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 - 인간과 바다 그리고 물고기
브라이언 M. 페이건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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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고기는 사람이 육식을 시작한 이후 가장 오랫동안 먹은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바다는 아니어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호수, 습지, 웅덩이, 강이 있고, 그곳엔 비교적 잡기 쉬운 물고기와 조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매우 많았었고 어떤 경우엔 거의 줍다시피 잡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러 가축과 곡물류에 비해 인류 역사에서 물고기는 식량으로써 상대적으로 매우 소홀히 다뤄져왔다. 물고기가 주식인 집단이 적고, 물고기가 문명의 기반인 적도 없으며 이렇다할 고고학적 증거도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싱'의 저자 브라이언 페이건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는 물고기가 인류 초기 문명의 발흥에 상당한 역할을 했고,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일을 담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물고기가 남획의 결과 위기에 이르렀고, 인류의 식량자원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점이 다가옴으로써 환경은 물론이고 인간자체도 위기에 빠졌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1.기회주의적 어업과 초기문명

 책은 제법 두꺼운데 절반 이상을 세계의 과거 문명들이 물고기 잡이를 했고, 물고기가 주요 식량이자 급여로서 문명을 지탱했다는 주장을 하는데 할애한다. 인류의 초기 식량획득 방법은 수렵, 채집, 어로인데 이중 어로만이 아직까지 유의미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어로방법은 현대 문명의 이기에 따라 많이 현대화했지만 놀랍게도 초기의 여러 방법이 원시적 형태로 그대로 남아있다.(낚시나, 그물이 그렇다)

 인류는 초기 고기잡이는 기회주의적이다. 이는 큰 목표를 갖고 대량으로 잡아들이기보다는 강의 범람 후 말라가는 웅덩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녀석들을 잡거나 산란기에 강에 들끓을때 손쉽게 잡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초기 인류 문명은 고기잡이에 많이 의지했는데 물고기는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고, 샤냥이나 채집에 비해 어획량이 어느정도 예측가능해 안정성을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개 같은 연체류는 더욱 그런 성질이 강했는데 그래서 고대 인류 정착지엔 그토록 많은 조개무지가 남아있다. 물고기가 식량의 하나로서가 아니라 주요 식량원으로 자리잡은 사회도 제법 있었는데 농경이 부족합한 북유럽사회나 앤초비에 의지한 페루지역 등 여러 곳이다. 물고기 잡이는 방하기가 끝나가며 더욱 중요해졌는데 기온이 상승하고, 빙하가 감소하고 따라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대형동물이 감소 및 멸종했고, 어장은 오히려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초기 문명에 물고기 잡이는 단지 식량의 하나로써만 기여한 것이 아니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문명에서는 정착사회가 커지면서 중심지에 군사나, 인부등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먹여살릴 식량이 당연히 필요한데 물고기가 지급식량으로 이용된 것이다. 식량으로 지급되기 위해서는 쉽게 상하지 않고, 정량화되어 있으며, 운반가능해야만 하는데 물고기는 이를 모두 충족시킨다. 물고기를 잡아, 머리를 쳐내고, 반으로 갈라 내장과 등뼈를 제거하고 나비모양으로 말리면 되는데 이  말린 물고기가 가볍고, 상하지 않고 오래가며 운반이 쉽고 규격화되어 있어 지급식량으로써의 조건이 매우 훌륭했던 것이다.  

 또한 물고기는 문명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정착사회가 초기 국가로 발전하려면 체계적인 사회구조가 필요하다. 보통 농경이나 가축을 통해 식량이 충분히 생산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렇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진 않다. 오히려 수렵, 채집을 통해 사회가 체계화 된 상태에서 정착사회가 더 체계적으로 촉진되기도 한다. 어로사회도 마찬가지. 물고기가 사회 주식일 경우 사회는 상당한 분업체계를 갖게 된다. 대량으로 잡은 물고기는 빨리 부패하여 먹을 수 없게 되기에 빠른 해체 및 처리와 건조 및 염장처리 유통이 필요하다. 즉, 물고기를 잡는 집단과, 잡은 물고기를 즉시 몽둥이로 머리를 쳐서 죽인 후 내장 및 머리와 뼈를 처리하는 집단, 처리한 물고기를 염장하거나 말리는 집단, 염장이나 말린 물고기를 다른 사회와 유통 및 교역하는 집단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을 진두지휘하는 리더도 마땅히 필요했을 것이나 물고기를 대량으로 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상당히 체계적이었을 것이고 이런 사회가 곡물이나 가축을 하게 되면서 초기문명 정착사회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게 저자의 설득력 있는 생각이다.  

