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사용설명서 - 내 삶을 사랑하는 365가지 방법
김홍신 지음 / 해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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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을 잘 보내야겠다는 새해 다짐을 시작한 것이 벌써 1개월이 지나간다.

이런 다짐을 몇 년을 반복하고, 번복하고  다시 마음먹기를 해왔는지 슬쩍 민망해진다.

 

어느 날 문득 떠올린 나의 다짐이 어떤 것이었더라?는 생각이 들 때쯤 우연히 신간 한 권을 접하게 되었다.

작가 김홍신 님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제자들에게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공감할 수 있고 화두가 될 만한 가볍고 짧은 글"을 날마다 하나씩 써보라는 과제를 내주며 자신도 함께 해보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어느덧 1년을 채웠다는 책 소개 글이 눈에 띄었다.

"작가 김홍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궁금한 책이지만 무엇보다 1년 365일을 매일 글을 적었다는 그 상황과 진득함에 궁금했다.

과연 작가는 어떤 공감을 어떻게 써 내려가는지, 어떤 이야깃거리를 매일 꺼내볼 수 있는지를 말이다.

1월부터 12월까지 매일매일의 기록에는 작가의 삶과 생각, 인생관 또는 여러 분야의 관심과 철학이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글이라기보다는 글을 써 감으로써 나를 다시 생각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라고 할까?

길지 않은 글이라 읽기 쉽고. 전문적인 철학이나 지식을 언급하지 않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샘을 청소할 때는 바가지로 물만 퍼내기만 하면 안 된다. 마구 휘저어서 바닥의 흙을 일으켜 구석구석에 가라앉는 미세한 오물들을 걷어내야 비로소 맑은 샘이 된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을 살펴보는 게 마음공부요, 마음을 청소하는 건 사랑이고 용서다.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할 때, 바로 그때가 마음 청소를 할 때이다.(-들여다보고 청소한다 중에서)

 

살면서 마음을 정리해야 할 때는 꼭 필요하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일까. 좌절했을 때? 아니면 잠시의 여유를 느낄 때?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와의 갈등으로 지쳤을 때??

작가는 마음이 복잡할 때, 그때가 마음 청소를 할 때라고 했다.

청소는 습관이다. 매번 쓸고 닦고, 정리하고.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매일 일어나서 움직이면서 하는 것이 청소이다.

이런 청소를 마음 청소에도 습관처럼 쓸고 닦으면 마음을 늘 개운하게 갖고 있지 않을까? 마음이 개운하다면 복잡할 일도 적어질 때고 원망과 갈등도 적어지지 않을까?

 

...(중략) 참으로 신기하게도 우리 뇌가 마음의 쓰레기를 버리기 어려운 걸 알고 건망증이란 걸 생성해낸 것 같다. 건망증이 잦으면 '에라, 내가 버려야 할 게 많은가 보다'라고 생각하면 된다.(-건망증 중에서)

건망증이 생겼다고 실망하고, 더 늙어가는 아닌가라는 좌절감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민망함에 가볍게 얘기를 하면서 넘어가는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 나이가 들어감을 서글프게 여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건망증이라는 단어 앞에서 작가는 색다른 생각을 보여준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건망증이 생활의 불편함을 주는 증상이라는 것이 아니라. 때론 내가 움켜쥐고 아등바등 가진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그런 의미로 말한다.

아.. 그렇구나. 살아온 날이 많으면 쓸데없이 쌓여있는 한 조각의 미련, 한 조각의 원망, 또는 한 조각의 욕심이 있겠구나.. 무엇인가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그 무엇이 아니겠구나..

그래.. 증상의 슬픔보다는 또 다른 나를 한 번 정리하는 그런 것으로 보면 좋겠구나..

시선의 다름을 생각해보게 한다.

 

<하루 사용 설명서>는 무심코 지나는 일상의 소소함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주기도 한다. 나는 전혀 생각지도 않던 생활의 이야기를, 사람의 이야기를, 또는 세상의 이야기를 작가는 한번 더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깊이를 짚어본다.

