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유령들 -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황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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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당선, 합격, 계급'에서는 여러 문학상의 대상 수상작은 단행본으로 출간된다고 했다. 그리고 책의 판매량과 상관없이 상금을 주므로 이 수상작 출간에 대한 인세는 대개 없다고 했다. 책 알제리의 유령은 문학동네 대상작으로 아마 이렇게 출간되었을 것이다. 대상수상작이라 뒷편에 여러 소설가들의 평론이 짤막히 들어있고 그걸 보면서 작가 황여정이 황석영의 딸이란걸 알았다. 그리고 보니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책엔 네명의 사람이 표지에 등장하는데 마치 마그리티 처럼 여러 겹을 짤라서 나온다. 뭔가 서로 얽히면서도 다른 층위에 있는 느낌이고 책을 읽으면 표지가 왜 이랬는지 감이온다. 총 4부로 구성되었는데 서로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징과 율(두개다 본명이 아니었는듯.)이란 청년이 있는데 둘은 어려서도 알고 이성적 호감을 느끼며 항상 그리워하나 내색하지 않는 사이다. 마치 친한 남자친구 둘이 자주 서로를 그리워하고 오랫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연락은 10년만에 하는 그런 경우와 흡사하다.

 하여튼 둘은 그런 오묘한 관계인데 문제는 둘의 부모역시 서로 얽힌 사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연극이란 공통분모가 있었고, 80년대 학번으로 학생운동을 했었으며 책엔 마르크스가 지은 것으로 나오는 '알제리의 유령'이란 극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극단을 한 오수란 인물이 나오며 그를 흠모하며 연극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철수란 인물도 나온다. 4개의 장 중 첫장은 율과 징의 이야기를 둘째 장은 철수가 오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셋째 장에서는 철수와 오수의 만남, 그리고 마지막 장은 알제리의 유령 극본의 탄생과정과 이것이 어떻게 한국으로 넘어와 부모세대들이 공유하게 되었는지가 나온다.

 처음엔 연애소설처럼 읽히지만 부모들의 이야기가 나오며 이야기를 성격이 많이 바뀐다. 재밌는 구성이었는데 처음엔 관계들이 어떻게 얽히는 것인지 헛갈리기도 했다. 재밌는 구성과 시도였고 무딘 내가 보기에도 문장이 예뻤다. 볼만한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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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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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호가 대체 뭘까? 궁금증을 안고 책을 봤다. 0호는 다름 아닌 신문인데 애초에 출간할 생각도 없이 기획만 하고 있으니 0호다. 1호가 나올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기가 막힌 계획을 한 사람은 시메이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의 주인공 콜론나를 이 계획에 끌어들인다. 콜론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독일어를 어려서 배워 번역일을 시작해 각종 지방의 일간지 작업이나 대필을 주로 해온 사람이었다. 그는 한때 작가가 되려고도 노력해왔지만 대필작가로서의 능력을 탁월했으나 왜인지 자신이 스스로 작가는 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웬일인지 이런 별볼일 없는 경력에 나이가 50이 다된 콜론나지만 시메이는 만들생각이 없는 신문의 데스크로 그가 적격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유를 궁금해하는 그에게 이 신문은 자신에게 돈을 대는 한 사람을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적을 공격하거나 정치적 입지를 유리하게 다지기 위함이다. 콜론나에게 지불할 거부할수 없는 거액도 그런 과정에서 마련할 것이라고 시메이는 말한다.

 그렇게 시작한 지저분한 일에 6명의 기자가 모여든다. 게중엔 제법 진지하게 기자생활의 전기를 마련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늘 그렇듯 밥벌이를 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모여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라곤 제대로  된 사회기사를 쓰기보단 평범할수도 혹은 하급잡지나 다룰만한 가십성 기사라도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런 회의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콜론나에게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교황바오로 1세에 대한 음모를 매일 같이 이야기하던 기자 브라가도초가 갑작스레 살해된다. 경찰이 사무실을 들이닥치고 시메이는 브라가도초가 제기한 음모가 상류층의 누군가를 건드렸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시메이의 윗선도 이미 더 이상의 신문제작중지를 지시한 상황. 콜론나는 위기를 느끼며 사태 수습에 고심한다.

