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발견들과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실재의 상에 대해서 느끼는 흥분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점차 더해가는 임박감을 느끼면서 나 자신이 연구해온 여러 영역들을 중심으로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물론 그 연구의 상세한 내용은 전문적인 것이지만, 나는 복잡한 수학공식 없이도 폭넓은 개념들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내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를 바랍니다. 2001년 5월 2일 케임브리지에서, 스티븐 호킹

                       「호두껍질 속의 우주」

 

 

 

자신이 가진 지식을 누군가에게 전달한다거나 이해시키는 일을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매우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이고 상대방의 지식이 그 분야에 전무하다시피 하다면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한 때, 매우 실력이 있는, 최상위 대학 출신의 새로운 과탐선생이 왔다. 학생들은 유능한 선생의 가르침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분을 능력자라고 자랑도 했다. 그런데 수업을 한동안 받던 학생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소통이 잘 되는 학생을 불러 상황파악에 나섰다. 다수의 학생들이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의외의 반응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선생님이 너무 어렵게 가르쳐요, 였다.

 

하여 과학담당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은 학생들이 수업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잘 몰랐다, 고 했다. 수업 시간에 대답들을 아주 잘 하길래 잘 알아듣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며 난이도를 낮추어 수업을 하겠노라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이런~ 하고는 다시 담당을 다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진짜 놀란 사람은 과학 담당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저만치 마주오던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 둘 다 깜짝 놀란 꼴이었다. 아 이거, 누가 놀라워해야하는 것인지. 하여 어찌 그대가 놀라운 일이냐고 물었다. 과학담당의 말은, 이보다 어떻게 더 수준을 낮추어 가르쳐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였다. 자신은 난이도를 최대한, 최대한으로 낮추어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며 말이다. 아 이거, 참으로, 참으로 난감했다.

 

고등학교의 과학은 첨단 물리학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라고나 할까, 아니면 새 발의 피의 피? 어째 거나 그 첨단 물리학을 고등학생들 보다 못한 나와 같은 대중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리고 싶어 한 이가 있었으니, 정말 야무져도 진짜 야무진 꿈을 꾼 냥반, 스티븐 호킹이 바로 그다.

 

물리학과 수학계에는 수많은 학자들이 있고, 그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즐비할 것이다. 그 중에는 아인시타인보다 더 축적된 지식을 가졌고 능력이 더 뛰어난 인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대중들의 무관심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학자들의 무관심은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중들의 수준에 맞게 내용을 이해시킬 수 있다거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그럴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서로에게는 없다는 것이 더 타당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첨단 물리학을 대중들에게 직접 전달하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무모한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런 무모함을 알면서도 시도한 냥반이 바로 이 냥반인 것이다. 그는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대중들에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란 말인가? 그것은 학자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논어, 헌문, 41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자로숙어석문(子路宿於石門) 자로가 석문이라 지방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신문왈(晨門曰) 해자(奚自)? 신문이 묻기를, 어디에서 오는 길이오?

자로왈(子路曰) 자공씨(自孔氏) 자로가 답하기를, 공선생님 댁에서 오는 길이오, 하자

왈(曰)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 문지기가 말하기를, 안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걸 하는 사람 말이오?

 

石門(석문): 노나라의 지명으로 남쪽 외성문(外城門)이 있는 곳

 

현토 번역에는 ‘(신문晨門이라는 사람은) 현자로서 관문을 지키는 포관(抱關) 직업에 은둔한 자인 듯하다’ 라고 설명을 덧 붙이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주희의 짓일 것이다. 그런데 주를 읽는 사람으로서는, 문지기의 일을 직업으로 하는 은둔자가 있단 말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 여하튼 당시의 은.둔.자.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객관적으로도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집주에서 호씨(胡氏)는 덧붙이기를, '신문(晨門)은 세상의 불가능한 일을 알고 하지 않는 자이다. 이 말로써 공자를 조롱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천하를 봄에는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할 때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라고 했다.

 

어째 거나 이 대목은 공자의 인물됨을 잘 알려주는 부분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올바른 일이라면 행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람,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중을 향한 호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극히 사적인 일이지만 나는 과학자들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중들이 과학 혁명의 수혜를 입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미지는 내게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물리학이 과거 인류에게 어떻게 기여해 왔던가. 중성자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채드윅이 원자의 질량문제를 해결해주자 페르미는 중성자와 양성자를 충돌시켜 방사성 원소를 개발해내고 이 공로로 또한 노벨상을 받는다. 이어 오토 한과 그 제자들은 아인시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원리(그 유명한 E=MC제곱)이용,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창안해 낸다. 오토 한 역시 이 공로로 노벨상을 받는다.

 

핵폭탄 제조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과학자 질라드라고 한다. 질라드는 오토 한과 그의 제자들이 히틀러와 영합하면 유럽은 독일의 지배하에 놓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토 한은 독일의 과학자였던 것이다. 질라드의 설득으로 아인시타인은 루스벨트에서 핵무기의 제조를 독일보다 먼저 해내야 할 것이라는 서한을 보낸다. 1939년 가을의 일이다. 하여 미국은 맨하탄 계획에 돌입한다. 맨하탄에 세계의 가장 유능한 과학자들이 모여들었다. 질라드는 물론이고 페르미, 베테, 프랑크, 텔러, 보어 부자, 맥밀런, 파인만등 무려 4,500명의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총 집결, 지휘 총책임은 오펜하이머였다. 그렇지 않은 과학자들도 있었지만 줄줄이 노벨상 출신들이다. 물론 이 결과물을 일본에 두 번 사용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째 거나 그 덕분에 우리는 물론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했다.

