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상대성과 비시간성’을 읽으며 고개가 갸웃해지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었다. 다음에 원문과 함께 (일부) 정리해 놓는다.


- “그러나 두 사건이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시간적으로 너무 근접해 있어 두 사건 사이에 그 어떤 신호도 전달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그 두 사건 중 어떤 것도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120 페이지)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시간적으로 너무 근접해 있어”라고 두 개의 경우를 생각하는 것처럼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시간적으로 너무 근접해 있”는 경우는 왜 두 사건 사이에 신호의 전달이 안 되는 것일까? 원문을 보자.


원문: “But two events can be so far apart in space and take place so close in time that no signal can reach from one to another. In such cases, neither of the two events can be the cause of the other.” (p. 57)


원문의 뜻은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며 시간적으로 너무 근접하게 발생하여’이다.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한 개의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다. 두 사건이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시간적으로 간격이 매우 짧으면 이 두 사건 사이에 신호가 전달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두 번째 문장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마치 “두 사건 중 어떤 것도” 제3의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자면 ‘그런 경우, 한 사건은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없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


- “물리학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인과적으로 연관된 사건들의 질서에 대해 관측자들이 동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원인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혼동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건들 사이의 질서에 대해 관측자들이 동의할 필요는 없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그러한 경우 관측자들이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 (120페이지)


원문: “For physics to make sense, observers have to agree on the order of causally related events to avoid confusion about the attribution of causes. But there’s no reason for observers to agree about the order of events that could not possibly affect each other. In Einstein’s theory of relativity, they don’t agree.” (p. 57)


역자는 단어 “order”를 “질서”로 번역하고 있다. order가 질서의 뜻을 가질 때도 있지만, 여기서는 ‘순서’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인과적으로 연관된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에 대해’ 관측자들이 동의해야 원인과 결과를 일관되게 말할 수 있음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간적 순서가 뒤바뀌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 역자는 이후에도 계속 “order”를 “질서”로 번역하고 있다.


- “따라서 토론토에 있는 사람이 싱가포르에 있는 연인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연인이 몇 초 전에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의미가 있다. 그 몇 초 동안은 연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전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그녀가 그 메시지를 읽는 것은 인과적으로 연관된 사건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보내는 메시지가 그의 남은 인생을 바꾸리라는 것, 몇 분 후 그가 그녀로부터 온 메시지를 읽은 순간부터 그의 삶이 바뀌리라는 데는 모든 관측자가 동의할 것이다.” (120~121 페이지)


첫 번째 나오는 연인은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싱가포르에 있는 연인”)을 지칭하고 있다. 두 번째 나오는 연인(“자신의 연인”)도 당연히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이다. 세 번째 나오는 연인(“연인에게 문자를 보내...”)은 어디에 있는 사람인가? 당연히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나? 그렇게 이해하면, 토론토에 있는 사람이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방금 전,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의 몇 초 전을 상상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 몇 초 동안 토론토에 있는 사람이 싱가포르에 있는 연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이해가 안 된다. 그 다음에는 ‘그’와 ‘그녀’가 나오는데, 누가 토론토, 누가 싱가포르에 있는지 헷갈린다. 원문을 봐야겠다.


원문: “So it makes no sense for our friend in Toronto to wonder what her lover is doing right now in Singapore. But it makes total sense for her to think about what he was doing a few seconds ago. Those seconds are more than enough time for him to have sent the text she is reading now; his sending the text and her reading it are causally related events. And all observers will agree that the text she sends now will change the rest of his life, beginning with when he reads her news a minute later.” (p. 57)


첫 문장에서부터 토론토에 있는 사람이 ‘그녀’임이 명확하다(“her lover”). 두 번째 문장에서는 싱가포르에 있는 사람이 ‘그’(“he”)임이 나온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있는 ‘그’가 토론토에 있는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데 충분한 시간 몇 초에 대해 얘기한다. 그 몇 초 전을 생각하는 것은 유의미하다. 두 사건이 인과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혼란을 제거하기 위해 다음처럼 번역해 본다면?


--> 그러므로 토론토에 있는 우리 친구가 싱가포르에 있는 연인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연인이 몇 초 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분명한 의미가 있다. 이 몇 초는 토론토의 우리 친구가 지금 읽고 있는 문자 메시지를 싱가포르의 연인이 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연인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우리 친구가 그것을 읽는 것은 인과적으로 연결된 사건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친구가 보내는 문자 메시지가 연인의 일생을 바꾸어 놓으리라는 것에도 모든 관측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우리 친구가 보내는 소식을 연인이 1분 후에 읽는 때부터 말이다. 


- “... 우리는 현재가 실재한다는 것에는 의심을 갖지 않는다. 현재는 다수의 사건들로 구성되며, 이들 중 그 어떤 사건도 다른 사건들보다 실재적이지 않다. 우리는 미래의 두 사건이 실재적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두 사건이 동일한 시간에 일어난다면 우리는 이 시간이 현재든 과거든 미래든 상관없이 동등하게 실재한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125~126 페이지)


현재를 구성하는 다수의 사건들 중 그 어떤 사건도 다른 사건들보다 실재적이지 않다고? 


