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음표 기준 3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분들은 잠시 고민에 빠지곤 한다. 고민 끝에, 4분음표 기준 3박과 같다, 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8분음표는 4분음표와 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3박 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을 때, 분명하게 가르마를 타기가 애매하다. 마디 안에 3박을 넣은 데다가, 셈 여림도 강ㅡ약ㅡ약으로 같으니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4분음을 1박으로 한다면 8분음은 0.5박으로 보는 것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달리 말해 4분음표를 기준한 3박은 왈츠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듯이 8분의 3박 보다 약간 무겁고 두텁게 간다. 3박자를 모두 분명하게 짚고 가는 것이다. 반면 8분음표를 기준한 3박의 호흡은 가볍고 경쾌하게 간다. 속도가 약간 더 빠른 만큼, 음이 주는 느낌도 가뿐하고 경쾌한 것이다. 메트로놈을 시전하면 느낌 바로 오는데...
아래는 베르디 선생이 쓴 오페라 '리골레토 Rigoletto'의 한 장면으로 그 유명한 노래 '여자의 마음 La Donna è Mobile' 이다. 이는 강ㅡ약ㅡ약, 8분음표 기준 3박의 전형적인 노래이다. 악보를 보면 8분음표의 3박임이 한눈에 바로 들어온다. 고로 리듬을 타기도 쉬운 노래이다 (성악가가 아닌 것이 문제이지만 ㅠ). 경쾌하고 가벼우며 호흡도 짧다. 워낙 널리 알려진 곡인지라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라ㅡ돈ㅡ나에 모ㅡ비ㅡ레 / 꽐ㅡ피우ㅡ마알, 벤ㅡㅡ 또
시ㅡ간ㅡ좀 내 ㅡ주ㅡ오 / 갈ㅡ데ㅡ가, 있ㅡㅡ소
강ㅡ약ㅡ약 강ㅡ약ㅡ약 / 강ㅡ약ㅡ약, 강ㅡ약ㅡ약
템포가 경쾌 상쾌 가뿐 가뿐하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은 이 곡이 아니다.
오늘의 주인공 슈베르트의 곡, '그대는 나의 안식 Du Bist Die Ruh' 를 들어보면 얘기가 확 달라진다. 슈베르트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 Friedrich Rückert)의 시에 곡을 입혔는데, 이 곡을 솔로와 피아노 만을 위한 곡으로 썼다. 여기까지는 색다를 것이 없다. 8분음표를 기준한 3박의 곡이 분명하니 말이다.
색다른 점은 슈베르트가 명시한 지시어이다. 슈베르트는 8분의 3박을 사용한 곡에 더하여, 랑잠 (Langsam 느리게), 피아니씨모(Pianissimo = pp =앗주 부드럽게) 라고 지시어를 명시한 것이다. (8분의 3박을 잡아놓고서 이러시니... 하...어렵내...) 이리하여 노래는 전 ㅡ혀 다른 느낌을 준다.

슈베르트는 의도적으로 피아노의 선율을 앗주 평범하고 단조롭게 썼다. 피아노가 노래보다 더 튀는 상황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피아노는 레가티시모( Legatissimo 가장 부드럽게 음을 이어서) 로 가야한다. 반주는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조심 연주하되 음을 끊어지지 않게 연주하라는 얘기다. 반주자는 오른 쪽 페달을 잘 써야할것이다. 달튼 볼드윈(Dalton Baldwin)은 슈베르트의 이 지시어를 너무나도 잘 해냈다. 둘의 조합이라면 따질 것도 없다. 까딱 한끗만 튀어도 슈베르트 선생님께 야단 맞을 것 같지만, 사실 슈베르트 선생님은 성격상 아무 말씀 안하실 분이다.
이 두 가지(지시어와 단순 피아노 선율)의 효과가 가져오는 결과는 어떠한 것인가.
솔로에게 모든 책임을 죄다 넘겨버린 꼴이 되었다. 삑사리나면 솔로가 독박을 쓰는 구조인 것이다. 살금 살금 걷는 피아노가 삑사리 낼게 뭐가 있겠는가. 설사 피아노가 삑사리를 낸다 한들 청자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금거리는데 뭐...
슈베르트는 주변을 단순화시키고, 렌즈의 포커스를 노래에 맞추어 돗보이도록 한 것인데, 이것이 솔로에게는 되려 부담이다.
그리하여 노래를 부르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고, 솔로는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그대의 안식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완급 조절이 잘된 완벽한 호흡으로 곡을 리드해야 한다. 슈베르트는 솔로에게, '레가토(legato)를 처음부터 퍼펙트하게 해내라'고 지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호흡과 발음이 생명이다. 이 순간 작곡가 슈베르트 형님이 甲이 된다. 솔로 乙은 묵묵히 선생님의 지시어를 이행할 뿐.
이토록 대면하기 어려운 이 노래를 가장 만족스럽게 부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나로서는 단연 제라르 수제(Gerard Souzay)이다. 이 곡에 관한한 그 잘난 이안 보스트리지도 안된다. (테너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곡이지만 사실 이안보스트리지는 정말 잘 해냈다. 제라르 수제형님을 돗보이게 하려고 한 말이니 패쓰~! 물론 사적인 기준이므로 다양한 견해를 수렴합니다)
피셔 디스카우(Fischer Dieskau)도 정말 빼어난 레코딩을 남겼기에 이 곡의 전설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또 다른 바리톤 브린 터펠(Bryn Terfel)과 마티아스 괴르네(Matthias Goerne)가 아주 좋은 녹음을 남겼다. (이 노래에 관한한 여성 보컬들의 레코딩은 패스한다. 왜냐면, 정말 희안하게도 이 곡을 여성 보컬이 부르면 슈베르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맛이 안나요 아놔~ ㅠ)
제라르 수제(1918~2004)는 프랑스 태생의 바리톤이다. 프랑스 가곡의 스페셜리스트인 그는 프랑스 가곡에 관한한 제 1인자로 불린다. 누군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뭐 프랑스인이 프랑스 가곡을 잘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프랑스인이 미성의 유려함으로 슈베르트의 독일 리트를 정녕 아름답게 빛내고 있을 때가 놀라운 것이지 말입니다. 프랑스어 가곡의 목숨줄이 리듬과 뉘앙스에 있다면, 독일 리트의 목숨줄은 딕션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라르 수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퍼펙트하게 해낸 인물이다.
화려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절제된 발성, 지극히 세련된 독일어 강세 조절의 마술사가 표현해내는 딕션, 그의 리트 딕션은 독일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제라르 수제의 보컬은 심금을 파르르 울리는 마성과도 같다. 독일 리트를 이토록 격조있게 부른 외국인이 또 있을까. 동시대의 또 다른 독일 산맥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가 몇 살 위의 제라르 수제 형님이 부르는 리트를 최고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
슈베르트 형님이 제라르 수제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아니, 내곡이 이런 곡이란 말인가? 하며 전율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해도 가슴 저미어 시려 온다.
아...나의 경애하는 슈베르트여...!!!
Bryn Terfel도 이 멋진 노래의 레코딩을 남겼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