 

논점은 첨단 물리, 수학자들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 오는 것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살상용 무기는 적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에게 사용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진 것이다. 당시 맨하탄 계획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학계의 최전선에 있던 인물들이었으며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능력자들이었다. 일부 학자는 이러한 위험성과 반윤리적 도덕성에 괴로워했다. 맨하탄 계획의 총 책임지 오펜하이머는 물론이고 핵 폭탄을 제조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아인시탄도 끝내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독일의 화학자 하버는 질소비료를 개발하여 농업생산량에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강력한 살상 무기인 염소가스를 개발, 사용함으로서 그야말로 셀 수도 없는 사람을 희생시키는데 앞장섰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하버의 피는 유태계였다는 점이고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사실은 하버 스스로, 자.발.적.으로 독가스 개발에 나섰다는 점이다. 하버 덕분에 독일, 프랑스, 영국은 독가스를 만들어 서로에게 사용한 결과 10만여 이상의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 다른 최악 중 최악은 그런 하버에게 노벨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하버에게 중요한 것은 윤리와 휴머니즘이 아니었다. 자신의 재능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던 부인은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는 그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렇듯 시대의 첨단 과학은 늘 명암이 존재한다. 과학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양 극단의 혁명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 첨단 과학인 것이다. 이러한 애증이 교차하는 첨단 과학계로 대중들에게 초대장을 보낸 사람이 스티븐 호킹이다. 대중은 비록 과학의 최전선을 직접 경험하지 못할지라도 과학의 방향과 그 목적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호킹은 자신의 연구 분야가 매우 전문적인 것으로 제대로 이해가기 위해서는 수학공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이 첨단 물리학의 수학 공식을 적용시켜 해당분야를 접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폭넓은 개념’에 있다. 자신은 대중들이 첨단 물리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접근 이해를 소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동양 고문에 등장하는 한자들을 죄다 익혀서 직접 읽어가며 유불도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틴어나 영어를 줄줄이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서구의 사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비록 우리가 원서를 직접 읽을 수는 없지만 중간 역할을 해주는 매체를 통해 얼마든지 이해하고 사유할 수 있듯이, 호킹 자신은 그런 매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불구하고 하려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이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한 때문이라고 본다. 호킹은 「시간의 역사」를 출간하고 무려 4년 동안이나 Sunday Times 베스트 목록에 올랐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된 듯하다.

 

(시간의 역사가) 읽기 그다지 쉽지 않은 과학서라는 점에서 무척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시간의 역사보다 더 읽기 쉬운 다른 종류의 책을 쓸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두껍질 속의 우주

 

연구에 바빠 책을 쓸 시간이 허락되지 않음을 고백하면서도 그는 다시 「호두껍질 속의 우주」를 대중들 앞에 내 놓았다. 호킹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우리(대중)가 비록 달걀을 직접 낳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달걀이 싱싱한 것인지 아니면 상한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로 이해해도 좋다고 본다.

 

지구상의 가장 획기적인 변화 혹은 혁명을 일으키는 주체는 과학이다. 흔히 말하는 패러다임의 혁명은 늘 과학에서 시작했다.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토마스 쿤이다. 그는 패러다임이라는 기존의 용어를 일반화된 용어로 정착시킨 장본인으로 자신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를 현대인들사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저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쿤은 과학과 철학의 만남을 대중에게 그야말로 인식시키려 한다.  그는 과학적 본질의 왜곡을 염려하면서 과학철학을 탄생시켰다. 쿤은 ‘대화하는 공동체의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대중들이 과학 혁명을 이해해주기를 바랐으며 사유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쿤에게 과학이란 단지 객관적인 지식의 탐구가 아닌, 사회가 공히 인정하는 합의, 즉 패러다임을 이끄는 활동이다. 과학이 절대로 대중과 분리될 수 없는 이유이다.

 

첨단 과학이 대중과 함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중이 가지는 보편적인 윤리의 요청과 학자들의 윤리적 요청이 질적으로 다를 때,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사유를 과학자들에게만 미루어서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과학에 관한 사유를 하지 않을 때, 인류는 과학의 눈부신 편리함에 일방적으로 도취되어버리고 만다. 과학의 발달이 인류에게 그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었으며 동시에 그 얼마나 많은 비극을 불러왔던가. 과학은 늘 우리와 함께해왔고 과학이 배타적일 때 참극은 늘 준비되어있는 것이다.  

