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발견들과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실재의 상에 대해서 느끼는 흥분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점차 더해가는 임박감을 느끼면서 나 자신이 연구해온 여러 영역들을 중심으로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물론 그 연구의 상세한 내용은 전문적인 것이지만, 나는 복잡한 수학공식 없이도 폭넓은 개념들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내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를 바랍니다. 2001년 5월 2일 케임브리지에서, 스티븐 호킹

                       「호두껍질 속의 우주」

 

 

 

자신이 가진 지식을 누군가에게 전달한다거나 이해시키는 일을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매우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이고 상대방의 지식이 그 분야에 전무하다시피 하다면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한 때, 매우 실력이 있는, 최상위 대학 출신의 새로운 과탐선생이 왔다. 학생들은 유능한 선생의 가르침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분을 능력자라고 자랑도 했다. 그런데 수업을 한동안 받던 학생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소통이 잘 되는 학생을 불러 상황파악에 나섰다. 다수의 학생들이 수업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의외의 반응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선생님이 너무 어렵게 가르쳐요, 였다.

 

하여 과학담당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은 학생들이 수업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잘 몰랐다, 고 했다. 수업 시간에 대답들을 아주 잘 하길래 잘 알아듣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며 난이도를 낮추어 수업을 하겠노라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이런~ 하고는 다시 담당을 다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진짜 놀란 사람은 과학 담당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저만치 마주오던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 둘 다 깜짝 놀란 꼴이었다. 아 이거, 누가 놀라워해야하는 것인지. 하여 어찌 그대가 놀라운 일이냐고 물었다. 과학담당의 말은, 이보다 어떻게 더 수준을 낮추어 가르쳐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였다. 자신은 난이도를 최대한, 최대한으로 낮추어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며 말이다. 아 이거, 참으로, 참으로 난감했다.

 

고등학교의 과학은 첨단 물리학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라고나 할까, 아니면 새 발의 피의 피? 어째 거나 그 첨단 물리학을 고등학생들 보다 못한 나와 같은 대중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리고 싶어 한 이가 있었으니, 정말 야무져도 진짜 야무진 꿈을 꾼 냥반, 스티븐 호킹이 바로 그다.

 

물리학과 수학계에는 수많은 학자들이 있고, 그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즐비할 것이다. 그 중에는 아인시타인보다 더 축적된 지식을 가졌고 능력이 더 뛰어난 인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대중들의 무관심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학자들의 무관심은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대중들의 수준에 맞게 내용을 이해시킬 수 있다거나,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그럴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서로에게는 없다는 것이 더 타당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첨단 물리학을 대중들에게 직접 전달하겠다는 생각은 어쩌면 무모한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런 무모함을 알면서도 시도한 냥반이 바로 이 냥반인 것이다. 그는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대중들에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란 말인가? 그것은 학자의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논어, 헌문, 41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자로숙어석문(子路宿於石門) 자로가 석문이라 지방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신문왈(晨門曰) 해자(奚自)? 신문이 묻기를, 어디에서 오는 길이오?

자로왈(子路曰) 자공씨(自孔氏) 자로가 답하기를, 공선생님 댁에서 오는 길이오, 하자

왈(曰)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 문지기가 말하기를, 안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걸 하는 사람 말이오?

 

石門(석문): 노나라의 지명으로 남쪽 외성문(外城門)이 있는 곳

 

현토 번역에는 ‘(신문晨門이라는 사람은) 현자로서 관문을 지키는 포관(抱關) 직업에 은둔한 자인 듯하다’ 라고 설명을 덧 붙이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주희의 짓일 것이다. 그런데 주를 읽는 사람으로서는, 문지기의 일을 직업으로 하는 은둔자가 있단 말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 여하튼 당시의 은.둔.자.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객관적으로도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집주에서 호씨(胡氏)는 덧붙이기를, '신문(晨門)은 세상의 불가능한 일을 알고 하지 않는 자이다. 이 말로써 공자를 조롱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천하를 봄에는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할 때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라고 했다.

 

어째 거나 이 대목은 공자의 인물됨을 잘 알려주는 부분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올바른 일이라면 행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사람,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중을 향한 호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극히 사적인 일이지만 나는 과학자들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중들이 과학 혁명의 수혜를 입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미지는 내게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물리학이 과거 인류에게 어떻게 기여해 왔던가. 중성자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채드윅이 원자의 질량문제를 해결해주자 페르미는 중성자와 양성자를 충돌시켜 방사성 원소를 개발해내고 이 공로로 또한 노벨상을 받는다. 이어 오토 한과 그 제자들은 아인시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원리(그 유명한 E=MC제곱)이용,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창안해 낸다. 오토 한 역시 이 공로로 노벨상을 받는다.

 

핵폭탄 제조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과학자 질라드라고 한다. 질라드는 오토 한과 그의 제자들이 히틀러와 영합하면 유럽은 독일의 지배하에 놓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토 한은 독일의 과학자였던 것이다. 질라드의 설득으로 아인시타인은 루스벨트에서 핵무기의 제조를 독일보다 먼저 해내야 할 것이라는 서한을 보낸다. 1939년 가을의 일이다. 하여 미국은 맨하탄 계획에 돌입한다. 맨하탄에 세계의 가장 유능한 과학자들이 모여들었다. 질라드는 물론이고 페르미, 베테, 프랑크, 텔러, 보어 부자, 맥밀런, 파인만등 무려 4,500명의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총 집결, 지휘 총책임은 오펜하이머였다. 그렇지 않은 과학자들도 있었지만 줄줄이 노벨상 출신들이다. 물론 이 결과물을 일본에 두 번 사용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째 거나 그 덕분에 우리는 물론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했다.