 책은 이런 줄거리를 갖고 있으며 대부분의 장면이 언급한 회의 장면이다. 회의에서 서로가 하는 말은 상당히 긴편인데 이걸 다 읽기가 좀 힘들었다. 거기에 친숙하지 않은 이탈리아의 배경과 용어들은 더 힘든 부분이었다. 오래전 에코의 가재 걸음을 본적이 있는데 그 책 역시 무척 읽기가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에코와는 잘 안맞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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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까페 2018-11-22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움베르토 에코 괜찮은데^^

닷슈 2018-11-22 22:01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ㅋㅋ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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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매년 말이면 한 교수집단에서 올해를 지칭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하곤 했다. 박근혜때였는지 이명박때였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어떤 해에 한국사회를 지칭하는 사자성어로 그들은 '각자도생'을 택했다. 당시 매우 시의적절해서 무릎을 쳤던 기억이 있다. 알아서 잘 살아남아야 한단 뜻인데 공공성과 복지가 매우 취약한 한국엔 정말 잘 어울리는 표현이며 이는 지금도 꽤 유용한 표현이다.

 책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도 각자도생의 시대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결혼과 육아는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결정이고 과거엔 의무나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졌지만 각자도생의 시대엔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이 된다.

 우선 시작인 결혼부터 쉽지 않다. 이미 한국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혼연령층의 응답이 사상 최초로 50%를 밑돌았다. 여기엔 결혼을 하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과 가부장적 질서가 자리한다. 책은 여성의 관점을 주로 보는데 여성입장에선 결혼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다. 양성평등적 사고방식을 갖고 자라났지만 결혼 후 육아는 대개 여자의 몫이 되며 사회복지의 미약으로 이는 경력단절로 이어진다. 거기에 주거부담으로 신혼부부는 남자쪽 집안에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남자집에서의 간섭이 시작된다. 이 경제적 도움으로 시부모는 신혼부부의 삶에 간섭할 권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념할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툭하면 이미 성인인 자식의 집에 허락도 없이 시부모가 들어온다. 집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나친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도 그럴만하다. 노인빈곤율이 경제선진국 집단중 가장 심각한 한국사회에서 자신들을 부양하지도 않을 자신들에게 무려 1억이상의 거액을 선뜻 건낸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남편의 부족한 양성평등적 사고도 한몫하기 시작한다. 결혼전에는 지극히 양성평등적 사고를 보이는듯 하던 이 사람이 결혼 후 돌변한다. 시부모님에게 효도할 것을 강요하고 맞벌이임에도 살림이나 아침밥상이 여자의 몫이 되는게 당연한 것처럼 행동한다. 더 기가막히는건 친정부모의 반응이다. 자신을 양성평등적인 사람으로 교육하고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어머니가 상견레자리부터 굽신거리며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돌변한다. 결혼후에도 이런 엄마의 반응은 마찬가지. 여자는 기댈때가 없다. 이 거대한 문화적 장벽앞에 대부분 이를 받아들인다.

 이런 결혼에서 비정상적인 육아가 탄생한다. 양성평등적으로 자라난 자신의 모든 것을 결혼앞에서 잃어버린 여자는 비정상적인 엄마로 돌변한다. 자신이 결혼으로 이루지 못한 여러가지 것들을 자식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만들어진 모성도 이를 부채질 한다. 여성에게 모성을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강요함으로써 모성의 당사자인 여성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육아는 마치 전쟁터다. 얼마 쓰지도 않는 유모차가 500만원 가량이나 하며 각종 육아서나 장난감 학습도구들은 넘쳐난다. 이들은 엄마를 압박하며 이상스레 주변엔 이런 것들을 잘 알고 한발 앞서나가는 엄마들이 자리한다. 이런 상황에서 매년 출생아수가 크게 감소함에도 이런 육아시장의 규모는 끝을 모르고 성장한다. 여기엔 정도란 것이 없다. 이런 것들을 해나가야 간신히 평균이 될 뿐이며 TV나 주변엔 더 대단한 사람 투성이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이 자식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교육에도 비슷한 공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교육은 치열한 경쟁을 바탕으로 사람을 서열화한다. 모두가 이 서열화 논리에 매몰되어 있어 이 공식의 신봉자가 된다. 그래서 비정규직을 함부로 정규직화하는 논의나 노동조건이 좋지 못한 사람이 좋은 대우를 받는 꼴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학창시절 열심히 하지 않아 서열화에서 탈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논리로 교육은 움직인다. 그리고 이에 발맞추어 사교육을 한다. 사교육은 효과가 없다고 언론에서 눈가리고 아웅하지만 책은 단연코 사교육은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명문대학과 고교에 진학하는 학생이 대부분 사교육을 많이 받고 있으며 사교육 효과가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가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때문에 사교육의 효과는 많은 사람에게 있어 뒤쳐지지 않는 정도로만 보인다. 결국 안하면 서열화 교육시장에서 탈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에는 자녀 소유과 자녀 보호의 개념이 나온다. 자녀 소유는 흔히 우리 한국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보고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자식을 폭력을 사용해서 교육하든 내 맘대로 동성애는 나쁜 것이고 특정신앙등을 자식에게 강요하는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반응하는게 자녀 소유다. 이런 사람들은 공적인 부분이나 다른 사람이 자기 자녀 교육에 참견하는 것을 꺼린다. 여긴엔 공공성이 없다. 반면 자녀 보호는 공공의 개념이다. 국가와 사회가 자녀교육에 참견하며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에게서 자녀를 분리하거나 교육을 시키지 않는 부모에게서 친권을 박탈하는 개념들이 자녀 보호다.