 

제 아무리 물리학의 천재들이 다루는 분야라 할지라도 과학적 윤리와 보편적 도덕의 요청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대중과 분리시킬 수 없고 분리해서도 안된다. 하여 대중과 과학자들의 소통은 중요한 것이다. 물론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본적은 없지만 자신의 책이 널리 읽히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호킹의 설레는 마음을 「호두껍질 속의 우주」에서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과학을 이해하고 사유해야 하는 이유이고 호킹이 바라는 바 또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힘든 일인 줄 알면서도 그는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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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페이퍼에서 어쩌다가는 호킹 지수에 대한 언급을 한 후에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국내의 문화일보가 호킹 지수에 대한 기사를 낸 적이 있고, 해외에서는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이 호킹 지수와 나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캐나다에도 the Guardian 이라는 언론 매체가 있어 혼란 스러울 수 있다).

 

영국의 가디언紙는 땅콩 회항에 대해 아주 자세히 언급하면서 북한의 고려항공보다 못한 대한항공이라며 납득할 수 없다고 개탄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절대로 대한항공을 이용하지 않겠다!’ 고 선언한 일간지다. 이러한 가디언의 표현은 내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런 가디언이 호킹 지수에 대한 간단한 문답식 기사를 2014.9.15일자로 남기고 있다. 기사의 제목은 「호킹 지수는 사람들이 독서를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이다.

 

가디언의 기사에 따르면, 호킹 지수(HI, Hawking Index)는 독자가 책을 구입하고 읽기를 중도에 포기하여 끝까지 읽지 않은 백분율이라고 한다. 아마존의 킨들(e-book 리더기)은 그 사용 독자가 중도에 읽기를 포기했는지 아니면 끝까지 읽었는지를 알려준다고 한다. 그 근거는 킨들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다. 더 이상의 하이라이트가 없는 쪽(page)은 바로 독자가 읽기를 포기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하여 독자들이 구입한 책의 완독 비율과 중도 포기 비율,그리고 어느 쪽(page)에서 중단했는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가디언은 이러한 방식의 통계가 합당한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① 인쇄하여 책을 읽는 독자 ② 하이라이트 기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독자 ③ 초장에 맛깔나게 쓰다가는 쪽수를 더해갈 수록 점점 재미없게 쓰는 작가, 는 계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지적하

면서 이는 통계의 오류라고 말한다.

 

물론 e-book을 인쇄하여 읽는 독자의 비율과 하이라이트를 사용하지 않는 독자의 비율 모두 포함한 분석 자료의 결과라면 호킹 지수를 더욱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어째 거나 가디언이 소개하고 있는 호킹 지수의 예 또한 흥미롭다. 가디언에 따르면「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의 호킹 지수는 25.9%라고 한다. 책을 읽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예로 든 것을 보면 많이 팔린 책이리라 짐작하며 최근 한글 번역본이 출간된 책으로 알고 있다. 

 

 

더불어 가디언이 악명 높은 호킹 지수를 자랑하는 도서도 소개하고 있는데, 미국의 작가 David Foster Wallace 의 「Infinite Jest」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이 책은 호킹 지수 6.4를 기록했다고 전한다. 도서 구입 후 끝까지 읽은 사람의 백분율이 6.4%라는 이야기다. 비율만으로도 놀라운 수치이다. 이 책은 1996년 작으로, 타임지가 선정한 '1923년부터 2005년까지의 영어 소설 100선'에 뽑혔으며 작가는 '20세기 가장 혁신적인 소설가로 평가받았다'는 인터넷 검색 결과가 있었다. 물론 나는 이 저자와 책을 오늘 처음 알게되었는데 작가를 검색해보니 뉴욕 태생의 대학의 교수였고 많지 않은 나이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써있었다. 호킹 지수와 그의 인생 역정은 알고보면 장.난.이 아닌 책이다.  

 

 

 

가디언은 명성이 높은 책 일수록 지수가 더 낮다고 평하고 있다. 여기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등장한다. 지수는 6.6이라고 소개한다. 시간의 역사는 정말로 낮은 수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의 역사보다 한 술 더 뜨는 책도 가디언은 소개한다. Thomas Piketty라는 냥반의 책「21세기 자본,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은 그 지수가 무려 2.4라고 한다. 물론 나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700쪽 짜리 이 책을 독자들은 읽기 시작하여 평균 26쪽에서 포기했다는 기록이다(알리딘 검색을 해보니 국내 번역본은 820쪽이다). 정말 빨리도 포기했다. 하긴, 포기할거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시간 절약, 에너지 절약일 수도 있다.

 

 

알라딘의 세일즈 포인트가 어떤 방식으로 매겨지는지 알수는 없지만 '21세기 자본'의 별점과 세일즈 포인트는 현재  (248) | 세일즈포인트 : 63,212 로 검색된다. 마이 리뷰는 모두 22편이다. 종합 별점이 5개인 것을 보니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유사한 세일즈 포인트를 가진 도서를 베스트 셀러 목록에서 재차 검색해보니 '대화의 신' 이었다.  대화의 신 별점과 세일즈 포인트는 현재 (58) | 세일즈포인트 : 62,700 이고 마이 리뷰는 총 53편이었다. 위의 두 책은 구입하지 않은 책이다. 물론 독자의 범주가 다른 두 책을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큰 의미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달리 비교할 만한 대상도 딱히 없었다 ㅠ.ㅠ

 

 

