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로 정치계는 물론 국민들께서 그 어느 해보다 정치에 참여하며 관심을 가져야 할 그런 해이다. 한 번의 선택이 국민들에게는 5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생각하면 대선은 분명 보통일은 아니다. 첨예한 관심과 촉각을 특히 더 세워야 하는 국민들도 계시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경우야 어떠하든 직접적인 영향력을 피해갈 수 있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정치인의 금전적인 유포행위에 대한 폭로가 있었고, 대한 민국은 금전과 관계하고 있는 정치적 사건로 뜨겁게 달아올라있다. 더구나 국민들이 쉽게 납득하기 힘든 정치인이 구속된 작금의 상황에랴...

 

정치의 본질은 현재나 과거나 크게 다를바가 없어서 '위정'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많은 역사적 사건과 선조들이 떠오른다. 그 중 '다산'이라는 인물은 조선 후기라는 역동적인 변화기를 살다 갔기에 더더욱 주목을 끈다. (얼마 전 어느 알라디너의 페이퍼를 읽어보니 여유당 탄생 250주년이라고 한다.)

 

'다산'은 정치란 무엇인가, 백성을 위한 정치란 어떠한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정조의 ‘민본’과 ‘개혁’이라는 정치이념을 잘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절감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여유당이었던 것이다.  물론 정조 대왕이 급서하면서 그동안 정조가 일궈놓았던 개혁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정순왕후가 정조의 모든 개혁들을 정조의 개혁 그 이전 상태로 되 돌려놨기 때문이다. 강한 조선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이했지만.... 그러나 분명 다산은 위정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위정자들에게 여유당의 말씀을 읽어보기를 촉구하며 여유당의 글과 생각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다산'이 정약용선생님의 호이지만, 다산선생님의 거룩한 정신을 생각하면 감히 호를 부를 용기가 나지않아 이제부터는 당호인 '여유당'으로 대신합니다)  

 

 

 

여유당의 애민정신

 

 

'다산의 풍경'은 여유당의 '시집'입니다. 

 

여유당은 정조의 명령으로 전국을 암행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삶을 그 어느 관료보다 더 잘 이해했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했던 정조의 정치철학과 여유당의 애민정신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백성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던 천연두의 치료법을 위한 '마과회통'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주의사항과 규범등을 기록한 '흠흠신서',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경세유표', '목민심서'등은 여유당의 애민정신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저술들이다.

 

 이러한 여유당은 강진에 유배생활을 하던 도중  ‘애절양(哀絶陽)’이라는 한편의 詩를 남긴다. 이 시는 여유당께서 살아가던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냄과 동시에 백성들을 그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잘 알 수 있게한다. 본디 여유당은 漢詩로 이 글을 남겼으나 편의상 한글로 옮겨본다.

 

 

애절양 (哀絶陽)


갈밭머리 젊은 여인 울음도 서러워

현문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군인 남편 못 돌아오는 것은 있을 법도 한 일이나

예로부터 男絶陽은 들어보지 못했노라.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을 입었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하려니

범같은 문지기 버티어 있고

이정(理正)이 호통하여 단 벌 소만 끌려갔네.


남편 문득 칼을 갈아 방안으로 뛰어들자

붉은 피 자리에 낭자하구나...

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은 죄로구나”


중략...

자식 낳고 사는 것은 하늘이 내린 이치이건만

하늘 땅이 어울려 아들되고 딸 되는 것

말, 돼지 거세함도 가엾다 이르거늘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부자들은 한평생 풍악이나 즐기면서

한 알 쌀, 한 치 삼베도 바치는 일 없으니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도 불공정하단 말인가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만 읊조리게 된다..

 

 

 

 

여유당께서 이러한 한시를 남기게 된 것은 조선 정부의 정치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다음은 애절양이라는 시를 짖게된 역사적 배경이다.  

 

 

조선의 군역제도

 

'조선의 숨은 왕'은 조선의 정치 현실을 적나나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 중 하나입니다.

 

조선의 백성들을 가장 괴롭히고 있었던 것은 삼정이라는 것이었다. 흔히 국사 교과서에 ‘삼정이 문란했다’라고 써있는 바로 그것이다. ‘삼정’이란 ‘전세, 군정, 환곡’ 이 세 가지를 이름이다. 애절양은 삼정 중 군정과 관련이 있는 시인 것이다.

 당시 조선은 남자가 16세가 되면서부터 60세까지 군역의 의무를 지게되어 있었다. 군인들은 ‘오위’라고 하는 다섯 군대 중에서 한곳에 소속되어 복무해야 했다. 그러나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나 군사를 모집해보니 대부분 노약자들 뿐이었다.

