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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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 관련 이야기에선 벽의 유용성을 설명한다. 자연세계에선 맹수나 다른 인간 적이 많다. 때문에 인간은 정주이전부터 벽을 만들었는데 벽은 인간의 인지적 심리적 부담을 크게 덜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탁트인 곳의 개방감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불안감도 많이 느낀다. 실제 사람은 탁트인 곳보다는 여러 방향이 막힌 곳이나 높은 곳을 선호하며 엘리베이터만 타면 벽쪽에 붙는다. 그리고 이건 사실 인간만의 성향도 아니다. 다른 동물역시 그러하다.

 이처럼 벽은 나를 또는 우리집단을 타자 혹은 외부집단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짓는 경계가 되기도 했다. 사람은 아직까지도 기본적으로 이런 목적으로 벽을 짓는다. 이 책은 이런 벽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짚었는데 하나하나 재밌는 요소가 많았다. 흥미있는 몇개를 살펴본다. 


1. 방어하는 벽 테오도시우스 삼중성벽

출처 네이버 블로그


위 그림은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 그리고 오래전 비잔틴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지도다. 이슬람 세력이 확장하며 도시는 무수한 침략을 받았는데 제국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적을 무찌른 철옹성이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3중인데 우선 제1장벽은 2m의 높이이고 앞에 20m 정도의 해자가 있다. 제1장벽 뒤에 10m 공간이 있고 높이 8m의 외성이 나타난다. 이 외성엔 망루가 있어 침투한 적에 화력을 집중한다. 외성 뒤에는 무려 20m 높이의 내성이 나타나는데 여기에도 망루가 있고 이 망루는 앞 외성 망루의 사이사이에 있다. 적입장에선 첩첩산중인 것이다. 

 이 3중성벽을 피한다면 위 지도처럼 바다밖에 없다. 아래 마르마라해는 워낙 물살이 거세고 폭풍우가 잦다. 이를 피해 상륙한다해도 삼중성벽만큼은 아니지만 성벽이 기다린다. 그나마 나은 곳이 위쪽 금각만이다. 여기를 방어하기 위해 비잔틴은 반대쪽 해안에 갈라타 요새를 만들고 만집입로에 강력한 쇄사슬을 설치한다. 또한 해안에도 역시 성벽이 있어 들어와도 역시 침투가 어렵다. 

 이런 콘스탄티노플도 결국 제국의 쇠락기에 무너지는데 상대는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2세였다. 그는 함대로 해안을 포위하고 포신 8m에 구경 75cm의 대포로 성벽을 무너뜨려간다. 하지만 성민들은 무너진 성벽을 목책과 진흙으로 재축하였고, 상황은 어려워지나 비잔틴의 구원을 끝끝내 외면한 기독교세력의 미지원, 그리고 기독교 세력의 지원을 기대하며 그들과 교세를 통합하자는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간의 내분, 마지막으로 갈라타 요새를 소유한 제노바에 대한 불신과 그럼에도 죽음을 다해 콘스탄티노플을 사수한 주스티나아니에 대한 불신이 패배를 좌초했다. 이런 많은 불안요소와 겨우 8천의 수비병으로 당대 최강의 군대를 오래도록 막아냈음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방어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수 없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서구에선 사실상 방어수단으로서의 마지막 성벽으로 본다. 이후 화약이 발달하며 성벽을 한방에 날려보내는 작열탄이 등장하며 방어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2. 차별하는 방벽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방벽 

 유대인만 사는 지역을 의미하는 게토는 히틀러가 만든 것 같지만 사실 중세시대부터 연원을 찾을정도로 오래되었다. 2차대전 당시 폴란드에는 무려 40만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수는 독일 전체의 유대인 수를 상회할 정도로 많은 것이었다. 나치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처음부터 유대인을 학살할 생각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유대인이 유럽인이 아니고 유럽을 더럽히는 존재이니 다른 지역으로 추방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르샤바 한복판에 거대 게토를 만들었는데 크기가 3.4km2였다. 그런데 유대인의 수가 무려 40만이니 1.46m2당 7명이 1명을 수용하는 격이었다. 즉, 한방크기에 7명이 들어가는 셈이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니 초기부터 탈출시도가 많았고 이에 나치는 장벽을 세울 생각을 한다. 전쟁이 길어지며 식량배급이 열악해졌는데 유대인에 대한 식량배급은 독일인의 1/3수준이었다. 게토내에서도 소수의 부유한 유대인과 여유있는 중산층, 그리고 빈민층이 나뉘어 처우가 달라졌다. 부유층은 자신의 재산및 인맥을 동원해 식량을 얻어냈고 빈민층은 굶어죽었다. 장벽마다 약간의 틈이있어 빈민층의 어린 아이들이 바깥에 식량을 얻으러 나가곤 했는데 발각되면 독일군의 구타로 인해 죽곤했다. 

