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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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마이클 센델을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능력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더욱 심화하면서 직업과 재산 소유에 따른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면서 부터다. 이전에도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있어왔지만 부작용이 더욱 커지며 비판도 날이 서는 느낌이다.

 능력주의가 가장 심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이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첨병이기에 능력주의가 강하고, 넓은 땅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겹치며 그런 경향이 시작되었다. 때문에 미국은 사회주의 및 복지가 취약하다. 중국과 일본, 한국의 능력주의는 과거제도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있다. 귀족들이 신분으로 세습하며 정치경제권력을 장악하는 부작용을 막고자 도입된 합리적 제도이지만 과거제 역시 문제가 많았다. 과거제 역시 다수를 떨어뜨리는 학력시험이다보니 실제 문제해결력이 뛰어난 사람이 관료로 선발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율곡이이는 과거 공부가 진정 선비가 해야하는 학문을 방해한다고 비판까지 하였다. 

 이런 과거에 전통으로 인해 한중일은 학력을 가진 자에 대한 신망이 강하다. 그리고 산업혁명으로 인한 서구화의 물결이 밀어닥치자 일본은 서구식 교육을 통해 나라를 이끌 사람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점이 능력주의를 강화시켰다. 서구유럽사회는 근대식 학교교육이전에도 의사나 법조인, 상인, 과학자 등 다양한 전문직이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나 양성되었다. 하지만 그런 전통이 전혀 없는 일본에서는 나라를 이끌어나갈 전문 인재를 막 도입한 서구식 교육과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로 충원할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시험능력주의에 상당히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본을 통해 근대화한 한국도 일제시대와 해방이후에도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전후 근대화를 시도하는 한국사회에서 시험 능력주의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양반출신이 아니고 재산이 많지 않아도 공부해서 시험을 잘 보면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었다. 국가가 시행하는 선발시험인 이것에는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작용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공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사정으로 인해 충분한 역량이 있었음에도 학력을 획득하지 못해 직장과 사회에서 차별받은 사람들은 학력을 통한 능력주의를 더욱 몸에 뼈져리게 새기고 자식들에게 그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시험능력주의가 개인의 일이 아닌 가정에서의 총력전이 되고 만 것이다. 한국이 고도성장을 하던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고졸출신의 기능직 노동자도 충분한 재산 형성을 할 수 있었고 안정적인 정규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한 고도 숙련이 아니더라도 중반, 초급 숙련자에게도 이런 일자리가 주어졌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이 닥치면서 기업은 일을 외주화, 자동화, 정보화 하기 시작했고 경제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많이 이동했다. 때문에 고졸출신을 위한 일자리는 크게 사라졌고, 성장한 대기업 사무직 및 전문직 종사자와의 급여차이는 상당해졌으며 중소기업이나 하청기업으로 전전하게 되어 고용도 크게 불안해졌다.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 한국의 시험능력주의는 더욱 강력해졌다. 불안해진 사회경제적 입지로 90%가 넘는 시험능력주의의 패배자들은 이런 사회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연대하기보다는 개인으로 원자화되었고 오히려 자신보다 더한 처지에 몰린 패배자를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국의 시험 능력주의는 사실상 문제가 상당히 많으며 망국병의 근원에 가깝다. 우선 용어와는 다르게 시험능력주의가 정작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시험은 1단계와 2단계로 첫 번째는 대입시험이고 두 번째는 고시 및 입사 시험이다. 과거엔 1단계의 통과가 2단계의 통과를 보장하였기에 시험능력주의가 크게 강화되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은 한국의 시험이 종합적인 실질 역량을 검증하는 것이 아닌 암기력 및 기초사고력 테스트에 가깝기에 시험을 통과해 해당직위에 이르렀을 때 반드시 뛰어난 역량을 보이진 못한다. 때문에 시험을 통한 선발은 오래 전부터 실질 인재를 획득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나타냈고 이를 자각한 최근의 한국 기업들은 역량을 초점을 둔 블라인드 테스트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시험 능력주의의 또 다른 문제는 이것이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행해지는 불공정 게임이라는 점이다. 시험능력주의 신화가 큰 힘을 얻는 것은 바로 공정하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같은 학교에 입학해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시험을 통해 그간의 노력과 능력을 검증받고 그에 걸맞는 지위와 보상을 얻는 것이 무척이나 객관적이고 타당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보이듯 현재의 시험성적은 부모가 가진 경제력과 상당히 연관성을 보인다. 실제 서울 25개 자치구중에서 서울대 합격 비율은 고소득층이 많이 자리한 강남지역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의 상속 부자 및 전문직들은 본인들이 가진 재산 및 사회적 네트워크와 권력 정보를 이용하여 자녀를 어릴적부터 전략적으로 사교육을 시키고 해외 및 국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본인들이 가진 도구를 이용해 지위를 세습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고위 관료라 하더라도 자식을 과거에 합격시키는 것 만큼은 어찌 할수 없는 일이었는데 현대사회가 이런 면에서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시험 능력주의의 세 번째 문제는 시험 통과자에 대한 과도한 보상과 패배자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이다. 시험에 통과한 이들은 대기업 사무직이나 고시를 통한 고위 관료, 법조인, 의사등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직종들은 하나 같이 소수의 자리만을 허용하며 상당히 많은 권한을 갖는다. 한국의 검사집단은 수사와 기소권을 독점하여 권력을 휘두르고 판사는 소수로 상당히 많은 일을 처리하는 고충을 감내하며 본인들의 권력을 지킨다. 의사 역시 상당한 고수익을 누리고 있으며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 박탈 및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공익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시험 통과로 인해 자신의 보상과 지위가 과도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는 정치권에 진출하여 정치 및 경제권력을 모두 획득하는 길로 나아간다. 한국 국회의원의 평균재산은 보통사람들의 10배인 22억에 달하며, 대부분 고시를 통과한 고위 행정관료, 법조인, 교수, 언론인 들이다. 반면 대다수의 패배자들은 시험의 실패로 인해 학창시절부터 상당한 상처를 입고 이 트라우마를 평생 갖고 살아간다. 보다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한 현실은 사회구조에서 찾기 보다는 자신의 무능으로 돌리며 오히려 시험 통과자들이 과도한 지위 및 정치권력을 얻는 것을 용인한다. 그리고 서로를 견제하고 자신보다 더 못한 패배자를 멸시 혐오하며 이런 체제에 협조한다. 이런 분위기이나 패배자들에게는 중소기업, 하청업체, 비정규직, 배달노동자 등의 자리가 제공되며 이런 직종들은 급여가 적고, 고숙련노동자로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 개인의 성장을 막고, 승진에 제한이 있으며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과도하여 건강과 생명이 상당한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이런 직종들은 대개 소규모 사업장이거나 그것도 아니어서 단체교섭권도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며 중대기업처벌법에서도 유예 및 예외 대상이다.  

