한다. 이 지역은 유라시아 스텝 벨트의 서쪽 끝으로 제국에 말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적어도 기원전 4세기면 기마를 수용하여 활용한다. 중국은 견융의 침략으로 주가 쪼개져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 서쪽에 위치한 진과 조는 이들 국가중 기마를 활용한다. 스텝과 인접했고 북방과도 인접해 기마병의 침입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진은 대규모 기병을 규합하여 정복전쟁으로 전국을 통일한다. 그리고 오르도스의 기마유목민도 격퇴한다. 여기서 밀려난 유목민은 조직적으로 세력을 규합하는데 이들이 흉노다. 

 진은 흉노를 막기 위해 장성을 건설한다. 흉노는 강성해져 오선과 월지를 축출하고 전략적으로 유용한 하서주랑과 타림분지를 차지한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교역과 여행을 통제했고 물자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사막 한가운데 도시를 건설한다. 흉노는 동서양의 방대한 지역을 연결하여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갖게 도니다. 중앙아시아, 세비리아, 중국에서 대규모 인구가 유입된다. 흉노는 청동, 철로 만든 고품질의 재갈을 제작하고 안장을 단단한 목재로 내부 지지대를 갖추어 제작해 말의 처축 압박을 위로 분산하고 말과 마부의 신체적 긴장감은 낮추고, 안정성은 높였다.

 흉노가 말 서식지 대부분을 차지하자 중원은 말이 부족해진다. 중원은 말 사육에 적합하지 않아 말을 키우기도 어려웠고, 키운 말도 스텝에 비해 체격과 힘이 부족했다. 중국은 장성으로 유목민을 방어했지만 이는 양질의 말이 넘어오는 것도 막아버렸다. 한의 무제는 장건을 시켜 말을 찾게 한다. 그는 페르가나 분지에 도착해 한혈마를 발견한다. 무제는 이들의 확보를 위해 두 차례 대규모 원정을 하지만 50마리 정도 획득에 그친다. 

 히말라야의 가혹한 환경에서는 힘이 강하고 좋은 말이 자라났다. 중국은 흉노와 적대적이어서 말을 얻기 어려웠고 티베트 고원에 접근해 말을 교역한다. 티베트와 중국 남부의 저지대, 갠지스 삼각주가 연결되어 육상교육을 하는 차마고도가 이렇게 생겨난다. 

 일반적으로 초기 등자의 혁신은 한구과 중국에서 일어나다. 최초의 등자 같은 것이 3-4세기 일부 고분에 등장한다. 등자가 한쪽만 있던 것으로 보아 초기에는 안정성보다는 탑승보조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안장은 4세기에서 5세기 발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늘한 기후는 유목문명과 농경 문명에 상반된 효과를 가져온다. 기후가 서늘해지면 농경 문명은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여 위기를 맞는다. 반면 초원은 증발량이 적어져 초원이 습해져 오히려 풀이 많아져 유목생산량이 많아진다. 그래서 지구가 서늘해지거나 소빙기를 맞이하면 농경은 위기를 유목문명은 강성해졌다.  

 스텝의 제국들은 강성해져 농경 문명을 점령하고 제국이 커지면 그 관리를 위해 문자를 도입한다. 선비와 거란은 한자를 수용했고, 몽골은 여러 문자를 차용했다. 원은 수도 카라코룸에서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볼가까지 연결하는 공식 우편 제도를 확립한다. 이 도로망은 6만km이상이고 4만 4천 마리 이사으이 말과 양, 썰매가가 이용되었다. 도로 주요 구간에 1400개 이상의 얌이라는 공식 역참을 두고 40-50km간격으로 배치했다. 각 얌은 허가증을 소지한 여행자에게 음식과 쉴곳, 새 말을 제공했다. 원은 지폐도 발행하였고 내륙의 교통, 여행, 통신을 보호했다. 몽골은 전쟁에선 무자비했지만 유목민의 관대한 문화로 다양한 배경과 종교가 공존했다. 

 최초의 길들여진 말은 털과 피부가 두텁고, 색이 짙어 따뜻한 기후에 부적합했다. 말을 사막동물보다 더위를 못 견기도 물을 많이 먹어 아프리카에서는 물이 풍부한 지중해와 나일강 유역만 진출했다. 말은 북아프리카로는 확산했으나 오랜 기간 사하라 이남으로는 확산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말을 사막 기후에 맞게 적응한다. 털이 짧아지고 콧구멍이 넓어지고 꼬리 위치가 변해 더위에 적응한 것이다. 말은 단봉 낙타와 같이 이용디었다. 말이 주로 짐을 책임지고 낙타는 말이 먹을 물을 담당했다. 

 사하라 이남의 사헬은 초원 지역으로 말 서식에 적합했다. 그래서 이 지역에 결국 말이 도입되고 아프리카 서부의 가나왕국, 니제르 중부의 가오, 차드호와 트리폴리를 잇는 경로의 카넴등 사하라를 통제하는 이들이 말의 수혜를 입는다. 13세기 초 말리 제국이 1만 마리가 넘는 기병대를 편성했고, 16세기는 송가이 제국, 17-18세기는 오요 제국이 말로 인해 전성기를 맞이한다. 

 말은 사헬을 넘어서 더 남으로는 진출하지 못한다. 습한 환경에서 말은 새끼를 적게 낳고 새끼 사망률도 증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체파리나 각종 질병, 기생충을 견디지 못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나라가 쇠퇴하자 스텝의 영향력이 강해지며 말문화가 한반도로 밀려든다. 고구려가 이를 수용하고 강성해져 5세기에 내몽골과 만주, 한반도 일부를 통치한다. 그리고 말이 이시기에 일본으로 전파된다. 

 아시아의 스텝세력은 유럽으로 진출한다. 4세기 훈족과 7세기 아바르인의 침공으로 게르만이 대거 이동한다. 유럽의 바이킹은 배로 유명하지만 그들도 말을 잘 이용했다. 


4. 다시 미대륙으로 돌아간 말

 14세기 소빙기가 되자 소빙기에 몽골의 침입, 흑사병의 여파로 쇠퇴한 유럽은 활로로 바다를 찾는다. 미대륙이 발견되고, 스페인 사람들은 히스파니올라 섬에 말을 도입한다. 그 섬은 이렇다할 포식자가 없고, 원주민과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섬의 자연이 파괴되어 초원 상태로 말에 적합했다. 말은 카리브제도에서 번성해 남미로 운반된다. 말과 노새는 바다와 그 경계지역에서 교역상품을 운송했고 초기 도로도 개척한다. 

 1519년 코르테스는 말 16마리와 히스파니올라의 말을 도우언해 기마대를 편성해 아즈텍을 공격한다. 원주민은 초기 말을 보고 매우 놀랐지만 곧 적응하여 말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스페인은 원주민에게 말이 가지 않게 통제했지만 그것은 느슨해 곧 말은 멕시코를 거쳐서 미국 대평원에 진출한다. 대평원의 원주민들은 스페인 말 장비를 도입하고 자기들만의 마구도 개발한다. 말로 인해 이들의 생활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데 말을 사냥과, 전투, 의례등에 적극활용한 것이다. 북미에서 말은 번성하여 수천만 마리로 불어났고 이를 이용해 원주민은 유럽 제국과 맞서는 전투력을 보유하게 된다.

 말은 남미로도 향했는데 스페인은 안데스 원주민 을 정복했고 말은 그들에게도 퍼진다. 스페인은 초기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정착하나 마을이 전멸해 말이 아르헨티나 평원으로 퍼져나간다. 원주민은 말에 적응해 역시 북미처럼 사냥과 의례, 전투에 활용한다. 

 말은 19세기가 되면 세계 전역에 퍼지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영국에서 최초의 여객 철도가 건설된다. 철도는 화물 및 장거리 운송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하지만 말은 여전히 이용되었는데 철도 역 중간중간을 잇는 운송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서부로 확장하며 원주민과 갈등을 빚는다. 1876년 미 기병대는 리틀빅혼 전투에서 원주민에 대패한다. 철도의 개선으로 초원에 이주민이 대량 유입되자 이들은 초원에 울타리를 치고 원주민의 식량은 들소를 일부러 대량학살한다. 원주민은 식량이 고갈되고 유럽인과의 접촉이 잦아져 감염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미국은 원주민 약화를 위해 초원에 산재한 수많은 말을 도살한다. 결국 이런 압박에 못이긴 원주민은 미국과 굴욕적인 협상을 맺게 되고 억압이 일상화한 보호구역에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자동차가 발명되자 말의 운명은 빠르게 바귄다. 1880년만 해도 뉴욕에 말은 무려 15만 마리였다. 사실상 자동차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말의 변만 하루 130-180만kg이 나왔고 소변만 1만 5천리터에 달했다. 말은 빠르게 자동차로 대체된다. 말은 운송수단 뿐만 아니라 전투용으로써의 가치도 상실한다. 기관총이 나오기 시작하며 기병대는 그 전투력을 상실한다. 

