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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
장만주엔 지음, 정세경 옮김 / 페이지팩토리 / 2018년 11월
평점 :
중년이 되었다.
어쩌다,, 어쩌다 이 시간이 다가왔을까.
말 그대로 어영부영하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났고, 어느덧 나는 '중년'이라는 위치에 있지만 아직까지도 이 단어가 친숙하지는 않다.
내 입으로 나를 '중년'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중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삶의 진득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느 면으로 나이가 들었음, 고리타분함의 주체라는 선입견을 갖기 때문이다.
결코 위축될 나이가 아닌데도 말이다.
삶의 바쁨을 충분히 겪어왔고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계획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년인데 말이다.
이런 공감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당신에게 누군가 쓰다듬어 준다면, 중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많고, 큰 인생의 계획표를 다시 정비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는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다는 이유만으로 축 처질 수 있는 독자들에게 친구처럼, 인생의 선배처럼, 때론 삶의 경험자처럼 중년에 대한 느낌을 전하고 있다.
50대인 저자 장만주엔은 40.50.60대 타이완 중년들에게 문학적 우상이라고 한다. 독특한 매력으로 큰 인기를 받고 있는 작가는 자신의 SNS에 올린 칼럼 21편을 엮어 이 에세이를 만들었단다. 수많은 중년들의 공감을 얻고 중년 독자들의 열띤 토론을 이끌어 냈던 글들이라고 하니, '중년'이라는 막연한 무게감에 축 처져있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까?
나도 중년이고 너도 중년인데 내가 너한테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모습이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중년의 당신에게
우리는 중년이 되어서야
많은 것들을 미뤄왔음을 깨닫는다.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
모두 미뤄왔다.
이제 펜과 종이를 꺼내 인생 전반전 동안
미뤄왔던 것들을 일일이 기록해보라.
미뤄왔던 것들이 많을수록
남을 위해 희생한 것이 많았고
스스로 손해 본 것도 많았다는 뜻이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중년이라는 나이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을 되짚어보는 여유를 갖게 하고, 스치는 시간 속의 담긴 깊이를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다. 어제는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이 오늘은 의미를 지닌 그런 날이 눈에 들어오듯이 말이다.
'중년'이라는 단어는 그 의미가 정말 묵직하다. 오히려 삶의 최고인 노년보다 더 묵직함을 준다.
아직도 삶의 여정 중에 있고, 그 삶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하지만 그저 조금 더 앞서서 삶과 부대끼고 있다는, 중년의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다 알 것 같다는 것,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같은 긍정도 있지만 때론 무조건 모른척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도 작용한다.
조금 더 어른이다는 이유로, 삶의 원숙함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나의 꿈과 미래와 또는 사랑에 대해 자의반 타의 반으로 그저 무던하게 무덤덤하게 일부러 지나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꼭 쓸모 있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고 느끼며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가장 큰 쓰임새일 것이다. 중년이라면 사소한 일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줄 알아야 한다.
중년이라는 나이 역시 여전히 꿈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세대이다. 그저 청춘보다는 경험해온 삶을 딛고 신중하고 실패를 피할 수 있는 약간의 경험만 가진 그런 지나가는 세대일 뿐이다.
젊음보다는 원숙함과 완성됨을 행할 수 있고, 노년 세대보다는 그래도 더 많은 기회를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중년이다.
사람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많은 것들을 미뤄 왔음을 깨닫는다. 꼭 해야 했던 일, 하고 싶었던 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 모두 미뤄왔다. 때로는 스스로 움츠러들어서, 혹은 남을 먼저 배려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고작 인생의 절반을 산 중년은 더 많은 좋은 날과 비바람, 황혼을 겪어야 하며 쉽게 마침표를 찍어선 안 된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중년이라는 나이가 됨과 동시에 삶에 대해 너무 아는 척을 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을 해본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은 독자라면 충분히 기회도 있고, 경험도 있음을 있지 말았으면 좋겠다.
중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중년이라는 선에 올라서고 보니 첫 느낌은 막막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그동안 귀동냥으로 들어온 중년에 대한 무거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이라는 단어를 먼저 업기보다는 조금 더 삶을 경험한 자라는 타이틀을 업고 세상을 본다면, 삶을 본다면 우리의 여정은 아직도 여전히 시작이라는 느낌도 갖게 된다.
<내 나이 또래, 중년의 당신에게>는 그런 책이다.
무의식중에 중년이라는 고리타분함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앞으로의 여정은 더 멋지고, 더 행복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음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
나이 들어 초라해지는 중년이 아닌, 원숙함과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년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