그런데 진짜 최악은 따로 있었다. 바로 힐러리 클린턴의 책이다. 가디언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And Hillary Clinton beats even Piketty. Her new book Hard Choices scores just 1.9%!  재밋는 표현은 위 두 문장 중 앞의 문장이다. 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길 때, ‘Hillary Clinton은 심지어 피게티 조차도 쩔쩔매게 한다.’ 라고 하면 어떨까... 긍정적인 쪽으로 피게티를 앞질렀더라면 평범한 표현이겠지만 부정적인 문맥에서 beat를 쓰다니, 기사를 읽다가 혼자서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마존 검색을 해보니 킨들 가격 14.29 달러였는데, 세계 최고의 여자, 힐러리 클린턴께서 정말로 이 책을 쓰기까지 어려워도 한참 어려운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호킹 지수는 물론 완전히 믿을 만한 지수는 아닌 듯하지만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모든 책의 지수를 다 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읽는 책의 호킹 지수가 어느 정도일까를 안다면 남들이 구입하고는 완독하지 못한 책에 대한 나의 완독 동기부여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 싶다.   

 

호킹 지수와는 무관하게 구입해 놓고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을 독자들은 몇 권씩 있지 않을까 싶다. 읽고 싶은 마음에 구입한 책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들이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그야말로 쩔쩔매게 할 때 오는 현상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책들을 수권 가지고 있는데, 심리적으로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루 종일 책을 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가 시간이 나도 딴 짖을 하다가는 이미 구입한 책을 미처 읽지 못한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책도 읽어야겠네 하는 생각이 들고, 그때 마다 알라딘의 장바구니에 쌓이는 책은 늘어만 간다. 읽는 속도가 장바구니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거다. 어쩌면 평생 이럴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럴 때마다 매번 욕심을 내려놓아야지 하는데,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PS:

페이퍼의 제목에 약간은 오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처음에 페이퍼의 제목을 '사실은 내가 읽지 않은 책에 관한 페이퍼, 호킹지수(HI)' 라고  하고 싶었지만 너무 길어 축약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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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4-0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프라인 서점이 없어진 이후, 그리고 약간의 경제적 사정이 나아진 이후,

3권의 책을 사서 1권은 완독 (또는 반복 독서), 1권은 50%이상 독서, 1권은 거의 읽지 않거나 앞부분에서 포기 ; 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저의 변명은 `서 있기 위해서는 발바닥의 땅 이상의 땅이 필요하다.`입니다.

그리고 글의 내용으로 보아 호킹 지수는 책을 읽은 비율로 정의해야 맞겠네요.

차트랑 2015-04-01 18:01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안녕하세요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목표를 빠른 시일내에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포기를 목표로 삼으신다는 부분는 쫌.. ㅠ.ㅠ
제 바램의 원뜻은 그런 것이 아닌거 아시지요 마립간님?)

저도 제 발바닥 이상의 땅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랍니다^^
서재를 조만간 찾아뵙고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립간님, 늘 건강하세요~

마립간 2015-04-02 10:40   좋아요 0 | URL
구체적으로 읽은 책과 읽다가 만 책, 읽지 않은 책의 수를 비교 해보지 않았지만, 목표 이상으로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단지 제 글의 의미는 제 자신에게 구매한 책은 모두 완독해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를 풀어준 것입니다.

사 놓은 책을 다 읽고 구매를 하려하니, 오히려 독서가 줄어드는 현상을 느꼈습니다. 여자들은 입을 옷이 있어도 계절마다 옷을 구입한다고 하죠. 옷을 입게 될지는 그 다음 문제이고요. 저는 때가 되면 책을 구입합니다.^^ 제 자신에게 허락한 사치죠.

차트랑 2015-04-02 14:16   좋아요 0 | URL
계절마다 새로 옷을 구입하는 분들을 예로 들어주시니
이제서야 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겠습니다^^

완독의 강박감, 어째거나 강박감은 일단 떨구어내는 것이 좋다고 보는데요
물론 가끔은 강박보다는 오기가 발동해서 읽기도 한답니다
물론 죽을 맛이기도하구요 ㅠ.ㅠ
 

반도이폐한 책

 

능력이 되지도 않으면서 멋모르고 읽다가 더 이상은 읽을 수 없었던 책이 있다. 어느 시점부터는 이해를 동반한 진도를 나갈 수 없던 책, 바로 「리만가설」이다. 저자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좋도록 겁나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말을 믿었나...나는 진짜로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펴보니 내게는 완전 어려웠다. 처음에는 읽어가기가 쉽도록 달콤하게 잘도 썼다.. 소수를 최초로 떠올린 가우스의 가족관계는 물론, 소심했던 그의 성격까지 소개한다. 남의 사생활을 들추어주니 더 흥미로웠던 지 원... 평소의 버릇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좍좍 그어 가며 말이다.

 

 

그러나 쪽수를 넘길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어려워지더니 급기야 중간을 넘어서니, 아... 도저히 더 이상 읽어나갈 수가 없다. 이거는 수학을 잘해도 한참 잘해야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대학 전공 수준의 수학 실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분의 3을 지나는 시점에서 말 그대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반도이폐!