 바르샤바 게토의 상황은 겨울에 최악이었다. 물이 얼어 사람들은 배변을 바깥 공간에 버리게 되었고 이에 장티푸스등의 전염병이 창궐했다. 굶주림과 추위도 엄청났고 식량은 더욱 부족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으로 1942년 말이 되자 불과 수용 2년만에 40만 중 8만이 사망한다. 또한 전쟁이 길어지며 유대인의 이주 및 관리비용이 증가하자 나치는 마침내 이주를 시킨다는 거짓말로 이들을 기차에 태워 집단학살장으로 보낸다. 수용소의 열악한 상황에서 탈출한다는 생각에 게토를 관리하던 유대인인 유덴라트들을 동족을 기꺼이 기차로 실어날랐다. 게토에 남은 유대인들과 유덴라트들이 그 참상을 알아챘을때는 이미 30만이 죽은 상황이었다.

 이에 남은 바르샤뱌 게토 유대인이 소수의 폴란드인들과 봉기를 일으킨다. 하지만 워낙 소수였고, 연합군에 대한 지원요청도 묵살되었으며 내부에서도 좌파와 우파가 갈려 진압된다. 이 봉기로 남은 이중 1만3천이 죽고, 남은 이들중 3만은 가스실로 향한다. 이 지옥에서 굶어죽지 않고, 가스실로 가지 않고, 봉기에서도 살아남은 이는 매우 소수였다. 


3. 갈라놓은 장벽 휴전선

 휴전협상은 전후 1년인 1951년에 시작된다. 양측의 입장이 달랐는데 UN군은 현 시점영토로의 휴전을 북한군은 전쟁이전 38선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면서도 개성지역을 요청하는 형태였다. 협상은 당연히 결렬되는데 38선으로 회귀하면 황해도의 옹진반도 남단은 북측이 언제든 차지할수 있는 형국이었고 동부의 알짜배기 지역인 철원, 양양, 속초가 북의 수중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51년 UN군이 동부전선 양구지역을 점령하며 공산지역의 기가 꺽인다. 또한 휴전협상의 내용을 알게된 이승만정권과 한국군, 한국민이 분노하면서 시위가 일어났고, 이에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풀어줌으로써 협상자체가 엎어지게 된다. 그 결과 미국은 이승만이 원하는대로 현재의 영토로 휴전할 것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

 휴전선은 대단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렇다할 경계없이 말뚝을 몇개 박아 놓은 게 처음이었다. 이 군사분계선에서 양측은 서로 2km씩 물러나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을 설정한다. 이 총 4km의 구간이 비무장지대가 되는데 서로를 못믿어서인지 그 안에 GP를 설치했고 밖에는 GOP를 설치한다. 또한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비무장지대의 기지에 군이 들어갈수 없으니 일본 자위대마냥 북은 민경대란 이름으로 무려 1만의 병력을 남은 민정경찰이란 이름으로 2천의 병력을 배치하는 촌극을 벌였다. 거기에 남한의 경우 미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남방한계선에서 5-20km를 민간인 통제구역인 민통선으로 설정해버린다. 

 미군의 짓거리는 이게 끝이 아니다. 휴전회담엔 남한군 대표가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육상의 한계는 잘 구분짓고도 해상의 경계를 설정하지 못하는 실수가 벌어졌다. 당시 북한군에 이렇다할 해군이 없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이후 서로 해군이 생겨나며 UN에서는 뒤늦게 북방한계선 MLL을 해상에 선포하고 북에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이후 NLL은 당연히 남과 북사이에 갈등거리가 되었으며 남한에서는 북한적대로 먹고사는 세력의 주 안주감이 되고 만다. 


 책에는 다양한 장벽의 세계사가 등장한다. 만리장성도 하드리아누스 장벽,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끼장벽, 이스라엘의 장벽, 트럼프의 장벽등이 말이다. 과거 방어와 구분의 역할을 하던 장벽이 방어역할을 상실하며 차별의 장벽으로 넘어갔고, 이후 구분과 차별의 역할로 최근 넘어가는 분위기다. 트럼프의 멕시코 장벽, 유럽연합의 난민 장벽들이 그렇다. 장벽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는 행위임을 깨달을 날이 와야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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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04 0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 색깔은 정말 단호하게 벽치는 느낌으로 잘 골랐네요...무슨 필터낀 줄 알고 한참 새로고침 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