원문: “... we have no doubt that the present is real. The present consists of many events, none of which is more real than any other. We don’t know whether two events in the future are real, but we will agree that if two events take place at the same time they’re equally real, whether that time is the present, past, or future.” (p. 61)


“none of which is more real than any other”는 “이들 중 그 어떤 사건도 다른 사건들보다 실재적이지 않다”가 아니라 “이들 중 그 어떤 사건도 다른 사건들보다 실재적이지 않다”, 즉 “다른 사건들과 똑같이 실재적이다”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 다음처럼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 현재가 실재함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의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는 많은 사건들로 구성되며, 이것들은 모두 똑같이 실재적이다. 미래의 두 사건이 실재하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만약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다면 이 두 사건은 똑같이 실재적이라는 데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 시간이 현재, 과거, 미래에 상관없이 말이다. 


- “일반상대성은 시간이 비실재적이라고 주장하는 특수상대성의 면모들을 보존할 뿐 아니라 동일한 효과를 가지는 새로운 측면들을 도입한다. 첫째, 시공간을 공간과 시간으로 분리하는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 (131페이지)


일반상대성은 특수상대성에 “새로운 측면들을 도입”한다며, “시공간을 공간과 시간으로 분리하는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특수상대성에 이미 시공간을 공간과 시간으로 분리하는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시간의 상대성). 


원문: “General relativity not only preserves the features of special relativity arguing that time is unreal but also introduces new ones to the same effect. First, there are many more ways of dividing spacetime up into space and time.” (p. 66)


원문은 “many more ways of dividing spacetime”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냥 ‘많은 방식’이 아니라 ‘더 많은 방식’인 것이다. 특수상대성의 방식에 더해서. 이렇게 하면 위의 첫 번째 문장과 잘 호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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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은 시간가역성은 시간의 비실재성을 지지하는 또 다른 논증이다. 만약 자연법칙의 방향이 거꾸로 될 수 있다면, 원리상 과거와 미래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매우 다른 관계를 맺는 것은 세계의 근본적인 속성이 될 수 없다. 미래와 과거의 겉보기 차이는 분명 환상이거나 특수한 초기 조건의 귀결일 것이다.

   엔트로피의 본성에 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거시 세계를 원자 세계와 연결하는 데 누구보다 큰 공헌을 한 루트비히 볼츠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주의 관점에서는, 공간에 위와 아래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시간의 두 방향을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과거와 미래 사이에 실제적인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즉 과거와 미래는 정확히 동일한 내용을 가지며 그저 논리적으로 재배열된 것일 뿐이라면, 현재 순간의 실재성 또는 시간 흐름의 실재성을 믿을 필요가 없다. 물리법칙의 시간 가역성은 많은 경우 자연에 대한 물리학자의 개념으로부터 시간을 제거한 또 다른 단계라고 여겨진다. (113~114 페이지)

   These reversals are another argument for the unreality of time. If the direction of the laws of nature can be reversed, then there cannot, in principle, be any difference between the past and the future--and the fact that we have very different relationships with the past and the future cannot be a fundamental property of the world. The apparent differences between the future and the past must either be illusions or consequences of special initial conditions.

   Ludwig Boltzmann, who, with his insights into the nature of entropy, did more than anyone else to connect the atomic world with the macro world we experience, once said, "For the universe, the two directions of time are indistinguishable, just as in space there is no up and down." And if there's no real distinction between past and future--if they have exactly the same content, just logically rearranged--then there's no need to believe in the reality of the present moment or the reality of the passage of time. The time-reversibility of the laws of physics is often taken as another step in the removal of time from the physicists' conception of nature. (pp. 52-53)

   ...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지 여부와 같이 관측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질문에 대한 옳은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시적으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없으며 '지금' 실재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동시성의 상대성은 시간이 실재한다는 개념에 대한 커다란 공격이었다. (121 페이지)

   So there's no right answer to questions that observers disagree about, such as whether two events distant from each other happen simultaneously. Thus, there can be nothing objectively real about simultaneity, nothing real about "now." The relativity of simultaneity was a big blow to the notion that time is real. (p.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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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턴 이래로 몇몇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곡선이 운동 그 자체보다 '더 실재적'이라는 신비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였다. 곧 사라지는 경험의 연속과 대비되는, 좀 더 심오한 비시간적인 수학적 실재라는 개념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실재를 그것에 대한 표상과 뒤섞고 운동 기록을 그래프로 나타낸 것을 운동 그 자체와 동일시하려는 유혹에 빠짐으로써, 이 과학자들은 우리의 자연 개념에서 시간을 추방하는 일에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89 페이지)