 책은 결혼에서 육아 그리고 교육으로 이어지는 이 일련의 문제에는 결국 각자도생이 있음을 말한다. 모두가 모든 것을 경쟁할 수 밖에 없기에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이 싫어서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란다. 그들 역시 결국 그들처럼 과감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자신들이 다름을 강조하여 경쟁에서 다른 방식으로 승리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게 타파되려면 결국 나만 다른 방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다른 방식으로 가야한다.

 책을 인상적인 말로 마무리를 한다. 삶이 전투가 된 세상에서 우리는 전쟁이 없는 사회를 희망하지 않고 더 강력한 무기로 무장했다. 그 결과 모두가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비열한 경쟁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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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 : 한빛비즈 교양툰 - 한빛비즈 교양툰 한빛비즈 교양툰 1
김도윤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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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충 혐오는 전세계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 주요 선진국에서 나타난다. 아무래도 먹는게 고급화하면서 곤충이 먹거리에서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우리가 번데기나 메뚜기 등을 아무렇지 않게 먹었을땐 오늘 정도로 곤충을 혐오하진 않았던 것 같다. 여기에 과거 못살적 곤충이 우리의 식량을 축낸 것 그리고 오늘날의 과도한 위생관념이 이에 일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는 과히 곤충의 행성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다. 동물종 10마리중 7마리가 곤충이며 그 중 무려 3마리가 딱정벌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는 딱정벌레의 행성이다. 다른 녀석들의 수도 엄청나다. 가령 지구상의 개미의 동물량은 인간전체의 동물량과 맞먹을 정도다.

 이런 곤충에 관해 이 책은 만화로 정말 쉽고 재미나게 풀어냈다. 아이들 추천해주고 싶기도 한데 재밌는 비유가 좀 성인수준인 면도 있어 망설여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큰 무리는 없을 듯 하다.

 곤충은 고생대에 발생했는데 과거 절지동물이 시작이었다. 이중 전갈류와 다지류가 바다의 과다한 경쟁을 피해 무려 식물도 육상하기 전에 먼저 땅에 올라섰다. 당시 식물이 없어 오존도 없고 강한 자외선이 문제였으나 전갈은 강한 외골격으로 다지류는 땅으로 피해 이를 해결했다. 전갈과 다지류 중 곤충의 조상이 되는 것은 다지류다. 이들의 많은 다리는 체절이 많아서였는데 탈피의 어려움으로 점차 체절이 줄어드는 쪽으로 진화해 오늘날의 곤충처럼 적은 체절에 6개의 다리를갖는 곤충이 등장한다.

 지하에서 살던 몇몇 곤충들은 육지로 올라왔고 식물의 줄기를 타고 올라갔다. 식물의 줄기는 적에게서 보호되고 먹을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식물은 서로 인접해있어 곤충은 이 식물에서 저식물로 도약하는 형태로 이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날개가 생긴걸로 추정된다. 날개는 아가미 발생설과 가슴 변형설이 있는데 초기엔 아가미 발생설이 유력했으나 배 부분에 아가미가 있는 곤충이 있어 폐기되어 가슴변형설이 유력해졌다. 하지만 최근 아가미와 날개의 발생유전자가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 다시금 아가미 발생설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날개는 곤충에게 엄청난 이점을 준다. 날수 있다는 최고 장점을 제외하더라도 날개는 적에 대한 위협, 체온 조절, 소리 발생, 이성에 대한 과시, 방패역할, 확산을 통한 호흡, 이슬을 모아 수분섭취등 매우 다기능적이다. 곤충의 날개는 앞다리가 변형한 다른 동물에 비해 등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특이하며 초기 세쌍이었으나 비행시의 충돌로 현재는 대부분 두쌍으로 남아있다.

