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양철학 시간이었다. 담당 교수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술을 마신다 - 술 마시는 동물도 있다던 걸?

울고 웃는다 - 나는 소가 울음을 우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기르는 개(dog)가 웃더라고 하던데?

등등 당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대답으로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교수는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 인간은 넥타이를 맨다는 점이 동물과 다르다, 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교수가 의미하는 구별 매개로서의 넥타이는 매우 상징적이며 다양한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구별 조건이 될 수 있다. (넥타이만 매면 뭣하나,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허다한걸,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ㅠ.ㅠ.) 어째거나 당시 나는 하나의 구별 조건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지속적인 생각을 해왔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최근 움베르토 에코의 부고를 접했다. 소식은 안타깝기 도하고 지구상의 귀한 보물을 잃었구나 싶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에코는 나에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존재임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준 한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에코는 최고의 기호학자이다. 아니, 기호 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호학에 대한 한계를 절감한 인물이었다. 하나 마나한 말이지만 그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스스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또한 널리 알려졌듯이 중세에 관한한 그야말로 〈미로의 도서관〉만큼이나 많은 자료를 지니고 있었던 그였다. 박사학위는 토마스 아귀나스를 주제로 할 만큼 중세에 애정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기호학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해야했고 결국 그는 선언해버렸다, “기호학 이론으로 말 할 수 없는 것은 소설로 써라!” 이 선언은 어찌 보면 자신의 학문에서 딜레마에 봉착했다는 고백적 선언과 다름없는 대 사건이었다.

 

 

에코는 소설이라는 매개물을 돌파구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선언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듯이 걸출한 물건을 하나 내놓는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장미의 이름>이다. 자신의 선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소설이라는 텍스트를 통해 자신의 기호학을 대중에게 선물한 것이다. 아, 에코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점에 있다. 그리고 소설이 그 매개였다니...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돌파구가 아니었을까...

 

 

에코가 <장미의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미로의 도서관을 가진 존재이다. 이 도서관은 평범한 도서관이 아니다. “들어가려는 자에게는 넓지만 나오려는 자에게는 한 없이 좁습니다.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오는 것은 장담하지 못합니다.” 이런 도서관 말이다.

 

에코가 내게 던져준 또 하나의 구별 조건은 바로 종교였다. 인간만이 종교를 가진다는 사실. 도서관지기 호르헤의 신념은 종교에서 비롯한다.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 말이다. 그것이 비록 사람을 해치는 일일지라도…….

호르헤 수도사를 통해 인간의 강력한 자아는 그것이 종교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도 결코 바르지 않을 수 있음을 에코는 보여주고 있다.

 

 

<금강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의 고와 집은 금강석만큼이나 단단한 것이라고 말이다...이것이 바로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인 것이다.

 

아, 장미의 이름 속 도서관을 언급하다보니 도서관지기 호르헤를 피해갈 수가 없다. 이 대목에서 에코가 그 얼마나 베껴오기의 대가였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알라딘 검색창에서 <호르헤>를 입력하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발견하게 된다. 알라딘에 그의 이름으로 검색되는 도서가 한 두 권이 아니다. 그 중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책이 있다. 에코는 바벨의 도서관을 참고하여 미로의 도서관을 설계했다. 나아가 수도사 호르헤라는 등장인물은 아니나 다를까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자용한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믿어도 좋을까? 믿어도 좋다. 작가 호르헤의 눈도 점점 어두워지다가는 결곡 앞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수도사 호르헤도 앞을 볼 수 없는 인물 아니던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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