 

2. 중세유럽과 물고기잡이

고대로마인들 역시 물고기를 많이 먹었다. 로마의 유명한 소스인 가룸은 생선소스로 물고기를 잡고 남은 피와 내장을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소스의 품질은 생선부위에 따라 달랐는데 참치를 쓴 경우가 최상, 잡어인 경우 하품이었다. 당시 기술이 열악해 해안가 사람이나 어부가 아니면 매우 고위층만 생물 생선을 즐길수 있었다. 로마의 귀족들은 자기 과시를 위해 저택내에 대규모 양어지를 만들어 손님에게 진귀한 생물생선을 대접하기도 했다. 이런 생선사람은 로마의 멸망후에도 이어진다.

 중세엔 물고기 수요가 폭증하는데 여기엔 종교가 한몫을 한다. 교회는 예수의 고통을 함께하고자 육식을 금하는 시기를 늘렸는데 이 기간엔 곡물과 과일 물고기를 먹는 것만이 허용되었다. 이 금식 기간이 제법 길었기에(일년의 40%에 달하기도 했따) 물고기 수요가 당연히 많아졌다. 또한 중세엔 온난기가 찾아오면서 식량생산이 늘어 인구가 폭증한다. 먹는 입이 늘어나니 물고기에 대한 수요도 많아졌고 도시가 성장하면서 식량수요가 더 늘어난 점도 한몫하게 된다. 이래저래 물고기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니 물고기를 잡는 사람도 많아질수 밖에 없었다. 민물고기 중 뱀장어를 많이 먹었는데 구하기가 무척 쉽고 높은 열로 훈제하면 딱딱한 막대기처럼 단단하게 변해 보관기관이 무척 길었기 때문이다. 보관과 이동이 어찌나 용이한지 지역화폐처럼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높은 수요로 연어나 철갑상어등 민물고기가 금방 동이났기에 사람들은 두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하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양식과 바다물고기 잡이다. 우선 양식이 시작되었다. 물레방아 기술이 발달하면서 내륙사람들은 특권층을 노려 양식을 시작했다. 14세기 중반엔 잉어가 대량으로 양식되었는데, 좁은 데서도 잘 살고, 더러운 물에 강하며 번식력이 뛰어난 잉어의 특성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잉어는 매우 비쌌는데 1kg당 소고기9kg 빵 12덩이의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잉어양식장은 기술의 발달로 바다물고기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자 사양세로 접어든다. 거기에 종교적 금식기가 느슨해지기 시작하고 잉어의 질퍽한 맛이 바다물고기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어 15세기 이후엔 프랑스에선 잉어양어장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주목받은 바다물고기는 청어였다. 청어는 수가 많고 북해에 무척 많았다. 하지만 기름이 많은 생선이었기에 잡은 후 빨리 부패하는 치명적 문제가 있었다. 특히, 북해는 바람이 춥고 습시가 많이 청어의 건조가 불가능해 염장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북해는 소금이 부족하고 질도 낮아 당연히 염장청어의 질도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보관기간도 2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13-14세기 들어 어부들이 청어의 대가리 뒷부분의 아가미를 제거한 후, 바로 그 부분에 소금을 뿌리는 염장방법을 터득하면서 상황이 개선된다. 소금이 피를 타고 내장부위까지 염장하게 되면서 보관기관이 크게 늘었던 것. 이후 통속절임법은 청어잡이를 산업의 길로 이끈다. 통속절임법은 내장을 제거한 청어를 목재의 큰통에 빈틈없이 채우고, 사이사이에 소금을 채우는 형태였다. 소금이 청어의 수분을 흡수하면 청어를 새소금물에 담아 염장했는데 보관기간이 무려 2년에 달했다. 소금한통으로 무려 117kg의 청어통 3개의 처리가 가능해 장거리 교역이 가능해졌고, 품질또한 상당히 균일했다. 통속절임 전반 해도 고기잡이가 주식인 지역을 제외하면 본업이라기보다는 농민들이 농한기에 부업으로 하는 수준이었는데 통속절임법 이후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이는 어업산업으로 본격 발전한다.

 하지만 청어가 산업화 되고 남획되면서 청어는 사양길로 접어든다. 또한 1520년경 소빙기가 찾아오자 찬물에 민감한 청어가 사라지게 된다. 이에 유럽인이 뒤늦게 주목한 생선은 대구였다. 대구는 자라면 큰 것은 무려 2m의 길이에 무게는 90kg대까지 나가는 거대한 생선이었다. 또한 살이 희고 단단하며 기름기가 적어 추운 북부에서도 쉽게 건조할수 있었고, 건조한 대구 역시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은 매우 쉽게 잡을 수 있고 개체수 역시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대구는 책 '대구'에도 나오듯 삼각무역을 가능케했다. 유럽인들은 북미의 뉴잉글랜드 어장에서 대구를 잡아들인 후, 상품의 대구는 유럽에 수출하고, 하품의 대구는 카리브해의 노예의 식량으로 팔아치웠다. 그리고 카리브해에서 번 돈으로 그 지역의 럼주와 설탕을 구매해 그것을 유럽에 팔고 그돈으로 남아프리카의 노예를 사서 북미에 판매하는 형태였다. 이처럼 대구는 세계사적 악명높은 삼각무역을 가능케했다. 북해의 대구 역시 금방 남획되고 유럽인들은 어장을 옮겨간다. 1412년엔 아이슬란드 수역이었고, 1497년엔 뉴펀들랜드 어장이었다. 대구 남획은 계속되어 18세기부터 그 영향이 가시화 된다.

