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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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류경제학은 늘 비판받아왔다. 인간을 합리적 인간으로 가정해서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고 그래서 이를 보완한 행동경제학이 나타났다. 경제학을 배우다 보면 인간의 문화적, 개인적, 사회적, 집단적 특성을 모두 무시하고 학문을 전개하는데, 이 때문에 다루는 몇 안되는 변수마저도 상수로 고정시키느라 편미분을 쓰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경제학은 실패의 역사에도 주류로서 남아있다. 그리고 이런 주류경제학이 소외시키는 또 하나의 인간의 특성이 바로 여성과 여성성이다. 물론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은 남성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다루는 경제적 일이라는 것이 소비는 둘째 치고 생산부분에서 남성의 그것만을 의미한다면 이야긴 달라진다. 실제 경제학에서는 국내총생산을 계산할때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는 '집안일'이라는 것을 배제한다. 

 경제학의 창시자라 볼 수 있는 애덤 스미스는 뉴턴처럼 자연에 대해 그런 것처럼 사회의 법칙과 인류를 위한 신의 설계도를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자연에 매커니즘이 있다면 사회에도 그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과학적으로 표현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과학처럼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의 단위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개인이었다. 그리고 이 개인은 모든 것을 무한이 원하지만 자원이 희소하여 욕구가 제한되며, 자신만의 선호체계에 의해 합리적으로 가정 비용이 적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개인의 이런 특성으로 인해 경제학은 경제적 계산 및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800년대 경제학자들은 여성은 사고 팔 수 있는 유형의 재화를 생산하지 않으므로 여성이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성을 경제적 모델에 최초로 포함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1950년대 시카고 학파였다. 그들의 의도는 불순했는데 세계의 모든 것을 경제적으로 수량화하여 가격표를 붙이고자 하는 것이 생각이었고, 그로 인해 여성의 가정일마저도 경제적 모델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들은 여성의 보수가 낮은 것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 생각했으며 그 이유는 여성이 남성과는 다르게 일을 하면서도 집안일과 육아등에 얽메여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으로 파악하였다. 이들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가사와 육아에 적합하여 여성이 그 일을 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했으나 왜 여성이 그 일에 더 적합한지에 대한 근거는 대지 못했다. 

 여성의 가사노동을 국내총생산으로 잡지 않으면서 서구는 수치상 혜택을 보았다. 서구는 2차대전 이후 여성이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여성인구에 의한 국내총생산이 극적으로 상승하였다. 하지만 후진국 및 개도국은 여전히 여성이 가사노동에 머물러 있기에 그렇지 못했다. 캐나다에서는 국가 통계청이 무보수 노동의 가치를 계산하였는데 그 결과 국내총생산의 무려 30.6%-41.4%에 해당했다. 이는 이 무보수 노동을 보수 노동으로 대체하는데 드는 비용으로 산정한 것이다. 즉, 엄마가 주로 하던 가사와 육아를 사람을 고용하여 실시하는데 어느정도의 비용이 드느냐로 계산했다는 뜻이다. 

 한편, 서구의 여성들이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서구의 가정에 돌봄 및 육아, 가사 노동이 부재하기 시작했고 이 틈새를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 세계 이주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 되었으며 특정 국가에서는 무려 80-90%의 여성이 해외로 나가있다. 이들은 긴 노동시간과 저임금에 시달리는데 충분한 급여를 주어 서구여성의 급여와 이주여성의 급여가 같아진다면 시장자체가 사라지기에 그런 측면이 있다. 가사노동에 고용된 사람들은 다른 직업에 비해 일반적으로 긴 노동시간과 불안정한 조건, 예측 불가능한 업무를 감수한다.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국가경제에도 큰 이바지를 하는데 필리핀의 경우 이들의 송금액이 국가 GDP의 10%를 차지할 정도다. 