 좋은 예로 선조는 임진 왜란이 일어나자 ‘이일’장군을 남쪽으로 급파한다. 이일 장군이 왜의 거센 예봉을 꺽어 주게되면 ‘신립’장군으로 하여금 그 후미를 지원하겠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명을 받은 이일 장군이 3일 동안 모집한 군사들은 모두 100명이 채 되지 못했고 결국 이일 장군은 홀홀 단신으로 남쪽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왜는 당시 6만여명의 침략 선발대를 3조로 나누어 조선에 파병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일장군은 상주에서 패배하고 만다.


 이러한 이유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조선의 군사적 실상이 이러한 상황이 었으므로 조선은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오군영을 만들고 직업군인으로 대처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직업군인들에게 지급할 봉록 예산이 필요해졌다. 하여 군대에 가지 않는 남성들에게 두당 2필의 군포를 대신 거두었다.


삼정의 문란

조선 후기의 역사 현장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군정에 해당하는 군포가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대재앙 중 하나가 되었다. 양반들은 군역의 의무가 없었으므로 군포를 내지 않았다. 조선은 국방비를 양민만을 대상으로 징수했다. 군적에 해당하는 모든 양민의 장정들이 군포를 징수해야 했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5-6필 혹은 7-8필을 내야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것 만으로도 빈곤했던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고통스런 세금이었다.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정부는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가 하면(백골징포) 군적에 해당하는 어린 아이에게도 군포를 강제 징수(황구첨정)했던 것이다.


군포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족은 야반도주하여 산속 깊숙한 곳이나 외딴 섬으로 도망을 해야했다. 이를 ‘유망’이라 한다. 한 가족이 유망하면 그 친척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이를 ‘동징’이라 했다. 결국 친인척이 모두 유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다. 친척이 모두 유망을 하면 친척이 아닌 이웃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이를 역사는 ‘인징’이라고 말한다. 급기야 온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유망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매우 외딴 곳, 산속 깊은 곳이나 고독하기 이를 데 없는 외딴 섬에 외롭게 자리잡고 살아가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왜 이런 곳에 이렇게 사시게 된 것일까...궁금해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의 군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가실지도 모른다... 동징과 황구첨정과 인징을 피해 멀리 멀리 달아났던 것이다. 삼정이 그 얼마나 문란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애절양

다산의 마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산문집입니다.

 

애절양은 <양물을 자른 일을 슬퍼한다>는 뜻의 시이다. 여유당은 어느 양민 하나가 자신의 양물을 잘랐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고 시를 쓰게된다. 이 시는 당시에 삼정이 백성들에게 그 얼마나 가혹한 형벌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공개적으로 그 횡포를 적나나하게 고발한 작품이라 하겠다.


여유당은 이 시를 짓고나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것은 계해년(1803년) 가을 내가 강진에 있으면서 지은 시이다. 노전에 사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포에 등록되고 마을 이정(理正)이 소를 빼앗아가니 그 사람이 칼을 뽑아 자신의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하는 말이,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 하였다. 그 아내가 생식기를 관가에 가지고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지는데, 슬피울며 하소연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어느 양민에게 관아에서 죽은 아비와 갓난 아들의 군포를 내놓으라하자, 그는 관청으로 달려가 “제 아비는 죽은지 오래되었고 아들은 갓 태어나 군포를 질 의무가 없는데도 군포를 세필이나 내놓으라하니 억울하옵니다.”라고 하소연을 하려한다. 그러나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문지기들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울며불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런데 이정(理正-조선 최 말단 지방행정조직의 책임자)이란 놈이 백성의 억울함을 알아주지는 못할 망정 있던 한 마리의 소를 군포대신하여 끌고 가버렸다.

 

그는 억울함과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나의 죄다.”라고 말하면서 죄의 근원이라며 자신의 양물을 잘라버린 것이다.

 이러한 슬픔과 억울함을 이기지 못한 그의 아내는 바들바들 떨며 남편의 양물을 들고 관청으로 달려가 호소해보았으나 문지기가 막아서는 바람에 이 또한 소용이 없었다. 곤장을 죽기 직전까지 맞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하는 것인가? 힘없는 백성의 아내로 살아가는 조선 여인네의 가슴에 이토록 피멍이들도록 해야했단 말인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남편이 스스로 자른 양물을 바들바들 떨며 자신의 손에 들고 관가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가엾디 가없은 조선 여인의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이 어찌 슬프디 슬픈 한스러움이 아니겠는가...오직 하늘을 향해 토해낼 아픔이려니...

