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가르침은 모두 강(强)의 진정한 의미이다. 사람들은 남을 이기는 것을 강이라고 여기는 듯 하다. 그러나 노자의 말을 들어보면 강(强)함이란 결코 남을 이기는 힘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것을 지혜라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고 한다.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남을 이기는 것을 힘이 있다라고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진정 강한 것이라 한다. ​

 

 

 

 

노자는 남을 이기는 힘을 유력(有力)이라고 했다. 남을 이기는 행위가 강함의 의미가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상화는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는다. 선수의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수술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했다. 그러나 다음 올림픽은 자신의 안마당인 평창이었다. 이상화만큼 성적을 내줄 대안의 선수도 마땅히 없다. 다시 4년을 감내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승이 무엇인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고다이라는 32세이다. 만으로 그러하니 우리 나이로 치면 선수로서는 할머니나 다름이 없는 나이이다. 운동 선수의 생명은 매우 짧다. 김연아 선수가 화려하게 은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라는.

 

반면, 빙상에 미련이 많았던 아사다는 은퇴를 미루었다. 결국, 선수 생명기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박수 타임을 놓쳐버렸다. 일본인들은 아사다의 멘탈이 약하다고들 했다. 그러나 이는 뭘 모르고하는 소리이다. 그들이 말하는 멘탈은 누군가를 이기려할 때 필요한 것이지, 극기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 말이다. 아사다는 남을 이기려고만 했지 자신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부족했던 것이다. 위 사실들은 자승이 유력보다 훨씬 더 고도의 단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하겠다.

 

고다이라의 우승비결은 노력, 즉 자승에 있다. 고다이라가 늦은 전성기를 맞이했다고들 한다. 늦은 전성기란 없다. 오로지 그녀에게 자승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상화, 고다이라. 그들은 자승의 과정이 그 얼마나 외롭고 혹독한 것인지를 잘 안다. 고다이라가 이상화에게 다가와, 잘했어, 라고 말해준 것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고다이라가 자기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수가 있다.

 

대통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승을 이룬 진정한 강자에게 축전을 보낸 것이다. 사실, 은메달 선수에게 축전을 보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대통령의 진의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력함은 진정한 강함이 아니다, 이상화가 보여준 저 극기의 자승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다, 라고 말이다.

 

이리하여 이상화, 고다이라는 어느 시골 농부의 아낙인 불래기마저 알고싶어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났다.

 

우리는 유력만이 강함이라고 믿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부모든 선생이든 남을 이겨 그를 넘어서라고 독려한다. 우리는 그렇게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유력에 욕심을 가지면 당당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판커신은 유력함이 강함일 줄로 착각한 나머지 발을 써야하는 경기에서 손을 쓴다. 일명 나쁜 손이다. 결과는 늘 비슷하다. 패널티이다. 그는 패널티인 줄 알면서 왜 자꾸만 손을 쓰는 것일까. 유력함을 강함으로 착각한 나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혹여 심판이 알아채지 못하면 승리는 거두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상대가 알고 있으며 하늘(대중)이 알게되지 않을 수 없다. 그 금메달이 어찌 당당한 것이 되겠는가.

 

팀추월의 어느 선수는 노자에 의하면 유력한 선수이다. 남을 이길 줄 아는 선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뒤처진 동료를 버려두고 왔다. 그녀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자신이 버리고 온 것은 동료 선수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선수 생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깨닫는 순간, 이미 자신의 선수 생명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러있었다.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려보았지만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유력함을 강함으로 오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로가 대략 이러하다.

 

이상화, 고다이라는 남을 이기려고 자신과 싸운 것이 아니다. 자신을 이기려고 노력한 결과남을 이기게 된 것이다. 이 일을 널리 알리려 한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었다. 국민은 이 깊은 뜻을 알아주기만 하면 된다.

 

도덕경을 흔히들 제왕학이라 한다. 진정한 제왕은 남을 이기는 자가 아니다. 스스로를 이기는 자, 그리하여 자신을 제왕으로 인정해주는 타자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제왕이 되는 자인 것이다. 운동 선수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의 누구이든 도덕경을 제대로 읽을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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