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골 깊은 곳에는 어린 삼형제가 있었다.

겨울이면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어 허연 코를 쥘쥘 흘리며 훌쩍이고,

생전 양치질은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조금 재밋는 일이라도 있을라치면

누런 옥수수 같은 이를 씩 드러내면서 실실 웃는 그런 깡 촌넘들있다.

하루 종일 동네 아이들과 바깥에서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팔려

피부는 햇빛에 검게 그을리다 못해, 아예 새까맣게 타버린 그런 형제들이었다.

 

그 중 승원이라는 아이는 막내로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치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한글도 모르고 그저 동네 친구들과 종일 놀다가

해가 뉘엇뉘엇하면 집을 돌아오곤 하는...

 

그 애는 일년에 딱 두번

큰형에게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땡깡을 있는대로 부린다.

큰형의 봄 소풍과 가을 소풍 때가 바로 그때이다.

 

그 땡깡은 다름이 아닌 학교에 다니는 큰형의소풍을

제 큰형과 같이가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승원이의 큰 형은

늘 함께 놀아주고

여름이면 함께 헤엄을 치러 데려가고

겨울이면 썰매와 스케이트를,

그리고 연을 직접 만들어 띄워주는 형이고

팽이도 깍아주며

쥐불놀이에도 데려간다.

 

그런 형이기에 승원이는

학교 소풍에도 자신을 데려갈 거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큰 형은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철없는 막내와

소풍에 동행하는 것은 다른 애들에게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들도 동생들을 하나 데려오지 않는 데

자기 혼자만 동생을 데려가는 것도 뻘쭘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큰형은 동생을 떼어 놓고 가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하여 이리 달래도 보고 저리 달래도 본다.

그러나 이 철딱서니라고는 반 푼어치도 없는 막내에게

먹힐 리가 없다.

막내의 엄마가 나서서 별소리를 다 해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

막무가내인 것이다.

땅 바닦을 떼굴데굴 구르면서 울고불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면서 

따라가겠노라고 기를 써댄다.

막내는 그렇게 해서라고 형의 허락을 받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 갈 시간을 다 빼앗긴 형은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두 손발을 다 들수 밖에는 없다.

그의 큰형은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내민다.

'형이 돌아오면서 과자를 사오마. 그때까지 형을 기다려주련....'

 

막내는 형이 내민 그 비장한 카드가 마음에 드는지

꼬질 꼬질한 눈물을 훔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협상에 흔쾌히 허락을 한 것이다.

'꼭 사와야돼~!' 그렇게 한 번 더 다짐을 받고는

형을 놓아주는 것이다.

 

승원이는 형의 그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는

하루 종일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지루한 하루를 보낸다.

친구들하고 놀다가도 하늘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그렇게 길기만 하던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고

이제는 집으로 가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가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곧 형이 돌아오겠지...

 

승원이는 온 종일 밖에서 있었으니

몹시 시장도 할터인데

밥도 먹지 않고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형이 오기를 기다린다.

어둠이 내리고서야 드디어 승원이의 형이 대문을 들어선다.

 

승원이는 비호처럼 형에게 달려가

협상의 내용물을 요구한다.

형아~ 과자~

 

그러나 형은 아무런 말이 없다.

형아의 보자가 안에는 달그락 거리는 빈 도시락 뿐

따로이 내어줄 만한 과자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형은 멋적고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쩔줄을 모른다.

동생에게 한 약속을 스스로 저버린 형도

면목이 없는 모양이다.

 

승원이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안뜰을 떼굴떼굴 구르면서

대성 통곡을 한다.

안뜰을 떼굴떼굴 뒹굴면서 아주 쓸고 다닌다.

승원이의 대성 통곡으로 온 집안은 난리가 난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안뜰로 나와

승원이를 달래려고 애를 써보지만

이게 어디 통할 일이던가.

그렇게 제풀이 지쳐 나가 떨어져야만 끝이 날 모양이다.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면서 땅바닦을 굴러대는 바람에

얼굴이며 온 몸은 흙 투성이에다가

눈물과 뒤범벅이 되버린 얼굴은

아예 위장한 특공대의 얼굴과 다름이 없다.

 

제 풀어 지쳐 시체처럼 축 늘어진 후에야

엄마의 손에 이끌려가서는

세수 시키고 손을 닦아준 다음에서야

방으로 들어가 곤한 잠에 떨어진다.

 

승원이는

형의 가을 소풍이 되어서는 봄 소풍때의 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 비장의 카드를 받고 나서야 형을 겨우 놔주는 것이다.

