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과 일본
타네 키요시 지음, 주재명 외 옮김 / 워크라이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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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우연히 검색하다 제목만 보고 바로 구매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담과 그것이 탄생한 고향인 문제많은 일본이라니. 이보다 더한 궁합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읽지도 않은 '국화와 칼'이 떠올랐는데 정말 웃긴일이다. 웬지 비슷할것 같았다. 

 일본은 유난히 로봇만화가 많은데, 이 로봇이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전투로봇이고 상대편들은 항상 지구침략자들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전쟁만화가 될수 밖에 없는데 로봇을 위해 전쟁만화를 만든것인지 전쟁만화를 만들기 위해 로봇을 만든건지는 알수 없는 노릇이다. 아마 둘다일지도.

 이 책에서 말하는 건담은 '기동전사 건담'으로 워낙 오늘날까지 건담시리즈가 많은 지라 '퍼스트 건담'으로 칭하기도 한다. 건담시리즈의 시초인데 무려 1979년 작이다. 이 작품은 이전에 일본에 많았던 수퍼로봇과 구분하여 리얼 로봇계열의 만화로 구분하는데 상당히 모순적 표현이다.

 건담에 등장하는 무기들이나 기술수준, 그리고 이족 보행로봇이란것들 자체가 이미 현대과학의 수준에서 봤을때 리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담이전의 일본만화에 등장하는 마징가z 같은 수퍼로봇들이 무수한 적의 공격에도 쉽사리 파괴되지 않고 압도적 강함을 자랑하며 그 과학수준이 더욱 넘사벽인걸 감안하면, 전쟁상황에서 적의 제대로 된 일격이면 파괴되는 건담의 로봇들은 확실히 진짜 전쟁느낌이 나며 리얼하긴하다. 

 

[퍼스터건담 1회의 장면, 출처: 네이버 블로그]

  

 건담의 세계관은 대충 이렇다. 먼 미래에 지구상의 인간의 수가 너무 많아져 그 수용한계를 넘어서게된다. 인류는 자구책으로 지구 궤도 근처에 거대한 인공구조물을 만들고 이를 콜로니라 칭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콜로니로 이주시켰는데 이 시대부터를 우주세기라고 새로 연호를 만들었다. 퍼스트 건담의 시기는 우주세기0079년이다. 이 콜로니가 제법 모이면 사이드란 명칭을 붙였는데, 지구궤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으면서 가장 오래된 콜로니인 사이드3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계층들이 우주로의 이민을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오랜 우주생활에 적응한 이들은 스스로를 지구인과 구분하여 자신들을 스페이스 노이드로 명하며 지구연방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하게 된다. 마치 영국으로 부터 독립하려고 한 초창기 미국같다. 이런 사상적 이론을 제시한 사람이 지온 다이쿰이며 그의 이름을 따 사이드 3는 지구연방으로 독립을 선언하며 자신들을 지온공국으로 칭한다. 지온다이쿰은 지구연방으로부터 콜로니 사람들의 평등과 자유를 원했는데, 이 지온 다이쿰은 야심가이자 동료였던 데긴 자비에 의해 암살되며 데긴 자비는 그의 권력을 가로채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독재국가를 만들어낸다. 데긴의 아들 기렌 자비는 지구와 콜로니들을 신인류인 스페이스 노이드가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자유와 평등에서 나아가도 한참 더 나아간다. 

 우주공간의 지온 공국은 당연히 국력및 자원면에서 지구연방에 크게 절대열세였는데 인간형 로봇 병기인 자쿠를 개발하고, 상대편의 레이더를 교란하는 미노프스키 입자란 신기술로 초반 전황에서 승승장구한다. 대부분의 우주궤도 사이드와 기지를 석권했으며, 지구에도 상륙해 유럽과, 북미대륙등을 점령한다. 이 과정에서 거대한 콜로니를 지구에 떨어뜨리는 야만적 공격도 서슴치 않았으며 이로 인해 개전 10일정도만에 전체인류의 무려 절반이 죽어나가게 된다.

