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ㅣ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평점 :
2권에서 강신주는 1권을 읽은 독자에게 기대 그 이상의, 보다 훨씬 더 많은 제자백가의 그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저자가 단단히 마음먹은 것 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래, 관중과 공자에 관하여 이 정도의 것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저자는 이 저서에서 관중과 공자에 관하여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들을 토해낸다. 어쩌면 많은 인내의 시간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자가 이러한 생각을 글로 출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왜냐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공자 이전에 민중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제나라를 패국으로 만든 관자의 통찰력을 높이 평가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공자의 수고스러움이 안쓰럽게 느껴지며 때로는 시대가 소망하지 않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관직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천하를 주유하는 초라한 공자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공자가 누구던가...조선을 500여 년간 지배해온 이념의 창시자가 아니던가. 조선의 중심 이념에는 공자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조선은 공자를 모신 사당에 문묘 18현을 배향하기까지 그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싸움을 해왔던가... 공자 없는 조선은 상상 할 수 없으며 공자가 곧 조선을 지탱해온 힘이었다는 것을 과연 어느 누가 부정할 것인가. 공자의 힘은 조선의 국왕보다도 더 컸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 등장하는 왕들이 신하들에게 쩔쩔매는 장면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은 우리 역사가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자는 관자 앞에서 너무나 초췌한 모습 그 자체 일 수밖에 없으니 저자는 그 얼마나 고민스러웠으랴. 저자는 이 저술을 통하여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공자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깨버린다. 이처럼 공자가 대중 앞에 벌거벗은 몸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공자 관련 서적들은 공자를 보기 좋은 포장지로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것을 드디어 들켜버린 셈이다. 공자의 위상에 큰 손상일 입힌 저자 강신주에게 돌팔매질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 분명하다. 공자는 그들에게 왕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기에...
저자는 그렇게 강보에 꽁꽁 싸맸던 공자의 껍질들을 하나 씩 벗겨내어 마침내 그 본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포장하지 않은 공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쩌면 골수 유학자들에게는 심히 불쾌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조선이었다면 저자가 그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은 제로 퍼센트인 것이다. 독자들에게 공자를 관자보다 훨씬 못 미치는 인물로 각인시킬 수도 있는 저술에 분노했을 것이며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감추고 싶었던 유학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노출 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자신들의 지배 이념을 그토록 통렬하게 드러내다니…….
관중과 공자가 선택한 키워드의 차이점
관중과 공자는 시대적인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관중은 자신의 힘으로 그 어떤 나라이든 패국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공자는 주례를 바탕으로 나라를 바로 세워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관중은 환공이 이끄는 제나라를 패국으로 만들기 위해 전례 없는 생각을 해낸다. 바로 민중의 중요성 인식이 그것이다. 반면 공자는 관자보다 독자들에게 훨씬 더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관중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주(周)나라의 예(禮)를 회복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겠다는 일념, 즉 지극히 보수적인 경향을 보여준 것이다. 정치에 관한한 대 선배인 관자의 엄청난 성공 사례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관중을 벤치마킹하지 않고 정 반대의 길을 택한 셈이다.
사실 관중과 공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패국을 완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을 어느 곳에 두느냐이다. 관중은 패국의 열쇠를 민(民)에게서 발견한 반면 공자는 흔히 인(人)이자 백성(百姓)에게서 찾으려 했다는 점이다. 2권을 읽기 전에 1권을 읽는 것이 바른 순서임에 틀림이 없는 것은 인민(人民)이라는 용어에 대한 올바른 개념의 이해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인민(人民), 백성(百姓), 군자君子, 소인小人 의 용어 인식
요즘이야 인민, 백성이 모두 같은 일반인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주나라 시절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주나라의 인(人)은 경대부등 지배세력을 가리키는 말로 공자가 말하는 군자에 해당한다. 백성(百姓)이라는 용어 역시 당시에 성을 가진 경대부등의 지배세력을 뜻하는 용어였다. 人의 상대적 용어인 민(民)은 전쟁에 져 주나라에 끌려온 노예로서 한 쪽 눈을 찔러 보이지 않도록 했고 노동력에 동원되거나 필요에 따라 제사의 희생물이었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군자(君子)의 상대적 용어인 소인(小人)은 피 지배세력을 뜻하는 말이다.
人과 民이라는 말을 사용하다보니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라고 하던데 혹시나 춘주 전국시대의 인민이 가지는 의미를 행여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덜컥 인다.