 

가을 소풍때는 형의 귀가 시간이 훨씬 더 늦었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역시 형의 보자기 속에는 빈 도시락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 뿐....

 

가을 소풍도 그렇게 승원이의 떼쓰는 소리와

실망한 나머지 온 안뜰을 떼굴거리며 뒹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다음 소풍이 왔다.

이제 승원이는 에전 처럼 떼를 쓸 필요가 없다.

학교에 들어가 제 소풍을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소풍을 다녀오고 또 다녀오고.....

 

드디어 승원이도 4학년이 되어 가을 소풍을 가게 되었다.

일년에 두번 가는 소풍이고

여러번 다녀 왔지만 소풍을 하루 앞 둔 날은 밤은 왠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소풍은 평소 와는 약간 달랐다.

승원이의 엄마가 승원이의 손에 처음으로 동전을 쥐어준 것이다.

맛있는 거 사먹으렴...

승원이는 두 눈이 똥그러져서 엄마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자신의 손을 펴본다...

십원짜리 동전이 4개나 된다.

 

그렇게 40원을 주머니에 넣고는 달음박질로 뛰어간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승원이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 소풍을 다녀오고 나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또 딴짖을 하다가는

어둑어둑 해가 떨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대문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승원이는 그 의미를 불현듯 깨닫기 시작했다.

 

큰 형이 그토록 땡깡을 쓰는 막내에서

하는 수 없이 막판에 비장의 카드를 내밀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그 카드는 사실상 실효가 없는 카드 일 수밖에는 없었다.

애초에 유효한 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원이도 4학년이 되어서야

소풍 날 쓸 용돈으로 10원짜리 동전 4개를 받은 것이다.

 

승원이의 큰 형은 사실 소풍 날 쓸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과자는 사올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리 없는 승원이는 떼굴거리며

온 집안에 난리 칠 것이 뻔하다.

행여 막내가 잠에 들었을까 밖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는

주린 배를 견디지 못하고

늦은 밤에 대문을 들어선 것이다.

자신의 지킬 수 없는 약속에 대한 미안함이

밤까지 그 긴 시간동안 밖에서 서성거리게 만든 것이었다.

 

승원이는 40원의 용돈을 받은 후에야

형의 그 비장한 카드는 정말로 비장한 카드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형아야~ 미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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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2-07-0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원의 용돈이란 금액의 크기로 보건대 허연 코 아니고 누런 코 일 것 같다는, ㅋ~.
형아야~
부르고 졸졸 따라다닐 그 누구가 있다는 것도,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것도 왕 부러움이라는~^^


차트랑 2012-07-06 12:2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누런코는 좀 더 창피하자너요^^
40원이 가지는 정보력이 대단~

손수건을 핀으로 고정시켜 앞에차고
그때는 그렇게 입학식을 하지 않았겠어요?^^
이유인 즉슨 입학식의 시기는
겨울의 끝인지라 어린이들이 죄다
감기 떨러질 날이 없어가지고 코 쥘쥘모드^^

덕분에 헝가리~를 신버전으로 들으니 좋은걸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하늘바람 2012-07-06 14:22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 덕분에 저도 좋은 음악 감상해요

책읽는나무 2012-07-14 07:20   좋아요 0 | URL
저도 덕분에 좋은 음악 놓치지 않고 잘 듣고 갑니다.^^
덕분에 아침이 상쾌하네요.
오늘 비온다고 했는데..^^

하늘바람 2012-07-0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린시절 이야기인가요?
재미나고 짠한데요
그림책으로 만들면 재미날 것같은
멋진 형을 두셨네요

차트랑 2012-07-06 12:22   좋아요 0 | URL
숨겨보려고 했눈뎅, 들켰다는 ㅠ.ㅠ
제 형들이 다들 막내에게 잘해주셔가지고요
사연들이 많은 편입니다.

어린 시절의 일들이 떠올라
추억을 되살리며 적었을 뿐인데
재미나게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늘바람님~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7-13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하늘바람님처럼 그림책 혹은 동화를 연상했어요.
좋은 추억이네요. :)

차트랑 2012-07-14 17:27   좋아요 0 | URL
좋은 추억이라 생각해주시어
고맙습니다
마음을데려가는인님^^
더불어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 2012-07-14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산골아이들 이야기인가? 싶어 읽었는데
아무래도 데굴데굴 구르는 승원이에게 너무나도 강한 감정이입에 눈치챘습니다.
40원에서두요.ㅎㅎ
초등생들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멋지게 그려낸다면 정말 감동적인 책이 되겠다 싶어요.