 

논점은 첨단 물리, 수학자들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 오는 것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살상용 무기는 적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에게 사용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진 것이다. 당시 맨하탄 계획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학계의 최전선에 있던 인물들이었으며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능력자들이었다. 일부 학자는 이러한 위험성과 반윤리적 도덕성에 괴로워했다. 맨하탄 계획의 총 책임지 오펜하이머는 물론이고 핵 폭탄을 제조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아인시탄도 끝내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독일의 화학자 하버는 질소비료를 개발하여 농업생산량에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강력한 살상 무기인 염소가스를 개발, 사용함으로서 그야말로 셀 수도 없는 사람을 희생시키는데 앞장섰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하버의 피는 유태계였다는 점이고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사실은 하버 스스로, 자.발.적.으로 독가스 개발에 나섰다는 점이다. 하버 덕분에 독일, 프랑스, 영국은 독가스를 만들어 서로에게 사용한 결과 10만여 이상의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 다른 최악 중 최악은 그런 하버에게 노벨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하버에게 중요한 것은 윤리와 휴머니즘이 아니었다. 자신의 재능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던 부인은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는 그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렇듯 시대의 첨단 과학은 늘 명암이 존재한다. 과학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양 극단의 혁명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 첨단 과학인 것이다. 이러한 애증이 교차하는 첨단 과학계로 대중들에게 초대장을 보낸 사람이 스티븐 호킹이다. 대중은 비록 과학의 최전선을 직접 경험하지 못할지라도 과학의 방향과 그 목적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호킹은 자신의 연구 분야가 매우 전문적인 것으로 제대로 이해가기 위해서는 수학공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이 첨단 물리학의 수학 공식을 적용시켜 해당분야를 접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폭넓은 개념’에 있다. 자신은 대중들이 첨단 물리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접근 이해를 소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동양 고문에 등장하는 한자들을 죄다 익혀서 직접 읽어가며 유불도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틴어나 영어를 줄줄이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서구의 사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비록 우리가 원서를 직접 읽을 수는 없지만 중간 역할을 해주는 매체를 통해 얼마든지 이해하고 사유할 수 있듯이, 호킹 자신은 그런 매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불구하고 하려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이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한 때문이라고 본다. 호킹은 「시간의 역사」를 출간하고 무려 4년 동안이나 Sunday Times 베스트 목록에 올랐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된 듯하다.

 

(시간의 역사가) 읽기 그다지 쉽지 않은 과학서라는 점에서 무척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시간의 역사보다 더 읽기 쉬운 다른 종류의 책을 쓸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두껍질 속의 우주

 

연구에 바빠 책을 쓸 시간이 허락되지 않음을 고백하면서도 그는 다시 「호두껍질 속의 우주」를 대중들 앞에 내 놓았다. 호킹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우리(대중)가 비록 달걀을 직접 낳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달걀이 싱싱한 것인지 아니면 상한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로 이해해도 좋다고 본다.

 

지구상의 가장 획기적인 변화 혹은 혁명을 일으키는 주체는 과학이다. 흔히 말하는 패러다임의 혁명은 늘 과학에서 시작했다.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토마스 쿤이다. 그는 패러다임이라는 기존의 용어를 일반화된 용어로 정착시킨 장본인으로 자신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를 현대인들사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저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쿤은 과학과 철학의 만남을 대중에게 그야말로 인식시키려 한다.  그는 과학적 본질의 왜곡을 염려하면서 과학철학을 탄생시켰다. 쿤은 ‘대화하는 공동체의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대중들이 과학 혁명을 이해해주기를 바랐으며 사유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쿤에게 과학이란 단지 객관적인 지식의 탐구가 아닌, 사회가 공히 인정하는 합의, 즉 패러다임을 이끄는 활동이다. 과학이 절대로 대중과 분리될 수 없는 이유이다.

 

첨단 과학이 대중과 함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중이 가지는 보편적인 윤리의 요청과 학자들의 윤리적 요청이 질적으로 다를 때,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사유를 과학자들에게만 미루어서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과학에 관한 사유를 하지 않을 때, 인류는 과학의 눈부신 편리함에 일방적으로 도취되어버리고 만다. 과학의 발달이 인류에게 그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었으며 동시에 그 얼마나 많은 비극을 불러왔던가. 과학은 늘 우리와 함께해왔고 과학이 배타적일 때 참극은 늘 준비되어있는 것이다.  

 

제 아무리 물리학의 천재들이 다루는 분야라 할지라도 과학적 윤리와 보편적 도덕의 요청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대중과 분리시킬 수 없고 분리해서도 안된다. 하여 대중과 과학자들의 소통은 중요한 것이다. 물론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본적은 없지만 자신의 책이 널리 읽히고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호킹의 설레는 마음을 「호두껍질 속의 우주」에서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과학을 이해하고 사유해야 하는 이유이고 호킹이 바라는 바 또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힘든 일인 줄 알면서도 그는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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