 이처럼 말의 가치가 상실되자 북미의 야생말을 소의 방목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간주되어 대규모 도살 대상이 된다. 그래서 미국의 말은 수천만 마리에서 1차대전 무렵에는 겨우 수백만 마리로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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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오늘 끝났다. 우승은 스페인이었다. 당초 프랑스가 우승할 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화려함은 없어도 실속있고 수비가 강했던 스페인이 결승전에서 아르헨을 압도하며 우승했다. 점수는 1:0이었으나 슈팅수가 10배 차이가 났던 만큼 압도적 차이를 보였다. 2:0이나 3:0이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경기 내용이었다. 워낙 완패였기에 아쉬움이 무척 짙었을 메시도 이를 숙연히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르헨 선수들이 보인 경기 후, 폭력 추태는 트럼프와 더불어 옥에 티였다. 월드컵을 보며 느낀 소회를 정리해본다.


1. 확대한 월드컵

 월드컵의 역사를 보며 참가국은 꾸준히 확대되었다. 한국이 두 번째로 월드컵에 참여한 1986년만 해도 24개국 체제였다. 그러던 것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32개국으로 확대되었고 근 30년간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다 이번에 48개국 체제가 되었다. 매우 이상해보이는 형태였지만 막상 하고보니 크게 이상하진 않았다. 

 사실 월드컵의 역사는 꾸준히 참가국의 확대로 향하고 있었다. 축구는 세계 제1의 스포츠이고 월드컵에 출전을 고대하는 나라와 국민들이 무척이나 많기 때문이다. 피파 입장에선 엄청난 잠재적 시장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피파는 48개국 첫 대회를 시행하고 이것이 굳어지기도 전에 다음 월드컵을 64개국 체제로 치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되면 4개국이 월드컵을 공동개최해도 이상하지 않고 더 많은 나라가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64개국을 4개 팀씩 16개조로 나누고 각 조의 2위가 토너먼트를 진출해 32강을 치루면 깔끔하다.


2. 수준 저하 논란

 월드컵이 참가개국 수를 엄격히 제한한 것은 월드컵의 가치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의 피파는 적극적 확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전 같으면 월드컵에 나오는 것은 언감생심인 나라들이 출전하게 되었다. 물론 카보베르데 같은 팀도 있었으나 상당수 수준 미달 팀들이 각 조에서 3패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3위 팀들의 성적이 1승1무1패 팀이 7개국이나 될 정도로 예상보다 무척 높았고 이는 한국이 1승을 했음에도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3. 득점력의 향상

 이번 월드컵의 경기당 득점은 거의 3점에 육박했다. 이는 월드컵의 확대로 인한 수준 저하와 밀접히 관련한다. 약체들이 많다보니 강팀에 의한 소위 양민학살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득점왕 후보들의 득점력도 상당했다. 득점왕 음바페는 10골, 2위 메시는 8골, 3위 홀란과 벨링엄도 7골이었다. 우승까지 경기가 하나 더 늘어나고, 약체를 상대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앞으로 월드컵 득점왕의 기준은 10골 근처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월드컵의 득점왕 기준은 매우 오랜 기간 5-6골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확실한 변화다.


4. 강력했지만 뭔가 모자랐던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이번에도 결승전에 올랐지만 스페인에 완패했다. 사실 그들은 이번엔 지난번 만큼 강하지 않았다. 메시는 더 늙어서 여전히 대단하나 약해졌고, 다른 선수들의 수준은 충분히 올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이번에 네임 벨류가 메시를 받쳐줄 만큼 높은 선수가 많지 않았다. 지난 대회에 디마리아와 디발라가 있었던 것과는 좀 다르다. 그럼에도 특유의 끈끈함으로 소위 꾸역승을 거두며 수차례 역전을 하며 결승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거기까지 였다.

 그래도 메시가 아르헨티나를 강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메시는 2006 월드컵 부터 2010, 2014, 2018, 2022, 2026 총 6차례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중 절반인 2014, 2022, 2026 총 세 차례나 팀을 무려 결승에 올려놓았다. 물론 우승이 한 차례에 그친 것은 매우 아쉽지만 네덜란드가 1974, 1978, 2010 세 차례 월드컵 결승에 올라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다행이라 볼 수도 있다. 만약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이번에 우승했다면 연속 우승으로 이는 1960년대 브라질의 펠레 이후 50여년만의 업적이 될 수 있었다. 


5. 화려하지 않았으나 매우 강한 스페인

 스페인은 1경기가 늘어났음에도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겨우 1골만을 허용했다. 골은 키가 큰 벨기에에 당한 헤더였다. 운이 좀 따랐다면 사상 최초의 무실점 우승을 달성할 뻔했다. 이번 대회 스페인은 2010년 우승 때와 비교하면 매우 다르다. 2010년 스페인은 다비디 비야, 사비, 이니에스타, 라모스, 피케, 푸욜 등 세계적 스타가 즐비했다. 하지만 이번에 우승한 스페인의 스쿼드는 당시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가볍다. 라빈 야말을 빼면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더 단단했다. 오히려 개인 기량이 다소 떨어지다보니 간결하게 팀 전술에 집중했고, 그래서 공격력은 부족했지만 매우 단단하고 상대를 전술로 압도하는 팀이 완성된 것 같다. 스페인은 2010, 2026 딱 두차례 결승에 올라 모두 우승했다. 대단한 승률이다.


6. 강력한 프랑스

 지난 10년 간 세계에서 가장 강한 팀은 프랑스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2018년 우승, 2022년 준우승, 2026년 4위를 차지했다. 지난 3차례 월드컵에서 2번이나 결승에 올랐다. 이번에도 4강 상대가 스페인만 아니었다면 결승에 올랐을 것이다.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국가이지만 축구에서 만큼은 오랜 기간 이렇다할 기를 펴지 못했다. 자국에서 개최한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하기 이전까지 유로에서 플라티니를 앞세워 한 번 우승한게 다였다. 그리고 프랑스는 자국 프로리그도 강하지 않다. 이탈리아가 세리아를 스페인이 프리메라리가를 영국이 프리미어리그를, 독일이 분데스리가를 보유한 것에 비해 프랑스의 리그 앙은 아무래도 무게감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21세기 들어 유럽에서 가장 강해진 것은 아프리카 자원을 가장 많이 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프랑스는 오랜 식민 경영으로 인해 아프리카에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강한 영향력을 지금도 행사한다. 그래서 프랑스 리그에서를 아프리카 자원이 선수로 많이 뛰고 있고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면 프랑스 국대로 흡수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프랑스 대표를 흑인팀이거나 아프리카 팀이라고 부적절한 비하를 하긴 했으나 이는 상당 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 막강한 공격력을 뽐낸 프랑스 공격 3인 방은 모두 아프리카계다. 그리고 과거 프랑스를 우승시칸 아트사커의 창시자 지단도 알제리계다. 프랑스의 부상은 아프리카계 선수의 적극 활용과 귀화와 상당히 관련있다 생각한다. 


7. 아시아의 한계

 이번에 아시아 팀은 월드컵에 9개 나라나 참가했다. 지난 대회의 2배 수준이다. 초반엔 반짝 선전하며 수준이 올라간 듯 했으나. 일본과 호주를 제외한 나머지들이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한계를 보였다. 그리고 이 둘도 32강에서 탈락했다. 오히려 16강에 한국과 일본이 진출한 지난 대회보다 성적이 저조하다. 

 아시아 최강 일본 역시 조별리그에서 보였던 강력함을 토너먼트에서 보이진 못했다. 상대가 브라질이긴 했으나 브라질 역시 예전 그 팀이 아니기에 아쉬웠다. 일본이 속했던 조는 죽음의 조라 불렸지만 막상 토너먼트에 진출한 3팀이 모조리 32강에서 탈락하며 생각만큼은 강하지 않았던 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매우 강력해졌지만 16강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일본의 지난 16강 경기들은 모조리 접전이었고 승부차기도 두 차례 있었으나 진 것은 진 것이다. 이번에도 32강을 넘지 못함으로써 일본으로서는 토너먼트에서 자신들이 이기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찾아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팀은 무척 강하나 개인이 충분히 강하지 못한 것이 원인일 수도 있고, 아직은 스쿼드가 축구 강국만큼 충분히 두껍지 못해 조별리그에서 총력을 다하게 되어 토너먼트에서는 막상 힘이 부족한 결과일 수도 있다. 


8. 형편없는 한국

 이번 대회 한국은 역대급 스쿼드와 역대급 꿀조라는 조합을 갖고도 고작 1승 2패로 일찌감치 짐을 쌌다. 최대의 원인은 역시 축구협회와 무능한 감독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선수들이 충분히 열심히 뛰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것도 일견 일리가 있다. 간절함은 확실히 부족해보였다. 

