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곡 '산노을'은 유경환(1936~2007) 선생의 詩에 박판길(1929~1998) 선생이 曲을 입혔다고 한다.
'산노을'은 가곡으로서는 보기 드문 4분의 5박을 특징으로 한다. 5박은 흔히 '강ㅡ약ㅡ약, 중강ㅡ약' 혹은 '강ㅡ약, 중강ㅡ약ㅡ약'의 셈여림을 쓴다. 셈여림을 3ㅡ2, 2ㅡ3 중 어느 것을 쓰든 첫 음은 강하게 들어간다. 그리하여 첫 소절 '먼~ 산을' 의 '먼'의 음을 강하게 시작했다.
4/4, 3/4 박은 대부분 익숙한 박자인데다가 부르기에도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노래방에서도 인기가 있는 박 일 것이다. 반면, 5박은 4박보다 리듬을 타기가 훨씬 까다로운 편이다. 불규칙한 강세, 2박과 3박의 결합으로 음에 경쾌한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불규칙함이 혼재하기에 긴장감이 필요한 음악을 작곡할 때 곧잘 4분의 5박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4분의 5박은 좀더 자유로운 현대음악에 더 적합하며 재즈, 영화음악, 뮤지컬에서 흔히 사용한다.
다시 말해 4분의 5박은 그 특성상 가곡에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인 것이 맞다. 그럼에도 박판길 선생은 우리 가곡 '산노을'에 5/4 박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5/4박의 특성을 살려내고 싶었는가 싶지만, 박판길 선생은 악보에 이렇게 썼다, "Lento melancoliamente, 느리고 우울하게" 라고. 하... 왠지, 무언가 앞뒤가 서로 잘 조합된 것 같지가 않다. 5/4 본연의 경쾌함을 지워낸 지시어이니 말이다.
글은 작가 맘대로 쓰는 것이 맞고, 작곡은 작곡가 맘대로 쓰는 것이 맞지만, 산노을의 경우는 마냥 쉽지가 않다. 본디 경쾌 스타일이자 재즈 풍의 박 에다가 서정성을 담아내서는 멜랑꼴리 삘을 표현하여 노래하라는 매우 복잡한 주문을 했으니 말이다. 가곡은 레가토(Legato 고ㆍ저음을 끊어지지 않고 유려하게 연결하는 보컬 사용법) 처리를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에 곡의 호흡 처리가 난해하다. 이리하여 '산노을'이 충분히 어려워졌다.
그런데 작곡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발 더 앞으로 나갔다. 음표들의 낙차 폭을 크게 썼다. 저음과 고음의 간극이 크다. 5/4 박 살림, 서정성과 멜랑꼴리, 레가토로 큰 낙차의 고저 넘나들기, '산노을'은 이렇게 3중고의 노래가 되어버렸다.
나아가 작곡가 박판길 선생은 가곡의 첫 마디를 놉게 잡았고 서서히 음표의 위치를 2 옥타브까지 끌어올렸다. 테너로 하여금 2옥타브 '파ㆍ 솔'의 마성을 시전하도록 곡을 쓴 것이다. 바로 아래 악보에 색칠한 부분이다.

[[[ 산노을의 가장 가장 높은 음이 있는 부분 ]]]
왔 던 봉 우 리 물 러 서 (고)
파 파 파 솔 파 미 파 미
이 곡을 부르는 테너는 'High C' 에 도달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2옥타브 '파'과 '솔'를 무리 없이 넘길 수 있을 것이다. High C는 남성 테너의 꼭대기가 다름 없는 높이다. '3옥타브 도 C5' 또는 '4옥타브 도 C6'의 음역대이니 말이다. 결국 '산노을'은 4중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이는 '산노을'의 감상 포인트가 4가지 이상은 된다는 말도 된다. 사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것은 성악을 전공하신 분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일 것 이지만, 일반인인 나로서는 너무나도 대단하게 보일 뿐 이다.
아주 많은 성악가 분들께서 이 멋진 곡 '산노을'을 아주 잘 불렀다. 유투브에서 무료로 이 곡을 듣는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많은 분들의 다양한 버전을 찾아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듣는 버전은 신영조 선생과 박세원 선생이 부른 버전이다. 이 노래의 어려운 요구 사항들을 아주 잘 수렴한 많은 곡들 중 2가지 버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토록 멋진 우리 가곡의 시대가 저물었다. 전언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음악 대학교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여 사장되가고 있다고 한다. 어쩐지 음반을 찾기가 어렵다. 원하는 음반을 얻으려면 중고를 구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우리 가곡을 정녕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마음이 몹시 아프다....
아~, 박판길 선생이여, 난해하지만 어찌 이리도 멋진 가곡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이 난해한 곡을 또 어찌 이리도 잘 부르신단 말입니까.
1943년생 신영조 선생은 지난 23년에
1949년생 박세원 선생은 지난 24년에
이토록 아름다운 레코딩을 남기고 세상을 등지셨다고 합니다.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PS ㅡ High D(3 옥타브 레 D5)는 여성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맞고, High E는 인간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현악기의 영역이며 돌고래의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싶다. (가공의 능력을 보여주는 소프라노가 있기는 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