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초에는 리뷰를 쓰려고 했으나 사월이의 딱한 처지가 눈에 아른거려 페이퍼로 대신하게 되었음 ]]
제조업은 대수롭지 않다. 최고의 생산품은 꾸지 나무로 만든 몇 가지의 종이인데 이 중에서도 외관상 고급 피지 같은 기름종이는 매우 질기기 때문에 네 사람이 각 모퉁이를 잡고 들어올릴 수 있다. 이 밖에도 돗자리와 대나무 발이 있다. 예술품은 전무하다. [[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p. 29 ]]

[[[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부록 p. 439, 죄다 농수산물이다 뿐이다 ]]]
조선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은 장장 500년을 이어간 나라이다. 이 점을 높이 평가하는 사학자들이 많다. 사실 단일 국가 체제가 500년을 이어간 역사는 실제로 흔하지 않다. 시황제가 통일 후 세운 진나라는 겨우 15년 만에, 수나라는 4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중국 역사의 전설의 전설들을 만들어가며 나름 수명이 길었던 유방이 세운 한나라도 400년이었다. 이러한 사실들로 비추어볼때 500년 역사의 조선은 과연 대단한 나라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조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 대단한 나라 조선 최고의 생산품이 꾸지나무로 만든 종이라하지 않는가. 이 한 줄의 글은 조선의 제도와 정치, 관료들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성이 매우 큰, 부인할 수 없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조선의 백성들은 그 어느 나라의 백성들보다 더 훌륭했다. 또한 조선의 백성들은 그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애국심은 말할 것도 없다. 조선 백성들의 애국심 지수는 그 어느 나라 국민들의 애국심 지수보다 더 높을 것이다. 백성 지수만 놓고 본다면 단연 세계 으뜸이 조선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백성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다양한 공로가 지대함에도 말이다. 불구하고 전란이 일어나면 조선의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농기구를 들고 나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졌다.
이토록 조선의 백성지수는 드높았으나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가 지수는 백성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조선의 관리들과 제도, 정치등은 너무나도 표리가 부동하여 그 백성들을 품지 못했다. 조선의 정치는 백성들의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조선은 백성들의 재능을 활용하여 국익을 증진시키기를 거부했다. 그 못된 고정관념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문학도, 예체능 학도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의 앞 길을 막아서게 했다. 그 길로 갔다가는 천대를 받다가 굶어 죽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과거부터 기득권이 천대했고 누락자들이 천대받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조선 백성들과 강산은 지극히 아름다웠으나 냥반들은 결코 그렇지가 못했다. 결국 사월이도 이런 나라에서는 더이상 못살겠다고 떠났는데 하필이면 왜국(倭國)으로 떠났다고들 한다.
조선의 지배층은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업이나 공업에 종사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글만 읽었다. 글을 읽는데 관심이 없는 냥반들은 그냥 놀았다. 그렇다고 상공업을 장려했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조선은 오로지 농사였고, 기술직을 천대했다. 예능 또한 천대했다. 그렇다고 또 농사꾼을 우대했냐하면 역시나 천대했다. 조선의 기득권은 한자를 읽는 자신들을 뺀 한자를 읽지 못하는 나머지 모두를 천대했다. 쉬운 말로 양천제였다. 조선에서 양인을 뺀 나머지는 불가촉천민이었다. 양인들 중 냥반들은 군역에서도 면제 대상이었다. 조선은 백성들의 재능을 억누르고 천시하였으며 그 재능으로 스스로를 빛낼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박탈했다.
조일전쟁을 혹자들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한다. 왜국은 조선이 천대해 온 조선의 도자기를 너무나도 사랑했고 우대했다. 억울하게 왜국으로 끌려갔던 조선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왜인들은 조선의 장인들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존경하며 극진히 대우했기 때문이다. 조선 출신 장인들은 조선에서는 평생 그런 우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왜인들의 존대를 받아본 조선의 장인들은 조선은 사람 살 곳이 못되는 지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후 '기유약조'를 통해 포로 송환을 시도했으나 대부분의 조선 백성들은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왜국으로 끌려간 조선 백성들을 데리러 갔던 조선 관리들은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다시 그 지옥으로 누가 되돌아가고 싶었겠는가. 조선의 냥반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조선과 냥반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저자는 냥반들을 대놓고 흡혈귀라고 칭했다. 이것이 조선의 역사적 사실이다.