 

3. 어업의 현대화와 어장 황폐화

대충 2차세계대전 이후 어업은 본격적으로 현대화의 길로 향한다. 여기엔 당연히 과학기술의 힘이 컸다. 먼저 증기어업선이 개발되었다. 증기어업선 이전까지 어업의 한계는 명확했는데 바람이 시속48km이상으로 부는 해역에선 위험으로 조업이 거의 없었고, 조업시간과 공간도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증기어업선은 거친 환경의 극복을 가능케했다. 수심400m이상의 바다에서도 조업이 가능했고 시간도 길어졌으며 어장도 넓어졌다. 물고기에게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디젤엔진의 개발은 이를 더욱 가속화한다. 석유가 석탄보다 부피가 적기에 내연기관인 디젤엔진의 어업선은 진출범위가 더욱 넓어져 대서양 전역이 어장이 되고 만다. 거기에 배가 커져 잡은 물고기를 바로 처리하고 냉동하거나 어분으로 만드는 배마져 등장한다. 물고기를 에워싼 다음 그물 아래쪽 테두리의 줄을 당겨 자루 모양으로 어획하는 건착망도 이때 등장한다. 오랜 역사의 저인망 어업도 디젤엔진의 강력한 힘으로 더욱 본격화한다.

 이처럼 기술의 발달로 어업에 본격화 하자 어장은 더욱 황폐화된다. 사람들은 바다는 넓고 물고기는 무한하다는 착각에 빠져있었으며 기존 어장이 황폐화 되면 새로운 어장을 찾아 황폐화 시키는 일을 계속해나갔다. 인간이 조업을 한 일이 거의 없는 남극어장의 경우 발견 후 겨우 15년만에 어획량이 80%감소했다. 또한 유럽인들이 처음 발견하고 대구 밭이라고 까지 생각했던 뉴펀들랜드의 어장의 어획량은 1992년 전성기의 1%까지 추락해 폐쇠되고 만다. 2차대전후 전세계적으로물고기를 대량으로 잡아들인 나라는 일본이며,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인구를 지닌 아시아의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다른 해역의 어획에 나서게 된다. 이에 1970년대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해안선에서 200해리를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선포해 자국의 어업자원 보호에 나서게 된다.

 현재의 바다는 매우 참혹한 상황으로 해양 여기저기에 무차별적으로 그물이 처져 있으며 저인망 어업은 계속되고 있다. 길이 100km에 3만개의 낚시바늘이 달린 지옥의 주낙도 있다고 한다. 어획이 줄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저인망어업과 남획을 계속하는 악순환은 어획의 극적 감소를 낳아 1996년 8600만 톤으로 정점을 찍었던 어획량은 2010년 7100만톤으로 줄어들고 회복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재미로 하는 낚시도 문제다 산업적 어업은 어획량의 급적 감소후 점차 사양세로 접어들고 있으나 취미 낚시는 그렇지 않다. 생업을 위한 개발도상국들의 가내 어업이나 취미 낚시는 어획량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산업적 어업만큼은 아니지만 신경써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취미 낚시는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난데 인구만 세계적으로 무려 6000만에 달하고 연간 4000억 달러의 수익과 100만개의 일자리가 이와 관련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어획의 감소에 인간이 찾은 해결책 중 하나는 양식이다. 2014년엔 처음으로 양식의 비중이 자연산 어획의 비중을 넘어설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인간은 먹기만 했지 물고기의 생태에 무지한 편이라 양식은 아직 상당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편이다. 다른 해결책은 어장관리를 통한 회복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이 주요 어장을 중심으로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참혹한 남획으로 어장을 잃은 유럽 각국은 20세기 후반부터 어장 관리에 들어가 어느정도 어획량의 회복을 보이고 있다. 실제 아시아의 어려나라들은 인구가 많은 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지만 물고기 소비량의 상당부분을 양식에 의존하는 반면 유럽은 양식비중이 18%에 불과하다.

 또한 기후변화라는 위가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각 수역의 온도와 산도가 급변하고 있는데 물고기는 물속에 사는 만큼 산도와 온도에 무척 민감하다. 어장에 닥치고 있고 닥칠 또 다른 위기 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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