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女哀辭  행려애사  
                                              ㅡ조식

 

             伊上帝之降命, 何修短之難裁
             이것이 정녕 하늘의 뜻이련가
             이토록 짧은 만남을 짐작이나 했더란 말인가

 
            感前哀之未闋, 復新殃之重來
            슬픔은 미처 깨닫기도 전에 
            큰 재앙으로 닥쳐오는구나


            方朝華而晩敷, 比晨露而先晞.
            무궁화는 이른 아침에 피어 늦은 저녁이면 지고
            새벽 이슬은 볕에 스르르 사라져 버린다

 
            天蓋高而無階, 懷此恨其誰訴
            하늘은 높고 오를 길은 따로이 없으니
           이 가슴의 한을 그 누구에게 하소연 하랴




 있어서는 안될 이태원 참사, 그 희생자들을 깊이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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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가르침은 모두 강(强)의 진정한 의미이다. 사람들은 남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고 여기는 듯 하다. 그러나 노자의 말을 들어보면 강(强)함이란 결코 남을 이기는 힘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것을 지혜라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고 한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남을 이기는 것을 힘이 있다라고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진정 강한 것이라 한다. ​

 

 

 

 

노자는 남을 이기는 힘을 유력(有力)이라고 했다. 남을 이기는 행위가 강함의 의미가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화는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는다. 선수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수술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다. 그러나 다음 올림픽은 자신의 안마당인 평창이었다. 이상화만큼 성적을 내줄 대안의 선수도 마땅히 없다. 다시 4년을 감내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승이 무엇인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고다이라는 32세이다. 만으로 그러하니 우리 나이로 치면 선수로서는 할머니나 다름이 없는 나이이다. 운동 선수의 생명은 매우 짧다. 김연아 선수가 화려하게 은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라는.

 

반면, 빙상에 미련이 많았던 아사다는 은퇴를 미루었다. 결국, 선수 생명기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박수 타임을 놓쳐버렸다. 일본인들은 아사다의 멘탈이 약하다고들 했다. 그러나 이는 뭘 모르고하는 소리이다. 그들이 말하는 멘탈은 누군가를 이기려할 때 필요한 것이지, 극기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 말이다. 아사다는 남을 이기려고만 했지 자신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부족했던 것이다. 위 사실들은 자승이 유력보다 훨씬 더 고도의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하겠다.

 

고다이라의 우승비결은 노력, 즉 자승에 있다. 고다이라가 늦은 전성기를 맞이했다고들 한다. 늦은 전성기란 없다. 오로지 그녀에게 자승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상화, 고다이라. 그들은 자승의 과정이 그 얼마나 외롭고 혹독한 것인지를 잘 안다. 고다이라가 이상화에게 다가와, 잘했어, 라고 말해준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고다이라가 자기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가 있다.

 

대통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승을 이룬 진정한 강자에게 축전을 보낸 것이다. 사실, 은메달 선수에게 축전을 보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대통령의 진의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력함은 진정한 강함이 아니다, 이상화가 보여준 저 극기의 자승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다, 라고 말이다.

 

이리하여 이상화, 고다이라는 어느 시골 농부의 아낙인 불래기마저 알고싶어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났다.

 

우리는 유력만이 강함이라고 믿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부모든 선생이든 남을 이겨 그를 넘어서라고 독려한다. 우리는 그렇게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유력에 욕심을 가지면 당당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판커신은 유력함이 강함일 줄로 착각한 나머지 발을 써야하는 경기에서 손을 쓴다. 일명 나쁜 손이다. 결과는 늘 비슷하다. 패널티이다. 그는 패널티인 줄 알면서 왜 자꾸만 손을 쓰는 것일까. 유력함을 강함으로 착각한 나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혹여 심판이 알아채지 못하면 승리는 거두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상대가 알고 있으며 하늘(대중)이 알게되지 않을 수 없다. 그 금메달이 어찌 당당한 것이 되겠는가.

 

팀추월의 어느 선수는 노자에 의하면 유력한 선수이다. 남을 이길 줄 아는 선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뒤처진 동료를 버려두고 왔다. 그녀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자신이 버리고 온 것은 동료 선수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선수 생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깨닫는 순간, 이미 자신의 선수 생명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있었다.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려보았지만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유력함을 강함으로 오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로가 대략 이러하다.

 

이상화, 고다이라는 남을 이기려고 자신과 싸운 것이 아니다.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한 결과남을 이기게 된 것이다. 이 일을 널리 알리려 한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었다. 국민은 이 깊은 뜻을 알아주기만 하면 된다.