 

당시 조선의 백성들이 소를 가지고 있던 비율은 대략 100분의 1이었다. 100가구 중 한 가구 정도가 소를 기르고 있었고 농사를 짓는 데 활용했다고 한다. 그만큼 소는 귀했고 유용한 농사의 수단이었다. 세 필의 군포를 강제 징수하는 것도 억울한 판에 농사지을 소마저 빼앗아가니 그 백성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여유당은 그저 시구편만 읊조릴 뿐이라고 말한다. 시구편은  시경(詩經)에 수록된 詩 편의 이름이다. 시구편에는 통치자가 백성을 두루두루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시구새, 즉 뻐꾸기에 비유해서 읊은 시편이라고 한다. 이렇게 시구편을 반복해서 읋조릴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여유당은 또 그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이는 하나의 사건을 고발한 詩이지만 가히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여유당, 현대의 위정자들에게 정치 방향의 표본을 제시하다.

 

다산이 그랬던 것 처럼 국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하여 여유당은 지배층 중심의 조선사회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애민 정신은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등에 잘 드러나 있다. 그를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개혁과 개방을 통하여 백성들을 편안케 함과 동시에 부국하고 강병한 국가로 조선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토지제도는 물론 세제, 군제, 관제 및 신분제까지도 개혁하고 특히 백성들이 가난을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여유당의 사상은 오늘 날 대한 민국이라는 나라가 잎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정의 원칙은 바로 ‘애민’에 있다. 애민을 하기위해서는 백성 중심의 정치가 선행되어야 하고, 국가 제반의 경제적 정치적 작동 원리가 국민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늘 날의 정치는 표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인 듯 보인다. ‘표’는 곧 ‘집권’을 뜻한다. 요즘 한참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돈 봉투 사건은 이를 잘 증명해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정당이 정당한 방법으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앞세워 표를 얻으려하지 않고, 술수와 잔재주를 사용하려 한다.


 정치는 신뢰를 바탕으로 행해져야 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없는 정치는 죽은 정치이다. 국민에게 위정자들이 기꺼이 국민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믿도록해야 한다. 그 믿음은 얄팍한 술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인 포풀리즘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지속적이고도 듬직한 신뢰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올해는 또한 우리 국민들이 대선을 치루어야 하는 해이다. 국민은 진정한 애민정신과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원한다. 조선의 지배층처럼 군역의 의무도 없고, 세금의 의무도 없으면서 백성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책임지며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단결된 정치력과 위정자들이 모범을 보이며 손짓하는 그런 시대를 갈망한다. 정약용 선생께서 절양했다는 소식을 듣고 반복해서 읊조릴 수 밖에 없었던 그 시구편, ‘통치자는 두루두루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시구편에 써있는 대로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그런 정치인이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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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2-04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추천하고 읽었습니다.
몇초 후에 다시 추천하시겠습니까? 하면 여지 없이 또 눌렀을텐데...ㅋ
얼마 전에 정민 교수의 책 '삶을 바꾼 만남' 강연회를 다녀 온적이 있었는데
과연 다산은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어요.
강연도 물론 탁월했구요.
소개해 주신 책만으로도 공부가 될 것 같아요.
언젠가 저도 다산을 연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물론 생각만.ㅋ)
다신의 또 다른 호가 여유당이었군요.
그런데 님의 글 제목이 참!^^

2012-02-06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4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4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2-0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소름이 쫘악 끼쳤네요...
애절양이 그런 의미가 있는줄 몰랐네요. 그져, 슬픈 소쩍새 생각만 했답니다.
(대체 소쩍새는 어디서 떠오른 이미지인지 모르겠어요.. ^^)

요즘 대단들하더군요, 하루가 멀다하고 공약을 펴내고 쇄신책을 펴내는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

차트랑 2012-02-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구구...어쩌죠?
조선의 민초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면서도...ㅠ.ㅠ

그저 애절양과 같이 억울한 일들이
현대에는 발생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라로 2012-02-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산의 마음]을 읽었는데 정말 너무 좋아서 막 끌어 안고 그랬어요,,
그런 책 또 아시면 소개해 주세요,,다산 책이 아니라도요,,^^

차트랑 2012-02-08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신의 마음을 읽으셨다니...
감동의 물결입니다요ㅠ.ㅠ

또한 '막 끌어 안으실 수 있는 책'이라고 말씀하시니
세한도가 떠오릅니다.
물론 다산의 마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끌어안으실 테지만요

박철상님께서 지으신 책으로
알라딘 가격 8800원입니다.
비싸지 않은 책이라 좋구요...
내용으로 본 가치는 매길수가 없었답니다.

제게 독서 노트를 쓰도록 결정타를 먹인 책이기도 합니다.
나비님께서는 워낙 독서를 많이 하시는 분인지라
이미 읽어보셨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나 행여 미독이시라면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마음에 안드시면
이 책은 제가 반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