전쟁이 끝나자 조선의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전국의 농지가 황폐된 것도 그렇지만 농사를 지을 사람도 모자랐다. 임진란 이전 150 만결의 농지가 전후 30 만결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 조선은 후에 경신 대기근을 겪어야 했다. 조선의 백성 100여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켰다. 이런 이유 또한 자명했다. 임진왜란을 치루고도 기득권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전후 조선에 긍정적 변화가 찾아왔다고 주장하는 역사 학자들은 모두 노론출신 역사 학자들이다.
조선의 냥반들은 냥반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힘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득권에 위협이 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이 바로 백성들의 재능을 천대하는 것이다. 재능을 가지고 있어봐야 소용없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재능이 출중했던 천민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저주하며 살았다. 그리하여 기득권은 더욱 탄탄해진다.
'나는 땅을 경작하는 이들이 최종적인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거의 지겹게 반복했다. 농사꾼들은 다른 어떤 계층보다 열심히 일하고, 토지의 생산성과 다소 원시적이지만 토양과 기후에 매우 잘 적응된 그들만의 기술들을 쉽게 배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수확에 대한 소유권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하는 데 만족하고, 더 좋은 집을 짓거나 훌륭한 옷을 입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방관과 양반들의 대출 강요와 수탈로 인해 경작지가 해마다 감소하는 농부들이 부지 기수로 있는데, 그들은 현재 겨우 하루 세 끼의 식사가 가능한 정도이다. 수탈당하는 것이 확실한 운명을 가진 계층이 최악의 무관심과 타성과 무기력의 늪으로 가라앉아야만 했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p.425 ]]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방법은 남의 것을 빼았거나 남에게 일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냥반이라는 타이틀이 붙기만 하면 대다수 관직이 없는 냥반들은 무위도식을 하는 것이 생활 방식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리하여 노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냥반들이 노동을 하지 않는 조선의 사회구조는 반드시 노비를 양산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은 1만명에 달하는 노비를 소유했다고 한다. 대군이 아닌 냥반 중에 홍길민은 소유 노비의 수가 1,000 명에 달했다고 한다. 상상도 못할 숫자가 아니던가. 퇴계 이황이 소유했던 노비의 수는 최소 367명이다. 이퇴계 소유의 토지는 일부 문헌에 의하면 36만 평이었다고 한다. 노비의 수와 재산의 규모로 세종의 아들들과 이퇴계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조선의 실상이 그랬다는 역사의 실례를 들고자 할 뿐이다.
조선 냥반들이 노비를 얼마나 사랑했냐하면 왕사남에 나오는 한명회는 사육신 유성원의 아내와 딸을 취했다. 그뿐이 아니다. 정인지는 사육신 박팽년의 아내를, 박종우는 사육신 성삼문의 아내와 딸을, 권언은 사육신 하위지의 아내와 딸을, 권반은 사육신 유응부의 아내를, 강맹겸은 사육신 이개의 아내를 취했다. 그 여인들을 노비나 첩으로 삼은 것이다. 양녕이 난을 일으킨 후 냥반들이 노비나 첩으로 데려간 여인들은 무려 173명, 그 중에는 성삼문의 동생인 성삼고의 1살된 딸도 포함되어 있다고 세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신숙주는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를 첩으로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하는데 진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조선 냥반들의 노비와 첩 사랑은 염치를 생각할것도 눈치를 볼것도 없이 강렬했다. 노비를 가지고 가져도 더 가지고 싶어했다. 실상은 그랬으면서 입으로는 혹은 글로는 안빈낙도를 찬미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율 배반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조선 냥반들은 녹봉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백성들로부터 약탈을 일삼았다. 관직에서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최대한 빼앗아놓으려 했다. 고리대와 방납제도는 대표적인 약탈과 착취의 수단이었다. 인징과 족징은 하룻밤 사이에 마을 하나를 사라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삼정의 문란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사회적 문제였다.
조선 사회는 왜 이지경이 되었을까?
