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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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난 남여가 서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러 가정을 꾸리는 방식은 매우 자연스럽다. 지금은 연애결혼이 무척 일반적이서 그 이외에 다른 방식의 결혼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된다. 하지만 연애결혼은 과연 인류역사에서 얼마나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웠을까?

 사실 얼마전만해도 연애결혼은 상당히 소수의 것이었다. 70-80년대만해도 중매결혼이 훨씬 많았으며 연애결혼을 했다고 하면 의외의 경우였고, 때에 따라선 다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과거의 결혼에서는 연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얼마나 나이가 찼는지, 직업은 어떠한지. 집안은 어떠한지, 어느마을 어디 출신인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상대방의 얼굴은 심한 경우는 혼례식장에서, 좀 낫다면 중매장소에서 처음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알랭드 보통은 이 소설에서 이런 형태의 결혼을 합리적 결혼이라고 칭한다. 지금도 물론 우리나라에 이런 형태의 결혼이 남아 있기는 하다. 아마도 잘나가는 대기업이나 힘있는 집안의 결혼이 그러할 것 같고, 나이가 엄청나게 차서 무척이나 당사자들과 집안이 급한 결혼이 그럴 것 같으며,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곳에서 주로 여성을 데려오는 다문화 결혼의 형태가 그러할 것이다. 이런 경우를 보면 확실히 자유연애를 통한 결혼이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바로 이런 결혼을 문제삼는다. 보통은 이런 형태의 결혼을 '낭만주의 결혼'이라 칭한다. 낭만주의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결핍된 뭔가를 채워줄 수 있는 상대, 그래서 자신과 다를수 밖에 없는 상태, 그래서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같은 상대를 찾아내어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져든다. 여기에는 사회 분위기도 일조한다. 나이가 찰수록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결혼을 하며 그에 따라 나와 시간을 보내줄 사람도 묘하게 사라진다. 거기에 나이 든 사람들 중 혼자라서 완성된 사람보다는 둘이어서 완성된 사람이 많아보이는 착각마저 든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은 보통에 의하면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수많은 영화와 이야기에서는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과정만 보여줬지 그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라비와 커스틴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신혼초 이케아에서 집을 꾸밀 작은 컵을 가지고도 싸우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램프를 고르는 과정에서였다. 서로의 다름으로 완벽해질 수 있다는 착각은 이제 시작이며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오는 스트레스는 서로를 미친사람으로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니 그런 사람을 선택한 내가 미쳤던 건지도 모른다.

 낭만주의에서 사랑은 흔한 노래가사처럼 서로의 다름 그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그런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미 부부는 서로를 매우 잘탐색하여 서로의 좋은점과 나쁜점을 매우 잘 알고 나쁜점을 개선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은 매우 공격적인 경우가 많고 상대방도 희한하게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민감하다.

 그러던 부부에게 아이가 생겨난다. 아이는 탄생과 동시에 예방주사에 대한 안내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지침이나 조언없이 집으로 들어온다. 알랭 드 보통은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고 했다. 이문장을 읽고 한참 웃었다. 아이는 대단한 존재이고 초기에 가진 철저한 의존성과 자기중심주의, 연약함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이끌어낸다. 부모는 아이의 양육을 통해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자아를 초월해나간다. 부부간의 사랑에서도 못 이룬 일이다. 그래서인지 연애시절 그토록 남편을 사랑하던 아가씨는 엄마가 되는 순간 그 사랑의 방향타가 완전히 바뀌곤 한다.

 아이에게 초기에 얼마나 부족함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공하느냐는 향후 아이의 애착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애초에 완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애착문제를 가진 부모에게 그런 것이 가능할리가 없다. 어찌보면 낭만주의 결혼의 문제는 바로 이부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는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누구나 겉으론 겸손한척 해도 아이를 위해 완벽함을 추구한다. 보통은 이를 '그저 또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완벽함의 표본을 창조하려 하는 것이다. 평범한은 통계상 정상임에도 결코 최초의 목표가 되지 못한다. 그 결과 아이를 어른으로 키우는 데 너무 막대한 희생을 치른다.'라는 문장으로 담아낸다. 여기에는 학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고통과 시간 비용의 허비,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아이의 분노와 좌절, 절망,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아이에게 그렇게 할지도 모르는 비관이 섞여 있다. 어쩌면 항상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하는 인간에게 이런 양육 태도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커가고 그러다 남자인 라비에게 외도의 기회가 생기고 그는 매우 손쉽게 이에 응한다. 여자는 아내인 커스틴보다 훨씬 젋고 아름답다. 자신에게 왜 이여자가 이러는지 모를지경이다. 남자에게는 젋고 이쁜 새 여자가 최고라는 속설처럼 라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지만 그녀를 택할 경우 잃게될 모든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평화로운 가정, 헌신적이고 지적이며 세련된 아내, 때론 짜증나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들, 자리잡은 집과 직장에서의 지위, 이 모든 것을 말이다. 남자는 결국 선을 넘지는 못하지만 한번의 외도는 두고두고 마음속에 가시로 자리 잡는다.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하는 그런 것으로.

 가정불화는 점점커지고 부부는 마침내 상담센터를 찾아간다. 한때 그런곳을 찾는게 이상하고 돈이나 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들이지만 상담의 결과 서로의 약점과 방어기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대화하고 다가가는 법을 알게된다. 이제 상담센터는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심리치료사들은 대단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남자는 결혼 16년만에 드디어 자신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낀다. 그는 성장과정에서 그리고 아무도 유전적으로 비롯되었을 자신의 약점과 내면을 속속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상대방의 그러한 것들 역시 받아들이고 이해할 준비가 되어간다. 인생의 절반을 넘어 어릴때에 비하면 원하던 것의 절반도 얻지 못한 보잘것 없고 실패한 삶이지만 그건 그러한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는 낭만주의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일독 후, 책은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다는 느낌을 많이준다. 중간중간 이어지는 알랭 드 보통의 설명 때문인것 같기도 하고 여러 에피소드를 엮고 심리를 드러내는 심리에세이나 감정에세이 같은 느낌도 많이 주기 때문이다. 결혼과 그 이후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과 그것을 담아낸 문장들은 정말 시원하고 아프며 재밌다. 그리고 분명 이 책은 소설의 주인공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10년 이상이 지난 부부에게 가장 크게 다가갈 것이다. 많은 분들이 번역에 대한 지적을 하였는데, 솔직히 나는 별 문제를 느끼진 못했다.

 낭만주의에 빠져 우린 결혼을 하고, 보통의 말처럼 결국 결혼이 낭만주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책임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타인애를 통해 완성되어 가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곤 한다. 낭만주의로만 이루어진 결혼은 결국 하나의 환상이고 어찌보면 자기애로만 구성된 낭만주의 결혼의 결과는 이혼이다. 오늘날 3쌍중 한쌍이 이혼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히려 비민주적이고 자아가 부정된 결혼인 과거의 합리주의적 결혼이 오랜 결혼을 지속했다. 시대적 요인도, 시민성이나 개인의 대한 관심도 크게 부족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 시대 그사람들은 강제성으로 인해 낭만주의를 넘어섰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의 결혼이 훨씬 낫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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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7-11 07: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옛날 동화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다보면,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대요.‘하는 대목이 생각나네요. 결혼 전의 모험, 대립, 갈등 등은 결혼 후 수많은 시간에 비하면 극히 짧은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닷슈 2017-07-11 08:53   좋아요 2 | URL
요 소설도 딱 그런 대목에서 시작합니다 그후로를 다룬작품으론 슈렉 시리즈가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