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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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글을 쓰려하니 그나마도 잊어버린 느낌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약속이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자신과의 약속이자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디에선가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에의 약속이다. ( 책이 나올 때 쯤은 근황에 변화가 있을 때였다. 하여 제 때 쓰지 못하고 이제서야 이 글을 쓴다.)

 

사람들의 병증은 특이하게도 깊이 침투하여 그 현상이 겉으로드러날 때까지는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이 그러하다보니 자각을 하고 난 후에는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어진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건상 상태를 주기적으로 검진한다.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이겠다.

 

최근 크고 작은 사고들이 뜻밖에 발생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안전 불감증이라고도하고, 또 누군가는 도덕 불감증이라고도 한다. 그 어느 것이 되었든 우리는 사회 제도와 구조에 대한 불감증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염려하게  하는 요인들은 다양하지만 이 책은 현직 판사로서 현재의 청소년들과 그 미래에 대한 깊은 우려와 애정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학업 중도탈락자 6만 여명, 가출 청소년 20여만, 소년원 출신 성인범죄율 67%, 소년범 재비행율 76%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아니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교과서는 청소년기를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발전시켜가는, 한 인간으로서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독립성, 자신감, 긍정적 혹은 부정적 사고의 방향, 인격, 개성, 도덕성, 인간관계, 인지력, 정서등, 한 사람이 사회에 진출하여 발휘해야 할 모든 개인적 자질을 청소년기에 이루어 낸다는 뜻이겠다. 청소년기는 한 마디로 한 개인의 일생에 걸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시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은 개인의 성품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나아가 자녀를 낳아 성장시키며 사회를 구성해가는 일원으로서 가장 기본적 단위인 가정이라는 틀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하나의 나라를 국가(國家)라는 말로 표현 한다.  나라의 근본을 가(家), 즉 가족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 가족의 일원이자 미래  사회의 주인이 되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장차 국가의 문제와 동일하다.  그런 우리의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그야말로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있다.

 

소년의 죄는 과연 누구의 죄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범죄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영국의 엔클로저 운동과 토마스 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토머스모어는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청소년의 문제를 그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로 인식할 필요성이있다. 사실 청소년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 바닦을 깔아 놓은 기성세대의 문제이다.

 

기성세대가 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먹으며 성정해왔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들에게 어른들이 내밀어 주는 것이 독성이 강한 음식물인지 아닌지 그들은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회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드러나고 있는 것이 청소년 범죄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과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만 물을 수 있는 것인가...그들은 기존 사회라는 환경을 벗어 날 수 없으며 그 환경은 바로 기성세대들이 제공한 그대로라는 점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무죄일지도 모른다. 그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한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이니 기성세대야 말로 유죄인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 할 때, 청소년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다음은 저자의 견해를 요악한 것이다.

 

사회는 그들에게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인격과 자기 함양의 건전한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마땅하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책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왕에 죄를 범한 청소년들에게는 관용과 용서가 필요하다.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법은 공정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들에게 죄를 묻기 이전에 왜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사회 스스로가 되물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도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어야 한다.

 

 

저자는 용서를 위해서는 희생과 양보를 전제로 해야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 용서는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무라고 주장한다. 이 책무를 잘 이행하는 사회가 인간을 존중해주는 사회이고 건전한 사회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기존 환경에서 발생하는 그들의 분노, 적개심은 청소년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얼마나 위태로운 사회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내가 아프고

 

내가 아프면 그대가 아프고

 

또 그 사회가 아프고

 

우리 모두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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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4-05-27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책은 잘 모르겠고...
오랫만에 돌아오셔서 글을 쓰려고 하시는데, 그나마 잊어버린 느낌이라고 하셔서,
그렇지 않다고...
잘 읽고 응원하는 저같은 사람이 이렇게 있다고 말씀드릴려고 몇 자 남깁니다.
계속 명징하고 좋은 글들 남겨주실거죠?
헤에~^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