 한국은 역대 월드컵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아무리 형편 없어도 한 경기에서 최대 2득점의 한계를 보인다. 그리고 이번 대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좋은 공격자원을 보유하고도 지독한 빈공이었는데 겨우 2골을 넣었다. 한국은 1무 2패인 86월드컵도 4골, 3패인 90월드컵에 1골, 2무 1패인 94 월드컵에선 4골, 1무 2패인 98월드컵에서 2골을 넣었다. 즉, 역대 2번째의 최저 득점을 기록한 셈이다. 경기력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현재 정부는 박지성을 앞세워 축구협회를 개혁하려 하고 있다. 일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엿보이는데 박지성은 60일 내에 회장 선거를 치뤄야 한다는 규정을 수정하고, 회장 선거 인단도 수천명으로 늘려 구태세력을 성공적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제발 그의 개혁이 성공하고 축구를 선수들과 팬들에게 돌려주기를 바란다. 


9. 브라질의 미래는?

 브라질은 월드컵 5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국의 명예를 갖고 있다. 브라질은 펠레 시절 58, 62, 70년에 우승을 해서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했고, 호마리우, 호나우두 시절인 94, 2002년에 우승했다. 특히 94, 98, 2002 3개 대회 연속 결승에 올라 기염을 토했다. 

 그랬던 브라질이 2006년 대회 이후 우승은 커녕 결승 문턱 조차 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엔 16강에서 떨어졌다. 특히나 매 토너먼트 마다 유럽팀을 만나면 가차없이 탈락한다. 이는 현대 축구의 전술이 더욱 강하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브라질은 개인 전술이 상당히 강력한 나라인데 2000년대 후반부터 스페인을 필두로 전술의 역할이 개인의 역량을 많이 상회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개인전술에 많이 의존하는 브라질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혹자들은 브라질 선수들의 유럽화도 이유로 꼽는다.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선수들이 10대부터 유럽에서 뛰며 소위 유럽화가 되어버려 브라질 특유의 강력한 개성과 창의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유이든 현재의 브라질은 약하다.


10. 월드컵에도 상성이 있다.

 언급한 브라질은 노르웨이에 패했다. 노르웨이는 홀란을 보유했고, 이번 대회에서 강했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48개국 체제가 아니었다면 유럽 예선을 돌파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월드컵이 98년이었을 정도다. 실제 브라질은 키가 크고 힘이 좋은 노르웨이를 만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 이번에도 그랬다. 

 월드컵에서 의외로 힘이 좋고 키가 큰 북유럽 계열의 팀들이 최강팀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 2010년 스페인은 우승했음에도 조별리그에서 스위스를 만나 무기력하게 패했고, 브라질 역시 98년 월드컵 예선에서 노르웨이에 패했다. 그리고 잉글랜드는 스웨덴만 만나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패하거나 간신히 비긴다. 축구는 키나 덩치 등의 피지컬이 절대적이지는 않은 스포츠이나 이런 걸 보면 피지컬을 마냥 무시할순 없는 것 같다.


11. 월드컵의 추태

 이번 월드컵의 최대 추태는 피파다. 피파는 돈독이 올라 월드컵 참가국 수를 크게 확대했다. 여기까진 그래도 월드컵을 열망하는 국가들의 팬들을 위해서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는 달랐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휴식시간으로 축구는 사실상 4쿼터 처럼 운영되었고 경기 흐름은 끊겼고, 선수들의 몸도 식었다. 물론 이는 체력의 보존과 감독의 전술적 역할 확대라는 면도 있지만 그로 인한 긍정적인 면보다는 재미를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기존 월드컵은 경기시작 전과 하프타임에 광고를 때릴 수 있었으나 이 휴식시간으로 경기전, 전반 휴식, 하프타임, 후반 휴식으로 총 4회 비싼 광고를 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한 수익은 상당하다. 

 2위 추태는 트럼프다. 그는 지난 경기 퇴장당해 출전 정지를 당한 자국 선수를 피파 회장에 압력을 넣어 출전 시키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결승전 우승 행사에서 피파회장과 나란히 서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덕담을 했으며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선수들의 무대에서 인판티노의 만류에도 좀처럼 내려오지 않으려 했다. 미국이 우승했어도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인데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피파 부회장 정도로 여길만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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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의 대한민국 탐문 뉴 노멀 탐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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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식민지 지배를 당한 나라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다. 거기에 최근엔 문화적 패권국 위치에도 가까워지고 있다. 세계에서 미국과 영국 정도를 제외하고 이렇게 전 세계에 자국 문화의 영향력을 보인 나라는 일찍이 없었다. 그런데 이 한국은 21세기 들어서 더 특별해 질지도 모른다. 여전히 뛰어난 산업역량과 디지털 역량,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북극항로의 중간 기척지이지, 만주 시베리아로 진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여건 때문이다. 

 이런 한국을 미국의 뛰어난 지도층들이 놓칠리 없다. 디지털 패권 전쟁을 앞두고 엔비디아와 젠승황,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 오픈 에이 아이의 샘 올트먼 등이 한국을 찾았다. 특히, 팔란티어가 그렇다. 팔란티어는 단순한 빅테크가 아니다. 테크노-사이버 패권 전쟁의 헤드쿼터이자 대본영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사실상 21세기 디지털 동인도 회사나 다름이 없는데 이 팔란티어가 정조준하는 국가가 한국이다. 그들은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한국의 뛰어난 제조업 데이터가 필요하다. 한국은 제조업과 디지털 신구 산업에 다리를 걸치고 경쟁력을 가진 유일한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이다.

 2026년 인간은 두 개의 특이점과 변곡점을 통과 중이다. 하나는 중국의 제조2025로 이미 완료되어 중국은 강력한 패권국으로 올라섰다. 다른 하나는 파리 기후협약이다. 이는 강제성이 없는 조약으로 미국마저 탈퇴하고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유럽과 미국의 빅테크는 지구 온난화에 상당한 신경을 썼지만 인공지능 전쟁으로 전력이 부족하고 중요해지며 이는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되었다.

 2개의 변곡점은 패권의 전환과 문명의 전환이다.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을 지나 테크노 차이나로 현재 패권이 이양 중이다. 그리고 디지털 문명은 더 이상 과거의 정당체제, 그리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로 담아낼 수 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문명을 담을 거버넌스, 파이낸스, 컨센선스라는 OS를 만드는 경쟁도 치열하다. 과거 산업화를 담아낸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여러 나라들이 알아서 담아낸 것처럼, 새 OS도 디지털 시대에 자연스레 다른 나라들이 도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바로 2개의 특이점과 2개의 변곡점이 포개지는 꼭짓점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인식의 혁명적 전환이 요구된다. 세계를 보는 시각 부터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그간 동서양은 남방의 농경, 즉, 정주문명이 중심이었다. 그리고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동서양의 길항으로 구성된 북방 유목민은 소외되었다. 하지만 강력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패권지역이 변하고 있다. 남방의 정주 문명이 기온 상승으로 인해 위로 이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북위 30-50도는 온대 지역으로 농경과 유리하고, 감염병이 적으며, 가축화할 동물이 풍부하고, 이동이 편리하며, 인구가 증가하고 고도의 사회와 문명이 발달하여 농업시대부터 세계의 패권을 쥐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산업화도 이 지역에서 발생했고 그걸 성공적으로 수용한 것도 동서양을 통틀어 이 지역이었다. 

 하지만 온난화로 이제 40-60도가 이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30-50도 지역은 농업 생산량이 후퇴하고, 감염병이 창궐하며, 생활하기 어려워지고, 가축도 잘 자라지 않으며, 산업생산량 및 데이터 센터 등의 운영에도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은 북방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사실 반만년의 역사 중 한국이 좁은 한반도에 갇혀버린 건 지난 천년정도에 불과하다. 태고와 상고의 기억을 살려 위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새로운 서사를 구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한중일의 답답한 구도를 돌파할 수 있다.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은 한자문화권과 유교적 영향력도 사실 고작 15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졌다. 한국은 훨씬 더 긴 역사를 중원보다는 북방과 함께 해왔다. 사실 한국은 지금도 드러나고 있지만 유교적 영향력이 강한 아침의 고요한 나라보다는 음주가무가 타고난 기질이다. 

 그리고 인간도 인공지능도 시원한 곳을 선호하다. 또한 둘다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시베리아는 세계 10대 강 중 무려 4개가 흐를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다. 또한 시원하다. 따라서 앞으로는 시베리아로 눈을 돌려 그곳에서 북극항로와 북극해를 아우르는 새로운 대항해시대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장차 지구의 꼭짓점 북극해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가 만나는 새 밀레니엄의 지중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으레 문명의 대전환에는 창조적 파괴가 따랐다. 250년전에 2개의 혁명이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 영국의 산업혁명이 있었다. 이로 인해 농업에서 산업으로, 군주제에서 민주제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양자를 합쳐 산업문명이 일어났고 이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완수한게 신대륙의 미국이었다. 미국은 당시 세계의 변방으로 새 패러다임을 완성하여 자유주의-민주주의-공화주의의 새로운 문명을 표준으로 재정하고 패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농업문명을 산업 문명으로 변환시킨 플랫폼이 정당이다. 세계의 3대 정당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중국의 공산당이 있다. 오랜 기간 잘 작동해왔던 이 정당들은 지금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파열음을 강하게 내고 있다. 새로운 Z 세대들은 도처에서 이 정당들에 반기를 들고 있으며 이는 이런 3대 정당의 아류 정당을 구축한 한국이나 유럽 등 다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제 디지털 문명의 새 패러다임을 창추래야 한다. 미국은 13개 주가 연방국가로 출발한 연성제국어있다. 한국 역시 한반도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대칸제국으로의 전일보한 창조적 기획력이 필요하다. 남북 양국 체제로 상상력을 한반도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United states of Asia를 꿈꿔야 한다. 이 새로운 연방에는 미국의 캘리포니아나 텍사스 같은 프런티어가 필요하며 그 역할을 한국이 햐야 하는 것이다.