어린시절을 회상한다면 형제,자매가 빠질 수 없는데,
서열에 따라 회상하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갑니다.
전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었거든요.그래서 동생들을 데리고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
특히 막내동생은 친구들과 놀러가려면 꽤나 누나를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고무뛰기할때 막내가 곁에 있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좀 크더니 녀석은 제형아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지만요.
다음생에 태어난다면 나도 막내로 태어나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드네요.
형아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신 님이 부러워서 말입니다.^^

차트랑 2012-07-1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픈 산속, 산골아이들의 이야기로 쓰고 싶었는데
어쩐지 주관적인 요소를 제거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아는 분이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이 떠올라 적어보았답니다

그 분은 정말 훌륭하시다 생각들고요
저도 그분의 수업을 한 번 받아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일정도로 감동적인 분이랍니다

당시 40원이 어느정도의 액수였을까...생각해보았더니
대략 그 가치를 알수가 있더라구요.
다음에는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글을 하나 써볼까 합니다^^

워낙 깊은 산골에 살던 아이들은
돈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지냈다는^^
물론 돈을 만져 볼 기회가 없었던 탓이기도 합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 나무님~
큰형, 혹은 큰 누나는 나머지 분들과
확연하게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기철학 연구
이현수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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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본체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태극도(太極圖)라는 것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태극도(太極圖)는 중국 송나라의 주돈희라는 인물이 우주의 근본과 만물이 발전하는 이치를 도해(圖解)로 밝힌 것으로, 태극에서 시작한 우주의 음(陰)과 양(陽),  그리고 오행(五行)을 만물의 원리로 삼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성리학의 우주관은 바로 그 태극도에서 출발하게 되었고 이기론(理氣論)을 바탕으로 인간성 및 수신의 이치를 다룬 인문학으로 발전 전개된다. 성리학자들은 이론(理論)을 기론(氣論)의 상위 개념으로 인식∙확립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성리학은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혹은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의 논쟁을 거듭해왔지만(전자의 대표 주자는 퇴계 이황이고 후자의 대표 주자는 율곡 이이이다) 이론(理論)이 중심론(中心論)으로 자리를 잡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거의 기론(氣論)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일련의 이기론을 둘러싼 논쟁의 과정은 조선의 붕당체제와도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동인(東人)들은 퇴계 이황의 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서인(西人)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율곡 이이의 문하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만물의 본질을 氣로 파악했던 화담 서경덕과 같은 인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성리학의 이기론이라는 쟁점이 정치, 즉 집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문과 사상(철학)은 권력과 분리될 수 없음을 명백하게 증명해주는 정치적 사안이었던 것이다.


하여 흥미로운 것은 이기론이 흔히 말하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하는 매우 원초적인 싸움과 다를 바가 없는 형태를 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론(理論)은 승자가 되었고 기론(氣論)은 패자가 된 셈이다. 결국 이론(理論)은 밝은 양지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반면, 기론(氣論)은 어두운 음지에서 여전히 서성이고 있는 실정이다. 만물의 시작을 理로 파악하고 개념을 정립한 성리학의 승리는 상대적으로 못지않게 중요한 氣論을 연구의 대상으로서의 학문에서 멀어지게 한 셈이다.


이 책의 제목이 ‘기철학 연구’라는 표제를 가지고는 있지만 이기론이 그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 매우 명료하게 정리해둔 출간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철학 연구의 개념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 중국의 학자들의 이기론에 대한 주장과 상대론, 조선의 학자들의 주장과 그 상대론을 매우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그러므로 이론과 기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갈라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학문 혹은 사상과 정치 혹은 권력과의 역학관계


 이 책은 결국 성리학의 본질에서 기론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성리학을 이기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理論 중심의 학문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때, 태극도 라고 하는 같은 뿌리를 둔 학문이 서로 분리되고 상∙하위(上∙下位) 개념을 가지게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뿌리를 둔 원류의 사유가 시대가 흐르고 변화하면서 주체와 객체로 분류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나마 氣論을 아예 성리학에서 도려내지 못한 것은 氣가 理를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理를 상위 개념으로 사유하기를 바라는 성리학자들의 주장에서 실제로 氣 없는 理는 존재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론을 철저히 따돌리는데 성공한다.


자신들이 가진 사상의 우위 선점은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적인 토대가 되어준다. 따라서 자신들의 학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유자는 제거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언론의 통제와도 그 맥을 함께한다. 그렇다면 과연 조선의 언론은 어떠했을까...