 

도덕경을 흔히들 제왕학이라 한다. 진정한 제왕은 남을 이기는 자가 아니다. 스스로를 이기는 자, 그리하여 자신을 제왕으로 인정해주는 타자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제왕이 되는 자인 것이다. 운동 선수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의 누구이든 도덕경을 제대로 읽을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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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 흰 건반 검은 시 활자에 잠긴 시
박시하 지음, 김현정 그림 / 알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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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게시 글이 많이 늦어진 점에 출판사와 관계자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일을 지키는 것이 제가 할 일이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했습니다. 이점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지만 말이다. ㅠ.ㅠ. 다시 한 번 더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쇼팽은 죽음에 임박할 때까지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을 거부했다. 한마디로 세례식을 거부했던 것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서야 그는 신부님을 모셔달라는 부탁을 한다. 신의 은총이 없는 죽음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세례를 받은 후 그는 숨을 거두면서 한마디를 내 뱉는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가 돼지처럼 죽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라고 쇼팽은 말했다. 선생님의 피아노를 들려드릴까요? 주변인들이 죽음의 경계에서 서성이며 혼미한 정신의 쇼팽에게 물었다. 아닐세, 쇼팽은 대답했다, 모차르트 레퀴엠을 들려주시게나... 그렇게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쇼팽을 추억하며 서평단에 신청한 이유는 단 하나, 필자는 쇼팽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였다. 바꾸어 말하면 시.인.인 필자가 느끼는 쇼팽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함이었다. 쇼팽은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고 없고를 이미 떠나버린 인물이지 싶다. 그토록 널리 알려진 쇼팽이지만 그의 음악을 통하지 않는 다면 쇼팽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부인할 방법이 없다. 

박시하의 이 책은 그리하여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먼저 들으면서 시작하게 한다. 음악을 들음으로서 같은 시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독서, 남다른 특징을  가진 독서라고나 할까... 읽을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결코 속도를 낼 수 없다. 이 책에 관한한 속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필자의 한 줄 한 줄이 바로 시어들이기 때문이다.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박시하의 언어들을 공감할 수 있다면 그 속도는 안단테 안단테, 아니 렌토, 아다지오, 안단테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물론 때로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한동안 쳐다봐야 할 때도 있다.  한 줄 한 줄 읽어가며 거쳐야할 곳이 많다. 우선 박시하는 독자에게 쇼팽을 초대한다. 한마디로 독자는 바로 쇼팽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박시하라는 작가의 프리즘으로 쇼팽을 마주하는 것이다. 하여 작가와 그의 시, 쇼팽과 그의 곡을 동시에 만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쇼팽을 관통해버린 박시하의  감성 프리즘이 비추어주는 쇼팽의 삶을 독자가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 인 것이다. 이는 삼자의 대면 같지만 어떻게 보면 작곡가와 그의 음악, 시인과 그의 시어들, 그리고 독자의 감성과 그 해석법이 어우러지는, 6자 대면이면서 서로 하나로 관통한다. 결코 단순하지 않는 하나의 장을 만나는 행위이다. 서로가 자신의 매체로 소통을 시도하는 장 말이다. 이렇게 주절대는 것은 박시하가 안내하는 쇼팽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이 책을 읽었을 때 오는 감동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느끼는 바를 글로는 결코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것. 그렇게 공감하며 읽어가다가는 어느 순간,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니다, 전혀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낮선 모습의 나 자신일 것이다. 나의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듯 하지만 늘 함께하고 있으며 감각하고 인지하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박시하의 가이드가 완벽하게 나를 지배했구나 싶은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박시하는 독자를 지배하려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함께 어우러져 감동하는 바로 그 모습을 바램하고 있는 것이다. 쇼팽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쇼팽을 들어보고 싶게하는 책이다.  서평단의 이벤트에 참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신간인지라 후기를 접할 기회가 없어 출판사가 사전에 제공하는 정보가 유일하는 점, 선택을 앞둔 독자에게는 단점이다. 신간이라도 과거 같으면 책방에 들러 살펴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대대분의 책들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형편이니 편리함을 담보로 후회라는 대가를 치룰 각오는 필수이다. 서평단 이벤트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선 결정 후 대가라는 공식의 성립 가능성이 늘 뒤따른다. 이 경우 일독해야하는 부담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손에 쥐고 있는 책을 내려 놓아야하니 말이다. 이 책은 나의 책장에 오래도록 한 자리를 차지할 할 것이다. 쇼팽이 있기에 백건우가 존재하듯, 쇼팽이 있고 시인 박시하의 언어들이 은빛 물고기들의 지느러미가 번득이듯 살아 있다.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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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6 0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 교양철학 시간이었다. 담당 교수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술을 마신다 - 술 마시는 동물도 있다던 걸?

울고 웃는다 - 나는 소가 울음을 우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기르는 개(dog)가 웃더라고 하던데?