 선진국 여성도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다. 여성이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기전엔 1957년 미국에서 명문 여대인 스미스대학을 졸업한 메리 프리던은 대부분 가사, 육아에 종사하는 자신들의 동기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이들은 사회통념과는 다르게 불안감, 성적 불만, 절망감, 우울증에 빠져있었으며 여성의 이런 측면을 다룬 프리던의 책 '여성의 신비'는 1963년 200만부나 팔릴 정도로 화제를 낳았다. 선진국 여성이 고통받기는 지금도 매한가지인데 그 이유는 이들이 경제학에서 공적 영역으로 여기는 사고 팔수 있는 일에 진출하였음에도 여전히 육아나 가사 같은 사적 영역에 상대적으로 많이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인간에 대한 최초의 전면 공격은 1979년 대니얼 카너먼과 에이버스 트버스키의 행동경제학에서 이뤄졌다. 이들은 인간의 결정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으며, 인간은 자신이 이미 소유한 것을 더 가치있게 여기고, 10만원의 이득보다는 10만원의 손실을 더 크게 생각하며, 이득이 없다라도 안전을 위해 현상유지를 더 선호하며,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어떤 행위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사람을 움직이는데 성공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의외로 사람의 헌신, 배려적 동기를 죽인다. 자주 늦는 부모를 대상으로 지각할때마다 벌금을 부과하였더니 그것을 지각에 대한 대가로 여겨 대놓고 늦는 부모가 많아지는 한 어린이집의 사례는 이를 보여주는 한 예다. 때문에 경제적 동기부여는 도덕, 정서, 문화적 추동력을 제거 할 수 있으므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 

 모든 사회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고 파는 경제를 운용할 기업인이나, 회사원, 상인등이 경제 행위를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사려깊음, 공감, 배려, 돌봄등이 포함되는데 놀랍게도 주류 경제학은 이를 경제행위에서 배제시켰다. 이로 인해 경제학의 역사 내내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남성에 비해 낮을 수 밖에 없었다. 경제학에서 여성이 가치 있는 경우는 그 자신의 사적 영역에서가 아니라 철저히 남성 위주의 공적영역에서 활약할때이다. 즉, 남성과 다름없이 공적영역에서 종사할 수 있거나 혹은 그 영역에서 남성을 보완할수 있을 때이다. 남성 대신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여 비슷한 수준의 생산성을 보이거나 공장일을 하는 남성들 대신 사무일이나 경리일을 맡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준의 평등은 여성에게 남성과 같아지기를 요구하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여성은 그런 남성닮기 행동을 그만두는 순간 평등을 요구할수 없어지게 된다.  

 책은 경제적 인간이라는 개념은 여성을 배제시키는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며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이런 경제과학이 사회를 주도하는 종교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경제학은 모름지기 이 체제가 공평한가, 삶의 질을 개선하는가, 사람들의 잠재력을 낭비하지는 않는가, 안전을 보장하는가, 세계 자원을 낭비하는가, 고용기회를 충분히 보장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 경제학은 이런 부분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다. 

 저자가 보기에 경제학은 인간이 얻는 경험 전체를 포용하는데 필요한 도구와 방법을 갖고 인간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즉, 인간이 탐욕과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해아하며, 사회적 지향점을 찾아 현대적 경제체제에 반영하다록 연구해야 하고, 인간과 사회발전을 위한 기회를 만들고,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봐야하며, 관계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파악하고, 인간을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에 따라 현존하는 존재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은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실상 실패해왔다. 빈부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경제는 좀처럼 성장하지 않으며, 환경파괴는 심각해지고 경제위기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여성은 17%에 달하는데 비해 남성은 고작 1%에 블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공적영역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여성의 사적 영역에서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해 유럽 여성은 2.36명의 자녀를 갖기 원하지만 실제로는 1.7명을 갖는다. 이들보다 지원이 훨씬 덜한 한국에서는 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향후 세계의 불평등, 가난한 인구의 증가, 복지, 노령화, 환경파괴 등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경제학이 아닌 페미니즘의 시각을 가진 새로운 경제학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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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22-04-12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닷슈님 ^^ 이 책은 제게 매번 구입의 고민을 안겨주던 책이었는데, 닷슈님을 통해 대략적이나마 접하게 되었네요. 너무나 감사드려요. ㅜㅜ

닷슈 2022-04-14 10:32   좋아요 1 | URL
도움이 되셔서 다행입니다. 즐독 하십시오. 여성부분도 다루지만 책은 경제학의 다른 비합리적 부분도 종합적으로 비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