조선의 기득권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부를 축적하는 정치를 했고, 왕들은 이를 방치했다. 아니, 동조했다. 종모법과 일천즉천제를 보면 국가가 동조했음을 잘 알수 있다. 조선의 냥반들이 자신들을 위해 정치를 한 결과였다. 모든 제도는 자신들의 이익에 촛점을 맞추었다.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싶은 제도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반대했다. 대동법을 시행하는데 그토록 긴 시간, 100년이 걸린 이유였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그러나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이 많았다. 남자들의 태도는 미묘하지만 사실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여자들은 비록 명목상으로는 은둔의 습관을 지켜 나가고 있었지만 조선의 가정에서 그들의 특징이었던 비굴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국내에서만 자란 조선 사람들은 아내에 대한 의심과 독단, 노예 근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이곳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아시아적이라기보다는 영국적인 남자다움과 독립심으로 바뀌었다. 양반의 거만한 몸짓과 농부가 기운 없이 어슬렁대는 태도도 민첨한 행동으로 바뀐 것이 특징이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며 그들이 번 돈을 짜낼 양반 도, 관리도 그곳에는 없었으며, 안정과 재산은 더 이상 관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재산에 대한 불안감보다도 신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많은 농부들이 부유하다. 그들은 무역에 종사하면서 광범한 계약을 맺고 있었다.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주로 중국 국경 방향에 정착한 조선 사람들은 벌목과 운반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부 유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부락은 다소 불결했다.
조선에서 나는 그들이 열등 민족이었고 삶의 희망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프리모르스크에서 나는 나의 의견을 수정해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p.229 ]]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선 백성들의 모습인가!!! 냥반들의 착취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 보여준 조선 백성들의 빼어난 능력을 보며 저자가 감동하며 적은 글이다.
임금의 질문에 대한 사월이의 답을 들어보자.
[[ 조선은 그런 나라였다. 저자는 수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조선의 냥반들은 '흡혈귀'라고, 극중 광해의 대사대로 백성들에게 조선은 정말 족같은 나라였다 ]]]
잠시 삼천포이지만, 어린 궁녀 사월이는 영화 '광해'의 극 중 인물이다. 사월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아마도 巳月에 태어났을 것이다. 巳月생들은 본디 재주가 빼어나기 쉽상인데 극중 사월이는 그 마음이 아름다웠고 동시에 결기는 빼어났다.
사실 여성의 이름에 '월'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의 이름에 희, 화, 초, 매, 월 등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남성들의 이름에 화, 희등은 오히려 무방하다. 왕사남 전미도의 이름은 매화(梅花 혹은 梅華)이다. 매(梅)와 란(蘭)이 절의와 기개 그리고 충을 뜻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매'와 '란'이 그런 의미를 가질 때는 동양화나 글 에서이다. 이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지은 이름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왕사님 옥의 티는 '매화'라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의 이름이 '초희'였다. 개명을 했으면 하고 속으로 바라기만 했을 뿐, 끝내 말하지는 못했다. 에구, 소심하기는 ㅠ
이름에 대한 얘기를 하려던 것이 아닌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 각설하고.
조선의 냥반들은 타자가 냥반으로 진입하는 것을 가장 꺼려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냥반이 아닌 자들이 냥반으로 진입하는 길을 원천 차단했다.
종모법(從母法)을 법제화 했다. 이것도 모자랐던지 일천즉천제(一賤卽賤制)를 시행 했다. 냥반들에게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최고의 제도였다. 조선의 냥반들은 양인과 천민의 혼사를 강력 몰아붙였다. 노비의 수를 늘려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합법적 최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노비의 수는 점점 늘어났는데 어떤 학자들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리한 수치는 무조건 줄여 놓고 보는 관행에 따르면 50% 설은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이 책,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조선의 백성들의 삶이 지옥과 다름없는 삶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저자가 그런 의도로 쓴 책이 아님을 잘 알지만 오지의 오지, 더 오지로 도망가 관리들의 관심 밖에서 살아야 했던 수많은 조선 백성들의 삶이 안타깝고 또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현대의 대한민국도 과거의 조선처럼 국민들에게 입은 은덕이 너무나도 크다. 일제에 진 빚을 온 국민이 힘모아 함께 갚았고, 3.1운동으로 나라를 지켰으며, 전시에는 학생들마저 전선으로 나가 고지전을 치뤄냈고, 금을 모아 금융 위기에 대처했다. 그러나 정작 기득권들은 금 한 돈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 때는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파시즘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자 온 국민이 함께 이를 저지하여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이 얼마나 자랑스런 국민이던가.
현재의 젊은이들의 고통은 기득권들의 과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1인이다. 부동산의 가격을 너무나도 크게 올린 결과 그들은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피우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고통을 준다. 미래가 구만리인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없다. 내집 마련은 부모의 찬스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바뀌어야야 한다.
저자는 37장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여러 가지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 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로서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가망 없는 그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교육에 의해, 생산계층 보호에 의해, 부패한 관리들의 처벌에 의해,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무리된 일에 대해서만 댓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정부의 모든 공직의 업무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국가가 건립되어야 한다.' p.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