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의 세계 - 세상을 뒤바꿀 기술, 양자컴퓨터의 모든 것
이순칠 지음 / 해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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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와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통신에 대한 소개서이다. 양자물리학 소개 부분은 일반인 대상으로도 손색 없는데, 양자컴퓨터의 원리나 제작 방법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도 어려운 부분은 그냥 건너 뛰어도 괜찮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의 백미는 역시 저자의 전공분야인 양자컴퓨터의 원리와 제작 방법에 대한 소개이다. 더불어 양자암호통신에 대한 설명도 좋다. 사용하는 모든 개념을 다 설명해서 물리나 공학 전공자는 차근차근 따라 갈 수 있도록 했다. 얽혀 있는 상태를 사교춤을 추는 남과 여로 비유한 것은 매우 신선했다.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 그리고 이들의 현 상황에 대한 좋은 소개서라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물리학자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섹션을 넣어, 물리학계에 대한 일화 등을 풀어 놓았다. 썰렁할 때도 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별 하나를 뺀 이유는 일반적 내용(역사 일화 등)에서 부정확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물리에서야 전문가가 기술한 것에 토를 달 것은 없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양자컴퓨터는 초전도소자를 이용하여 만든 70큐비트 정도의 CPU가 현재 최고 기록이고, 아직 진정한 양자컴퓨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상용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양자암호통신은 이미 상용화됐다고 한다. 양자암호통신은 모든 정보를 양자채널로 보내는 것이 아니고, 암호 키(key) 만을 양자채널로 보내는 것이다.


책 속 몇 구절:

... 양자컴퓨터가 계산을 빨리할 수 있는 이유는 병렬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 고전컴퓨터도 병렬처리를 할 수 있다면 양자컴퓨터가 특별할 것이 뭐냐,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양자컴퓨터는 병렬처리를 하기 위해 CPU가 더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10큐빗짜리 양자컴퓨터 한 대가 있으면 2^10인 1024개의 데이터를 병렬처리할 수 있는 반면, 10비트짜리 고전컴퓨터는 똑같은 병렬처리를 하기 위해 컴퓨터가 1024대나 필요하다. 비트 수가 40비트만 되어도 양자컴퓨터는 약 1조 개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므로 고전컴퓨터로는 도저히 흉내낼 방법이 없다. 양자컴퓨터의 병렬처리 능력은 기본적으로 양자계의 중첩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런데 양자알고리즘에서 쓸 만한 것들은 계산 도중에 얽힌 상태가 꼭 나타나기 때문에, 양자연산이 혁신적으로 빠른 이유는 단순히 중첩이 아니라 중첩 중에서도 얽힘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다. (233~235 페이지)

... 양자 컴퓨터는 아무 연산이나 잘하지는 않는다. 덧셈을 할 줄 알긴 하지만 고전컴퓨터보다 더 나을 게 없다. 그래서 양자알고리즘 중에서 쓸 만한 것은 아직 많지 않다. 쓸 만한 알고리즘을 만들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지금 사용 가능한 알고리즘을 돌릴 하드웨어도 없는 판이라 더 좋은 알고리즘을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공허한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60 페이지)

... 양자 소인수분해 알고리즘이 고전 소인수분해 알고리즘보다 비약적으로 빠를 수 있는 이유는 측정이라는 행위로 등차수열이 한 번에 걸러진다는 점과 한 번의 연산으로 푸리에변환을 할 수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즉, 양자 세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중첩과 측정에 의한 붕괴, 이 두 가지 성질 때문이다. 중첩된 양자 상태의 이점은 모든 연산이 중첩된 상태에 독립적으로 가해진다는 자연계의 성질에서 비롯된다. (26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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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기록해 놓고 싶은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를 이용해서 어떤 것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 추론해 보는 것이다. 4장 '리만 제타 가설과 소수素數의 웃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찌기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을 통해 인간이 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을 도는 행성의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태양도 우리 은하의 변방에 있는 그저 그런 별임이 밝혀졌으며, 우리 은하조차 수많은 은하 중에서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은하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인간의 위치는 결국 우주의 중심에서 변방의 변방의 변방으로 격하됐다.