 아직 북방에는 미국이나 유럽 연합 같은 것이 없다. 심지어 동남아에도 연합이 있다. 그래서 북방에는 알타이 연합 같은 것이 필요하다. 몽골, 중앙아시아, 헝가리, 불가리아 등 동유럽과 시베리아를 모두 아우라는 연합 ASIS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한반도를 넘어서는 사고와 행동을 한 7인의 행적을 살핀다.


1. 박정희

 박정희는 원래 사범학교를 나온 초등교사였다. 하지만 일본인 교장과 불화가 있었고 그 탈출구로 만주군관학교를 찾는다. 그는 나이 제한에 걸려 입학이 불가능했지만 이를 위해 혈서까지 쓰며 입학한다. 당시 만주국은 오족협화를 주창했다. 일, 중, 한, 러, 몽의 오족협화였다. 그래서 수도 이름도 새로운 수도라는 뜻의 신경이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만주군관학교 만주계수석이자 일본 육사도 3등 졸업한 박정희는 한국육사에도 입학해 3등으로 졸업한다. 

 그는 정보장교로 1949년 12월 17일 연말 종합 적정서에서 임박한 북의 남침 가능성과 예측일정, 주요 경로를 상세히 분석했다. 하지만 당시 무능한 정부와 군 수뇌부는 이를 묵살한다. 이 때부터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스스로 움직이기 전 이승만 정권은 4.19로 인해 붕괴한다. 그리고 그는 그 혼란을 5.16쿠데타로 점거한다.

 사실 그는 통념과는 다르게 리더스타일은 아니다. 전략가이자 참모 스타일이며, 실제로 5.16 당시에도 앞장 설 선배를 찾아다녔다. 고민 끝에 대안이 없자 결국 스스로 나선 것이다. 5.16은 한국 입장에선 대대적 세대교체였다. 1961년 박정희는 44세, 김종필은 35세, 차지철은 27세에 불과했다. 혈기왕성하고 젊은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 수뇌부가 채워진 셈이다. 그 이전까지 남한은 지도층이 매우 고령이었는데 이승만은 무려 1875년생이고 장면도 1879년생이었다. 19세기 인물이 20세기를 주도한 셈이다. 반면 북한은 김일성이 1912년으로 매우 젊었다. 남한도 비슷해진 것이다. 

 쿠데타를 한 박정희는 희안하게도 선거를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어느 정도는 민주주의를 지킬 생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부정선거와 관건 선거가 난무하긴 했지만 그는 김대중에게 본격적 위협을 받기 전까지는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한다. 1963년 첫 선거에서 박정희는 46세, 상대였던 윤보선은 67세였다. 윤은 전통적인 사대부였고 박은 전형적 농민의 아들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서방을 모시고 공화당은 토착 민족, 서민 세력으로 선거 구도를 잡았고 이것이 먹혀 승리한다. 

 저자는 박정희의 이 승리고 단순한 대한민국의 전환이 아닌 조선600년에 걸친 대전환으로 파악한다. 기존의 사농공상에서 상공농사로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지긋지긋한 선비 전통을 타계하고, 구부가 법가가 되어 통치를 채김지고, 산업문명을 이끌어갈 공인과 상인이 최일선에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할 돈이 없었다. 그래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베트남에 파병한다. 

 경제에 문외한이었던 박은 저녁마다 2-3시간씩 경제, 경영, 재정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일본의 경재계인사들과 하버드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구한다. 현장을 시찰하고, 실무관료와 기술자에게 보고 들으며 익힌다. 당시 대기업 총수들은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과 창업가 정신을 갖춘 매우 극소수의 인재였다. 박은 이들을 자주 만났다. 또한 미래학자 허먼 칸 박사에도 영감을 얻는다. 다가올 미래르 예측해 미리 투자하고 건설하면 큰 파급효과를 본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당시 무모한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이어진다. 1970년 7월 7일 완공되어 한국 경제의 뼈대로 크게 작용한다.

 박은 과학, 기술력 증강에도 박차를 가한다.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가 월북하여 국내에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과학, 기술 분야에서 고작 6명에 불과했다. 그는 1962년 제1차 과학기술진흥5개년 계획을 수립한다. 베트남 파병 보답 1천만 달러와 정부 출연 1천만달러 총2천만 달러를 동원해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를 설립한다. 그리고 애국심에 대한 호소와 우수한 대우로 해외 한국인 과학자를 초빙한다. 설립 2년만에 핵심 분야의 과학자들이 35인이 귀국한다. kist는 후신으로 카이스트, 지스트, 유지스트, 디지스트로 분화한다. 

 박은 생각보다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우리 것, 한국적인 것이 퇴화하고 서구, 일본, 미국의 것이 사회문화를 장악하는데 분노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권위, 존엄성, 주체성을 다시 회복할지 고뇌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정신문화연구원이다. 그리고 박은 단군조선의 건국이념, 홍익인간을 드높이고 통일 신라의 리더십인 화랑도와 풍류도를 강조한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아직까지도 한국교육과정의 최고 이념이다. 

 그는 초등 교사 시절의 실력을 살려 새마을 운동 노래도 직접 작사, 작곡한다. 1968년 국민교육헌장은 인민을 시민이 아닌 국민이나 신민으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이 크지만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체주의적 의도보다는 신생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마음가짐으로 볼 여지도 있다. 

 박은 극일의 논리도 펼친다. 선택과 집중으로 일군의 뛰어난 기업가 집단을 선별하고 지원하여 자도차, 조선, 전자산업에서 일을 적극 벤치마킹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위해 철강이 필요했다. 그래서 심복 박태준을 투입해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을 건설한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일본과의 수교를 두려워하며 반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일본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학습하고 배워서 이겨낼 존재였다.

 박은 국방의 기초도 닦아 낸다. 당시 미국의 닉슨은 한국의 베트남 파병에도 불구하고 주한 미군 철수를 일방 통보한다. 박은 자주국방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은 71년 고리원전, 77년 월성 원전을 도입했는데 후자는 중수로로 플루토늄이 추출되는 것이었다. 이는 핵무기의 원료로 가공이 가능했다. 박은 세계 7번째로 미사일 개발에 성공한다. 78년 백곰 미사일이 발사 성공한 것이다. 

 박은 기나긴 독재와 인권의 탄압, 무수한 살생을 가져온 인물이다. 하지만 저자는 박정희가 이런 시각을 가지고 산업화 한국의 초석을 닿아놓은 것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그가 일본의 신민이었음에도 일본과 미국에 경도된 시각이 아닌 민족을 중심에 놓은 것도 높게 평가한다. 박의 저서 4권을 모두 본 저자는 글이 모두 간단하고 쉽게 읽히며 일관된다고 평가한다. 모든 것이 자기 머리속에 있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저자는 박정희는 공은 8이고 과는 2였던 인물로 평가한다. 저자도 역사학자 인 만큼 과거 박정희에 대해 독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더욱 컸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한다.


2. 김대중

 김대중은 사형선고를 비롯해 5차례의 죽을 위기, 6년의 감옥 생활을 겪는다. 73년 도쿄에서 납치되어 죽을 수장 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그를 납치한 자들은 실제 그를 수장시키려고 팔다라이 무거운 추를 장착까지 했었다. 김대중은 1976년 3.1절 명동성당에서 민주구국선언을 한다. 그는 천주교 신자로 용서가 신념이었다. 김은 박정희의 유신이라는 나쁜 정치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나, 그것을 한 사람까지 용서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용서하는 덕성의 크기보다 용서하지 않는 질못의 크기가 더 크다고 하였다. 실제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어서 자신을 죽이려한 모든 자를 처벌하거나 복수하지 않고 용서하는 큰 그릇을 보여준다.

 그는 전두환도 용서해서 청와대에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한다. 그리고 92년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무덤을 방문했고 97년 대선 이후에는 박정희 생가도 방문한다. 2004년에는 박근혜와 같이 박정희 기념관도 방문할 정도였다. 이런 생각은 정치 이념으로도 이어진다. 영호남 동시 화합, 군사산업화 정부와 문민, 민주와 정부의 세력을 모두 품어 진정한 국민의 정부를 이루려는게 그의 포부였다.