 

산다는 것이 참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서 매일매일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남들의 평범함이 때론 나에게는 큰 사건이 되고, 고민이 될 때가 있다. 정답이 없지만 정답을 찾기 위해 매번 고민하는 것이 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좋게좋게 좋은 방향의 결과를 얻게 된다면 삶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겠냐만. 결코 이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좋게좋게를 찾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하루 사용 설명서>를 가볍게 읽어가면서 그 속에서 또 다른 삶의 결과를 미리 생각해보게 한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런 방법도 사는 방법이고. 저런 방법도 정답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쉬운 것은 결코 없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돌리면 그 쉬운 방법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선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짜증 내던 원인을 조금은 다르게 보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가지고 있던 욕심을 조금을 덜어내려는 노력을 스스로 해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고민스럽고, 여전히 불만에 쌓여 살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더 멀리 보는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지도 모르겠다. 작은 변화.. 이것을 얻을 수 있어서 스스로 다행이라고 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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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3 - 진실의 문
안나 토드 지음, 강효준 옮김 / 콤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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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서 만난 하딘은 잔인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테사에게 하딘이란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남자이다.

표현하자면 순진하고 고루한 테사에 비해서 하딘은 모든 것을 섭렵한, 모든 욕망의 정점에 다다른 남자이다.

사랑에 서툴고 표현에 서툰 테사와 하딘의 갈등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키스만으로도 두근거림과 황홀함에 빠지는 테사에게 섹스가 우선인 하딘의 표현은 감당하기 힘든 그 자체이니까.


하지만 하딘은 정말 미숙하다 못해 영혼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어린 시절 친부의 잘못으로 겪었던 자신과 엄마의 고통은 하딘의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하딘이 여자를 대하는 방식은 너무 가볍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분노와 상처를 그렇게 해소하였는가 보다.


첫 경험의 황홀함. 부끄러움, 그리고 기대감은 3권 진실의 문을 지나면서 독자들에게 밝혀진다.

충격이다.

정말 충격이다.


사랑? 욕망?

차라리 욕망이라 부르자 그게 낫겠다.


애프터 3. 진실의 문을 읽는 독자들은 호불호가 분명해질듯하다.

사랑과 욕망 딱 두 가지의 표현을 놓고 본다면 나는 욕망이라고 하고 싶다.

욕망에 먼저인 두 남녀가 그 욕구를 먼저 채우고 그다음을 수습하는 그런 미숙함의 존재들이라고 하고 싶다.


그 악랄한 하딘의 행동 앞에서 테사는 어떤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이는 것일까.

소설 속의 인물에 동화되어서 그들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테사의 그 사랑을 감히 표현할 수가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 하딘을 마구 욕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 속의 테사의 입장에서는 그런 짓을 벌인 하딘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테사의 감정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찌른다.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허용이 되고,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수많은 사랑 이야기를 읽어오면서도 이렇게까지 극과 극을 표현하는 소설은 없었던 것 같다.

사랑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사랑하고 상처 주고 때론 보듬고 때론 분노하는 그 모든 사랑의 일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애프터 3의 하딘과 테사의 사랑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들이 서로에게 내지르는 사랑의 말과 의미와 몸짓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던져댄다.


숨이 막힌다.

독자는 뻔히 알고 있는데 그것을 찾아가는 주인공들의 시선은 왜 이렇게 더딘지 모르겠다.

반면 다른 의미로 본다면 이렇게 지독한 사랑이 어디까지 깊어질는지 궁금증을 일으킨다.


하딘과 테사, 두 주인공은 미숙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결코 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가정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아내와 아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하딘의 친부가 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사랑을 찾은 친부와 그의 새 아내가 있다.

그들 사이에서 그나마 온전하고 표현되는 랜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지독한 집착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테사의 엄마가 있다.

자신의 불행한 삶을 딸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욕심뿐인 엄마이다.