등등 당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대답으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교수는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 인간은 넥타이를 맨다는 점이 동물과 다르다, 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교수가 의미하는 구별 매개로서의 넥타이는 매우 상징적이며 다양한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구별 조건이 될 수 있다. (넥타이만 매면 뭣하나,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허다한걸,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ㅠ.ㅠ.) 어째거나 당시 나는 하나의 구별 조건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지속적인 생각을 해왔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최근 움베르토 에코의 부고를 접했다. 소식은 안타깝기 도하고 지구상의 귀한 보물을 잃었구나 싶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에코는 나에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존재임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준 한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에코는 최고의 기호학자이다. 아니, 기호 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호학에 대한 한계를 절감한 인물이었다. 하나 마나한 말이지만 그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스스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또한 널리 알려졌듯이 중세에 관한한 그야말로 〈미로의 도서관〉만큼이나 많은 자료를 지니고 있었던 그였다. 박사학위는 토마스 아귀나스를 주제로 할 만큼 중세에 애정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기호학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해야했고 결국 그는 선언해버렸다, “기호학 이론으로 말 할 수 없는 것은 소설로 써라!” 이 선언은 어찌 보면 자신의 학문에서 딜레마에 봉착했다는 고백적 선언과 다름없는 대 사건이었다.

 

 

에코는 소설이라는 매개물을 돌파구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선언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듯이 걸출한 물건을 하나 내놓는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장미의 이름>이다. 자신의 선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소설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기호학을 대중에게 선물한 것이다. 아, 에코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점에 있다. 그리고 소설이 그 매개였다니...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돌파구가 아니었을까...

 

 

에코가 <장미의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미로의 도서관을 가진 존재이다. 이 도서관은 평범한 도서관이 아니다. “들어가려는 자에게는 넓지만 나오려는 자에게는 한 없이 좁습니다.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오는 것은 장담하지 못합니다.” 이런 도서관 말이다.

 

에코가 내게 던져준 또 하나의 구별 조건은 바로 종교였다. 인간만이 종교를 가진다는 사실. 도서관지기 호르헤의 신념은 종교에서 비롯한다.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 말이다. 그것이 비록 사람을 해치는 일일지라도…….

호르헤 수도사를 통해 인간의 강력한 자아는 그것이 종교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결코 바르지 않을 수 있음을 에코는 보여주고 있다.

 

 

<금강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의 고와 집은 금강석만큼이나 단단한 것이라고 말이다...이것이 바로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인 것이다.

 

아, 장미의 이름 속 도서관을 언급하다보니 도서관지기 호르헤를 피해갈 수가 없다. 이 대목에서 에코가 그 얼마나 베껴오기의 대가였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알라딘 검색창에서 <호르헤>를 입력하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발견하게 된다. 알라딘에 그의 이름으로 검색되는 도서가 한 두 권이 아니다. 그 중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책이 있다. 에코는 바벨의 도서관을 참고하여 미로의 도서관을 설계했다. 나아가 수도사 호르헤라는 등장인물은 아니나 다를까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자용한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믿어도 좋을까? 믿어도 좋다. 작가 호르헤의 눈도 점점 어두워지다가는 결곡 앞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수도사 호르헤도 앞을 볼 수 없는 인물 아니던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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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 흰 건반 검은 시』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 ‘활자에잠긴시’

그 첫 번째 이야기 쇼팽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박시하

 

 

▶ 책소개

 

첫 선을 보이는 ‘활자에잠긴시’

시로 쓴 산문.

한 번쯤 시로 쓰고 싶은 산문.

쇼팽, 켄 로치, 올리버 색스!

시인이 평소 동경하는 예술가와 만납니다.

당신의 ‘활자에잠긴시’를 들려주세요.

 

올겨울, 첫 선을 보이는 알마 ‘활자에잠긴시’는 시와 그림으로 쓴 에세이로 알마 출판사가 오랜 준비 끝에 선보이는 산문 시리즈다. 저자인 시인이 평소 동경하고, 많은 영향을 주는 예술가와 일대일로 만나서 서로 경계를 두지 않고 소통한다. 때로는 편지를 주고받고, 서로의 관심을 나누고, 무심한 듯 응시하기도 하며 각자의 가슴 속에 담긴 이야기를 시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자유롭게 풀어간다.