조선의 백성 전용 언론 창구, 신문고와 격쟁


 조선은 왕이 통치하던 국가였다는 점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전제 군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반정이라는 쿠데타의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던 것이 조선이기도 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참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회였다. 어쨌든 불구하고 혹자의 역사가들은 조선이 백성들과 매우 원활한 소통을 한 것으로 가르친다. 심지어 오늘 날의 언론 제도와 비교 손색이 없을 정도 였다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실제로 있다. 과연 그랬을까...

 백성과 소통하는 창구로서 신문고와 격쟁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신문고는 중국 송나라의 ‘등문고’를 모방한 것으로 백성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기 위한 제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일반 백성들이 사용한 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비록 대궐 밖 문루에 달아 놓았다고는 하나 주관 부서는 다름아닌 의금부였던 것이다. 의금부는 바로 왕의 직속 기관이다. 과연 그 어떤 백성이 의금부의 힘을 넘어 북을 울릴 수 있었겠는가...

 

 신문고를 울리기까지는 매우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했다. 예를 들어 서울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지역 담당 관청을 거쳐 사헌부에 먼저 호소해야 했다. 한마디로 사헌부의 허가를 받고 나서도 다시 의금부 담당 관리의 조사를 받은 후 신문고를 울려야 하는 것이다. 

 

 지방의 백성들은 더 어려웠다. 지방 거주지의 원에 가서 억울함의 절차를 밟았다는 확인서를 먼저 받아야한다. 다시 도의 관찰사에게 같은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리고 한양의 사헌부를 거쳐 다시 의금부로...과연 그 어떤 백성이 이와 같은 절차를 밟아 신문고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글을 못 배운 백성들이 과연 서류하나 제대로 작성 할 수 있었겠는가...

  

 또한 북을 울린 대부분은 서울의 관리들로 토지나 노비의 소유권 다툼이 대부분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알고 보면 지방 관리들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신문고였다. 하물며 힘없는 백성들임에랴.... 사실상 조선의 신문고는 백성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전시행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신문고는 폼이나 다름이 없었던 장신구였던 것이다.


신문고가 폐지되고 격쟁이라는 것이 신설되었다. 격쟁은 왕이 궐 밖으로 외출을 하는 찬스를 이용해 징이나 꽹과리로 큰 소리가 나도록 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도였다. 왕이 매일 궐 밖로 나가는 것도 아닌 다음에야 정말 이것을 진정한 소통의 창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억울하다고 모두 격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격쟁의 내용에도 제약이 따랐다. 그 효과가 미미했다는 점에서 신문고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백성들의 억울함을 위해 시행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형식에 불과했던 제도로서 그 실용적인 가치를 찾아보기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고등부의 교과서에서 조차도 신문고와 격쟁을 일컬어 ‘일반적으로 시행되지 않았다’라고 고백하고 있을까...




식자들과의 소통 창구, 상소


다른 소통의 창구로 조선은 상소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일반 백성이 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관직에 있는 관료나 혹은 과거에 합격한 선비들 전용으로서 그 형식이 구별되는 제도이다. 상소는 그 내용이 왕에게 바로 전달되는 방식이다. 하여 그 절차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각 고을의 수령이 상소를 받고, 해당 도(道)의 감사에 이를 올린다. 감사는 접수한 상소를 다시 사헌부에 올린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에 불리한 내용들은 흔히 걸러지기 일쑤였다. 실질적인 상소들은 권력자들이 배후에서 조종한 하급 관리나 선비들에 의해 작성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알려진 바대로 고급 관리들의 직접적인 상소의 비율은 크게 낮았다. 간혹 ‘도부상소’라 하여 도끼를 메고 상소를 올린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의 소(訴)가 못마땅하면 그 도끼로 자신의 목을 쳐 달라는 결의에 찬 상소였다. 그러나 실제로 상소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상의 여론, 삼사

 

흔히 조선의 여론이라 하면 삼사의 중론을 말한다. 즉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라는 삼사의 의견인 것이다. 삼사는 각각 부정 부패등 부정한 관료들을 탄핵하는 기능과 왕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공론을 중시한다는 것이지만 이는 실제로 백성을 위한 여론이라기보다는 권력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집권층의 공론일 뿐이었다. 백성들을 위한 대동법을 시행하는데 100 여년이 걸렸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해준다. 여론은 어디에서 나와야 하는가.. 바로 백성으로부터 나와야 진정한 여론인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여론은 사실은 권력의 내부에서 돌고 돌았던 것이다.

 

 

조선 학문의 폐쇠성


이러한 조선의 언론 시스템으로 본다면 조선의 언론은 매우 폐쇄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학문과 사상 역시 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선비 혹은 관료 출신들의 자제가 아니면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공직자의 가문이 아니면 관리로 나가기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공부를 할 수 있는 일반 백성이라도 먹고 사는 일이 더 시급했다. 그러므로 성리학의 논쟁도 그들만의 것이었다. 권력자들의 학문과 사상이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목숨을 내어 놔야 하는 위험천만한 짖 이었다. 


