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의 맨 뒤에는 번역본에는 없는 저자 케이티 맥과의 짧은 Q&A가 있다. 그중 일반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오해하기 쉬운 것 하나를 다음에 옮겨 놓는다. 팽창 우주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데, 어디로 팽창하는 것인가요?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우주의 팽창을 생각할 때, 종종 대폭발(big bang)을 더 큰 공간으로의 폭발로 상상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하지만 천체물리학에서 대폭발을 말할 때는 그러한 의미가 아니에요. 천체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초기에 우주는 모든 곳에서 더 뜨겁고 더 빽빽하고, 오늘보다 더 작았어요. 이후 계속해서 팽창하며 식고 있는 중이지요. 어느 곳‘으로’ 팽창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우주의 크기는 무한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 팽창하면서 ‘더욱’ 무한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미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와 은하단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우리는 관측합니다. 우주는 이런 의미에서 덜 빽빽해지고 더욱 퍼져나가는 것이지만, 이러한 사실이 다른 것을 잠식하는 어떤 경계가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 우주는 무한하며 자신 안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낯선 개념이지만 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는 수학적 모형에 기반해 이론을 만드는 것이므로, 상상하기 어렵더라도 종종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06-28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세한 설명인데, 저는 이 Q&A를 읽고도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네요.(평소 얼마나 천체물리학을 어려워했으면) ‘팽창‘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겠죠? 수학적으로 문제 없는 개념이라니, 무슨의미일까..알쏭달쏭^^
과학의 언어를 이해 못하니 세상의 반을 대강만 이해하는 셈인가봐요

blueyonder 2022-06-28 10:36   좋아요 1 | URL
우주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니 ‘밖‘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밖이 있다면 그 역시 우주라고 부를 수 있을 테니까요. 밖이 없는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이고, 끝이 없다는 것을 수학적으로는 ‘무한‘이라고 부릅니다. 밖과 끝이 없다는 것을 물리적으로는 경계가 없다고 하고요. 이게 제가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
 















<The End of Everything>의 우리말 번역본은 <우주는 계속되지 않는다>이다. 전반적인 번역은 괜찮아 보인다. 이 책의 유머 코드는 각주(footnote)에서 눈에 많이 띄는데 이 부분이 잘 안 살아 난 것이 조금 아쉽다. 각주에서 잘못 번역된 부분이 하나 눈에 띄어 지적해 놓는다.


Ia형 초신성이 실제로 황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는 무척 기발한 말장난이다. (153 페이지)


원문은 이렇다: "This would be an excellent pun if Type Ia were likely to be able to create gold." (p. 125) 이 문장은 가정법이므로, Ia형 초신성에서 실제로는 금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만약 Ia형 초신성이 실제로 금을 만들 수 있다면 이는 무척 멋진 말장난이 될 뻔했다." 정도로 하는 것이 좋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End of Everything: (astrophysically Speaking) (Paperback)
Katie Mack / Scribner Book Company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이 힘들 때, 우주를 생각해 보는 것은 왠지 모를 위안을 준다. 무한할지도 모를 우주에서 인간과 인간 사회란 존재는 '영'이란 값에 수렴하니까, 일상 생활 속의 모든 것을 하찮게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케이티 맥의 <The End of Everything>은 우주가 어떻게 끝날 지에 대해 현대 우주론이 알려주는 바를 적은 책이다. 저자의 명랑함이 글에서 느껴지는데, 브라이언 그린의 <The End of Time>의 가벼운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1]. 현재까지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우주의 끝은, 가속 팽창이 지속되어 차갑게 식으며 아무런 구조도 남지 않는 것이다['열 죽음(heat death)']. 끝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우주는 지속된다. 마치 우주가 영원한, 차가운 잠(죽음?)에 빠지는 것과 같다. 그린도 그렇지만 맥도 이러한 전망에 좀 허무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꼭 우리가 무언가를 남기고 누군가는 이 무언가를 전달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맥도 동료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는데, 나도 이러한 관점에 동의한다.