  곤충의 또 다른 이점은 외골격이다. 초기 외골격은 체내 노폐물을 체외에 보관하며 생겨난다. 외골격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이점이 있으며 내골격보다 체내 근육량을 증가시켜 체구대비 강한 힘을 가능케한다. (물론, 이는 덩치가 커지면 오히려 마이너스로 전환한다. 곤충이 커질수 없는 이유다.) 또한 외골격은 자외성으로 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수분손실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감각을 느낄수 없어 센서로 많은 털을 외부로 자라나게 해야 하며 외골격 파괴시 감염으로부터 매우 몸이 취액해진다. 거기에 성장을 위해선 탈피를 해야하는데 이 탈피과정이 매우 위험하고 몸에 부담이 되어 탈피과정에서 사망률이 크게 증가한다.

 곤충은 번식방법도 재밌다. 지구상의 동물중 90%의 수컷은 암컷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나간다. 그래서 곤충 수컷들은 다양한 선물로 암컷을 유인한다. 방식은 세가지로 하나는 먹이를 잡아 선물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정포를 만드는 것으로 정포엔 수컷의 정자와 영양분이 가득하다. 암컷은 좋은 정포에 대해선 서로 경쟁하기도 하며 수컷이 놓고 간 정포를 자신의 몸안에 넣는 방식으로 수정한다. 마지막 방식은 살신성인으로 자기 자신을 먹이로 암컷에 바치는 것이다.

 재밌는 번식 방법은 더 있다. 톡토기는 칼날같이 생긴 생식기로 암컷을 마구잡이로 찌르는데 정액을 혈액에도 방출해도 순환하여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머리에 찔러도 가능하단다. 녀석들은 수컷이나 다른 벌레들에게도 그런 짓을 하는데 물론 이 경우는 수정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암컷이 생식기 같은 걸 가진 경우도 있다. 이 녀석들은 암컷이 생식기 같은 것을 수컷의 몸속에 삽입해 정자를 몸에 묻혀가는 형태로 수정한다.

 책에는 이외에도 곤충에 대한 여러가지 재미난 사실과 진화론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품고 있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도 많이 배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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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선언 -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 걷기, 2002~2018 서울 선언 1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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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서울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매우 자유로운 오늘날에 이 같은 경계구분은 무의미 할수도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 구분에 민감하다. 특히, 수도서울은 그 행정경계가 분명함에도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여긴 서울이지만 사실상 서울이 아니고 저긴 서울은 아니지만 사실상 서울로 봐야한다는 둥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거기엔 문화적 역사적 동기도 있을테고 요즘 같으면 부동산 관련한 경제적 욕망이 가장 강할 것이다.

 여러 시각중 저자는 진정한 서울을 사대문 안으로만 보려는 가장 편협한 시각을 가장 경계한다. 여기엔 다섯가지 편견이 포함되는데 조선 후기 중심주의, 사대문 안 중심주의, 왕족양반 중심주의, 주자학 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들이 그것들이다. 이런 시각은 그 외의 다른 지역들과 중심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역사와 현실에서 소외시킨다. 구체적 지역은 사대문 밖, 1936년[영등포일대], 1963년[강남을 포함한 남부, 서부, 북부일대] 이후 확장한 대경성과 대서울에 편입된 지역과 과거 한성백제시대와 현대 한국 시대의 서울, 계급이 중인, 평민, 노비인 사람들의 유적과 유물들이 그것들이다.

 저자는 이런 편협한 서울주의에 맞서 대서울주의를 제창한다. 그래서 책제목이 서울 선언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으로 지난 20년간 서울을 바라보고 갖게된 단상과 사진들을 통해 이 책을 엮었다. 그래서 이 책의 거의 1/3은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언제 어디를 찍든 항상 밝고 아름답게 의도된 사진이 아니라 그저 무심하게 대상을 담아낸 사진들이다. 그래서 극히 어둡기도 하고 예쁘지도 않으며 보이는 그대로 추하다. 하지만 그래서 있는 그대로이며 서울에 속한 일반 평민들의 모습이 잘 담겨져있다.