 

많은 20세기의 수학자들이 씨름하면서 시간을 다 보낸 이 빌어먹을 「리만가설」을 읽어보겠다고 덤볐다니.. 아, 증말.... 주제를 몰라도 한참을 몰랐다. 이 책을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하는 폴란드의 로만(Roman) 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냥반이란 말인가...

당대 최고의 수학자 데이비드 힐버트(DAvid Hilbert)는 국제 수학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 가설의 참․거짖 여부를 아직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라고...

 

나는 책을 읽은 당시 100자평일 이렇게 썼다, “뫼뷔우스의 뮤 함수와 임계선을 타고 오르지 못했다...ㅠㅠ but, 수학은 아름답다...”(진의는 의심됨). 그리고 리뷰에 고백했다. “내 자신이 난제를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애써 이해하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하며 위안 삼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이 주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믿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으다. 별을 다섯 개 주고 싶지만 중간부터 이해를 하지 못한 책이라 4개만 주련다.. 다른 분들이 분명 별을 5개 줄 것이다...나보다 더 잘 이해한 독자 분들께서 말이다..”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책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끝까지 읽은 책이 있다.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이다. 이 책 또한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책이다. 과거에는 100자평을 곧잘 쓰곤 했는데, 당시 나는 100자평을 이렇게 썼다, “페럴만을 존경한다....결코 그가 난제를 해결해서가 아니다...” 라고.

 

학자들은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고 존경의 대상이며 때로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학자의 또 다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굿 윌 헌팅」이 바로 그러하다. 주인공 윌 헌팅은 자신이 풀이한 문제를 MIT 공대의 수학 교수가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린다. 바로 그때, 명예를 우상처럼 아끼는 제랄드 램보 교수는 불에 타고 있는 종이를 허겁지겁 줍는다. 탐욕으로 가득 찬 보물 탐험가가 실수로 보물을 바다 속에 빠트리고는, 가라앉고 있는 보물들을 바라보면서 기겁하여 전신을 부들부들 떨듯 말이다. 자신은 풀 수 없는 식의 답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풀이가 불에 타버리고 있으니 교수는 그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 장면을 보는 나는 되려 그 교수가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언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 영화의 한 장면이 각인되었다. 그러나 페럴만은 그런 류의 학자가 아니다.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공식들이 열거되고 있지만 끝까지 읽었다. 나는 여전히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모르면서도 끝가지 읽어 간 책이 또 하나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학생 때의 일이다. 당시 책이 겁나 두꺼웠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은 것은 오기가 발동한 탓일 것이다. 이해는 잘 못하지만 끝까지 읽어는 보겠다는 그런 류의. 마지막 장을 넘기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몇 권을 쌓아놓고 있었지만 다른 책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느 부분은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고, 어느 부분은 정말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책이지만 끝까지 읽었다는데 의미를 둔 그런 책이었다. ㅠ...

 

 

 

 

친구따라 강남 간 책

 

남들이 읽는다고 주제를 모르고 친구 따라 강남 간 책이 있다. 물론 다 읽었고 당연하게도 나는 좌절했다. 다름 아닌「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이다. 다행히 난이도를 낮춘 책이 이후 출간되었다. 독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난이도가 높다는 것이었고 이에 부응한 책이 새로 출간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구입,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이 책의 전설은 결코 괴담이 아니다. 전설적인 그 괴담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호킹 지수’ 이다. 호킹 지수 5를 기록한 이 책은 그 난이도를 잘 말해주는 조사 결과였다.

 

호킹은 자신과 물리학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대중 강연도 마다하지 않았던 호킹은 책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여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를 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대중을 위한 물리학을 알리는 일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님을 호킹은 잘 알고 있었다. 하여 호킹은 신중했고 이 책을 기획하는데 아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무지 쉽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첨단 물리학이 어디 녹록한 내용이던가. 호킹은 책을 써 놓고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출판사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가급적 널리 알려진 출판사를 택하려고 애썼다. 급기야 공항 내 서점에 책을 다수 집어넣는 출판사를 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바로 편집자였다. 편집자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자신이 원하는 책을 출간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호킹은 편집장을 만나기로 했다. 자신의 책을 내줄 편집장에게 자신이 책에 쓴 내용을 가르치기로, 물리학을 공부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1년여 이상의 시간에 걸쳐 가르치고 공부했다. 편집장은 호킹의 가르침으로 물리학의 내용을 이해했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는 호킹의 이러한 철저한 준비과정과 노력을 통해 세상에 나온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킹 지수 5를 기록하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킹과 그의 책을 사랑했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들은 거의 없었다. 국내의 어느 천체물리학 전공 교수는 고백했다. 자신이 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한 시점은 대학원에서 논문을 준비하면서 였다고... 한마디로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 에게도 버거운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 책을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덤볐으니... 참담할 수 밖에....

 

그러나 호킹의 그 아름다운 마음은 온전하게 전해온다. 마치 그의 마음을 읽는 듯 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다감하고 친절한 그의 마음 말이다. 결국 ‘레오나르도 몰로디노프’ 라는 인물이 호킹의 이 책을 좀 더 쉽게, 나와 같은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이하여 새로이 썼다고 한다. 제목은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말은 아니다. 호킹의 원저보다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일 뿐.