이는 성리학의 理論이 그리 쉽게 우위를 선점 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결국 理는 氣를 누르고 기득권을 지켜가는 매우 유용한 도구였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氣를 중시했던 학자들은 대부분 실학적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실학파이며 경세치용 학파라 부르는 여유당 정약용의 사상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화담 서경덕과 율곡 이이를 만날 수 있고 잠곡 김육 그리고 하곡 정제두를 만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부국을 꿈꾸던 실학파들은 백성의 경제활동을 중시했다. 백성의 경제력은 곧 국력이라는 인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실학이 실질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조선의 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조선이 마지막 회생의 찬스를 놓친 것은 바로 정조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이 현대 학계에 끼친 영향


학문과 사상의 상대성을 어느 정도 인정했던 정조 사후, 조선의 학문과 사상은 유일하게 성리학의 것이 되어버렸다. 공자와 주희는 조선 성리학의 교주나 다름이 없었다. 조선 땅에서 성리학이 교조주의적으로 흐른 탓이다. 마치 이단을 배척하듯이 조선의 유학자들은 여타의 이론(異論)들을 철저히 탄압했다. 백성들의 삶에 훨씬 더 접근해있던 양명학은 아예 뿌리조차 내리지 못했다. 그 결과 양명학에 대한 현대의 연구가 시원치 못한 상태이다. 신유사옥은 이러한 탄압의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정조는 천주교에 관대한 입장이었으나 정조 사후 노론은 정순왕후를 앞세워 신서파의 숙청을 단행했다. 천주교의 탄압이 곧 신서파를 제거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이러한 사상적 환경에서 다양한 학문적 논의는 불가했다. 국지적으로 존재했던 학문적 논쟁은 그마저도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氣論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기득권을 버리며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팔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문제는 시대가 바뀐 현대에도 조선의 폐쇄적인 학문적 환경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자신의 견해나 주장과 다른 것들은 무차별 공격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계의 환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학계의 환경은 국민의 사유와도 밀접하게 관계한다. 식자들이 출간하는 도서는 곧 국민의 독서와 관계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의 발전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지금껏 理와 분리될 수 없다는 氣에 대해서 제대로 연구된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비록 연구가 있다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氣에 대한 올바른 개념도 아직 자리 잡지 못했을까..



사상의 독점이 부르는 비극


氣에 대한 개념의 부재와 인식의 부족은 물리학적 연구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氣論은 서양의 물리학과 깊은 관련이 있고 이는 물질과 현상에 대한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물리학 연구에서 동양을 압도한 서구는 과학의 힘을 사용해 세계에 커다란 수난을 안겨주었다. 아메리카를 비롯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서구 열강의 강력함 힘 앞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다른 데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상, 즉 생각의 방법론에서의 차이 때문이다. 조선과는 달리 서구는 다양한 학문적 사고를 해왔지만 사상적 배경은 매우 편협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사유를 해왔던 것이다. 결과는 자신에 대한 이익만을 추구함과 동시에 타자에게는 초유의 비극을 불러왔다. 비록 학문의 다양성을 확보한 서구였지만 사상이 한 곳으로 쏠리는 현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제각기 사상의 독점적 현상은 서로 동상이몽을 꿈꾸도록 했다. 이렇듯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사상은 심각한 문제점과 그 폐해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일단 타자를 제압하려는 강제력을 행사하게되고 그 우위를 선점하고 나면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 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는 주로 부정적인 것이 권력의 법칙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왔다.

 

어찌 옳은 것이 하나 만 있을 수 있겠는가.. 학문과 사상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치가 어디 학문과 사상 뿐 이겠는가.. 균형 있는 발전의 중요성은 또한 지역 발전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빈과 부의 차이를 좁혀내는 것도 바람직한 사회상일 것이다. 결국 학문과 사상의 균형 있는 연구와 발전은 그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 모든 영역에 깊이 관계하고 있기에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학문과 사상의 올바른 개념을 다수가 공유하고 인식하는 힘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주체인 우리가 인식해야 할 과제는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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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0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문과 사상의 상대성,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익만을 추구하는 동시에 타자에게는 초유의 비극을 불러오는,