 저자가 서울을 걷기 시작한 이유는 일반사람들이 주인으로 살아가는 서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구한 역사에도 유물과 유적이 상당히 부족한 편인데 많은 한국인들은 이를 한국전쟁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잦은 외침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는 상당히 사실이지만 저자에 의하면 해방과 전쟁후 우리 스스로 근대화와 개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중심에서 쫓아내는 과정에서 상당수 유적과 유물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그 수는 우리 아닌 다른 세력에 의해 잃어버린 것 이상일 수도 있다. 강남과 강동구 일대를 개발하면서 수 많은 백제 왕족과 귀족들의 유물이 파괴되었고 은평구를 개발하며 발견된 상당수의 조선시대 평민 묘들이 그대도 파괴되었다.

 파괴한 것은 오래된 유물만은 아니다. 사실 서울은 지난 100여넌간 조선의 왕도였으며 근대화로 빠르게 변모하였고, 이후 일본제국의 제3도시 경성이었으며 해방후 대한민국의 수도로써 빠르게 변화했다. 짧긴 하여도 이같은 변화로 다층적인 유적과 건축물들이 남아있을터인데 이에 대한 보전과 관리 역시 무척이나 소홀하다. 이것만 잘 되었어도 서울이 지금처럼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보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유적이나 유물을 무조건 보존하고 복원하려는 주의의 사람은 아니다. 저자는 우리의 문화유적이 파괴되고 일대가 개발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단 그렇게 되어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생겨난 것은 그대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풍납토성 일대가 개발되어 풍납토성과 현대적 아파트, 상가가 공존하는 기이한 형태를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궁을 복원한다고 과거 필요해 의해서 생겨난 도로를 다시 끊는다던가 삶의 터전이었던 일대를 부수고 궁으로 환원하는 걸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은 조선을 과거 일반 백성의 나라가 아닌 왕과 지배층의 나라로 보는 시각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배층의 의도가 담겨져 왜곡된 형태로 남겨진 네 공간을 비판한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북촌, 서대문형무소, 선감학원들이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정부로 부터 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곳이지만 충청, 전라, 경상도의 한옥형태만을 복원했고 여기서 조선지배층만을 조선으로 여기고 이를 남기려는 의도를 지적한다. 북촌에 대해서는 과거 평민들의 마을이었음에도 현재는 마치 양반계층들의 집이 남아있는 것처럼 왜곡된 부분을 지적한다. 서대문형무소는 독립투사를 고문하고 투옥한 일제의 잘못만을 기억한체 1987년까지 이곳이 운용되며 독재정권에 의한 민주주의 투사를 재판하고 투옥하며 사법살인까지 한 곳이라는 기억이 지워진 것을 비판한다. 선감학원은 전혀 몰랐던 곳인데 안산지역의 한 섬에 존재한 곳으로 경기도가 운용하고 지역의 품행이 불량하거나 아니면 멀쩡한 아이들을 부모가 있음에도 집단으로 가두어 수용한 곳이다. 당연히 아이들의 의문사도 많았으며 국가가 자행한 폭력의 상징같은 곳이다. 이곳을 기리는 안내문은 있지만 지극히 피상적이며 잘못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점등을 저자는 모종의 의도가 있다고 파악한다.

 위와 같은 공간들은 현재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소수자들을 일반 시민의 기억에서 지워버리면서 선비나 양반 사대부 같은 소수의 남성지배자들이 조선시대부터 현대한국에 이르는 역사를 주도했고 이로 인해 이들이 여전히 현재의 한국사회를 이끌어 갈 권리가 있다는 의도의 세계관을 제시하는 곳들이라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전체는 아니지만 서울의 여러지역을 탐색하고 글을 남겼다. 저자는 자신도 그랬다지만 대부분의 서울시민들이 사실상 슬럼가에서 생활하는 것과 다름 없는 수준에 놓여있으면서도 자신들이 그러한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마치 일반 중산층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지적한다. 아무래도 그런 상태에선 집권층에 대한 비판이나 현실개선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일것이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한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도 아니고 권력과 사람이 집결하고 문화와 자본의 중심이자 사람들의 욕망이 가장 결집하는 그런 곳도 아니다. 그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들이 주인으로서 자신이 살았던 흔적과 기록을 남겨야 하는 공간, 단지 그런 것이며 그런 것이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거나 파괴되어서는 안되는 곳, 그런 곳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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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0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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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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