 

돌아보니 스스로 좌절한 책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이폐하는 일이 생기거나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읽은 책들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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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7첩 반상 - 인류 최고 스승 7명이 말하는 삶의 맛
성소은 지음 / 판미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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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가 많지 않음에도 내게 읽어나가기가 수월한 책은 아니었고, 또한 책이 도착하도 전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도마복음과 동경대전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도마복음과 동경대전, 두 경전은 내게 낮선 것들이었다. 성경은 접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진지하게 읽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고, 동경대전은 부끄럽게도 관련 도서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여 이번 기회에 관련 도서를 구입해 함께 읽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으로 내게 두 가지의 선택이 가능했다. 하나는 본 책을 먼저 읽은 후 초면의 도마복음과 동경대전을 따로이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을 접하기 전에 이 두 내용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하기로 하고, 먼저 「도마복음」을 읽었다. 이어서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신복룡, 선인」을 구입해 「경전 7첩 반상」과 함께 읽었고 아직 끝내지 못했다. 

 

책을 받아 펼치니 추천사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기독교에서 시작하여 불교에 다가갔고, 나아가 또다른 경전들을 접했다. 이 모두가 자신의 서재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을 통한 것이라 한다. 따듯한 안방의 아랫목에서 글을 썼다 한들 독자인 내가 알게 무엇이고, 설사 안다 한들 어떠하리.., 그러나 저자는 머리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접했다고 한다.

 

추천사를 지나면 프롤로그를 만나게 된다. 나는 이런 프롤로그는 처음 읽어보았다. 내 독서의 바닥을 훤히 드러나 보이게 하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 담겨있었다. 예리한 날이 가슴을 파고들듯 아프게, 그리고 다시 아름답게 다가온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인문은 고통과 위기에서 피어난 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혼란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창조의 원동력이 아닌가. 지금 나의 삶이 위태롭고 아프다면 여태껏 잊고 살았던 ‘나’ 라고 하는 꽃망울이 터져 나오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1쪽

 

나는 이토록 가슴을 울리는 프롤로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더불어 나의 독서가 그 얼마나 빈약한 것이었단 말인가... 경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만 저자의 정신에 경도되고 말았다.

 

7가지의 경전은 하나로 통한다, 바로 깨달음이다. 마치 자신을 낮춘 물이 흘러 큰 바다, 한 곳에 이르듯 말이다. 다만 그 표현이 다를 뿐이다. 깨달음이야말로 경전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 하여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 이 자유는 방종과는 절대적으로 구별되는 자유이다. 기독교에서의 깨들음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요, 불교에서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요가와 도덕경 역시 그러하다. 나를 아는 것이다. 탐욕과 욕망을 버리는 것, 나의 집착과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자유로움이다. 하여 우주에 닿는 것이다. 다만 각각의 경전들은 깨달음으로 가는 안내를 위해 각기 다른 방편을 사용했을 뿐이다.

 

인간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은 인간은 깨달음이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깨달음이 있어야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만이 필요이상으로 욕망하고 탐욕 한다. 필요이상의 욕망과 탐욕은 나 자신은 물론 다른 모든 존재에게 유해하다. 그 다른 존재가, 다른 사람 다른 사회 그리고 다른 동물이든 식물이든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환경이든 말이다. 우리 사회가 늘 불균형으로 인해 아프고 병들어가는 이유이다.

 

'스스로 그러함’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인간에게 내어준다. ‘스스로 그러함’은 본디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그러함’을 깨닫지 못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貪瞋癡)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탐진치’는 그칠 줄 모르는 탐욕, 끝없이 욕망하는 그 어리석음, 그 탐욕을 이루지 못할 때 오는 노여움이다. 한마디로 탐(貪)은 ‘스스로 그러함’의 대척점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이다.

 

깨달음은 나 자신에게는 물론 나 이외의, 우리 환경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 도움이 된다. 중용(中庸)의 표현을 빌자면, 만물을 생육하는(萬物育焉-만물육언) 존재가 되는 상태가 아닐까.

 

경전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도마복음이었다. 기독교의 경전으로 평소 알고 있던 기독교의 내용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러한 편견은 기독교의 정신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던 나로 인한 것이었다. 하긴, 성경이 집에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으니 말이다. 도마복음은 우리에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31쪽, 도마복음

진정한 자아를 아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이며, 자아와 신성은 동일하다.