 퍼스트건담은 이런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구연방이 지온의 자쿠를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낸 초병기이다. 사이드7에서 이 작전이 지온에 발각되고 아무로 레이를 비롯한 민간인들이 이에 휘둘리며 전쟁에 참가하게되 1년여의 활약끝에 결국 지온이 항복하는 과정까지가 퍼스트 건담의 내용이다. 퍼스트 건담에는 지온 다이쿰과 그의 아들이 샤아의 이야기가 잘 나오질 않는데 최근에 현대적으로 퍼스트 건담을 다시 다룬 '건담 디 오리진'에서 이를 자세히 알 수 있다.


  

  [건담 디 오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어릴적엔 당시가 냉전시대였던 만큼 지구연방과 지온은 내게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결처럼 보였다. 스타워즈의 제국군이 공산국가, 반란군이 자유주의 진영처럼 느껴졌듯이 말이다. 실제로 지온쪽은 군인들의 복장이나 유닛 색상들이 전체적으로 녹색에 붉은 색 계열이 많아 뭔가 전체주의적이고 독재적인 느낌을 준다. 반면 연방쪽은 전투 유닉과 군인 복장이 주로 흰색이나 푸른색등 자유주의 진영의 느낌이었다. 책을 보니 지온쪽의 유닛과 군인은 독일군의 느낌이 나게끔 묘사했다고 한다.

 차별을 피해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지온진영이 오히려 반대의 느낌이 나니 아이러니다. 거기에 만화의 주인공인 아무로 레이와 건담 진영은 지구연방쪽이다. 이상하기도 많이 이상하다. 책은 이런 지온의 이중성을 과거 2차대전시기의 일본의 이중성의 투영이라고 본다. 당시 일본은 서구 유럽국가들을 추격하면서 그들과 동등한 일원이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여러전쟁에서의 승리와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러하지 못했고, 그 결과 심지어 다시 아시아로 회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아시아 공영권이란 말이 나오게 된다.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일본이 중심이 되어 지켜나가자는 것인데, 상황에 따라 철저히 자신들이 중심에 있고, 이를 위해 때론 서구와 아시아를 오가며 이용하는 모습이 상당히 모순적이다.  

 저자는 이런 과거 일본의 모순된 모습이 지구로부터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그 국가체제가 독재이며 결국 스스로가 인류전체의 지배자가 되고자 하는 지온의 모습에 투영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기에 건담에서 지온은 그 충분한 독립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지온은 전쟁 방법에 있어서도 상당히 잔인한데, 지구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콜로니를 추락시킨 작전과, 저항하는 콜로니에 독가스를 주입한 작전, 전쟁 말미 위기에 처하자 아군까지 상당수 희생시키는 거대 빔병기를 쓴 작전들이 그러하다. 이런 다소 비겁하면서도 비인륜적인 작전은 일본군이 2차대전때 수행했던 많은 작전과 수단들을 연상시키는데,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며 그러한 비인권적 방법을 수행한 것은 역시 모순이다. 

 책은 이외에도 퍼스트 건담의 주요인물인 샤아를 일본의 주요 정치인의 삶과 비교하거나 심지어 건담의 제작자와도 비교하기도 한다. 또한 전쟁병기인 지온의 자쿠와 일본의 제로센, 그리고 지구연방과 2차대전 당시의 연합군을 비교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약간 그럴듯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어느정도 자의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좀더 전문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이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만화 역시 하나의 문화인 만큼 탄생한 국가의 사회와 문화,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게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전후 일본에서 등장한 무수한 로봇전쟁만화는 2차대전에 대한 일본사회의 하나의 반응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부분을 전체적으로 날카롭게 꿰어낸 책이 하나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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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8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2-16 0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패전 후 전투기 만들던 엔진을 처리하기 어려워 그 기술과 부품이 오토바이쪽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본 오토바이 산업이 잘 나갔다죠. 그쪽 잘 몰라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지진 등 지질학적 영향으로 일본은 아시아 공영권 개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봐요. 아시아권 내에서 가장 서구문물을 잘 활용한 자신들의 능력에 자부심도 섞여 있었을 테고요. 아무튼 복잡하죠.

닷슈 2017-12-16 13:39   좋아요 0 | URL
훌륭한 말씀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