사람 하나하나를 놓고 본다면 자신의 가슴속에 꽁꽁 숨겨놓은 사랑에 대한 갈망, 사람에 대한 간절함, 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숨기기 바쁜 어리숙한

사람들이 보인다.

누구나 그런가 보다.

다 잘나 보이고 성공해 보이고 때론 멋있어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겠지만 그들 하나하나는 또 다른 형태로 미숙한 존재이다.


미숙함이 완성된 인물이 되기까지는 사랑이라고 한다.

좋게좋게 설명하고 싶다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

테사와 하딘 그리고 그들의 주위에 있는 이들은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분노로 표시를 하던, 욕망과 섹스로 표시를 하던 결국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너와 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 이것이다.


뜨겁다.

이 책은 한마디로 뜨거운 책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어갈 때만 다 분노로 뜨거워지고, 그들의 뜨거운 숨결로 뜨거워진다.

이런 뜨거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


당장의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사랑하는 이와 뜨거움을 나누고 싶다. 그런 책이다.

마음껏 표현하는 것. 이것이 참 부럽다.

이해를 하다가도 다시 절망에 빠지는 하딘과 테사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래도 이들을 끝까지 보고 싶다.


독자의 바램이라면 그 구구절절한 싸움 끝에 서로를 보듬어 가겠지만.. 음... 3권까지의 하딘의 행태를 본다면 아직도 멀었다.

더 지독하게 버림받고, 더 지독하게 울어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태자면 지금의 사랑에 행복해하는 하딘의 친부를 벌주고 싶다.

자신이 버리고 간 아들과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용서를 빌고 싶다면 말이다.


책을 덮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떠올려야 했다.

그토록 이들의 사랑은 벅차다. 감히 쉽게 얘기할 수 없는 벅참과 숨 막힘이 크다.

4권을 기다려야 하는데.. 아주 큰 심호흡을 하고 4권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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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좋은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박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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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을 상상하면 쓸쓸함. 외로움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뒷모습만으로도 따뜻함과 흐뭇함을 느낄 수 있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네가 좋은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의 표지만 보더라도 한 컷의 그림으로도 충분히 따뜻함을 느낄 수 있죠.


행복을 전하는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 중인 박지영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이 그런 따뜻함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정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받기도 하지만 길도 보이지 않는, 풀이 무성한 길을 무거운 발길로 걸어갈 때가 많습니다. 겨우 길을 찾았다고 해도 이름도 모르는 풀들, 나무들이 길을 덮다시피해서 온몸에 생채기가 나기도 하죠.

이런 정글 같은 매일을 견디는, 응원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전하는 작가의 마음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행복을 전하는 그림은 많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뒷모습으로 행복감을 얻는다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그것도 동물의 뒷모습뿐인 그림에서 따뜻한 미소가 저절로 맺힙니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는,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누렁이의 뒷모습, 빗방울이 맺힌 창가에 올라앉아 잿빛 하늘을 쳐다보는 고양이의 뒷모습, 흩날리는 꽃잎과 나뭇잎과 눈송이와 비눗방울을 올려다보는 얼룩 고양이의 모습...

뒷모습으로 이런 따뜻함을 얻을 수 있었음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참 무섭고 매서운 세상입니다. 그 속에서 매일매일 긴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역시 매섭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감성, 본성은 늘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때론 혼자여서 두려운 마음도 있고, 때론 좌절에 빠진 기운 없는 날도 분명 있겠죠.

실수를 해서 부끄러운 날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가식에 빠진 사람과 맞닿아야 하는 불편함도 느끼고 있을 겁니다.


<나는 네가 좋은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의 친구들은 독자들이게 이렇게 전합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서두르지 않고, 쉬지 않고 마음이 따뜻할 수 있게, 늘 나의 편이 되어 준다고 합니다.


변함없이 내 편이 있다는 것..

참 큰 선물이겠죠? 변함없이라는 그 든든함이 뒤에서 내 모습을 바라봐 주고 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용기를 낼 수 있고, 기운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뒷모습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많은 느낌과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가의 스토리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제목 그대로 행복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구구절절한 긴 말의 위로보다 이렇게 짧은 그림 한 컷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입니다.