위의 용어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관중은 피지배 세력인民을 패국으로 가는 키워드라고 생각했고 공자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 民을 다스리는 지배세력인 人을 키워드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신념에 따라 관중은 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성의를 보여준다. 물론 꿍꿍이는 제나라를 패국으로 이끌기 위한 사전 포석이지만 말이다. 백성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관중은 현대의 복지정책으로 민중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한 셈이다. 민중이 국가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만 국가에 충성하는 존재라는 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백제의 민중이냐 신라의 민중이냐가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가족과 더불어 굶주리지 않고 인생을 노력 한 대로 살아갈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국가가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상황에서 민중의 나라가 신라인가 백제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 않은가. 관중이 민중을 그토록 보살피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 춘추 전국시대, 즉 피지배 세력은 인명으로서의 가치가 존중되지 않던 시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관중은 이러한 민중의 심리를 잘 파악했고 민중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힘썼으며 결국 패국을 이루었다.
관중이 당대의 정치력으로 저 거칠고도 사납기만 하던 춘추 진국시대에 제나라를 최초로 패국으로 이끈 그의 생각보다 사실 내게 더 관심이 가는 인물이 공자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저자가 공자를 포장한 껍데기들을 홀홀히 털어내어서가 아니다. 정이 정호 형제와 송대의 주희를 거쳐 조선에 그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 공자는 과연 당대에 어떤 사유로 인생을 보냈는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정리한 중용을 읽고 논어와 맹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지고한 정신세계는 과연 어떤 근원에서 발원하였기에 조선의 민중들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는가...나는 이것이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조선 선비의 자제들이 태어나 5세에 천자문을 깨우치고 나면 흔히 동양의 고전이라 이름하는 동몽선습, 사자소학, 명심보감을 달달 암송한 후,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거쳐 역경 시경 서경을 기본으로 익혔는데 이를 4서 3경이라 했다. 조선 선비의 자제는 4서 3경 외에 다양한 경전들을 읽고 암송했으며 시서화(詩書畵)에 능해야 했다. 그래서 각 고을마다 성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던 것이다.
물론 과거를 보아야 했으며 과거 시험은 동양의 고전에서 출제했다. 하여 과거를 치루는 선비의 자제들은 주희가 해독한 주석까지도 달달 암기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주희는 공자를 능가하는 교주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입식 교육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듯 조선의 정치적 이념의 발원지인 공자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人과 民이라는 용어의 개념정리가 안된 탓에 상당히 오해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어떤 오해야 하면 공자가 말하는 애인(愛人)이란 사실인 즉 민중을 제외한 경대부(사대부)를 뜻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공자의 애인(愛人)을 마치 요즘의 민중을 뜻한다 생각하고 공자가 참 일반인들을 무던히도 사랑했구나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仁의 대상은 일반인인 대중을 제외한, 조선으로 치면 농공상(農工商)을 제외한 사(士)들 만을 칭하는 매우 제한적인 용어이며 지극히 정치적인 용어인 것이다. 현대로 말하면 정치인들과 관료들 그리고 많은 재력을 가진 기업인들인 것이다. 민중 곧 대중은 공자의 愛와 仁에서 열외자였던 것이다. 공자는 더욱이 민중이 문자를 알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말이 아닌가? 그렇다. 바로 조선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려하자 이를 극렬히 반대하던 조선의 선비들이 그러했다. 공자의 그러한 생각은 중국의 정이 정호형제와 주희를 통해 조선에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한 공자의 이론은 사실상 강력한 패국을 꿈꾸는 군주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왜냐면 공자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배세력들은 실상 군주들에게는 언제든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틈만 보이면 스스로 군주가 되겠다고 덤비며 하룻밤 사이에 아군이 적군으로 돌변하던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기였으니 복례를 외쳐대는 공자의 말이 먹혀들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14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동안 정치를 해보겠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녔던 것이다.
결국 공자가 자신의 신념이 세상에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노나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는 그동안 자신을 믿어주던 제자들마저 상당히 떠나가버리는 이탈 현상이 생긴 후였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켜냈다. 이탈 현상을 막기위해 유학의 본질을 교조적으로 탈바꿈하는데 공자는 극적으로 성공을 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공자의 유학은 종교적인 차원에 다다르게 되어 조선에까지 상륙한다.
공자의 생각은 춘추전국시대의 패국을 꿈꾸는 군주들에게 어필하지는 못했지만 공자는 현재까지 유학의 발원지로 인정받고 있으며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조선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공자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낸 사람의 주장임이 강신주라는 걸출한 사람의 분석으로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현대의 정치이념에 드리워진 관중과 공자의 생각
현대의 정치사에도 관중과 공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정치인들의 이전투구 양상은 사실상 대중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들이 강하다. 그나마 관중의 생각은 현대의 정치 시스템에도 잘 들어맞는다. 곤궁한 대중들을 위해 관중이 노력했던 것처럼 정부도 국민을 위해 노력한다. 이는 대중의 지지를 얻어 패국을 이루려 했던 관중의 뜻과 일맥상통한다.
