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우주의 시작이라는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스티븐 호킹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They [space and time] were defined only within the universe, so it made no sense to talk of a time before the universe began. It would be like asking for a point south of the South Pole. It is not defined.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 p. 44)


우주가 시작되기 전의 시간에 대해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시간과 공간은 우주의 탄생과 함께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러한 답변을 했다: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실 때 공간과 함께 시간도 창조하셨다. 차이가 있다면 호킹은 일반상대성 이론에 근거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에 근거해 답했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공대의 이론물리학자인 션 캐럴은 이렇게 얘기한다. 


   So what happened before the Big Bang? Here is where many discussions of modern cosmology run off the rails. You will often read something like the following: “Before the Big Bang, time and space did not exist. The universe did not come into being at some moment in time, because time itself came into being. Asking what happened before the Big Bang is like asking what lies north of the North Pole.”

   That all sounds very profound, and it might even be right. But it might not. The truth is, we just don’t know. The rules of general relativity is unambiguous: Given certain kinds of stuff in the universe, there must have been a singularity in the past. But that’s not really an internally consistent conclusion. The singularity itself would be a moment when the curvature of spacetime and the density of matter were infinite, and the rules of general relativity simply would not apply. The correct deduction is not that general relativity predicts a singularity, but that general relativity itself breaks down. The theory cannot be considered to be complete; something happens where general relativity predicts singularities, but we don’t know what. (From Eternity to Here, p. 50)


션 캐럴에 따르면 우리는 답을 모른다. 사실 그는 오히려 빅뱅 이전에도 시간이 존재한다는 쪽을 선호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니 모든 이론 물리학자들이 호킹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냐는 질문에 대한 당혹스러움은 애덤 프랭크의 <About Time>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앞으로 좀 더 알 수 있게 되기를... 리 스몰린에 따르면 당연히 빅뱅 이전에도 시간이 존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 실재하는 시간을 찾아 떠나는 물리학의 모험
리 스몰린 지음, 강형구 옮김 / 김영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이 환상’이며 창발하는 현상이라는 물리학 주류의 관점에 반기를 드는 주목할 만한 책이다. 저자 스몰린은 현대 우주론의 문제들—왜 이러한 초기조건, 왜 이러한 법칙들—이 ‘상자 속의 물리학’으로 얻게 된 물리 이론들을 전체 우주에 적용했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수학에 기반한 현대 물리학은 시간이 환상이라는 잘못된 관점을 심어주는데, 이 때문에 결국 우주의 미래가 결정되어 있으며 열죽음으로 나아간다는 오해를 낳는다고 말한다. 그는 라이프니츠의 ‘충분한 이유의 원리Principle of sufficient reason’를 바탕으로 삼아 우리 우주가 왜 이런지 그 이유를 우리 우주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얻게 되는 것이 시간의 실재성, 물리법칙의 진화, 그리고 미래의 미결정성이다. 


번역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거나 어색하거나 또는 잘못된 부분이 있어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을 주는 이유는 이 책의 중요성 때문이다. 주류적 주장을 뚫고 솟아오르는 비주류적 주장에는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스몰린의 주장이 어떻게 판명될지 지켜보자. 모든 혁명적 이론은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된다. 기존 이론에 경도된 주류는 결코 혁명적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혁명적 이론이 실제로 혁명이 되는 것은 세월이 흘러 주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혁명적 생각을 받아들인 다음 세대가 새 시대의 주류가 되면서이다. 과연 어떻게 될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터이다. 스몰린도 이런 식으로 얘기했지만, 역사가 중요하고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면에서 이것 또한 시간의 실재성을 얘기해 주는 것이 아닐까.