어제도 많은 고민이 있던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따뜻함에 바짝 예민하던 날카로움을 잠시 무디게 만들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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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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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중독자라는 말이 참 매력적이다.

책을 늘 끼고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짧은 문장처럼 멋지고, 닮아가고 싶은 말이 또 있을까?


독서 애호가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독서 중독자라는 말은 조금은 B급스럽고, 조금은 병맛인..

그런 털털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고상하고 왠지 고전만 읽어댈 것 같고, 또는 작품에 대해 깊은 안목을 가진 것보다는 읽자마자 느껴지는 감성을 표현하고, 이론적인 감성보다는 오롯이 나의 감성, 나의 느낌이 우선시되는 중독자라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몇 번은 궁금함일 도질 때가 있다.

대중들에게 언급되어 베스트셀러라고 소문이 났던 책이나. 아니면 무슨 무슨 상을 수상했던 유명한 책이라던가. 또는 여러 저명인사들의 추천을 받았다는 책을 기대감으로 읽었을 때 모두 만족한 것은 아니다.

때론 뭐 이런 책을 추천하나 싶기도 하고, 뭔 뜻으로 이런 책에 상을 줬을까라는 궁금함도 생긴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읽다 보면 독서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며, 대중의 판단과는 또 다른 판단 역시 공존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인물들은 서로의 별명밖에 모른다.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는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서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이를테면 책날개에 어떤 글이 쓰여있는 지로 책을 질을 판단하는 팁이라던가.. (난 이 부분이 정말 맘에 들었다. 나도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

책 제목과 목차는 원서와 대비해서 보면 좋다는 팁이라던가.. 서문을 읽고 책의 첫인상을 발견하는 팁이라던가..

그동안 무심코 읽고 말았던 부분에 대한 언급은 다시 한번 꼼꼼하게 책을 읽는 계기를 준다.


독서 중독자들은 베스트셀러에 냉담하다(어쩌다 읽은 책이 훗날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조차 불명예로 여길 정도.) p119


책 선택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일단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책부터! p120


독서 중독자들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 나간다. ('동시병행 독서법') p205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읽으면서 가끔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책은 오로지 나 자신이 보는 것이다. 고로 내 호기심을 충족시킨 책을 선택함은 당연하다.(베스트셀러?? 독자들 사이에서 추천되는?? 내가 궁금해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과감히 버리자)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다?? 또한 과감히 동시에 읽어나가자.. (이 방법은 내가 간혹 쓰는 방법인데...)

독서에는 정해진 룰은 없다. 나의 판단대로, 내 호기심을 총족 시켜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읽기 편한 책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B급의 감성을 그린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지만 내용은 그 깊이가 대단하다. 인용된 문장의 한 줄 역시 깊이 있는 독서자만이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관계로 옮겨 적기는 그렇다..)

웹툰을 별로 반기지 않는 독자라면 스토리가 어수선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뭐. 다 개개인의 감성 아닐까? 그 속에서 얻는 팁 몇 가지를 건진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고 본다.

독서에 대한 주관성이나 편협성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전자책도 유행하고 음성책도 좋아들하지만 그래도 난 종이책이 좋다. 하나하나 줄을 그어서 볼 수도 있고, 읽다가 막힐 때면 책 귀퉁이를 접어두고 나중에 읽어도 좋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를 보면서 책의 실제를 보는 안목이 생긴다면 그것이 제일 좋은 중독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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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
장만주엔 지음, 정세경 옮김 / 페이지팩토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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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되었다.

어쩌다,, 어쩌다 이 시간이 다가왔을까.

말 그대로 어영부영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났고, 어느덧 나는 '중년'이라는 위치에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 단어가 친숙하지는 않다.

내 입으로 나를 '중년'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중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삶의 진득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느 면으로 나이가 들었음, 고리타분함의 주체라는 선입견을 갖기 때문이다.