 김은 젊은 시절 만주국 최고 대한 겐코쿠 대학을 가려하였으나 일제가 패망해 목포 상고를 다닌다. 거기서 일본은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고, 해운회사 사장이 된다. 김은 대통령이 되고 그 시절 은사를 방문한다. 일본 천황을 만나고, 오부치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공동 선언한다.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는데 당시의 커다란 우려와 달리 이는 한국에 커다란 혜택을 주었고 한류의 시작이 된다. 

 그 다음은 북한이었다. 그의 햇볕정책 역시 용서와 화해에 기반한 것이다. 그는 결코 흡수 통일 의지가 없음을 천명하여 북의 지도층을 안심시킨다. 결과가 6.15 공동선언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김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그가 애써 이룩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박근혜, 이명박 정권에 의해 하나씩 차례로 문을 닫은게 매우 아쉽다. 

 김은 제2의 건국을 시도한다. 그것은 제3의 물결, 즉 정보화에 선진적으로 올라타는 것이었다. 1981년 청주 감옥에서 그는 제3의 물결을 읽는다. 그리고 한국을 정보 강국으로 만들겠다 결심한다. 대통령 재임시절 그는 앨빈 토플러, 빌게이츠, 손정의등 당대 최고의 정보화 인재들을 초청하고 자문을 구한다. 그는 산업화에는 뒤졌으나 정보화 만큼은 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0년 2월 2일 그는 모든 국무위원에 하루 속히 전자정부를 구축하라 이메일을 보낸다. 그는 대우전자, 삼성, KT 출신의 인재를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기존 관료들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그리고 시티즌에서 네티즌으로, 1인 1pc운동, 1인 1ID운동이 펼쳐진다. 인터넷 보급과 더불어 기존의 학벌, 직업을 넘어선 신 지식인 운동도 펼쳐진다. 그는 미국을 방문한 후 경기도 판교를 미국의 실리콘 벨리를 본다 테크노 벨리로 조성한다. 

 김의 퇴임인 20003년 2월 한국은 몰라보게 변한다. 98년 30만에 불과하던 네티즌은 2003년 3천만이 되었다. 벤처와 IT산업의 성장으로 2002년 이들이 GDP의 13%, 전체 수출의 30%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 한국이 디지털 강국이자 산업화 강국으로 우뚝 설수 있었던 것은 결국 박정희외 김대중이 초석을 닦에 놓은 바가 크다.

 한국은 지금 미래를 대비해 전라남도에 주목한다. 강남-성남에 이은 전남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나주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의 허브로, 고흥은 나로호 발사기지 등 우주산업 메카로, 광주는 지스트를 축으로 AI연구 선도, 그리고 가장 끝자리인 해남에 솔라시도가 조성중이다. 솔라시도의 솔은 솔라, 라는 레이크, 시는 해상풍력, 도는 시티를 의미한다. 솔라시도는 해남과 영암의 간척지에 조성중인 미래형 기업도시다. 이곳은 넓은 부지에 전력과 용수가 풍부하다. 장차 전남은 다도해를 모두 품은 인구 500만 규모의 세계적인 미래도시 네트워크가 될 거란게 저자의 시야다.


3. 김우중

 그는 비빔밥과 국밥을 좋아했다. 빨리 먹을 수 있어 바로 일에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67년 대우를 창업한다. 현대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는 동시대 한국인 중 가장 많은 국가를 방문하고 가장 많은 리더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세계를 경영한 첫 번째 한국인다.

 중앙아시아, 동유럽 등지에서 그의 별명은 김키스칸이다. 대우는 창립 7년만에 한국 최초의 종합상사로 부상한다. 그리고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지사도 설립한다. 69년 싱가폴과 시드니에 회사를 설립하고 수단을 비롯한 비수교 국가에도 진출한다. 죽의 장막은 중국에도 먼저 진출하는데 무려 85년으로 국교수립인 92년보다 한참 빠르다.

 1997년 대우는 전 세계에 600개 법인과 지사를 보유한다. 1987년 김우중은 전경련에서 세계화 기조연설을 한다. 그는 중진국에서 벗어나 세계의 자원가 인재, 기술, 자본을 통째로 사용하는 글로벌 전략을 제시한다. 대우는 진출한 나라에 공장만 설립하지 않는다. 종합적 마스터 플랜과 통합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처럼 제조, 건설, 금융이 통으로 구성된 복합화 전략을 구사하였고 세계화-현지화-복합화의 3중주로 한국의 성공격험을 누리에 알리고자 했다.

 이익도 5:5였다. 마음을 얻어야 파트너십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싱크탱크로 대우경제연구소도 설립한다. 

 이런 대우의 세계 경영은 미국에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미국은 IMF를 계기로 모피아를 동원하여 한국의 정치권으로 하여금 대우를 붕괴시키게 만든다. 

 김우중은 1992년 북한에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난다. 김일성은 그를 매우 마음에 들어해 하루는 남에 하루는 북에 머무르라 할 정도였다. 김정일과 만난 횟수도 20여 차례였다. 개성공단에 앞서 남포공단을 고려하였는데 그 구상이 초월적이다. 북한의 노동력과 한국의 기술력으로 중국의 동북3성에 공단을 짓는다는 구상이다. 이것이 남북의 정치 관계에 따른 남북 합작 리스크를 줄이고 지속가능성이 높인다고 보았다. EU 못지 않은 동부가의 공동구상이었다. 실제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남북의 정치관계로 인해 일방 종류되었다. 

 대우의 해체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김대중의 6.15남북 공동선언과 그로 인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는 김우중의 시각으로 시베리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온난화로 인해 향후 수백년간 3억 이상의 인구가 시베리아로 이주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인구는 고작 2천만이지만 이 지역이 농경이 가능해지고, 생활 환경이 좋아지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베리아의 4대 강은 동과 서로 잇고, 고속철도, 고속도로,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연결해 미래 경제의 대동맥으로 구축하고, 이를 실현할 마스트플랜 국가가 미래 패권국이 될거란게 저자의 시각이다.


4. 김지하

 사실 난 이분을 잘 모른다. 저자의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5적이란 글을 썼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김지하는 1991년을 전후로 세평이 갈린다. 군사독재 시절 그의 시를 읽고 전율한 사람들이 이 시점을 이후로 변절한 그에게 분개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영일이다. 1970년 유명한 오적을 발표했는데 장성부터 장관까지 당시 5무리의 공동의 적을 지목하여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는 1972년 유신 독재정권의 1표적이 되어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사형선고와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는 무려 독방생활을 하게 된다. 워낙 위험인물이라 판단했는지 당시 박정희 독재정권은 감방 양쪽으로 20개의 방을 모두 비웠을 정도였다. 면회도 불가, 운동도 불가, 교도관 두명으로 상시 감사히고, 그것도 모자라 CCTV로 일거수 일투족을 24시간 감시했다. 당시 그의 휘발력이 이 정도였다.

 독재정권이 두려워한 것과 달리 그는 사실 심약하고 약골이다. 1980년 12월 12일 박정희가 죽자 출소한다. 그런데 오랜 감방생활의 후유증으로 섬망이 생긴다. 그는 악전고투끝에 생명사상가로 개심한다. 91년 그는 노태우 정권에 맞서 초개처럼 목숨을 던지는 운동권 청년을 질타한다. 글의 제목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였다. 혁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생명이고, 생명을 버리며 혁명을 이루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지만 이게 독재에 분개한 청년들에게 먹힐리 없다. 운동권은 그를 변절자라 낙인하고 민족문학작가회의조차 그를 제명해버린다. 김지하가 죽을 때 까지 양진영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는다.

 김지하의 가장 큰 사상적 혁신은 동학에서 전봉준이 아닌 최시형을 주목한 것이다. 죽창가의 혁명이 아닌 모심의 정신과 살림의 정성으로 등불을 밝히는 해월신사를 다시 살린 것이다. 이는 개화우파 산업세력과 민족화 세력을 아우르고 넘어서서 개벽파를 호출한 것이다. 박정희가 산업화, 김대중이 정보화, 김우중이 세계화를 했다면 김지하는 생명화를 한 셈이다. 

 김지하는 신좌파의 유러피안 드림과 구미편향은 사절한다. 그는 우리의 원류에 주목해 율려와 풍유, 신시와 화백을 화두로 삼는다. 1996년 신풍류회의를 발족한다. 21세기가 되어 경기지사 손학규의 후원으로 세계생명문화포럼을 개최했는데 좌파나 우파가 아닌 개벽파가 생명문명을 탐구하는 첫 국제회합을 무려 한국에서 개최한 것이었다. 하지만 김문수로 지사가 바뀌며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된다.

 김지하는 21세기 들어 디지털과 우주로 나아간다.신, 마음, 우주의 진화가 합류하는 새로운 우주 종교의 탄생을 예측했다. 생물의 자연적 진화와 인간의 자각적 진화의 활물이 자율적 진화와 하나가 되어 가는 우주적 차원의 후천개벽을 설명했다. 