책 속 몇 구절:

   따라서 우리는, 시간이 실재하고 근본적이며 우주의 역사가 우주의 현재 상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틀 안에서 작업할 때 우주론이 더 과학적인 것이 되고 우리의 개념은 좀 더 [시험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의 목적이 비시간적인 수학적 대상에 의해 나타나는 비시간적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형이상학적 전제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은, 시간을 제거하고 우주를 수학적 대상과 비슷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과학적 우주론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우주론으로 가는 길은 이와 반대임이 드러났다. 찰스 샌더스 퍼스가 한 세기도 더 전에 이해했던 것처럼, '법칙들이 설명되려면 반드시 진화해야 한다.' (386~387 페이지)

   논리와 수학은 자연의 양상들을 포착할 수는 있지만 결코 자연 전체를 포착할 수는 없다. 수학으로는 결코 나타낼 수 없는 실재의 양상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실재 세계는 항상 어떤 특정한 순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397 페이지)

   가설이 과학적인 것이 되려면 이것은 자신을 검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관측을 제시해야만 한다. 때때로 이는 수학적 표현을 요구하고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수학은 과학의 언어 중 하나다. 수학은 강력하고 중요한 방법론이다. 그러나 과학에 수학을 적용하는 것은 수학적 계산의 결과들과 실험 결과들 사이의 동일성에 기초하며, 실험들은 수학 바깥에 있는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둘 사이의 연결은 일상적인 언어로 진술되어야 한다. 수학은 대단한 도구이지만 과학을 통제하는 궁극적 도구는 언어이다. (398 페이지)

우리는 또한 진리와 아름다움이 형식적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근대적인 개념과, 실재와 윤리는 단순히 사회적인 구성물이라는 후기 모더니즘의 반발 모두를 버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계주의다. 관계주의에 따르면 미래는 현재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약되며, 따라서 새로움과 발명이 가능해진다. 이는 비시간적이고 절대적인 완벽함으로의 초월이라는 잘못된 희망을 인간 행위자의 영역이 끊임없이 확장되는 진정으로 희망적인 관점으로 대체할 것이며, 이러한 새로운 관점에서 우주의 미래는 열려 있다. (415 페이지)

   감각질[qualia] 또는 의식의 문제는 과학으로는 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입자들 사이에서의 모든 물리적 상호작용들을 기술하더라도 포괄할 수 없는 세계의 측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가 진정으로 무엇인지에 관한 물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이것이 어떻게 모형화되거나 표상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433 페이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집 2023-02-28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다 놓고 읽어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안 읽고 있네요. 저도 시간에 관심이 많아서 시간에 관한 책은 다 읽고 있거든요.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군요!

blueyonder 2023-03-01 09:13   좋아요 0 | URL
네 시간에 대해 매우 혁명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혁명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두 명의 위대한 과학자를 놓고 어떤 얘기를 풀어나가는지 흥미로워서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잘 알려진 이 두 명의 과학자를 모아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저자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결코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을 비교하거나 그들을 비하 혹은 추앙하려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행위를 판단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단지 그들의 삶을 통해 개인으로서 그들과 그들이 속한 환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적, 사회적 수준에서 볼 때 도대체 위대함이란 무엇인지 묻는 책이다. (11 페이지)


서문을 읽으며 이해 안되는 부분이 두 군데 나왔다. 원문을 찾아보니 오역이라고 볼 수 있겠다.


- "다소 억지스럽지만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물질의 중력 작용에서 불확실성이 동질하다는 사실과, 수성의 근일점이 100년에 43아크세컨드arcsecond만큼 이동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난제를 만났다." (9 페이지, 밑줄 추가)


원문: Put somewhat factitiously, Einstein's theory of general relativity accounted for two refractory pieces of data: the equality of the inertial and gravitational mass of an object and the advance of the perihelion of Mercury of 43 arcseconds per century. (p. xii)


equality of the inertial and gravitational mass: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의 동일성


의역을 하면 이렇게 되겠다: 간단히 말해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다루기 힘든 현상을 설명했다. 하나는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의 동일성이고 다른 하나는 100년에 43초 이동하는 수성의 근일점이다.