24쪽, 도마복음

 

내게 도마복음의 가난이란, 탐을 버린 가난으로 이해된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세상을 굶는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은 인간의 탐욕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의 의미로 파악된다. 저자의 말대로 하늘나라는 공(空), 비어있는 곳이니 말이다. 탐을 버린 가난은 정신의 풍요를 뜻하며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임을 예수께서는 알려주시지 않았던가... 번뇌를 끊어내는 금강경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대목이다. 또한 우파니샤드는, “매일 덜어내며 가는 매 순간의 완성”이라고 가르치고, 도덕경은 “하루하루 없애간다”고 말한다. 도마복음의 가난이란 물질적 빈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유교의 가르침과 정신의 풍요로움, 깨달음으로 가는 상통하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매우 인상적인 또다른 부분은 ‘자아와 신성은 동일하다’고 말하는 도마복음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이다 싶은데, 그 말은 ‘네가 곧 부처니라’ 였다. 기독교의 경전이나 불교의 경전은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성이 우리 안에 있으니 깨달으면 곧 우리는 부처가 된다. 도마복음은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씨앗을 품고 있다’ 라고. 도마복음은 그 씨앗의 싹이 트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싹이 트는 순간 우리의 자아는 신성과 동일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신성을 가지게 되다니... 내게는 충격적인 도마복음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기독교와 불교는 거리가 너무나 먼,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영원한 상극의 그 어떤 것으로 인식해왔던 것은 크나큰 나의 편견이었음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바가바드 기타는 말한다,

요가’라는 말은 신에게 닿는 것 178쪽

인간의 본성인 아트만과 우주의 브라만은 하나 179쪽

 

동경대전은 말한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인여천(思人如天), 사람을 하늘님처럼 섬기라 209쪽

 

경전들은 인간이 도달 불가능한 그 무엇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두툼한 껍질을 벗어내고 맨 발로 걸어야 할 그 길을 안내하고 있다. 바로 깨달음이다. 당신은 나보다 더 행복하겠지만 나도 작지만 행복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길이 이곳에 있다. 행복은 권리하고 말한다던지 추구의 대상이라고 말하기에는 왠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마치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행복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행복은 본디 나의 것, 스스로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것인데 말이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었던 것을 잃어버린 후 오래도록 그것을 되찾지 못했다. 스스로의 깨달음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바가바드 기타는 말한다.

 

경전들은 한입처럼 말한다. 인간 안에 신성이 있고, 네가 곧 부처이고, 아트만과 브라만은 하나이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고. 이 모두는 우리에게 한결같은 목소리로 깨달음을 전언하고 있다.

 

누군가는 말했다. 인간은 무지개를 보면 닿아보고 싶어 하고. 지평선을 보면 가보고 싶어진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인간은 맨 손을 쥐고 있어도 펴보고 싶어 한다고. 이는 인간의 본능이며 창조력의 원천이라고.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 탐욕의 원천이기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은 경전의 의미를 전하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을 산산이 깨트려준다. 그동안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문자와 사유(철학)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틀렸다. 문자가 있고 사유가 있다 한들 동물보다 못한 짖을 해온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 이 책을 읽은 지금은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경전이 있고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라고. 인간은 경전을 존중해왔지만 동시에 늘 경전을 배반해왔다.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은 모두 같은 말이다. 원수마저 사랑하라 했지만 우리는 그 원수를 지독하게도 미워했다. 인지상정이라지만 이것은 깨달음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믿음을 종교라 말한다면 모든 믿음은 종교랄 수 있다. 유일신과 그 교리만을 종교라 한다면 유불도는 종교라 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유대와 기독교는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본질은 종교에 관해서가 아니다. 종교를 초월하는, 스스로 그러한 인간의 자아로의 회귀이다. 흔히 말하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 경전들을 옭아매기에는 그 말씀이 너무나도 크고 위대하다. 그동안 갇혀있던 경전의 울타리를 걷어낼 때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자주 듣던 말, ‘진리’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그 진리로 가는 방편을 안내하는, 일종의 작은 깨달음을 주는 더없이 귀한 진리의 책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한 발 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경전의 세계로 뛰어들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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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판에서 새로이 살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40쪽, 아래 5줄, “더 큰 나라를 일구는 일깨움의...”에서 ‘나라를’은 ‘나를’의 오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문맥상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2. 저자는 본 책에서 다석 류영모를 6회 이상 언급하고 있다. 29쪽과 115쪽에서는 유영모, 104, 114, 115, 125 쪽에서는 류영모라고 쓰고 있다 (115쪽 상단에 류영모, 하단에 유영모 두 번 등장함). 누군가가 다석께서는 자신의 성을 ‘유’가 아닌 ‘류’로 불리기를 원했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어째 거나 독자로서는 ‘유’이든 ‘류’이든 하나로 통일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은 출판사가 서평 희망자에게  제공해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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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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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 세월 그늘에 가려 그 어느 누구도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던 명리학에 대중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시도한 저자에 우선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

 

과거 조선에서 글줄을 읽던 다수가 스스로 점을 치거나 생년월일로 좋고 그름을 알아보곤 했고, 조선 정부에서는 관상감에서 주최하는 음양과(陰陽科)를 통해 천문, 지리, 역수및 점산의 기술직을 뽑아섰다하고, 명리학은 명과학(命課學)이라하여 네사람을 뽑았고 교수는 종 6품이었다 한다.

 

성웅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적과 싸움을 치루기 전에 점을 쳤다고 쓰고 있다. 물론 잘 나올때까지 반복했을 것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주희는 어느 날 목숨을 건 상소를 닦아 놓았는데 스승의 안위를 걱정한 나머지 제자들이 강력히 만류했다고 한다. 하여 역점을 해보고 결정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결과는 천산돈(天山遯-물러나 숨으라)이 나왔다고 한다. 하여 주희도 괘를 보고는 역린을 건드리는 일을 포기했다는 전설이 있다. 과거에는 명리든 역점이든 음양오행으로 알아보는 일종의 미래 예측법 이었던 것이다.