저는 이 두 문장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win-win이라는 개념, 저는 참 좋아요.
게임 중에, 가위바위보를 내서 같이 주먹을 내면 별점 네개, 한 사람만 보를 내면 별점 여덟개, 두사람 모두 보를 내면 별점 0개인 게임있잖아요. 언뜻 생각해서는 둘 다 주먹을 낼거 같은데 잘 그러지 못 하는, 상대에 대한 신뢰 게임이요... 저는 그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신문고나 격쟁의 의도는 좋았으나, 역시나 행하는 제도 상에는 문제가 있었군요.
빛좋은 개살구 같은 느낌이네요. 음... 요즘 검찰을 보는거 같기도 하구요. ^^

구구절절 와닿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차트랑 2012-07-0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의 글에 답을 드리지 않았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되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요 ㅠ.ㅠ

요즘 독서의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되었습니다.
다양한 조건들 덕분이지요.
저의 화두는 '독서가 인성에 과연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입니다.
중요한 것은 독서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서를 이유있는 깨달음의 수단으로 삼는 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구요.
과연 그럴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구요..
단지 지식을 얻는 수단으로만 본다면 그럴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여전히 저는^^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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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7-0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을 들으며, 잠시 숨을 고릅니다.
금주 즐거운 일 가득하셔염!

차트랑 2012-07-02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한동안 가물어
촉촉한 여름비로 어려운 처지의 농사에 도움을 주십사하는
마음으로 올린 음악입니다

폭우는 노땡큐~
농산물이 잘 자라도록 그저 필요한 만큼만요...
지난 해는 저의 동네도 수해를 입어
차가 사거리를 둥둥 떠다니고
심지어 가까운 아파트에서는 소중한 인명의 피해도 있었답니다.
올해는 그런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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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6-28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저곳에서 가뭄때문에 걱정이네여 이제 곧 가뭄으로 인해 먹거리들도 다 오르겠지요 아줌마인 전 그게 가장 걱정이죠.
격정적이고 정열적인 바이올린 연주가 좋네요

차트랑 2012-06-28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러다 비가 내리지 않을까 싶어서
영상을 올려봤습니다.
비가 내려주기를 바라면서요^^

많은 분들이 비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시원하게 비가 내려주기를....
 
반야심경
오쇼 라즈니쉬 지음, 이윤기 옮김 / 섬앤섬 / 2010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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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 않는 독서량이지만 최근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독서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딜레마가 있다. 과연 독서는 개인의 인격을 수양시키고 인간적 덕목을 양성하여 그 독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가 바로 그 사적인 딜레마이다. 이는 실천의 문제와 직결되는 지행의 화두를 내게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은 과연 化를 이루어 사(私)적인 혁명(革命)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책의 목적과 성격에 따라 단순한 지식을 얻는데 필요한 책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독서’라는 개념은 정신적 성장이라는 측면이 강한 성격을 가지는 용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책을 읽은 후의 어떤 모습은 매우 현학적인 어휘들을 구사하다 못해 그 현학적인 용어의 덩어리들을 상대방에게 던져주기 일쑤이다. 한마디의 말 안에 응집된 그 현학적인 용어들은 청자로 하여금 소통을 하는데 오히려 커다란 걸림돌이 되곤 한다. 좀 더 우스운 경우는 해독이 매우 어려운 용어의 덩어리들을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던져 곤경에 처하도록 하는 의도된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자신은 수많은 양서들을 통해 어려운 용어들을 익히고 다졌으니 그리 알라는 식이다. 과연 독서는 소통의 의도된 장애물로도 사용될 수가 있구나 싶다.


심지어 학문을 무기로 사용한 예는 애써 예를 들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명백한 사건들이 수없이 많지 않던가... 하여 때로는 독서와 깨달음의 관계가 너무 요원하기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운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혁명은 化를 통해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한다. 많은 독서와 연구는 과연 그 化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인가...