- 소련 시절 핵물리학자인 레프 란다우Lev Landau는 1930-40년대에 다른 길이 없어 응축과 핵물리학 분야에 기여하게 되었지만, 만약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이 사람이 어떤 것을 이루어 냈을지 누가 알겠는가. (10 페이지, 밑줄 추가)


원문: Lev Landau did what he did because the only channels open to him in the Soviet Union during the 1930s and 1940s were condensed matter and nuclear physics. If born elsewhere, who knows what he might have accomplished. (pp. xii-xiii)


condensed matter: 응집물질, condensed matter physics: 응집물질물리학


그냥 "응축"이라니. 'condensation'인가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물리학으로부터 시간을 추방하기 위해 제시된 모든 논증은 뉴턴적 패러다임이 전체로서의 우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만약 이러한 확장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시간을 제거하기 위해 제시된 그와 같은 논증들은 실패한다. 뉴턴적 패러다임을 버릴 때는 그 논증들도 버려야 하며, 그렇게 되면 시간이 실재한다고 믿는 것이 가능해진다. (187 페이지)

... all the arguments ... for the expulsion of time from physics were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the Newtonian paradigm can be extended to the universe as a whole. If it can't, then those arguments for the elimination of time fail. When we abandon the Newtonian paradigm, we must abandon those arguments, and it becomes possible to believe that time is real. (p.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장 ‘상대성과 비시간성’을 읽으며 고개가 갸웃해지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었다. 다음에 원문과 함께 (일부) 정리해 놓는다.


- “그러나 두 사건이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시간적으로 너무 근접해 있어 두 사건 사이에 그 어떤 신호도 전달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그 두 사건 중 어떤 것도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120 페이지)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시간적으로 너무 근접해 있어”라고 두 개의 경우를 생각하는 것처럼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시간적으로 너무 근접해 있”는 경우는 왜 두 사건 사이에 신호의 전달이 안 되는 것일까? 원문을 보자.


원문: “But two events can be so far apart in space and take place so close in time that no signal can reach from one to another. In such cases, neither of the two events can be the cause of the other.” (p. 57)


원문의 뜻은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며 시간적으로 너무 근접하게 발생하여’이다.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한 개의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다. 두 사건이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시간적으로 간격이 매우 짧으면 이 두 사건 사이에 신호가 전달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두 번째 문장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마치 “두 사건 중 어떤 것도” 제3의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자면 ‘그런 경우, 한 사건은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없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


- “물리학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인과적으로 연관된 사건들의 질서에 대해 관측자들이 동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원인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혼동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건들 사이의 질서에 대해 관측자들이 동의할 필요는 없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그러한 경우 관측자들이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 (120페이지)


원문: “For physics to make sense, observers have to agree on the order of causally related events to avoid confusion about the attribution of causes. But there’s no reason for observers to agree about the order of events that could not possibly affect each other. In Einstein’s theory of relativity, they don’t agree.” (p. 57)


역자는 단어 “order”를 “질서”로 번역하고 있다. order가 질서의 뜻을 가질 때도 있지만, 여기서는 ‘순서’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인과적으로 연관된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에 대해’ 관측자들이 동의해야 원인과 결과를 일관되게 말할 수 있음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간적 순서가 뒤바뀌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 역자는 이후에도 계속 “order”를 “질서”로 번역하고 있다.


- “따라서 토론토에 있는 사람이 싱가포르에 있는 연인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연인이 몇 초 전에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의미가 있다. 그 몇 초 동안은 연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전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그녀가 그 메시지를 읽는 것은 인과적으로 연관된 사건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보내는 메시지가 그의 남은 인생을 바꾸리라는 것, 몇 분 후 그가 그녀로부터 온 메시지를 읽은 순간부터 그의 삶이 바뀌리라는 데는 모든 관측자가 동의할 것이다.” (120~121 페이지)


첫 번째 나오는 연인은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싱가포르에 있는 연인”)을 지칭하고 있다. 두 번째 나오는 연인(“자신의 연인”)도 당연히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이다. 세 번째 나오는 연인(“연인에게 문자를 보내...”)은 어디에 있는 사람인가? 당연히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나? 그렇게 이해하면, 토론토에 있는 사람이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방금 전,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의 몇 초 전을 상상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 몇 초 동안 토론토에 있는 사람이 싱가포르에 있는 연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이해가 안 된다. 그 다음에는 ‘그’와 ‘그녀’가 나오는데, 누가 토론토, 누가 싱가포르에 있는지 헷갈린다. 원문을 봐야겠다.