 

우리말에 ‘아이고 내 팔자야~’하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과거 조상들은 그 팔자를 어느 정도는 수긍을 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팔자(八字)란 자신의 생년월일을 나타내는 천간과 지지를 말하는 것으로 모두 8글자인 탓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첨단 디지털 과학의 시대에 음과 양으로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는 일이야말로 아주 낙후되고 고리타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음양(陰陽)과 오행(五行) 알아두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확실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음양 오행은 비단 명리(命理)뿐 아니라 역점, 의학, 심지어 조선의 국시였던 성리학을 모두 관통하는 우주의 이치라고 한다. 특히 사상의학은 음양과 장부의 허실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하는 분야이고 이에 관심이 많은 한의학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명리가 대우를 잘 받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학문으로서 라기 보다는 미래를 단순히 점치는 점의 성격으로 이해하고 있고, 특히 명리 상담사가 나쁜 미래를 예측해줄 때, 기분이 상당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담사의 말이 자꾸 떠올라 잘되던 일도 안되더라는 것이다. 

 

명리는 우리 말에 있는 것처럼 8글자인 것은 사실이나, 그 8글자가 다는 아니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대운에서 또 다른 2 글자를 만난다. 그리고 매년 새로이 맞이하는 2 글자를 더하고 매달 맞이하는 2 글자를 또 더하면 모두 14글자가 운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일과 시간까지 합하면 총 18글자인 셈이다. 명리에서는 18글자의 음양 오행이 서로 운행하면서 형충파해합(刑沖破害合)을 연속하고 있는 것이다.

 

천간과 지지는 알다시피 빙글빙글 돌며 움직인다. 저자가 말하는 조커(용신)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글자이다. 그러나 그 글자가 한 바퀴를 회전하는 데는 천간에서 10년, 지지에서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말은 유리한 때가 있으면 반드시 불리한 때도 있다는 뜻이다. 춘하추동은 한 사람의 8글자에도, 조커인 대운에도, 그리고 해와 달 그리고 시간에 모두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여 불리한 때가 돌아오는 시기를 미리 알고 그에 맞는 대처법을 찾아내는 것을 명리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사적인 경험상 유리한 때를 맞이한다는 말은 잘 들어맞지 않아도, 불리한 때를 맞이한다 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즉, 좋은 일은 안 맞아도 불리한 일은 잘 맞아떨어지더라는 얘기다.

 

달도 차면 기울게 마련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또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불리한 시기가 찾아온다하여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적절하게 대처한다고 여기고 슬기롭게 헤쳐나간다 마음먹으며, 그 시기가 지나면 또다시 유리한 때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아쉬운 점은, 저자가 명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8글자가 가지는 단순한 오행의 수준 만을 다루어 독자들에게 명리에 대한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저자가 용신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명리에서 용신은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그 용신을 잡는 일은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 조차도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용신을 잘못 잡으면 거꾸로 가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밝혀둔 대로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이 존재한다. 그러나 형, 충, 파, 해, 합과 반합의 관계는 단순한 오행의 이해 그 이상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내용들이다. 때로는 매우 불리하던 글자, 즉 용신의 반대인 글자가 되려 나를 이롭게하거나, 반대로 용신이 나를 해치는 변화를 맞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너무 부족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지 않았나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격국론은 명리의 정점이나 다름없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예가 종격(從格)이다. 종격은 말 그대로 네 기둥인 원국을 따라가는 형국이라는 의미이다. 8글자의 오행들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있기 때문이다. 종격의 경우 그 쏠림현상이 지나쳐 대운이나 해운에서 도저히 균형점을  잡아 줄수가 없다. 하여  같은 오행의 글자가 대운과 해운에서 자신의 네 기둥을 따라가는 것이 되려 이롭다.  그러나 명리의 꽃이라 항 수 있는 격국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여 전체적으로 명리를 너무 가벼이 접근했다는 아쉬움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더더욱 아쉬운 것은 글을 전개해가는 저자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인문학적인 접근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고 너무 무겁게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결코 가벼이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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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03-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서 다섯번째 문단 `우리`가 아니라 `유리`아닌가요?^^

주역도 그렇고 명리도 그렇고,
결국은 `하늘`=`신`을 읽어내려한 것이었고, 거기서 뻗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명리를 가볍게 보고, 가벼이 접근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삶을 그렇게 만만히 봤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삶을 거기서 분리시켜 하늘=신을 읽어내려 하느냐,
아님, 하늘을 자연과 동격으로 놓고,
그 자연에 인간을 집어넣어 자연의 흐름으로 읽어내느냐, 하는 것이 ...
주역과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차트랑 2015-03-21 10:19   좋아요 0 | URL
어인 행차이시옵니까 양철나무꾼님?
반갑습니다~

말씀해주신 부분 그대로 오자입니다.
하여 교정했습니다
저자가 완전생략하고 넘어간 격국론에대해
너무 짧게 언급한 것 같아 이참에 약간 추가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저자가 들떠있는 분위기라 아쉬웠습니다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늘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