 시험능력주의의 마지막 문제점은 바로 교육의 파괴다. 한국의 교육은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의 많은 부작용을 깨닫고 여러 개혁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능력주의에 따른 노동 및 사회구조가 같이 변화하지 않으면서 자연히 모든 교육 개혁도 실패했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교육을 시험에 종속시켜 그 본연의 목적을 실행하지 못하게 한다. 교육의 목적인 개개인이 타고난 적성과 능력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올바른 지적능력과 인성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자라나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험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이와 같은 것들을 실행되지 못한다. 또한 학생들은 입시경쟁으로 인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스트레스는 학교의 다른 친구, 교사, 학부모에게 발산되며 이로 인해 학교폭력이 잦아진다. 

 저자는 이런 시험능력주의의 해결책도 제시한다. 해결책은 우선 좁은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다. 현재는 시험에 통과하여 명문대의 간판을 얻고 이를 통해 고시 및 전문직 시험과 대기업 입사시험을 통과하는 사람들만이 사회적 지위와 보상을 얻는다. 이를 다양화 하고 그 수를 늘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의사라면 공공의대를 꾸준히 설립하여 그 수를 늘리고 판검사의 수를 늘리고 그들이 갖는 과도한 권력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또한 고소득 전문직종을 공채로 뽑아 문을 닫기보다는 아래쪽으로부터의 루트를 통해서도 접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가령 서울 중앙언론의 아나운서를 수천대 일의 공채로 선발하기 보다는 지역언론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능력과 경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도 열어주자는 것이다. 교사를 임용고시로만 뽑기보다는 기간제교사로 꾸준히 일하면서 수업 및 교육과정 역량과 인성을 갖춘 이들도 정규교사로 전환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다른 해결책은 아래쪽의 형편 개선이다. 시험능력주의가 강화되는 것은 위에서 얻는 떡이 큰 것도 있지만 아래쪽에서 얻는 떡이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국가사회적으로 고졸출신의 기능직이 꾸준히 성장하고, 좋은 직종을 얻을 수 있도록 중소기업을 양성하고 소재부품기업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법적 보호장치 및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이들의 소득을 보존해주고 법적으로 보호해줄 필요도 있다. 

 시험능력주의에 대한 올바른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험능력주의가 소수의 강자가 불공정한 상황을 이용하여 과도한 보상을 얻는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식하지 못하며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사회 문화적으로 이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은 물질적 보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만은 사회를 그리고 나머지 조사대상국들은 모두 가족을 선택했다고 한다.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교육도 필요하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들 중 거의 유일하게 시민 교육 및 노동 교육이 부족하다. 이를 교과로 편성하거나 교육과정에 강력하게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사실 능력주의는 개개인의 노력도 포함되기는 하지만 개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선천적 능력 및 사회적 여건(태어난 가정이나 국가 및 지역)에 의해 좌우된다. 때문에 그것이 주는 보상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기 보다는 공유재적 측면이 있다. 이런 인식을 강화해야 한다.

 또 다른 해결책은 대학 서열의 완화다. 서울대를 포함한 모든 국공립대를 통합하여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지방의 대학을 양성하여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고 이를 통해 지방의 대학과 산업체가 같이 지역을 발전시켜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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