공자 역시 자신의 생각으로 새로운 정치 질서를 창출하고자 했고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의 사유도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다. 공자에게 모여든 수많은 제자들도 공자라는 인물을 통해 출사하여 명성을 얻고 귀족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적인 판단과 목적을 가지고 공자의 문하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사유는 그의 시대가 요구하는 사유방식이 아니었고 현대의 정치 시스템에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 지배자와 피지배가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사유 방식의 정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분모를 가지는 부분이다.
발견, 아나키스트 강신주님
이 책을 읽으며 매우 인상 깊었던 요인은 꼭 관중과 공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저자 강신주의 사유가 빛나는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을 저술하기위해서 그가 연구해온 뜨거운 정렬과 그 성과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빛나는 대목은 이 책을 통하여 저자 강신주님은 자신의 신념인 무정부주의를 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절절하게 말이다. 이는 놀라운 발견이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그동안 몇 권 되지 않는 책을 읽어온 독자로서 이처럼 무정부주의임을 피력한 저술가가 몇이나 되던가...아마도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 싶다. 번역서는 물론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관중이 제나라를 패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강신주는 자신의 무정부주의를 피력하고 있다. 관중의 정치력이 빛나는 것은 민중을 패자로 가는 키워드로 사유했다는 점이고 민중을 위한 정치를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저자 강신주는 관중의 정치력을 날카롭게 꿰뚫어본다. 이 책이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대목은 관중의 정치력이나 공자의 진정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드러내는 대목이 아니다. 바로 관중의 정치력을 통해 투사시킨 자신의 신념, 바로 그것이다.
국가란 패자로 나서기 위해 국민의 협조가 필요하다. 말이 협조이지 자발적인 복종의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다. 강제력보다는 물론 대단히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자발적 복종에서 발견해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국가라는 강력한 시스템이 내미는 손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자발적 복종은 강제된 복종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통찰력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강자가 보내는 러브콜은 약자가 스스로 강자가 되려는 노력을 망각하게 한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자가 약자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가기위해서 시행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민중에게는 그들이 처해진 삶의 조건에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제공하여 자발적 참여와 복종을 유도해내는 것이다.
국가의 군주는 땅에서 자라는 풀로 소나 양을 키우는 목동과도 같은 존재이다. 군주는 충분한 먹이를 제공한다. 이럴 경우 소나 양은 주인을 잘 따르면 먹을 것을 충분히 얻는다는 신뢰를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가축의 주인은 필요에 따라 그 가축을 자신들의 먹을거리로 삼거나 거래의 도구로 미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국가가 민중을 가장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방식은 민중들이 자신이 지배당하고나 그러한 방식으로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할 때 가능한 일이다. 목동처럼 말이다. 관중의 정치 철학이 현대의 모든 국가, 특히 복지 정책을 통하여 체제의 안정을 영속화하는 작동의 원리인 국가주의 이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통찰한 강신주의 사유가 빛나는 대목이다.
반면 인문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원초적 불평등을 인식하고 있다. 강신주가 그러하다. 목축은 동물을 학대하는 가장 잔혹한 방법이라 말한다. 인간에 의해 길러지는 동물은 근본적인 자유를 박탈당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살육당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목축은 좋은 때를 기다려 살육을 잠지 뒤로 미루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이를 착각한다. 당장 죽이지도 않고 풍부한 먹을거리를 제공하지 있지 않은가…….때가 되면 자신을 사육하는 인간이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할 수 있을 때 가축은 인간에게 은혜로운 존재로 둔갑하는 것이다.
진정한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가축의 야성은 사라지고 인간의 집요한 목축행위로 인하여 가축은 예정된 파괴의 길을 갈 수 밖에는 없다. 이것이 목민의 발상인 것이다. 피지배층은 그렇게 길들여져 필요할 때마다 약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축은 목동이 자신을 돌보아주며 보호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사실상 그러한 가축에 감정 이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훈육에 길들여지지 않으려 거부하는 자는 제거의 대상이다. 결국 길들여지는 자 만이 살아남는 법이다. 민중의 삶도 그러한 것은 아닐까 회의하는 강신 주는 이 저술을 통하여 아나키스트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가 지배 체제로 편입하려는 의지와 노력은 공자의 제자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현상들이다. 목축의 대상이 아니라 목동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하는 지배욕을 공자와 그 제자들은 은밀하게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신분 상승의 욕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의 학문 속에서는 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나면 허락된 자유는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철회될 수 있음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