맥이 동료(페드로 페레이아Pedro Ferreira)에게 묻는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우주에 남기는 유산(legacy)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괜찮아?"

동료의 대답: "응, 아무렇지도 않아. 난 우리의 일시성(blip-ness)이 아주 마음에 들어... 예전부터 이런 생각에 끌렸지. 모든 일들은 덧없어. 변화이고 과정이지. 여행(journey)이야. 어디에 도착하는지 누가 신경 써, 안 그래?"[2]


덧없는 것일수록 그만큼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피었다가 사라지는 들꽃이 그만큼 더 아름답고 애틋한 것이다.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보다도.


사실 우리가 우주에 대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저자도 인정하지만, 현재 관측 데이터를 달리 해석하거나 새로운 데이터가 나오면 현재의 표준적 우주 모형이 알려주는 것처럼 보이는 '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파열(big rip)'이나 '대반등(big bounce)'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는 '진공 붕괴(vacuum decay)'가 일어날 수도...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암흑 에너지, 암흑 물질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저자는 새로운 실험과 관측을 통해 이 문제에 관해 가까운 미래에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란 낙관론을 유지하지만...


힘들 때면 고개를 들어 별을 보자. 별이 잘 안 보이는 밝은 도시에서는 인터넷을 검색해 보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삶에서 점차 별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더불어 자연에 대한 경외도...


---

[1] 이 책에는 그린이 논의하는 빅히스토리적인 부분(진화와 인간의 역사 등)은 전혀 없으며 우주론에 대한 논의 자체도 간략한 편이다.

[2] 원문은 다음과 같다.

  "So it doesn't bother you that we ultimately have no legacy in the universe?" I ask him.

  "No, not at all," he says. "I very much like our blip-ness... It's always appealed to me," he continues. "It's the transience of these things. It's the doing. It's the process. It's the journey. Who cares where you get to, right?" (p. 20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2-06-2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넘 좋아요!👍

blueyonder 2022-06-26 15:54   좋아요 0 | URL
무슨 레거시를 남기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뭘 꼭 남겨야 해? 하는 말이 제겐 위로와 공감이 되는 것이지요. ^^
 
Hitler's Scientists: Science, War, and the Devil's Pact (Paperback)
존 콘웰 지음 / Penguin Group USA / 200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치에 부역했던 폰 브라운과 하이젠베르크의 예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연 내가 그 위치에 있었다면 그들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누구도 장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판단을 내려서 후세에 교훈이 되도록 하는 것이 역사가가 할 일이다. 이 둘이 나치당에 가입하지 않았고 히틀러를 적극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악행에 눈감았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저자는 피력한다.


궁극적 질문은 이것이다. 과학은 가치 중립적인가. 과학자는 연구 결과가 어떻게 쓰일지 생각하지 않고 연구만 하면 되는가. 결국 과학자도 사회 속에 존재하므로, 그의 연구 결과가 어떻게, 누구의 이익을 위해 쓰일지 항상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숙고해야 한다. 양심에 비추어 올바르지 않다면 연구를 그만 두어야 한다. 모범으로는, 독일의 원자폭탄 연구가 걱정했던 것처럼 진전되지 않아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연합국의 맨해튼 계획에서 사임한 조지프 로트블랫Joseph Rotblat의 예가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나치 치하의 독일처럼 박해나 처형의 위협이 없더라도 당장 연구비가 끊어지거나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다면, 과연 양심에 비추어 올바른 일이 아닐 때 그 연구를 그만 둘 수 있을까. 무기 관련 연구뿐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 연구가 책에서 예로 거론되는데, 상업적 이익을 낼 수 있는지에 연구의 초점이 많이 맞추어져 있는 요즘의 세태에 비추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독립적 과학자 그룹이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개인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노력할 수 있느냐에 있다. 과학뿐만 아니라 자신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그만 두어도 용인될 수 있는 사회, 우리가 그런 사회를 가꾸어 가기를 희망한다.