 

5. 백남준

 그는 아버지가 큰 부호였다. 친일파나 졸부는 아니고 조선 때부터 청에서 수입한 비단을 독점하며 부를 축적한 거상의 집안이다. 일제시대 한성은행의 자본금이 100만원이었는데 백남준 집 재산이 무려 300만원일 정도였다. 

 일제시대도 두렵지 않던 남준의 집안에게도 북의 침공은 달랐다. 자본가라 도망하였고 워낙 부호라 피난의 스케일도 달랐다. 무려 홍콩으로 피난한다. 그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예술의 길로 접어들며 궁핍을 경험한다. 

 그는 일본 가마쿠라로 가서 젠 사상에 심취한다. 그는 한중일을 차례로 거친 후 독일로 향하는데 다름슈타트는 매년 여름 국제인음악강좌가 열리는 곳이었다. 기술과 예술의 시너지를 탐구하는 쵤일선의 과학자와 최전선의 예술가가 화합했다. 그는 여기서 미디아 아트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본격적으로 공학과 과학을 연구한다. TV를 잔뜩 사사 실험과 실습을 한다. 캔버스의 회화를 지나 브라운관에서 전기와 전자의 신호로 황홀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안을 탐구한다.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TV라는 전시회를 연다. 세계최초의 비디오 아트 전시였다. 1964년 미국으로 간다. 68혁명의 분위기로 당시 동양의 정신에 열광하는 히피가 많았다. 백은 서양의 테크와 동양의 이데올로기를 담아 새로운 예술세계를 선보이는 아시아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였다. 

 TV붓다가 상징적이다. TV뒤에 카메라를 설치해 마치 부처가 TV에 나오는 자신을 보고 상념에 빠진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뉴욕의 예술가와 비평가들을 환호한다. 97년 초빙을 받아 그는 다시 독일로 가게 되고 2000년 구겐하임 미술관은 백남준 특별전을 개최할 정도였다. 백은 1980년대부터 인공위성예술로 도약한다. 1984,1986,1989 3부작이 대표적이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1984 소설의 우울한 전망을 전복하여 테크가 온 인류를 연결해 새 의식을 창출하는 신세계의 엔진임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뉴욕, 파리, 서울을 연결하여 동서양을 넘나드는 인류 최초의 지구촌 종합 예술을 선보였다. 

 그는 34년만에 한국으로 귀국하여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 올림픽을 연출한다. 그는 여기서 바이바이 키플링을 선보인다. 영국의 키플링은 동과 서가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로 예언한 오만한 영국 제국주의자였다. 

 백남준은 몽고반점을 드러내 보일 정도로 스스로 몽골인임을 천명했다. 그의 유골은 그래서인지 유럽과 동서양에 골고루 안치되어 있다. 백은 어릴 때 부터 굿판을 감상했고, 중국의 도, 일본의 선보다 한국의 무가 가장 흥겹고, 재미있다 생각했다. 예술계의 칭기즈칸이라는 별명처럼 칭기즈칸은 실제로 백의 정신적 조상이다. 원제국은 광활한 제국통치를 위해 다문명, 다종교, 다민족을 관할하기 위해 샤머니즘을 활용했다. 백남준과 통하는 면이다

 

6. 이수만

 이수만은 컴퓨터 비전 기반 로보텍스 시스템이란 제목으로 85년 석사논문을 쓴다. 그는 디지털 세상이후 가상공간에서 사람들이 즐길 콘텐츠를 만들고자한 정보혁명기에 IT로 승부하지 않고 IT문화 생산을 위한 컬쳐테크를 창안했다. 

 이수만은 81년 미국에서 MTV 개국을 경험한다. 테크의 진화로 미디어가 변하고 음악 산업의 지각변동도 간파한다. 그는MTV 개국 이후 티비 시청자의 관심이 패션, 댄스, 노래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파악하고 비디오 스타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는 컴퓨터 공학을 음악과 융합할 시 아날로그로 꿈꿀 수 없는 획기적 혁신이 가능하다 믿었다. 테크는 악기나 음성의 한계를 돌파시켜줬고, 촬용하 노래와 춤도 다양한 방식으로 편집하면 색다르게 재탄생했다. 드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디지털 시대의 종합 예술로 승하하는 것이다.

 85년 귀국하여 돌아와라는 MTV스타일 뮤직 비디오를 선보였지만 성공하진 못한다. 그는 비디오 스타를 별자리처럼 직어내는 프로듀서가 되기로 결심한다. 다만 종잣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월미도에 헤밍웨이라는 카페를 차린다. 당시X세대가 등장하는 시기로 소비세대가 등장하고 이 카페는 그들의 낭만을 충족하는 신인류의 사랑의 명소가 된다. 1989년 SM기획을 설립하고 5년 SM으로 전환한다. 

 96년 HOT가 데뷔하고 팬덤문화와 팬덤 경제가 생겨난다. 그러나 IPO는 험난했고 99년 실패했다. 2000년 코스닥 상장을 한다. 2014년 전경련에 가입했고 2022년엔 K pop 종목  ETF가 출시한다. 2008-2022년까지 SM은 주가가 83배나 상승한다. 

 그의 첫 시도는 현진영과 와와였다. 성공했지만 마약 사건으로 나락에 가고 회사가 파산 위기에 몰린다. 그는 시스템을 갖추기로 한다. 스타의 연속적 배출과 관리를 표준화한 것이다. 문화기술의 핵심은 음악이 아니라아이돌이었다. 그래서 인재의 선발과 육성에 사활을 걸었고, 연습생이라는 초유의 제도를 고안한다. 공개 오디션도 도입한다. 연습생은 춤과 노래, 연기, 외국어, 개인별 학습, 인성교육을 받는다. 이렇게 양성한 최정예가 아이돌로 데뷔한다.

 아이돌 양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둘이다. 우선 이성수로 그는 아이돌 전체를 기획하고, 작곡, 뮤직 비디오의 최적의 조합을 찾았다. 세계의 다양한 곡을 섭렵하되 이를 SM의 스타일에 맞게 브랜드로 통합 설계했다. 다음은 민희진이다. 그는 의상과 안무의 비주얼을 맡았다. 단지 옷과 분장이 아닌 캐릭터와 무대 콘셉트를 고차원 비주얼로 나타냈다. 

 이수만의 세계화 전략은 3단계다. 한국 가수의 해외 진출, 외국인 멤버 포함 현지 활동, 외국 기업과의 합작 현지 그룹 제작이다. SM은 탁월한 인재선발을 위해 해외 오디션도 진행한다. 이제 케이 팝은 더이상 일국의 가요가 아니다. 디지털 문명에 최적화한 한국의 오페라이자 제국의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2020년대 한국어는 유튜브,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 재생 중 영어, 스페인어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한국어 학습 외국인 수도 나날히 증가중이다. 한국어 능력시험 응시자는 2010년 15만에서 2025년 55만 이상으로 증가했다. 한국어가 3위가 되었음은 규모를 넘어선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언어는 고유한 생각과 세계관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이수만은 처음부터 세계관에 진심이었다. 이게 한국의 다른 기획사와의 차이다. 그래서 그는 SM세계관을 공유하는 덕후를 양산했고 SM타운 SM공화국 SM제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낳았다. 


7. 이상혁  

 라이엇게임즈는 2006년 설립된다. 본사는 LA에 있고, 회사내 라이엇 pc 방이 있을 정도로 창업자인 브랜득 벡과 마크 베릴은 어릴 때부터 스타를 즐겼다. 그들은 임요환과 홍진호의 경기를 즐겼고, LA한인타운을 자주 방문해 PC방 문화를 즐겼다. 이들이 만든 게임이 LOL이다. 2025년 기준 2억의 유저가 있다. 5명이서 팀으로 상대 기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160인의 챔피언 중 하나를 고르다. 각각의 챔피언이 특징이 있어 다섯이 시너지를 구성하는게 중요하다. 챔피언은 5개 스킬과 2개 주문사용이 가능하다. 한번에 최대7개 아이템을 소유한다. 챔피언 중 한국의 구미호를 차용한 아리도 있다. 

 이상혁은 2011 LOL을 시작한다. 중학생때다. 고등학생이 되자 랭크게임에 입성한다. 0.02%였다. 최상위 탑티어가 되자 고전파라는 닉네임도 쓴다. 그는 2013년 17세에 SK에 영입된다. 네임도 페이커로 개명한다. 2013LCK컵에서 우승한다. 창단9개월만의 쾌거였고 MVP도 차지한다.

 그는 2013년 롤드컵에 출전해서 우승하고, 2015-2016년 2연패 우승을 한다. 하지만 2017 결승전에서 0-3으로 완패하며 하락세가 찾아온다. 슬럼프로 국내에서도 랭킹7윆지 추락한다. 돌파구는 게임이 아니라 책이었다. 그는 게임과는 오히려 거리를 두고 다른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한다. 페이커1.0이 타고난 반사신경과 게임 센스에 기초했다면 페이커 2.0은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의 마인드컨터롤에 기초한 정신력에 기반한다. 