   Some physicists since Newton have embraced the mystic's view that the mathematical curve is "more real" than the motion itself. The great attraction of the concept of a deeper, mathematical reality is that it is timeless, in contrast to a fleeting succession of experiences. By succumbing to the temptation to conflate the representation with the reality and identify the graph of the records of the motion with the motion itself, these scientists have taken a big step towards the expulsion of time from our conception of nature. (p. 34)

   그 어떤 수학적 대상도 우주의 역사를 완전히 나타낼 수 없는 단순한 이유가 있다. 우주는 우주에 대한 수학적 표상이 가질 수 없는 속성 하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는 항상 특정한 시간 속에 있고, 특정한 현재의 순간 속에 있다. 그 어떤 수학적 대상도 이와 같은 개별성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한번 구성된 수학적 대상은 비시간적이기 때문이다. (91 페이지)

   There's a simple reason that no mathematical object will ever provide a complete representation of the history of the universe, which is that the universe has one property no mathematical representation of it can have. Here in the real world, it is always some time, some present moment. No mathematical object can have this particularity, because once constructed, mathematical objects are timeless. (pp. 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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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Reborn> 국역본을 조금씩 읽고 있다.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스몰린의 주장을 다시금 곱씹어보고 싶어서다. 읽으면서, 저자의 실제 의도에서 조금씩 어긋나게 번역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이어서 원문을 찾아봤다. 


먼저 자연의 단순성에 대한 부분이다. 뉴튼은 그의 운동법칙에 만유인력 법칙을 더해 지구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을 설명해버렸다. 즉, '천상계와 지상계를 통일해 버렸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다음처럼 말하는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처럼 단순한 수학적 관계가 자연의 보편적인 현상을 포착한다는 사실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개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놀라운 귀결이었다. 자연은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선 안 되었고, 사실상 고대인은 운동의 원인에 그처럼 단순하고 보편적인 수학을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72~73 페이지)


여기서 내가 의아했던 부분은 "자연은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선 안 되었고"이다. 왜 자연은 단순하면 안 되나? 우리가 자연에 대해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나? 원문을 찾아보고 저자의 원래 의도와의 차이를 알게 됐다. 다음은 위의 부분에 대한 원문:


"The astounding consequence for our conception of nature is that such a simple mathematical relation captures a universal phenomenon in nature. Nature did not have to be so amazingly simple--and, indeed, the ancients had never contemplated such a simple and universal application of mathematics to the causes of motion." (p. 23)


원문을 보면 첫 번째 문장부터 오역의 혐의가 있다. 저자가 원래 의미하는 바를 직역하면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가져온 놀라운 귀결은 그렇게 간단한 수학적 관계가 자연의 보편적 현상을 포착한다는 것이다."가 될 것이다. 역자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개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라고, 마치 우리가 자연에 대한 특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번역했지만, 저자는 그렇게 의도한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문장의 "자연은 그토록 놀라울 정도로 단순해선 안 되었고"의 원문은 "Nature did not have to be so amazingly simple"이다. 이 의미는 "자연은 그렇게 놀라울 정도로 단순할 필요가 없었다"이다. 역자는 자연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해야 한다는 개념을 마치 우리가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번역했지만, '단순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꼭 단순할 필요는 없다'이다. 굳이 단순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단순하다고 판명되니 놀라운 것이다. 


그 다음 애매한 곳은 운동의 기술을 설명하는 부분에 있다. 


"힘이 어떻게 운동을 일으키는지 물으려면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73 페이지)


위 문장을 보면,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해야만 한다"가 힘이 어떻게 운동을 야기시키는지를 묻기 위한 전제인 것처럼 보인다. 만약 '움직이는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런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전제가 맞나? 다음은 원문이다:


"To ask how a force causes motion, you have to think of a moving object tracing a curve in space." (p. 23) 


저자가 의미하는 바는 번역과는 살짝 다르다. 초점이 "물체가 공간 속에서 곡선을 따라 움직인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운동'을 생각하려면 그냥 '운동하는 물체'를 상정해야 한다는 단순한 의미이다. 즉, "힘이 어떻게 운동을 일으키는지 물으려면" 공간에서 '어떤' 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물체'를 생각해야 한다, 는 뜻이다. 


곧 연휴이고, 시간이 좀 생겨서 (안 올려도 좋을) 글을 주절주절 올리게 됐다. 이러다 다시 바빠지면 한 달에 한 번 글 올리기도 힘들어질 듯 싶다.


모두 명절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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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시간적 법칙으로 세상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리 스몰린의 한 마디를 옮긴다.


There's a cheapness at the core of any claim that our universe is ultimately explained by another, more perfect world standing apart from everything we perceive. (p.11)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동떨어진, 또 하나의 더 완벽한 세상에 의해 우리 우주가 궁극적으로 설명된다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싸구려이다."


예전보다는 위와 같은 주장이 덜 급진적으로 들리며, 심지어 동의가 되기도 한다. 시간 속에서 사는 존재인 우리. '시간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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