리처드 고트J. Richard Gott III는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를 시간에도 적용해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보고 있다면 그 사건(사물)이 그 전체 수명의 최초 2.5%이거나 최후 2.5% 내에 있을 확률은 5% 밖에 되지 않으므로, 우리가 보는 사건이 전체 수명의 최초 2.5% 이후거나 최후 2.5% 이전일 가능성이 95%이다. 이것은 현재의 시간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하면, 현재 사건이 언제 끝날지 최소와 최대 기대값을 구할 수 있다. 최소 기대값은 지금이 전체 수명의 97.5% 순간이라고 가정해서, 최대 기대값은 지금이 전체 수명의 2.5% 순간이라고 가정해서 구한다. 비교적 간단한 계산을 거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알고 있는 수명을 39로 나누거나 39를 곱하는 것이 최소와 최대 기대값을 구하는 방법임을 알게 된다.


이 논리를 적용한 예가 인류가 언제까지 존재할지에 대한 추론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적어도 20만 년 전부터 있었으므로, 앞의 논리를 적용하면 앞으로 최소 5,100년(=20만 년/39)은 존재하겠지만 780만 년(=20만 년x39) 후에는 사라리지라고 95% 확신할 수 있다. 앞의 5,100년에 기뻐해야할까, 슬퍼해야할까. 또는 뒤의 780만 년에 기뻐해야할까, 슬퍼해야할까.


문득 드는 생각은 '개인에게도 위의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이다. 인류 대신 개인을 생각해 보자. 나이가 50이면 앞으로 최소 1.3년(=50/39)은 더 살아있겠지만 1,950년(=50x39) 후에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고 95% 확신할 수 있다. 개인에게는 시간 범위가 너무 넓다. 하지만 최소 기대값 1.3년은 어떤 느낌을 주는가? 2.5%의 확률로, 1.3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을 수 있다. 확률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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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7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별의 소멸, 블랙홀과 같은 운명, 인간의 숙명 ㅜ.ㅜ 블루 욘더님 남은 12월 건강하고 따숩게 ! 보내세요 ^^

blueyonder 2021-12-17 22:02   좋아요 1 | URL
모든 사물은 필멸의 존재이겠지요. 멸하는 순서만 차이가 있습니다. ^^
scott님, 남은 12월 잘 마무리하시고, 건강하고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 양자역학, 창발하는 우주, 생명, 의미
박권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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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박권의 세계관, 인생관. 학부 물리학 전공자나, 물리에 관심 있는 공학 전공자가 읽으면 좋을 수준의 수학을 포함하고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제목을 보고 '창발emergence'에 대한 얘기인가 했는데, 책 자체는 양자역학에 대한 전반적 소개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하지만 전자기학에 통계역학까지 나온다. 


그는 대학 시절 베르그송의 철학을 인상 깊게 배웠다고 고백한다. 책에 나와 있는 베르그송의 철학 구절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하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고, 성숙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261 페이지)


저자는 '운명'을 여러 번 언급한다. 운명에 대한 저자의 구절 중 하나:


운명이란 단순히 결정론이나 자유의지가 아니라, 우연과 필연의 절묘한 교차점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324 페이지)


책 뒤 표지에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


모든 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긴 논증"


이라고 나오는데, 이 말이 맞다면 물리학 전공자는 모두 인생의 비밀을 꿰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족. 물리학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수식이 부담스러운 이에게는 <물리학은 처음입니다만>을 추천한다. 좀 더 '진지한' 독자에게는 (더 두껍고 어렵지만 물리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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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11-06 1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정론이 필연을 가장한 우연은 아닐런지요? 아무튼 저자도 자유의지는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

blueyonder 2021-11-07 09:31   좋아요 1 | URL
물리법칙은 필연이고 초기조건은 우연입니다. 특히 양자역학은 물리법칙에도 우연의 요소를 도입했지요.
저는 필연이라는 말보다는 우연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크게 봤을 때 이 세상-우주가 이렇게 된 것에는 필연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에는 우연이 연속된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조건이 달랐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1-11-07 18:19   좋아요 1 | URL
필연과 우연은 정말 어려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뉴턴의 역학 법칙 포함해서 모든 물리 법칙은 임시적이고 언젠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전 필연을 믿지 않습니다.
 