 그는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며 2023 롤드컵에서 7년만에 우승한다. 그래서 그는 롤드컵 최연소이자 최고령 우승자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는 2024-2025대회도 연속 우승하여 사상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한다.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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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타니 도시로 지음, 나지윤 옮김 / 향기책방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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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몸에는 무려 37개조의 세포가 살고 있으며 이들이 잘 건사하려면 마땅히 혈류를 통한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외모는 체내 혈관의 상태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일종의 지표다. 대동맥 같은 굵은 혈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혈관이 자율신경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적으로 조절된다. 특히, 말단 동맥에 자율신경이 촘촘히 분포한다. 

 사람이 늙어 보이는 부분은 크게 3가지다. 우선 피부 노화다. 그리고 튀어 나온 복부, 마지막은 구부정한 자세다. 인간의 근육량은 남여 모두 20대가 정점이다. 그리고 30대 이후 매년 1%씩 줄어든다. 그래서 40대는 20대에 비해 10%, 50대는 20%, 60대는 60%나 근육량이 적다. 특히 상반신보다 하반신의 근육 감소가 두드러진다. 

 항노화 피부 검진을 받은 279명을 대상으로 혈관나이(경동맥 두께)와 실제 나이를 비교한 결과 간호사 20명이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인다고 평가한 사람이 실제로도 혈관 나이가 늙게 나왔다. 혈관 나이가 젊을수록 혈관은 부드럽고 탄력적이라 혈류가 원활하다. 그래서 영양분과 산소가 몸속 골고루 전달되며 피부 표면이 윤기있고 탱탱한 것이다. 하지만 혈관이 노화하면 내벽이 두꺼워져 유연하게 늘어나지 않는다. 결국 혈류가 줄어 말초조직의 산소와 영양 공급이 줄어 생기를 잃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혈관은 결국 딱딱해져 아예 끊어져 버린다. 이런 혈관을 고스트 혈관이라 하며 이것들을 결국 사멸해버린다. 그래서 모세혈관은 20대가 최대치이며 60대가 되면 20대의 고작 40% 수준이고 영양도달은 50%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혈관의 상태가 곧 노화를 대변하는 것이다.

 혈관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노화한다. 하지만 노화가 나이보다 심해지는건 문제가 있다. 나이가 들면 동맥의 벽이 점차 두껍고 단단해진다. 이게 동맥경화다. 하지만 LDL이 많아지고 HDL이 적어지거나 과도한 채내 활성산소가 발생하거나 고혈압이 있으면 혈관 내피 세포가 손상되 동맥 경화가 더 심해진다. LDL은 혈관 내벽에 침투해 산화되어 이물질로 변화한다. 그러면 대식세포가 이것을 흡수해버리는데 이것들이 혈관벽 안쪽에 축적된다. 바로 플라크다. 플라크가 쌓이면 죽상동맥경화로 이어진다. 플라크는 유연하고 약해 혈압이 높거나 혈류가 강하면 손상되어 떨어져나간다. 그리고 혈관을 타고 돌다 좁은 곳을 막아버린다. 모세혈관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크가 거대해서 충분히 큰 혈관을 막으면 뇌졸중과 심근경색을 이어진다. 

 2024년 한국은 심장질환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65.7명이었다. 암에 이은 2위다. 암은 5년 생존율이 현재 무려 70%에 달한다. 하지만 심부전의 5년 생존률은 50%에 불과하다. 보다 예후가 심각한 것이다. 

 영양학적으로 탄수화물에서 식이섬유를 제거한 것이 당질이다. 당이 흡수되면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한다. 인슐린이 포도당을 간과 근육, 지방으로 옮겨 에너지를 사용하고 저장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운동부족이나 과식으로 대사증후군이 오면 이 시스템이 흔들리게 된다. 내장지붕의 생리활성물질은 인슐린의 작용을 방해한다. 근육량이 줄어들면 포도당 흡수가 줄어든다. 이 모든 것들이 인슐린 효과를 떨어뜨려 식후 고혈당, 즉 당뇨로 이르게 한다. 

 혈액 속의 포도당은 혈관 벽의 단백질과 결합하고 그 부위가 체온에 의해 열을 받아 변성되면 탄것처럼 변하게 된다. 이것이 당화다. 이 변한 조직에서 만들어지는 변성 단백질이 최종당화산물이다. 최종당화산물은 혈관과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세포 기능을 저하하고 노화를 촉진한다. 

 뇌에는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물질이 쌓인다. 유해한 물질로 뇌는 수면을 통해 매일 이 물질을 제거한다. 그런데 베타아밀로이드와 인슐린을 분해하는 효소가 같다. 즉, 고혈당이 지속되면 인슐린은 과도 분비되고 몸은 이것 제거하는데 그 과정에서 베타아밀로이드가 충분히 제거되지 않게 된다. 이는 치매의 위험으로 이어진다. 치매가 요즘 제3당뇨라 불리는 이유다. 

 인간은 에너지원으로 포도당만 사용하진 않는다. 몸속에 저장된 지방이 포도당과 글리코겐마저 사용되면 분해되어 에너지원이 되는데 이게 케톤체다. 케톤대사는 뇌에 두 번째 에너지가 되며 뇌는 이것을 좋아한다. 또한 케톤은 장기 손상을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지방산은 불포화지방산과 포화지방산으로 크게 나뉜다. 어패류나 기름이 불포화지방산이고 육류에 들은 것이 포화지방산이다. 불포화는 상온에서 굳지 않으며 포화지방산은 굳는다. 불포화지방산은 일가불포화 지방산과 다가 불포화 지방산으로 다시 나뉜다. 일가는 오메가9으로 올레산을 갖고 있으며 올리브유가 대표적이다. 염증에 영향을 주지 않고 항산화 효과가 있다. 다가는 오메가6로 리놀레산을 갖고 있으며 식물성 기름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사 시 아라키돈산을 발생시켜 염증을 유발한다. 다가는 오메가3도 있다. 이는 아마씨유나, 들기름에 해다아며 EDA와 DHA를 함유해 항염증 작용을 한다. 

 그래서 체내 염증을 줄이려면 기름에 신경을 써야한다. 오메가 6은 줄이고 오메가 3 흡수를 늘리는게 좋다. 그리고 EDA와 DHA, 아라키돈산의 비율은 1:1이 적당하다. 물고기 반 고기 반인 것이다. 

 지방 중 최악은 트랜스 지방이다. 이는 자연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인공물이다. 마가린과 쇼트닝에 주로 들었는데 인스턴트 과자나 쿠키, 빵, 케이크를 만드는데 쓴다. 이들은 만성 염증의 근원이다. 과산화지질은 공기 중 활성산소에 의해 산화한 지방이다. 튀김류가 이를 많이 함유하는데 재사용하는 기름에 꾸준히 여러 번 튀겨지기 때문이다. 

 수면은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 깊은 잠에 들면 성장호르몬이 손상된 혈관의 내피 세포를 복원한다. 혈관을 젊어지게 하는 일산화질소도 수면시 분비가 증가한다. 잘 때 분비되는 멜라토닌도 혈당 조절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자면 뇌 척수액이 베타아밀로이드도 분해한다. 수면 무호흡증은 숨이 멎었다고 다시 이어지며 혈압을 급상승시킨다. 수면 부족은 그래서 고혈압과 동맥경화의 시작이다. 

 혈관을 손상시키는 원인은 정리하면 5가지다. 고혈당, 지질 불균형, 수면 부족, 호흡력의 저하, 스트레스다. 

 과도한 지방과 당질은 에너지로 사용 후 남은 양이 백색지방세포에서 중성지방으로 합성되어 저장된다. 중성지방이 쌓인 백색지방세포는 풍선처럼 부풀어 더 많은 지방을 담아낸다. 중성지방 수치는 공복에서 측정하는데 150mg/dl이면 고트리글리새라이드 증후군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최근 공복상태에서는 정상이더라도 식후 혈중 중성지방이 급상승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역시 그러하다. 

 LDL은 콜레스트롤을 신체 각 조직으로 운반한다. 그러다 남은 것이 혈액 속을 떠돌아 플라크를 생성한다. 산화하면 혈관 벽을 파고들어 염증을 일으킨다. HDL은 콜레스트롤 중 남은 것을 회수해 간으로 보내어 혈관을 청소한다. 

 백색지방은 쌓이는 위치가 3곳이다. 피하지방은 피부 아래에 쌓인다. 내장지방은 소장은 감싸는 막인 장간막에 쌓인다. 그리고 이소성 지방은 간이나 심장, 근육 등에 축적된다. 백색지방은 체온을 유지하고, 내장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며 중성지방산은 유리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된다. 그리고 백색지방세포는 아디포사이토카인이라는 물질을 분비해 몸의 기능과 균형을 조절한다. 

 대사증후군은 내장지방이 축적되어 복부가 남자는 85cm 여자는 90cm이상인 경우다. 그리고 여기에 고혈압이나 고혈당, 지질이상이 하나라도 겹치면 확실한 대사증후군으로 판명된다. 아디포사이카인은대사증후군 상태에서는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중 동맥경화 같은 생활 습관병은 물론 유방암, 대장암등 일부 암의 발병을 촉진하는 해로운 물질을 많이 분비한다. 