원문: “So it makes no sense for our friend in Toronto to wonder what her lover is doing right now in Singapore. But it makes total sense for her to think about what he was doing a few seconds ago. Those seconds are more than enough time for him to have sent the text she is reading now; his sending the text and her reading it are causally related events. And all observers will agree that the text she sends now will change the rest of his life, beginning with when he reads her news a minute later.” (p. 57)


첫 문장에서부터 토론토에 있는 사람이 ‘그녀’임이 명확하다(“her lover”). 두 번째 문장에서는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이 ‘그’(“he”)임이 나온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있는 ‘그’가 토론토에 있는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데 충분한 시간 몇 초에 대해 얘기한다. 그 몇 초 전을 생각하는 것은 유의미하다. 두 사건이 인과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혼란을 제거하기 위해 다음처럼 번역해 본다면?


--> 그러므로 토론토에 있는 우리 친구가 싱가포르에 있는 연인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연인이 몇 초 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분명한 의미가 있다. 이 몇 초는 토론토의 우리 친구가 지금 읽고 있는 문자 메시지를 싱가포르의 연인이 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연인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우리 친구가 그것을 읽는 것은 인과적으로 연결된 사건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친구가 보내는 문자 메시지가 연인의 일생을 바꾸어 놓으리라는 것에도 모든 관측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우리 친구가 보내는 소식을 연인이 1분 후에 읽는 때부터 말이다. 


- “... 우리는 현재가 실재한다는 것에는 의심을 갖지 않는다. 현재는 다수의 사건들로 구성되며, 이들 중 그 어떤 사건도 다른 사건들보다 실재적이지 않다. 우리는 미래의 두 사건이 실재적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두 사건이 동일한 시간에 일어난다면 우리는 이 시간이 현재든 과거든 미래든 상관없이 동등하게 실재한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125~126 페이지)


현재를 구성하는 다수의 사건들 중 그 어떤 사건도 다른 사건들보다 실재적이지 않다고? 


원문: “... we have no doubt that the present is real. The present consists of many events, none of which is more real than any other. We don’t know whether two events in the future are real, but we will agree that if two events take place at the same time they’re equally real, whether that time is the present, past, or future.” (p. 61)


“none of which is more real than any other”는 “이들 중 그 어떤 사건도 다른 사건들보다 실재적이지 않다”가 아니라 “이들 중 그 어떤 사건도 다른 사건들보다 실재적이지 않다”, 즉 “다른 사건들과 똑같이 실재적이다”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 다음처럼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 현재가 실재함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의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는 많은 사건들로 구성되며, 이것들은 모두 똑같이 실재적이다. 미래의 두 사건이 실재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만약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다면 이 두 사건은 똑같이 실재적이라는 데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 시간이 현재, 과거, 미래에 상관없이 말이다. 


- “일반상대성은 시간이 비실재적이라고 주장하는 특수상대성의 면모들을 보존할 뿐 아니라 동일한 효과를 가지는 새로운 측면들을 도입한다. 첫째, 시공간을 공간과 시간으로 분리하는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 (131페이지)


일반상대성은 특수상대성에 “새로운 측면들을 도입”한다며, “시공간을 공간과 시간으로 분리하는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특수상대성에 이미 시공간을 공간과 시간으로 분리하는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시간의 상대성). 


원문: “General relativity not only preserves the features of special relativity arguing that time is unreal but also introduces new ones to the same effect. First, there are many more ways of dividing spacetime up into space and time.” (p. 66)


원문은 “many more ways of dividing spacetime”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냥 ‘많은 방식’이 아니라 ‘더 많은 방식’인 것이다. 특수상대성의 방식에 더해서. 이렇게 하면 위의 첫 번째 문장과 잘 호응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