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도 믿기 어렵지만 난 한때 경제학과의 학생이었다. 물론 최종선택은 내가 한 것이었지만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건 IMF라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이었다. 좀처럼 나랑 어울리지 않는 학문이었는데, 경제학과 시절 교수님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이거 였던 것 같다. 바로 '만약'이다. 가끔 '만일' 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잘 이해는 안가지만 경제학은 뭔가 그럴듯한 모델을 하나 만들어내기 위해 무수한 가정을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깔끔한 수학식으로 뭔가를 설명하기에 현실에는 계산과정에 넣어야 하는 무수한 변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님들이 IF를 사랑하신 것은 경제학의 이런 어쩔수 없는 면 때문이었다. 만약을 통해 다른 무수한 변수를 고정시키고, 효과를 알고 싶은 변수 몇개 만을 허용하고 움직여 법칙이란 걸 만들어 내는 학문이라는게 경제학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경제학에는 문화란 문제도 있었다. 문화라는 것에 따라 사람들에게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적 가치나 효용이라는 것의 개념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친화적 문화를 가졌던 아메리카 토착민에게 경제학이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경제학의 기본전제인 사유재산 개념도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다음은 바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인데, 인간을 마치 컴퓨터 기계처럼 철저한 이성으로 무장한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한다는 것이다. 역시 IF가 들어간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들은 이 점을 파고 들었다. 우리 인간은 합리적인 척 하지만 본질적으로 상당히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이 결정이나 선택, 의사결정, 문제해결을 하는 과정에 있어 제한된 합리성을 갖고 있거나 비합리적이라고 보았는데 이를 휴리스틱이라고 칭했다. 휴리스틱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정보처리능력과 연산능력이 완전하지 못한데서 발생한다. 외부환경에서 무수히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지만 이를 모두 처리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간은 적은정보로 편향된 빠른 판단을 한다.
휴리스틱이 생기는 두번째 이유는 인간이 정서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감정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책에 등장한 예로 카드 게임이 있는데 한 종류의 카드는 뒤집었을시 그 결과가 이득과 손실에서 위험성이 높은 리스크가 강한 카드였으며 다른 한 종류의 카드는 반대로 리스크가 낮은 것이었다. 참가자들은 초기 두 카드의 특성을 모르고 별 긴장없이 뒤짚었으나, 곧 특성을 파악하고는 리스크가 높은 카드의 경우 회피하거나 긴장하며 뒤집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감정부분을 다루는 뇌가 손상된 환자의 경우 위 게임에 참여했을때 리스크가 높은 카드와 낮은 카드에 대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인간이 판단및 문제해결에 있어 위와 같은 경향성을 갖게 된 것은 진화상 매우 당연한 일이다. 모든 외부 정보를 연산하여 최대한의 효율적 판단을 할만큼 두뇌가 커지는 형태로 진화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이며, 설사 그게 가능하더라도 외부환경이 그리 오래 시뮬레이션을 하도록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생물은 행동을 함에 있어 목적을 갖고 가치 지향적으로 외부의 것에 대응하는데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생존에 유리한 경험을 주는 외부대상에는 쾌의 감정이 반대의 것은 불쾌의 감정이 쌓이며 이러한 경험이 향후 판단에 영향을 주는 것은 진화상 지극히 유익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이먼과 카너먼은 이러한 휴리스틱에 대하여 거의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었지만 사이먼은 마치 진화론자의 용어처럼 이것을 적응적인 것으로 보아 제한된 합리성으로 비교적 효율적인 문제해결을 할수 있게끔하는 좋은 기능으로 파악하였으며 카너먼은 반대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보았다. 둘다 맞는 말이다.
카너먼은 인간의 판단과정이 두 가지의 형태라고 보았는데 시스템1과 시스템2이다. 시스템1은 빠르고 자동적이며 정신적 노력을 요하지 않는 대신 통제나 수정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반면 시스템2는 느리고 계열적이나 정신적 노력을 요하고 의도대로 통제되며 융통성있고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다른 학자들도 용어만 다를뿐 거의 비슷한 구분을 했는데 시스템 1,2보다는 다른 학자가 말한 직관과 분석이 사실 개인적로 더 직관적으로 와 닿는다.
카너먼의 판단과정중 휴리스틱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시스템1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2라고 해서 휴리스틱에서 완전히 벗어날수는 없겠지만 휴리스틱에서 벗어나 보다 합리적 결과를 도출할수 있는 과정을 기대할수 있다. 어려운 수학문제가 나타났을때 문제를 읽고 순간적으로 답을 내놓는 것은 1일 것이며 오랜 고민과 계산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은 2가 될것이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시스템 1을 먼저 만들어내고 점차 2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을 것인데,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2의 발달이 더욱 촉진되고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처럼 시스템 2를 구현하기 위한 갖가지 도구가 생존기계를 뚫고 나왔을 것이다. 인류의 여러가지 계산도구나 가장 최종 버전인 컴퓨터가 그것일 것이다.
책은 행동경제학의 기반학문부터 출현 배경, 그리고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사이먼과 카너먼의 이론을 간략하게 잘 소개한다. 읽으면서 행동경제학이 인간 본성을 무시한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심리학 부분에서 출발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인간이 그러한 본성을 어떻게 해서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학문이 진화론이라는 점에서 행동경제학과 진화론간에 협업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좋은 점이면서 나쁜점인 것처럼 입문서이다보니, 매우 친절하지만 역시 방대한 내용을 압축할수 밖에 없다보니 따라가기 좀 어려운 면도 있다. 이 책도 상당히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볼때마다 훌륭한 기획이었다는 생각이다. 시리즈가 나온지 이미 10년인데 새로운 지식인 마을 버전이 나올때도 되지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