  The greatest pressures on the integrity of scientists are exerted at the interface between the professional practice of science and the demands of the fund-awarding patrons. At every stage of this narrative, from Fritz Haber’s decision to promote poison gas to Max Planck’s decision to raise his arm in a Nazi salute, to Paul Harteck’s acceptance of a chair made vacant by a dismissed Jew, to Heisenberg’s decision to accept Hans Frank’s hospitality in Cracow, to Wernher von Braun’s use of slave labor, we have seen the pressures of hubris, loyalty, competition and dependence leading to compromise. In the final analysis the temptation was a preparedness to a deal with the Devil in order to continue doing science. 

  The Faustian bargains lurk within routine grant applications, the pressures to publish for the sake of tenure and the department’s budget, the treatment of knowledge and discovery as a commodity that can be owned, bought and sold. Handling these pressures and realities is inseparable from the difficult task of being a good scientist today. (p. 462)

  Will scientists today, in an increasingly crisis-ridden world, in which they are ever more dependent on payments to pursue their vocations, behave like the fellow travelers under Hitler – the Heisenberg, Weizsäckers and the von Braun – taking benefits from the government and the military, while claiming that as individuals they are aloof from society and politics? Will they argue that they are not in any way responsible for the uses to which their knowledge and discoveries are put? Or will they take part in bringing down the barriers that insulate defence research from public scrutiny, criticism and influence?

  There is an urgent need today for scientists who are not only skilled practitioners in their disciplines but who possess a highly developed grasp of politics and ethics, who are prepared to question, probe, expose and criticize the trends of military-dominated science. Under Hitler, the dissident scientists risked imprisonment and death; but at least, in the early days of the regime, it was possible to emigrate in the hope of doing science under more benign political auspices. Today the dissident does not risk imprisonment or death, but in the globalized domains of science and technology there are no oases of irresponsible purity into which a scientist can retreat. The best defence against the prostitution and abuse of science is for scientists to unite in small and large unofficial constituencies, to create communicating communities of scientists who, in Joseph Rotblat’s words, are ‘human beings first and scientists second’. These constituencies could provide the pluralist checks and balances that alert the public to irresponsible exploitation of science that poses threats not just to the American ‘homelands’, but to societies and peoples everywhere; to the environment, to peace, to human rights and to nature itself. (pp. 466-46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22-05-20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치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단 생각에, 그들을 두둔하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ueyonder 2022-05-21 08:26   좋아요 0 | URL
지금 이런 사회에 사는 것도 모두 선열들의 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감사합니다~
 
빛의 양자컴퓨터
후루사와 아키라 지음, 채은미 옮김 / 동아시아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빛을 이용한 양자컴퓨터에 관한 소개서이다. 일본인인 저자는 본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발전시켜온 '광 양자컴퓨터'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소개하고 있다. <퀀텀의 세계>에서는 듣지 못했던, 빛을 이용하여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은 기존의 원자나 이온, 초전도체, 스핀을 이용한 방법과 비교하여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시간영역다중'이라고 이름 붙인 방법을 통해 100만 개의 큐비트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다른 방법이 100 큐비트 규모인데 비하면 엄청난 숫자이다. 기존의 양자컴퓨터가 공간적으로 큐비트를 구현했다면 광 양자컴퓨터는 시간적으로 큐비트를 구현했다는 점이 다르다(시간영역다중의 의미). <퀀텀의 세계>를 보완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퀀텀의 세계>보다 얇고 설명도 간략하지만, 광 양자컴퓨터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저자의 연구에 대한 태도를 다음에 인용한다.


...나는 청개구리 같은 성격으로 언제나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왔다고 생각한다. 유행은 반드시 언젠가는 끝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언제나 과도한 경쟁에 휘말린다. 호흡이 긴 일을 하고 싶다면 유행을 쫓지 말고, 나만의 길을 걷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람에 따라서는 고독이나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마음 깊숙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몰입해서 즐기고 있다면 고독이나 불안에 시달릴 일은 없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커다란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185~186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