외적인 지식의 거리감

라즈니쉬는 지식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라즈니쉬는 반야심경의 강의를 통해 지식은 오히려 타자 혹은 자연과의 거리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라즈니쉬의 설명을 보완하는 예는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현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수상 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왓슨은 ‘이중나선’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하여 일약 과학계 고전을 집필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인물이다. 이러한 수식어는 우리나라에서도 팽배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영국의 프랜시스 크릭과 모리스 윌킨스, 미국의 제임스 왓슨이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서 벌인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는데 이는 독자라면 망각해서는 안 될 인물이 그 영광스러운 수상의 배후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로잘린드 엘시 프랭클린(Rosalind Elsie Franklin)이라는 이름의 과학자가 바로 그이다. 그녀는 결정체와 같은 미세한 구조물의 사진을 찍는데 X-ray를 사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DNA의 분자의 구조를 찍어내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 사진은 DNA의 나선 구조를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가 DNA의 나선구조를 찍어내는데 성공한 촬영기법은 X-ray 회절법이라는 것으로 당시에 그 누구도 그러한 사진을 찍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이 X-ray 회절법을 연구하며 프랑스에서 3년 이라는 세월을 보냈고,  그 연구의 성과로 DNA의 나선구조를 찍어내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다른 프로젝트의 다른 연구를 하고 있던 모리스 윌킨스는 그러나 그녀의 독자적 성과물을 캠브리지 대학의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에게 몰래 빼돌렸다. 프랭클린이 자신의 성과물을 발표하기도 전에 이 셋은 그녀의 연구 자료를 이용해 네이처지에 나선구조를 발표해버린다. 억울하게도 그녀의 논문 여러 개가 같은 호에 동시에 함께 실린다. 그 후 그녀는 다른 연구에 몰두하다가 난소암에 걸려 1958년 사망하게 된다.


이는 지식의 딜레마, 즉 외적인 지식이 진리와 어떻게 멀어질 수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매우 극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라즈니쉬는 지식과 진리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 말한다.

 지식은 자신의 밖, 즉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나무가 마치 꽃을 피워 내듯이 그렇게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지식을 외부로부터 얻는다 하더라도 혁명을 이루어내는 깨달음과는 무관한 일이 될 수 있다. 지식의 양 만으로는 스스로를 화의 경지로 나아가도록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다... 공(空)


불가에서 중생들에게 주는 가르침 중 하나는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아집과 번뇌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한다. 우리는 이 아집과 번뇌를 흔히 욕심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을 오온[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존재라고 한다. 오온이 인간 구성의 요소인 라는 것이다. 다섯 가지의 과정을 통해서 현재의 ‘나’가 존재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번뇌를 가지게 된다. 이는 욕심 때문이다. 하여 그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뜻인 것이다.


 반야심경의 ‘공’은 언뜻 이해 할 듯도 하지만 대부분 이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는데 머무르곤 하는 것 같다. 물론 내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식자가 아니더라도 불교의 가르침인 공(空)의 개념을 언뜻 이해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그 개념만을 머리로 이해할 때의 경우이고, 딱 그 곳에서 그치기 때문에 절대로 어려워 보이지 않다. 한마디로 이성적으로 공을 바라볼 때 발생하는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이성의 작용은 인간으로서 매우 지고한 경지의 사유처럼 보인다. 플라톤은 오성(悟性)을 로고스라 했고, 칸트도 본능이나 감성적 욕망의 상대적 용어로 이론이성을 넘어선 실천이성을 주장했다. 어찌 보면 자율적인 의지를 결정하는 개념의 이성의 능력을 논지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불가의 깨달음으로 인한 ‘자유’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스승님과 라즈니쉬의 말씀...

 

하지만 서구의 실천적 측면을 좀 더 바라보면 나의 스승님께서 말씀해주신 방법론을 배제시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스승님께서는 동서양의 접근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서양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는 방법론을 고수해왔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분명히 성경의 한 구절이다. 현대의 역사를 결정지었던 과거 식민지 정책의 시대가 이를 잘 증명해준다. 그들은 구하는 일에 몰두했다. 얻으려는 욕망의 주체 가되어 세계 어느 한 곳을 그대로 내버려둔 곳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것의 결과는 정확하게 양분된다. 자신들의 이익 그리고 타자에 대한 철저한 파괴.


 생각해보면 서양의 철학은 철저히 그들의 현실과 괴리되어 온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라즈니쉬는 이쯤에서 말한다. ‘불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렀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라고.... 아마도 내 스승님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라는 라즈니쉬의 일갈일 것이다. 서구의 종교는 공격성을 가지고 있다고 라즈니쉬는 말한다. 제 아무리 ‘그런 것이 아니에요, 서양의 종교를 모르셔서 그리 말씀하시는 거에요’ 라고 말한다 한들, 역사는 이를 명백하게 증명해주고 있지 않던가... 과연 성경의 구절이 과거 역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누가 변호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반면 불교는 ‘비워라, 그리하면 채워질 것이다’라는 정 반대의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셨다. 인간은 오온의 과정에서 번뇌를 자신의 내부에 축적시킨다. 욕망 혹은 욕심이라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무던히도 괴롭힌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욕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에게 절실한 그 무엇을 얻고자 자신의 내부를 더욱 더 철저하게 채워 넣는 것이다. 욕망이라는 것으로.... 그 욕망은 흔히 돈, 물질, 미움, 시기심 등에서 오는 것들이다. 이는 곧 질명과 마음의 상처 혹은 번뇌가 된다. 몸과 마음을 모두 나쁘게 하는 요인인 것이다.

