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든 공간 -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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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준의 책은 알뜰신잡에 나온 이후 것들만 봤다. '도시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는 꽤 괜찮은 책이었고 후작인 '어디서 살 것인가'는 잡탕 느낌이 많은, 기존의 그의 책들을 큰 차이가 없어 굳이 나올 필요가 없는 책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번 책이 좀 불안했는데 다행이 '공간이 만든 공간'은 제법 괜찮은 책이었다. 건축에 대한 유현준의 인류사적 생각이 드러난 책이었고,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정작 건축자체에 관한 내용은 의외로 별로 없는 느낌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잘 드러낸 십여년 전에 나왔던 책 '동과 서', '생각의 지도'같은 책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류사적 느낌이 나듯 저자는 인류의 초기부터 짚어나가며 책을 연다. 지구는 어느정도 질량을 가진 행성이 그렇듯 구의 형태다. 그리고 다들 그런것처럼 항성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스스로 자전도 한다. 그런데 자전축이 기울어져 계절 변화가 일어나고, 과거 얼음 소행성과 많이 충돌해 물도 많다. 이게 극적 변화를 일으킨다. 태양의 에너지를 받는 부분간의 차이를 이 물이 구름이 형태로 변해 바람따라 운반해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형이란게 생기고 기후도 생긴다. 그리고 자신이 갇힌 좁은 기후대에서 생존해야 하는 인간은 자신의 적합도를 높이기 위해 건축이란걸 한다. 

 그러니 건축은 기후은 어찌보면 기후에 적응한 인간의 산물인 셈이다. 그리고 기후에서 중요한 건 기온과 강수량이다. 특히 강수량이 중요한데 현대에 이르러서도 방수와 누수, 그리고 침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한다면 매우 당연한일이겠다. 단순하게 나누어 인간이 재배하는 곡물은 밀과 벼인데 비가 연간 1000mm이상 강수량이 있다면 벼를 키우고, 그 이하이면 밀을 경작한다. 양 곡물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벼는 키우기가 무척 어렵고, 파종시기나 수확시기, 그리고 물을 준비하는 시기와 키우는 과정에서 물의 확보및 차단이 무척 중요해 집단적이며 노동집약적인 농사형태를 갖게 된다. 반면 밀은 키우기가 쉬우며 대충 밭에 씨를 뿌리면 된다. 그렇다보니 벼농사지역엔 집촌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모여사는 반면 밀농사지역에 넓은 밭에 농가가 띄엄띄엄하다. 서양영화보면 실제 그렇다. 

 그리고 이는 생각의 차이를 불러왔다. 집단적 협력이 중요한 벼농사 지역은 농사와 치수에 협력이 중요해 집단적이고 관계를 중시하는 사고가 형성되었고, 밀농사 지역은 개인주의적 사고가 형성되었다. 때문에 동양에서는 관계를 중시하기에 절대적인 법칙 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중용같은 가치를 중시되었고, 서양에서는 개인에 방점을 두어 모든 것을 개별화하고 원자화했으며 절대적 법칙이나 선을 강조한다. 때문에 이 코로나 형국에서도 한국에선 자신을 희생해 남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서양지역엔 남들의 안위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자신의 권리를 더 부르짖는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기후는 건축양식에도 차이를 가져왔다. 동양은 비가 많이 내리니 땅이 자주 무르고 땅과 닿는 부분이 손상될 우려가 컸다. 때문에 기초가 되는 돌을 땅에 깊숙히 박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 건축하는 양식이 발달했다. 그리고 비를 막기 위해 경사진 지붕을 크게 지었다. 거의 건축의 입면 절반가까이가 지붕이 된다. 그리고 집단적 사고는 집에도 영향을 미친다. 관계를 중시하고 상대적 사고를 하기에 집안에서 자연을 보고 집과 자연의 경계가 벽이 없는 기둥건축이기에 모호하다. 한국의 단청은 얼핏보면 단조로운 집의 색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튀는 강력한 보색이지만 집안에서 바깥은 바라보면 단청과 자연의 색이 하나과 되어 집의 안팎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자연과 집이 어울리기에 집의 형태를 없는 편이었고 자연을 따라 건물이 뻗어나가는 형태가 없는 건축이었고 빈공간을 중시했다. 반면 서양의 건축은 비가 적게 내려 땅이 단단해 벽이 힘을 받는 내력벽 건축이다. 비가 적게오니 지붕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집안이 벽으로 막혀 실내장식에 치중을 많이 했다. 또한 건물도 자연과 어울리기봐는 건물 자체를 바깥에서 보는 것이기에 외관 장식도 신경썼다. 그리고 창은 당시 유리가 비싸고 벽이 무게를 받기에 수평으로 길게 내거나 크게 만드는게 어렵고 수직으로 창을 작게 내고 거의 항상 닫고 있었다. 절대법칙을 선호하기에 원이나, 사각형,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로 황금비율을 고려하여 건축했다. 이렇듯 건축은 동양의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와 관계와 비움을 중시하는 사고, 그리고 서양의 비가 적게 내리는 환경과 개인주의적 사고, 절대법칙과 윤리를 반영했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하며 변화가 일어난다. 과거 동서양의 교역은 육상 실크로드를 통한 비단과 향신료였다. 둘은 귀하기도 했지만 장거리 교역에 적합하고 가볍고, 잘 썩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다 오스만에 의해 지중해 항로를 통한 교역이 막히자 네덜란드 지역에서 역풍에도 배를 전진시키는 삼각돛이 개발된다. 삼각돛은 베르누이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데 역풍이 불면 삼각형의 불룩한 부분과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의 바람속도가 다르다. 튀어나온 부분은 빠르게 바람이 지나가고 오목한 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오목한 부분으로 공기가 몰려 양력이 생겨 밀어내는 힘이 생겨나는데 그렇게 역풍에도 전진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구조상 비스듬히 가게 되니 일정 시간이 지나면 돛의 방향을 바꾸어서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이런식으로 지그재그 전진이 된다. 하여튼 그렇게 아메리카에 도착하고 동남아시아 및 동아시아에도 유럽인이 도착해 배를 통한 교역이 시작된다. 중국에서의 주요 수입품은 도자기였는데 도자기 자체도 유럽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지만 도자기에 그린 그림도 이에 못지 않았다. 그림에는 서양과는 전혀 다른 정원과 집들이 그려져있는데 텅빈 공간과 자유로운, 관계적 요소가 서양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은 17세기 들어 도자기 산지에서의 반란과 만주족의 반란으로 도자기 생산지대가 초토화된다. 이 점을 파고든게 국제교역망의 끝부분에 자리 잡은 일본이다. 때문에 일본은 조선이 비해 떨어지는 도자기 생산기술을 갖고도 무역에 참여하였고, 부를 쌓게되며 이후 산업화의 길도 걸을수 있게 된다. 일본은 도자기를 포장할때 판화하고 남은 종이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 판화도 유럽으로 건너가 영향을 미친다.

