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는 진화론과 불교를 알았을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떠오른 질문이었다.
이 책은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한 권이다. 총 40권인데 올초에 1권인 '진화론도 진화한다 다윈&페일리 편' 읽으며 그 존재를 알았다. 이 책은 37권이다. 꽤 괜찮은 프로젝트 같아서 책을 사고 싶었지만 보관할 공간도 없고 해서 직장내 도서로 다행히 구입이 되었다. 곧 직장을 옮길 예정이라 빨리 읽어야 하는데 읽어보니 역시 철학은 쉽지가 않았다. 다른책을 보며 무려 1주일 이상을 질질 잡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어느정도 이해가 된 것 같지만 솔직히 니체는 아니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 밖에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쇼펜하우어의 유명한 인생론을 대학초년에 읽은 적이 있었다. 워낙 부정적이지만 그걸 부인할수 없어 우울하게 인상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그 짧은 이해와 기억 탓에 그래도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자라고 하면 음 그래 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는 되었다.
쇼펜하우어의 대표 저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다.
여기서 표상은 마음 또는 의식에 현전하는 것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칸트는 세계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주관성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관찰하는 세계는 그 자체가 아닌 주관이 무척 들어간 표상인 것이며 인간종 전체가 같은 표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마다 다른 표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인간종과 개가 파악하는 세계는 감각기관의 차이로 완전 다른 표상을 갖고 있으며 같은 인간이라도 색맹인 사람과 아닌 사람의 표상은 완전히 다를수 밖에 없다.
어쨌든 세계는 개개인의 주관에 따른 표상이고, 따라서 이 표상은 개개인의 이성적 인식이 아닌 직관에 의존한다. 그리고 직관이라는 것은 사람의 감각적 육체에 근거하는 것인데 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 바로 의지이다. 의지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직관적으로 관찰하고 파악하는 것이 표상이므로 표상은 곧 의지에 근거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표상들은 모두 의지의 객관화인 셈이다. 여기서부터 진화론 냄새가 좀 풀풀난다.
의지는 세가지 동인을 갖고 있어 원인과 자극, 동기에 의해서 움직인다. 원인은 주로 무기물에 작용하고, 자극은 식물, 동기는 동물에 작용한다. 하지만 인간은 특별하니 3가지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동물이지 인간에게 있어 의지의 근본은 두 가지이다. 바로 욕구의 충족인데 이는 모두 개체를 유지하는 것, 종족을 번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생존과 번식의 욕구가 의지인 셈인 것이다. 때문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이란 자연이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걸어놓은 마법의 지배하에 있다고 말했다는데 마치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말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러한 의지로 인해 인간은 한없이 고통받는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것은 결핍된 행성에 동물로 태어난 이상 한계가 있는 것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결방법은 어처구니 없게도 정관이다. 세계는 의지와 표상의 산물이고 내가 이걸로 인한 고통과 번뇌는 모두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한발 물러서서 파악하는 것이다. 마치 불교의 해탈같다. 그런데 이런 개인적 해결에서 더 나아가 동고란걸 주장한다. 자신이 이런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났음에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다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내가 해탈했어도 같이 사는 이웃이나 가족이 고통스럽다면 나의 해탈은 실로 무의미하고 이기적일수 밖에 없다. 이런점에서 주장하는 것이 다른사람의 고통도 이해하고 나와 같은 길로 이끌어가는 동고이다. 이 역시 상당히 불교적이다.
결국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고통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불교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셈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보기에......) 그래서인지 쇼펜하우어가 불교와 진화론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불교는 확실하진 않지만 알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진화론 같은 경우 다윈이 종의기원을 발표하기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나왔으므로 가능성이 없었다. 물론 다윈이 그 저서를 만들어놓고도 거의 10년이상을 썩힌 만큼 다윈과 친분이 있었다면 알았을수도 있겠지만 국적이 다른 만큼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