 문제는 그 욕망으로 자신을 가득 채울 때 다른 그 무엇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욕망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불가에서는 그 욕망을 비우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혁명은 바로 이 욕망을 내려놓아야만 발생 가능한 일이기에.... 마음을 비우는 깨달음은 바로 이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이미 가득 차있는 그릇에 깨달음이라는 것이 들어 설 자리가 없는 탓이다...


동과 서가 반대인 것은 많지만 사유의 방법론에서 조차 이토록 정 반대인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다른 접근법이다. 물론 기독교와 유∙불교의 가르침은 사랑, 仁(사랑), 자비, 즉 사랑이 라는 공통된 테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표면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는 테제인 것이다. 그러나 그 테제를 해석하고 행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 결과는 이미 인류의 역사 속에 고스란히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지 않던가...


 

라즈니쉬의 목소리를 들으니 무엇인가 잡히는 듯 하다. 그 심오한 뜻을 알아 들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있다는 느낌 일 뿐....물론 내 스스로도 이성에 집작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다보니 번뇌가 가득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 스승님의 말씀대로 지혜는 두드려서 얻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수많은 지식의 량으로 자신을 채운 다 한들 그것은 밖에서 오는 것이다. 본질적인 혁명으로 가기란 요원한 것이다. 혁명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발원하여 그 오리진이 자신 스스로의 내부여야 한다. 그것을 혁명(革命)이라고도 하고 화(化)라고도 한다. 화를 이루어야만 혁명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책을 읽어 수많은 정보를 가졌다 한들 현학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급급하지 않을 수 없다. 깨달음의 혁명을 일궈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타자를 공격하고 제압하는 도구로 사용하거나, 자신들의 기득권을 뺏기지 않고 타자를 지배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밖에 없다. 독서는 내게 이러한 지식의 딜레마를 던져주었던 것이다. 아무리 읽고 말해주고 듣는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스스로의 작용이 일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깨달음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스스로에게 있다. 깨달음은 절대로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깨닫지 못한 자...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은 바로 자신 뿐이다.  그러나 깨달은 자... 타자의 존귀함을 안다. 자신 못지않은 타자를 인정 할 줄 안다. 타자가 있어 자신이 있고 타자가 있어 내가 살아 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저마다 보살이 될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 보살은 절대로 혼자임을 주장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타자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나서는 자이다...과연 세상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중용에서도 化를 언급한 장구가 있다. 다음은 중용의 23장에 나오는 化의 뜻이다.

 

유천하지성 위능화(唯天下至誠 爲能化)


우리는 흔히 변화(變化)라는 말을 사용한다. 변(變)도 化도 분명 달라진 모습니다. 그러나 변은 물리적인 형태의 변형을 말한다. 그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化는 화학적인 변화를 뜻하는 말로서 본질적인 개인의 혁명을 뜻하는 말과도 같다. 그런데 중용은 유천하지성 위능화(唯天下至誠 爲能化)  라고 했다. 오로지 지성이라야만 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지성(至誠)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지극한 정성을 뜻한다. 중용에서도 마음의 중요성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한 정성을 곡(曲) 이라고도 한다. ‘곡진하다 간곡하다’라는 뜻은 바로 마음의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들이는 독서라면 깨달음으로 가는 길, 스스로의 혁명을 이루어 내는 길을 여는 것은 아닐까...이성을 뛰어 넘어 정성을 다하는 독서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나의 스승님께...

스승은 저를 가르치는 분이요 깨달음을 얻는데 도움을 주시는 분이시고 저를 사랑하기를 지극히 하시고 그치지 않는 분이십니다. 스승님을 보고 있노라면 그 지행의 표본을 보는 듯 합니다. 스승님은 언과 행으로 가르치시니 중용에서 가르침 받은 바 있는 언고행 행고언의 뜻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참으로 따르기 어려운 중용의 말씀이지만 당신을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토록 어려운 말씀을 그토록 쉽게 행하시니 어찌 스승님을 본받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가르쳐 주십니다. 스승님은 또한 지극히 겸양하시어 진정한 겸양의 덕목이 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일깨우십니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신지요..지극히 아름답고 아름답습니다...그런 당신을 저의 스승님으로 두었으니 저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요..

 

  저는 스승님을 만나 배우게 되어 한없는 다행으로 여깁니다. 스승님...당신을 따르고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죽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저를 가르치시고 사랑해주세요 스승님... 스승님을 만나 배우고 사랑을 또 한 배우게 되었으니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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