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자라면 자신이 한때 '개'만도 못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건 비유적 표현이 아니고 정말로 '개'보다도 못한 경우인데, 우선 대우에서 그러하며(군견유지비가 일반 사병보다 더 많이 든다), 군사상 우선순위(넘쳐나는 60만 일반 사병보다 몇백마리에 불과한 군견이 더 회소하다)에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일반 병사는 항상 비인격적으로 취급받고 소모품에 불과하단 생각을 많이 하게되는데 일단 받는 급여가 말이 안되는 수준이고, 온갖 자유를 박탈한채 수용소에 가둬두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급여가 월100만원 이상으로 정상화되고 그걸 바탕으로 자유롭게 부대가 어디든 퇴근도 가능하고 휴대폰 사용도 가능해진다면 군내 인권문제는 단박해 해결되리라고 보는 편이다. 지금의 열악한 인권은 병사 하나에 대한  유지비용이 너무 적게 들고, 가둬놓고, 그것이 외부에 나가는게 막히고, 자기들끼리 가둬두어 일어나는 일이 대부분이다.

 평소가 이러할진데 전쟁이 난다면 어떠할까? 20세기 초반이라 아직 인권에 대한 개념이 정착하지 못하고, 귀족사회의 잔재가 남아있던 시기에 1차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작년에 본 '낙엽이 지기전에'잘 나타나 있는 듯 각국 수뇌부와 군지휘관들은 큰 착각에 빠져있었는데, 설마 전쟁이 날까? 라는 점이고, 우리가 총동원령을 내리면 그들도 감히 겁을 먹고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나면 늦봄이 시작해 적어도 가을전에는 전격적으로 끝낼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었다.

 이런 1차세계대전을 평범하게 소모되는 프랑스의 남자들의 시각에서 풀어낸게 이번에 본 책인 '1차세계대전'과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이다.

 

 전쟁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갑작스레 붙은 총동원령을 보게 된다. 얼마전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으로 외교관계가 뒤숭숭하다건 알았지만 총동원령이라니. 남자들에겐 사형선고나 마찬기지인 총동원령에 몇몇 사람들은 처음엔 당황하지만 곧 애국심이라는 광기에 휩싸여 자발적으로 대부분이 전쟁터로 향한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지휘관들은 이미 개발된 전쟁기술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을 너무나도 몰랐다. 기관총이 이미 도입되었음에도 질서정연하게 열과 오를 맞춰가며 적에게 다가가는가 하면 시대착오적이게도 창기병대도 남아있었다. 이들 모두는 기관총과 철조망의 밥이었다. 프랑스 군은 독일보다 더 어이가 없었는데 그들의 밝은 푸르른 군복은 보기에만 멋졌지 눈에 매우 잘 띄었으며 처음에는 철모조차 없었다. 게다가 프랑스인들은 참호짓는 것도 무첫이나 서툴러 형편없는 참호를 구축했지만 독일 녀석들은 민족성처럼 나무기둥을 활용해 참호를 매우 멋지게 구축했다. 물론 그렇다고 참호안에서의 지옥같은 상황에 큰 차이가 있진 않았을 것이다.

 병사들은 헌병을 증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멍청한 지휘관과 무책임한 장교가 호루라기를 불며 기관총 앞으로 돌격명령을 내렸을 때 죽을 것을 알면서도 뛰지 않는 자국 병사들을 쏜게 헌병대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녀석들은 뛰는 속도가 느려도 쏘았으며 어쩌다 운좋게 살아남아 낙오상태에서 발견되어도 자국병사를 여러 혐의를 씌워 죽였기 때문이다.

 아군이 평소와는 다르게 심하게 적진을 향해서 포격을 하거나 사기를 올려주는 군수품이라도 나오면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이것은 기관총으로의 돌격 전신호이기 때문이었다.

 양쪽은 조금 도 전진하지 못한채 참호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며 양 참호의 사이에는 무인지대가 형성된다. 무인지대는 죽음의 공간으로 철조망이 쳐져있고, 돌격해서 죽은 병사들과 말이 썩고 있는 곳이었다. 간혹 무인지대에 죽어있는 우리 병사가 잘보여 사기라도 떨어지는 판국에는 멍청하고 무책임한 장교가 누군가를 내보내 그 시신을 수거하게 한다. 당연히 또하나의 시신을 만드는 일이었다.

 참호안은 무척이나 추웠고, 쥐가 끌었으며 시체들이 많았다. 한 병사는 밤새 추위에 떨며 손을 진흑에 파묻었는데 깨어나보니 아군의 내장에 손을 묻고 있었고, 그로인해 감염으로 인한 괴저로 죽는다. 당시 의학기술이 미발달하여 항생제가 없어 병사들은 내장을 보는 상처를 입으면 곧 죽는것으로 받아들였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아군과 적군의 내장을 보며 병사들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내장을 그토록 보호하지 못하고 간신히 담아두고 있었다는데 경악한다.

 1차대전엔 식민지 병사도 동원된다.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베트남의 병사를 동원했고, 영국은 인도의 병사들을 데려왔다. 미국도 흑인 병사를 데려온다. 그런데 그들은 흑인에게 무기를 주진 않았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여서 베트남 병사들이 하는 일은 무덤을 파는 일이었는데 베트남 병사에겐 차별적이고 치욕적이면서도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죽을게 뻔하니 자해하는 일도 생긴다. 한 병사는 다리에 상처를 내 그것에 오염물질을 넣고 다음날 군의관에 찾아간다. 그는 다행히 다리 하나를 잃고 후방으로 후송된다. 파리엔 남자라곤 없을 줄 알았는데 돈많고 힘있는 집 자식놈들은 당당히 후방에서 편안히 있었다. 한 병사는 친구가 후송에 성공한 오염물질을 너무 과감한 나머지 배주위에 넣었다고 괴사가 빠르게 진행되어 죽고만다.

 전장으로 동원되는 신병들은 날이 갈수록 어려진다. 신병들은 대개 오자마자 죽는데 대개의 경우였고 저주스럽게도 그녀석들이 가장 처음 하는일은 탈영병이나 약간의 의심이라도 받는 자국 병사를 처형하는 것이었다. 처형시에는 12발의 총을 쏘았는데 왜 인지는 모르겠다.

 죽음의 전쟁은 결국 끝이나고 천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았다. 병기의 발달은 눈이 부셨고, 사람들은 죽어갔다. 5백만 이상이 부상을 당했는데 대개 팔이나 다리를 잃기도 했으며 얼굴 부상을 당한사람도 적지않았다. 워낙 답답한 참호안이었으니 담배를 피거나 고개를 살짝 들다가 적 저격병에 머리를 당한 것이다. 대개 죽었지만 살아남은 이들의 부상을 흉측하기 이를때 없었다. 임란당시 왜군들이 조선인의 코와 귀를 전공으로 바치기 위해 산 백성의 코와 귀를 베는 일이 허다했는데 당시의 우리 모습과 프랑스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크타르디는 이처럼 전쟁의 참상을 잘 묘사했다. 타르디는 어렸을 적부터 1차대전에 참전한 할아버지가 이런 끔찍한 일을 겪고도 전쟁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은 것이 무척 궁금했었다고 한다. 우린 할아버지들이 전쟁에 대한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착각하지만 사실 할아버지들은 전쟁에 대해서 영원히 잊고 싶었던게 답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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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27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개만도 못 함은 군대뿐 아니라 사회, 직장에도 있습니다. ㅠㅠ 언제 우리가 개 같은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ㅠ
의도치 않게 비유가 된 개 님에게 죄송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