 

박시하,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활자에잠긴시’의 첫 번째 이야기는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이자 최근 쇼팽 스페셜 리스트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임동혁을 통해서 더욱 유명해진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다. 감각적인 문체로 삶의 소소한 기적을 발견하는 시인 박시하가 쇼팽을 만났다.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은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인 ‘활자에잠긴시’ 시리즈의 첫 문을 여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에서 시인 박시하는 평소 쇼팽과 그의 음악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각각 ‘만남’, ‘사랑’, ‘이별’, ‘대화’라는 테마 아래서 ‘발견’, ‘불일치’, ‘망각’ 등의 다양한 사유로 기록한다. 저자는 평소 쇼팽을 만나는 삶을 통해서 독자에게 쇼팽의 음악이 가진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쇼팽이라는 우주가 가진 빛나는 감정들, 쇼팽과 저자 사이에 오가는 비밀들을 독자에게만 은밀히 보여준다. 







 

 

이벤트 참여하기 

1. 기간 : 2016년 12월 18일 ~2016년 12월 25일

2. 당첨자 발표 : 2016년 12월 26일 

3. 모집인원 : 20

4. 참여방법

필수) 이벤트 페이지를 SNS(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스크랩하세요.

-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5. 당첨되신 분은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네이버도서'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미서평시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이벤트 기간은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인간의 영역 밖, 쇼팽

쇼팽은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음악으로서만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이야기한 사람이다. 그는 15세 때 처녀작 ≪론도 작품 1≫을 내놓았고, 18세 때 베를린을 방문해 유럽 음악계를 견문했다. 특히 유럽 음악의 중심지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독주회를 열었을 때 슈만은 그를 이르러 “여기 천재가 나타났다”며 청중들에게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라고 말한 바 있다. 쇼팽은 음악에 몸과 영혼을 다 바쳤다. 그의 삶은 아픔으로 얼룩졌지만, 그의 음악은 완벽하다. 완벽. 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불가능한 단어인가! 저자는 불가능함에 이른 쇼팽의 음악을 가리켜 “노래가 되었고, 시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쇼팽이 살았던 삶, 슬픔과 고통, 환희와 기쁨을 통해서 저자는 그의 음악을 조금 더 잘 느낄 수 있으며 음악을 통해서 쇼팽 특유의 우유부단하고 서글펐던 몇 번의 사랑을 천천히 추적해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만남, 사랑, 이별, 대화

저자는 음악이 곧 만남이고 대화이며 동시에 사랑과 이별을 동반한다고 담담하게 읊조린다. ‘만남’, ‘사랑’, ‘이별’, ‘대화’로 이루어진 이 길지 않은 이야기는 분명 쇼팽에 관한 산문이라는 점에서 다른 에세이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치 책 속의 책처럼, 산문이라는 형태 안에서 ‘쇼팽’과 ‘박시하’라는 예술가가 더욱 밀접하게 교류하는 이야기다. 그것이 여느 산문집과 다른 신선함으로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저자가 하는 이야기는 때론 쇼팽과 무관해서 쇼팽이 한 번쯤 “나를 기다리냐”고 되물으며 책 밖으로 차가운 손을 내밀기도 한다. 경계 너머,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 ‘활자에잠긴시’ 그 첫 번째 이야기 손님 쇼팽.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손님 박시하. 이 둘의 활동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책이라는 테이블에서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만나고, 응시하고, 사랑하며 때로는 이별하는 먹먹함을 동시에 선사할 것이다.

 

피아노의 시인과 기적의 시인이 만나다

작가는 ‘음악성 그 자체로 이미 시’인 쇼팽의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쇼팽, 그의 음악은 단순히 드러나는 것이 아닌, 매우 조심스럽고 예민해서 마치 이 세계가 은밀히 품고 있는 비밀 같다. 작가는 시라는 것이 세계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점을 든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서 이 세계가 품은 비밀을 연주하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때론 쇼팽을 바라보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때론 쇼팽의 음악을 만나 삶을 확장시키는 주체로서 작가의 따뜻한 응시가 담겨 있는 이 작품은 지금 쇼팽을 기다리는 또 한 명의 독자와 만나려 하고 있다. 

    


 

지은이 박시하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편집디자이너로 일했다. 2008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았고 2012년 첫 시집 《눈사람의 사회》(문예중앙)와 2016년 두 번째 시집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문학동네)를 냈다. 산문집 《지하철 독서 여행자》(인물과사상사)를 냈으며 독립잡지 《더 멀리》의 디자인을 맡고 있다. 시와 산문을 계속 쓰고 있으며, 소설 읽기와 음악 듣기, 산책하기를 사랑한다. 성차, 성 정체성, 나이와 사회적 지위, 신체적 조건에 의해 발생하는 위계와 폭력을 반대한다.

 

그린이 김현정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덕성여자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평면조형을 전공했다. 2008년 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신진예술가 부문에 선정되었고, 기억 속의 장면이 현재와 만나는 지점을 포착하여 회화의 감각에 집중하는 그림을 그린다. 2009년 《always somewhere》, 2012년 《열망Desire》 등 지금까지 6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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