결코 위축될 나이가 아닌데도 말이다.

삶의 바쁨을 충분히 겪어왔고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계획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년인데 말이다.


이런 공감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에게 누군가 쓰다듬어 준다면, 중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고, 큰 인생의 계획표를 다시 정비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는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다는 이유만으로 축 처질 수 있는 독자들에게 친구처럼, 인생의 선배처럼, 때론 삶의 경험자처럼 중년에 대한 느낌을 전하고 있다.


50대인 저자 장만주엔은 40.50.60대 타이완 중년들에게 문학적 우상이라고 한다. 독특한 매력으로 큰 인기를 받고 있는 작가는 자신의 SNS에 올린 칼럼 21편을 엮어 이 에세이를 만들었단다. 수많은 중년들의 공감을 얻고 중년 독자들의 열띤 토론을 이끌어 냈던 글들이라고 하니, '중년'이라는 막연한 무게감에 축 처져있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까?

나도 중년이고 너도 중년인데 내가 너한테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모습이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중년의 당신에게


우리는 중년이 되어서야

많은 것들을 미뤄왔음을 깨닫는다.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

모두 미뤄왔다.


이제 펜과 종이를 꺼내 인생 전반전 동안

미뤄왔던 것들을 일일이 기록해보라.


미뤄왔던 것들이 많을수록

남을 위해 희생한 것이 많았고

스스로 손해 본 것도 많았다는 뜻이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중년이라는 나이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을 되짚어보는 여유를 갖게 하고, 스치는 시간 속의 담긴 깊이를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다. 어제는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이 오늘은 의미를 지닌 그런 날이 눈에 들어오듯이 말이다.


'중년'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정말 묵직하다. 오히려 삶의 최고인 노년보다 더 묵직함을 준다.

아직도 삶의 여정 중에 있고, 그 삶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하지만 그저 조금 더 앞서서 삶과 부대끼고 있다는, 중년의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다 알 것 같다는 것,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같은 긍정도 있지만 때론 무조건 모른척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도 작용한다.

조금 더 어른이다는 이유로, 삶의 원숙함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나의 꿈과 미래와 또는 사랑에 대해 자의반 타의 반으로 그저 무던하게 무덤덤하게 일부러 지나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꼭 쓸모 있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고 느끼며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가장 큰 쓰임새일 것이다. 중년이라면 사소한 일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줄 알아야 한다.

중년이라는 나이 역시 여전히 꿈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세대이다. 그저 청춘보다는 경험해온 삶을 딛고 신중하고 실패를 피할 수 있는 약간의 경험만 가진 그런 지나가는 세대일 뿐이다.

젊음보다는 원숙함과 완성됨을 행할 수 있고, 노년 세대보다는 그래도 더 많은 기회를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중년이다.


사람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많은 것들을 미뤄 왔음을 깨닫는다. 꼭 해야 했던 일, 하고 싶었던 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 모두 미뤄왔다. 때로는 스스로 움츠러들어서, 혹은 남을 먼저 배려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고작 인생의 절반을 산 중년은 더 많은 좋은 날과 비바람, 황혼을 겪어야 하며 쉽게 마침표를 찍어선 안 된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중년이라는 나이가 됨과 동시에 삶에 대해 너무 아는 척을 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을 해본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은 독자라면 충분히 기회도 있고, 경험도 있음을 있지 말았으면 좋겠다.


중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중년이라는 선에 올라서고 보니 첫 느낌은 막막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그동안 귀동냥으로 들어온 중년에 대한 무거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이라는 단어를 먼저 업기보다는 조금 더 삶을 경험한 자라는 타이틀을 업고 세상을 본다면, 삶을 본다면 우리의 여정은 아직도 여전히 시작이라는 느낌도 갖게 된다.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는 그런 책이다.

무의식중에 중년이라는 고리타분함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앞으로의 여정은 더 멋지고, 더 행복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음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

나이 들어 초라해지는 중년이 아닌, 원숙함과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년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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