 서양의 정원은 기존에 기하학적 형태를 갖고 전지적 시점에서 만든 정원이었다. 하지만 동양의 도자기의 영향으로 자연과 어울리고 1인칭 시점과 빈공간을 지닌 픽쳐레스크 형식의 정원이 생겨난다. 우리가 아는 센트럴 파크도 픽쳐레스트 형식이다. 동양과 서양건축의 융합은 초창기 유럽에서 생겨났다. 유럽이 먼저 동양으로 진출했고, 산업혁명과 기술발달로 역량을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미스반데 로어는 초기 벽구조 기반의 서양건축에서 기둥 중심의 동양식 공간감을 쌓는 건축을 한다. 그의 허블하우스는 개인적 공간은 벽으로 막고, 부엌이나 거실 같은 공용공간은 기둥을 이용한 개방적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판스워스 하우스는 침수를 피하기 위해 기둥구조를 이용하여 집은 반쯤 올려놓았는데 그 설계 방식이 한옥과 매우 유사하다. 

 르코르뷔지에는 근대건축의 5대원리로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리본 수평창을 내세웠는데 이는 산업혁명 이후 건축에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사용되었기에 가능했다. 옥상정원은 철근 콘크리트와 방수재료의 발달로 옥상에 지붕이 필요없어져 가능한 것이며 자유로운 입면과 평면도 철근 콘크리트 건축으로 벽이 힘을 받지 않게 되어 가능해졌으며 리본형의 긴 수평창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중 필로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요소가 기존 동양건축 요소라는 점에서 산업화 초기 서양건축은 동양의 기둥건축의 영향과 그 구현을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해준 산업혁명기술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 문화간 융합 건축은 그 수명을 다한다. 국제주의적 양식이 등장하는데 이는 철근콘크리트로 사각형 모양의 세계어디서나 똑같은 건물이 들어서는 형국을 말한다. 당연히 지역색이 없고, 실용성만이 강조되는데 이는 개성과 다양성의 말살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존 전통건축이 자연에 대응하는 것인데 반해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현대의 건축기술로는 굳이 자연에 대응하지 않고도 극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일수도 있어 양면성이 있다. 1970년대 건축은 철학에서도 길을 모색해 해체주의가 반영되었는데 지나치게 해체적이거나 기괴한 모양이 많아 오히려 사용자의 편의성이나 집의 기능 자체를 떨어뜨리는 모순이 있었다. 

 최근의 건축동향은 컴퓨터 기술과의 결합이다. 수치를 입력하여 프로그램으로 디자인을 하는 파라메트릭 디자인 기법이 있고, 다양한 캐드 프로그램으로 건축 디자인의 효율성과 독창성이 극대화 되었지만 반면 서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이용하다보니 비슷한 건축이 나오는 단점도 등장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쉐임 그래머란 방식인데 컴퓨터가 한 건축가의 양식이나 설계방식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그가 설계하는 방식의 과정과 의도를 이해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과거 건축가의 양식으로 컴퓨터가 건축디자인을 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건축가가 건물을 짓다가 중대한 결함의 발견으로 문의 방향이나 위치를 수정할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이 프로그램은 그 과정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었기에 마치 이 건축가가 원래 그렇게 설계했던 식의 도면을 쉽게 제공한다. 

 책의 말미엔 지금의 디지털 공간을 건축으로 보는 재밌는 관점도 등장한다. 인간은 항상 자신의 외부와 내부를 관찰하고 탐구했는데 최근의 급격한 디지털화로 인간은 외부 세계를 잃고 있다. 디지털화가 진행될 수록 자신마저 데이터화되는데 이런 반작용으로 최근 과거 복고문화나 아날로그가 역설적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때문에 디지털 세계에서의 건축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결국 아날로그적 건축이 살아남고 강조되리란게 저자의 생각이다. 아무리 디지털 공간에서 친숙해지고 기회가 많아져도 그것이 물리적 공간만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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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1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간과 건축은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항상 흥미롭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닷슈 2020-09-02 00:21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재밌습니다. 다이제스터님이 가볍고 흥미롭게 볼만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