 아디포사이토카인은 언급한 것처럼 이로운 물질도 분비한다. 그게 아디포넥틴이다. 이는 염증을 억제하고 인슐린을 도와 혈당을 내리고, 지방을 잘 태워준다. 그런데 비만이 심해질수록 아디포넥틴과 렙틴이 줄어든다. 그러면서 인슐린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이 많이 분비된다. 

 이소성지방이 간에 붙으면 지방간이 된다. 지방간이 악화되어 만성염증이 생긴 상태가 비알콜성 지방간이다. 이 상태는 동맥경화와 심근경색이 일반인의 2배, 간경변, 간염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소성지방이 간과 골격근에 축적되면 인슐린 기능이 내려가고, 당뇨가 심해진다. 이소성지방이 심장에 붙으면 심장혈관에 악영향을 미친다. 관상동맥 주변에 붙어서 이 부위에 면역세포인 매크로파지가 모여들어 이 지방을 이 물질로 인식하고 그 과정에서 염증이 생긴다. 

 혈관의 회춘물질은 일산화 질소다. 이것은 혈관을 확장하고, 혈류를 증가신다. 그리고 혈관을 유연하게 유지하고, 혈압을 내리며, 손상 혈관도 치유한다. 일산화질소는 운동을 하면 근육이 에너지 생성을 위해 산소와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데, 그래서 심박수와 혈류가 증가하고, 혈관 내피세포가 브래디키닌이라는 생리활성물질을 생성할때 대거 발생한다. 즉, 움직여야 생긴다는 것이다. 반드시 격렬한 움직임일 필요는 없다. 앉았다가 잠시 일어서는 것 만으로도 이 작용은 일어난다. 

 기적의 혈관 다이어트 방법의 대원칙은 두 가지다. 엄격한 식사제한을 하지 말고, 격렬하고 과격한 운동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둘을 금지하는 것은 부작용이 심하고 지속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엄격한 식사제한은 본능을 과도하게 억제해 반드시 실패하고 폭식으로 이어진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격렬한 운동은 인간을 허기지게하여 사용한 에너지 이상으로 먹게 만들며 그런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혈당과 지질을 위해 식사 순서는 중요하다. 채소와 콩류를 먼저 먹고, 다음으로 고기나 생선, 달걀 단백질을 먹고, 마지막으로 밥이나 빵, 면류의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이다. 채소나 콩류는 식이섬유와 단백질을 보급해 혈당을 천천히 올리게 하고, 이것을 먼저 먹기에 나중에 먹는 것들을 덜 섭취하게 해준다. 

 목욕도 중요하다. 목욕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혈류 개선으로 혈관이 회춘하고 온수에 몸을 담그면 혈관이 확장하며 운동과 비슷해져 일산화 질소가 생성된다. 또한 목욕을 수면에도 좋다. 자기 1-2시간 전에 하는게 좋은데 올랐던 심부의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며 그 시간이면 자연스레 졸음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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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상반기에 56권의 책을 읽었다. 연간 100권이 목표로 올해는 조금 순조롭다. 늘 이맘 때면 50권에 못미치는 독서량을 기록한 적이 많다. 코스피가 불타서 확실히 그 분야 책을 많이 읽었다. 교육 쪽엔 조금 소홀했던 것 같다. 상반기에 가장 인상적인 책 10권을 꼽아 본다.


10.속죄

이언 매큐언의 재미난 소설이다. 2차 대전을 배경으로 신분이 달랐던 두 남여의 엇갈린 안타까운 운명을 그린다. 그것은 남자를 살짝 동경하고 좋아했던 여자의 어린 여동생이 그들 사이를 보고 충격과 질투를 했기 때문이다. 파티에서 집에 초대된 사촌여아가 강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남자가 여동생의 증언 만으로 범인으로 지목되며 비극이 시작된다. 소녀의 기억 속에 그들은 2차 대전의 파고를 건너 행복해지지만 그 모든 건 소녀이 속죄의 소설이란게 반전이다.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소설이다.



9.교실로 온 제미나이

교실에서도 인공지능의 활용이 화두다. 이 책은 제미나이가 제공하는 다양한 도구의 사용법을 제시한다. 하나하나 따라하기 매우 쉽고, 교육은 물론 교사의 현장 행정 업무에도 도움이 되는 요소가 많다. 인공지능을 알고 싶고 교육하고 싶으나 엄두가 안나는 현장 교사에 강추한다.





8.늙지 않는 뇌

몸이 노화하는 것처럼 뇌도 노화한다. 뇌를 노화시키는 것들은 에너지 활용 능력의 감소, 영양분의 부족, 신경전달물질의 문제, 염증, 독소, 스트레스다. 결국 노화를 막기 위해서는 채식 위주의 건강한 식단, 운동과 적정한 수면, 독소 노출의 최소화, 스트레스 관리가 된다. 이런 것들을 자세히 서술했다. 한 번 정독할 만한 책이다.




7.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미국은 2차 대전 후 전쟁 기계가 된다. 과도해진 무기 회사들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하고,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어 포섭하고, 대학, 할리우드, 학계, 싱크탱크 등 사실상 거의 모든 곳에 진출해있다. 그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많아지는 반면 그들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부패가 심하다. 그리고 그런 과한 돈은 미국 시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세계평화도 저해한다. 더 큰 문제는 이제 팔란티어로 대표되는 테크회사들이 이런 현상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6. 일본은 어떻게 일본이 되었나

옆이면서도 알 수 없고 증오의 감정이 있는 나라 일본이다. 일본인은 동조와 수직사회의 압박을 강하게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관계와 사회에서이 위치 자신을 규정한다. 이는 일본이 동북아 문명의 변방에 위치하고 섬이기에 외세에 의해 나라가 거의 흔들린 적이 없어 사회교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고한 위계구조가 정신에 내면화 되었다. 그래서 집단주의도 강하며 외부에 대해 그들이 약하거나 해가된다면 때론 매우 잔혹해진다. 그 외 일본에 대해 이해할 만한 많은 요소를 담은 책이다.


5. AI 제국 권력 노동 자본

우리는 인공지능을 자주 사용하지만 그것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파급력을 가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챗 GPT로 인공지능 시대를 알린 오픈 AI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창업주 샘 올트먼이 어떤 사람이고, 이 기업이 어떤 목표로 시작되었고, 일부가 샘 올트먼이 적잖이 반발하여 지금의 엔트로픽을 창립한 사실이 하나하나 잘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환경과,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의 정신에 미친 악영향도 잘 고발한다.


4. 지리는 운명이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의 저자 이언 모리스의 또 다른 작품이다. 이 책은 그의 모국 영국의 역사를 지리와 관련하여 3단계로 나뉜다. 오랜 시기 유라시아 대륙의 변방으로 매우 발전이 더뎠던 시기, 그리고 산업화와 상업화에 가장 먼저 성공해 유럽을 너머 세계 제국으로 나아간 시기, 마지막으로 다시 유럽의 일원이지만 유럽연합에 탈퇴하는 잘못된 선택을 한 지금의 시기다. 



3.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

 이 책은 세계 역사의 진보와 퇴보를 하나씩 살핀다. 반드시 변혁적 진보만이 아니라 적정한 보수도 혼란을 막고 균형을 잡는다는 시각을 가졌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혁명이 사실상 지금의 근대를 낳았다고 본다. 그것을 이어받아 잘 구현한 것이 영국이었고 다음은 미국이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하나하나 역사적으로 잘 고찰한다. 다음은 정보화의 혁명으로 중국으르 흐름이 넘어가느냐 아니냐의 분기점이다.




2. 진짜 예술 가짜 예술

저자는 예술이 무엇인지 규정한다. 예술은 목적이 불분명하고 모호한 것이며 아름다움을 지니고 감상자에게 의외의 것을 보여주어 충격과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반면 가짜 예술은 인공물로 감상자를 특정 목표로 움직이게 만든다. 즉, 목표가 있는 것이다. 그 목표는 감상자의 욕망이나 본능, 도덕적 혐오 등을 자극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 인간은 가짜 예술의 홍수속에서 인간다움과 주체성을 잃는다. 진짜 예술이 사람들을 구원할지도 모른다.



1.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

미국의 테크세력인 피터틸, 알렉스 카프, 일론 머스크 등은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간 실리콘 밸리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 세력이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이 트럼프를 옹립한 것은 오랜 설계의 결과였다. 이들은 중국과의 새로운 패러다임 패권 차지 싸움에서 지금의 정치체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디지털 신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트럼프를 장기말로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피터틸, 일론머스크, 알렉스 카프, 그리고 차세대 후계자 밴스 부통령을 다루며 저자는 자세히 설명한다. 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시각과 설득력, 세상을 차갑게 제시하는 단호함에 놀라고 감탄했다. 저자의 책은 모두 탐독중이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어떻게 가야하는지 고민스럽다면 강추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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