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히 12월 31일 그리고 늦은 밤

전국의 콘서트 홀은 열기로 가득 찬다.

빈자리가 거의 없을 만큼 수많은 인파가 콘서트 홀 안을 가득 메운다.

예술의 전당 공연장은 아마도 매진 일 것이다.  


2부 연주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

12월 31일 밤 연주의 공식이다. 

연주도 연주 려니와 현장에서 듣는 합창의 감동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정말,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 감동의 순간은 바로, 오늘 밤이다!



악성 베토벤은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를 남겼다.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9번에 최초로 교향곡의 4악장에 가사가 있는 노래를 버무려 넣었다.

그 이전에는 그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간절함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인류에게 전하고자 하는 위대한 자신의 포부와 희망, 즉 베토벤 자신의 염원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해 낼지를 그는 고뇌하고 또 고뇌 했다.

그는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 가사가 있는 노래를 꾸려 넣는 거야!" 


그렇게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 가 탄생했다.

대개, 처음은 위대하다. 

그 다음 부터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물론 베토벤이 교향곡 9번에 가사가 있는 음악을 버무려 넣어서 이 음악이 위대해진 것은 아니다.

가사가 없는 곡 이었다해도 이 곡이 위대하기는 마찬가지 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다들 알다시피 기호학자였다.

다들 그러하듯 자신의 분야에서 늘 한계와 마주한다.

그리하여 한계는 스토리의 필수 요소처럼 극적으로 다가온다.

하나 마나한 말이고, 또 뻔한 말이지만 에코에게도 그 한계가 찾아 왔다.

고심하던 에코는 의미 심장한 한 마디를 내 뱉었다, 

" 기호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소설로 써라!!" 라고.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직접 소설을 썼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리하여 탄생한 소설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다.



한 때, 대학가에서 유행병을 앓게 하던 바로 그 소설이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돠지 않는 사람은 

대학생 취급을 받지 못하던 시절 말이다..



한계를 만나면 돌파구가 뒤따르는 법이다.

대신, 간절하고 간절하며, 뜨겁고 열정적이어야 한다.

나아가 그 모든 것은 대중을 향해야 한다.

에코나 베토벤 처럼...


 

나는 개인적으로 그 어떤 것 보다 더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일 뿐, 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 늦은 밤, 혹은 아주 이른 새벽, 누워있던 어린 베토벤이 호수로 달려가는 장면은 아버지로 부터 도망치는 장면이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쳐야 했던 어린 시절의 베토벤과 그의 우주의 별을 호수가 그 어미 대신 품고 있다. 

밤의 호수는 베토벤의 세상이고 그의 우주이고 그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연말에 이 곡을 듣지 않는 것은 새해에 떡국을 먹지 않는 것과 같다 ]]    



그럼에 불구하고 베토벤 환희의 송가를 어떤 것 보다 더 귀하고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 누구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극히 용이한 접근성 때문이다.

핸드폰으로 클릭 한 번 만  하면 모두가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음악을,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다가오는 모든 감동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다.

정녕 위대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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