고등과학원 박권 교수의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를 읽고 있다. 나름 재미있는데, 수식이 마구 나와서 이 책이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 조금 헷갈린다. 내 생각에 이공계 학생 아닌 일반인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것 같다. 과학철학자 장하석 교수는 이런 "기술적인 내용을 모두 따라가지 않더라도 굵직한 내용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며 추천하는데, 난 조금 회의적이다. 어쨌든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파동, 원자, 빛 등 미시세계의 이야기(양자역학)를 영화 등을 빌어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내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과 상충되는 것이 하나 있어서 여기에 적어 놓는다. 보어는 고전 전자기학으로 생각하면 불안정한 원자가 어떻게 안정한지 설명하기 위해 각운동량의 양자화 조건을 도입한다. 문제는 이 조건이 뜬금없고 왜 나오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후 이것을 드브로이라는 프랑스의 물리학자가 물질파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제목에 적은 바와 같이, 전자의 물질파가 원자 내에서 공명할 때(정지파standing wave를 이룰 때) 원자가 안정하다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설명을 처음 한 것이 아인슈타인이라고 말한다.


보어의 원자 모형은 성공적이지만, 다양한 의문을 남긴다. 그중 가장 큰 의문이 '각운동량이 왜 양자화되는가'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각운동량이 양자화되는 이유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설명되었다. 아인슈타인이 당시 루이 드브로이Louis de Broglie가 제안한 파동-입자 이중성 이론을 알고 있었던 덕분이다. (78 페이지)

...

  아인슈타인은 드브로이의 파동-입자 이중성 이론을 쓰면 보어의 양자화 조건을 유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79 페이지)


위의 진술은 드브로이가 물질파의 개념만을 제시했으며 이를 원자에 적용한 이는 아인슈타인이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드브로이의 박사학위 논문(물질파 및 물질파를 원자에 적용한 내용)을 아인슈타인이 입수해 읽고 그의 생각이 근사하다고 인정한 적은 있지만, 아인슈타인 자신이 물질파를 원자에 적용해 보어의 양자조건이 사실은 물질파의 공명조건이라고 처음 해석한 것은 아니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싶어 <불확정성>과 <퀀텀스토리>를 찾아봤지만 아인슈타인이 드브로이의 학위논문을 구해 읽고 그의 생각이 의미 있다고 언급한 사실만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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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question of the fate of all existence is still an open one, and an area of active research in which the conclusions we draw can change drastically in response to very small tweaks in our interpretations of the data. In this book, we'll explore five possibilities, chosen based on their prominence in ongoing discussions among professional cosmologists, and dig into the best current evidence for or against each of them. (p. 12)

... The observable universe, encompassing everything we can see today, must have been contained within a much smaller, denser, hotter space. But the observable universe is just the part of the cosmos we can see now. We know that space goes on much farther than that. In fact, based on what we know, it's entirely possible, and perhaps probable, that the universe is infinite in size. Which means that it was infinite at the beginning too. Just much denser. (p. 21)

  Truthfully, the whole timeline of the early universe is still very much an extrapolation and, I will readily admit, one that we shouldn't entirely trust. A universe that starts with a singularity and expands from there goes through an unimaginably extreme range of temperatures, from basically infinity at the singularity to the cool comfortable environment of the cosmos today, sitting at about 3 degrees above absolute zero. What we can do is make inferences about what physics would be like in all those environments, which is how we get the ordering I present in this chapter. And though the standard Big Bang theory of steady expansion from a singularity has some major problems (which we'll get to imminently), we can still learn a lot about how physics works by thinking about what might have happened if the standard theory is right.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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