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 - 마음 둘 곳 없는 당신에게 보내는 윤대현의 심리 편지
윤대현 지음 / 예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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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해야 할 일이 많고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 어깨가 무겁고 다리가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일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서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인정받고 있긴 하지만, 웬일인지 해야 할 일은 계속 늘어난다.
가정이 화목해야 하니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덕분에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이 남는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해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만 내 감정을 감추어야 하는 게 답답하다.
그렇게 힘들어도 괜찮은 척, 외로워도 아무렇지 않은 척, 화가 나도 의연한 척, 슬퍼도 덤덤한 척 참 잘해왔다.
그래야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만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불안해하지 마’ 하면 불안이 사라지고, ‘행복하자’ 하면 행복한 마음이 들면 좋을 텐데……. 
 
 
참 열심히 살아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온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성공이 아닐지라도 그 순간에, 그 상황에서 제일 나은 방법을 선택하고, 나와 가족이 대부분 인정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고, 또 다른 날을 시작하고, 또 다른 갈등을 해결하고 지금까지 별다른 풍파없이 살아왔다면 열심히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참 힘들다.
나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계획과 희망대로 잘 커주고 있고, 남편도 별 문제없이, 더이상의 시행착오없이 지금까지 달려오면 잘 사는 거다. 큰며느리로 집안의 큰일을 주관하고 고부간의 관계도 이만하면 평범하지만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힘들다.
 
 
이유도 없이 화가 나고, 이유도 없이 서럽다.
흔히 말하는 갱년기 증상이라고 가볍게 치부를 하지만, 그게 맞는 답일까? 쉽게 인정할 수가 없다. 그렇게 인정하기에는 내 자신을 너무 늙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갱년기' '중년'이라는 단어로만 지금의 내 마음을 설명할 수 밖에 없을까? 이런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이 아깝다.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의 책 소개에서 이런 글을 본다.
윤대현 교수는 마음은 언제나 자신과 이야기하고 싶어한다고 지적하며, 이제라도 인정받는 사람, 목표를 이룬 인생, 행복한 삶을 위해 달리느라 방치해둔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권한다. 내 마음이 왜 힘든지, 얼마나 외로운지, 무슨 일로 화가 나는지 의문에 답을 찾아가라고. 방법은 ‘하루 3분이라도 나만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나를 위해 누군가 보내준 한 통의 반가운 편지를 읽듯, 이 책을 읽으며 하루 3분 만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자. 마음 둘 곳 없는, 가까운 사람에게 지친, 세련된 가식에 상처받은,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는 당신에게 감성 에너지가 가득 충전될 것이다.
 
​그렇구나.
내가 나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 한 가정의 일원으로 살아온 것을 내 인생이라고만 했었구나.
그렇다고 이런 감정의 문제를, 또래의 중년이 겪어볼 만한 감정을 가지고 병원 상담 운운하기에는 너무 일을 크게 만드는것 같다.
저자의 말을 다시 읽어본다. 나를 위해 누군가 보내준 한 통의 반가운 편지를 읽듯...당신에게 감성 에너지가 가득 충전될 것이다.
그래 책 한 권으로 해보자. 읽다 보면, 뭔가 답이 보이겠지.
 
 
마음을 둘 곳 없는 당신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지쳐가는 당신에게,
세련된 가식에 상처받은 당신에게,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는 당신에게,
그리고 방법을 몰라서 주춤거리는 당신에게 이 책이 과연 어떤 치유를 돌려줄까.
 
 
우리는 행복을 강요하는 시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반드시 행복해야만 한다는 막연한 목표를 저 멀리 앞에 두고 달리고 있다.
지금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것도, 지금 이렇게 마음이 빡빡해지는 것도 다 행복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하면서, 그런것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마음의 아픔을 모른척하고 있다.
그래야만 언젠가는 저 행복이 내 손에 잡힐 거라는 확인이 검증 안된 결론을 미리 손에 쥐고서 말이다.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를 읽으면서 과연 누구를 위한 행복을 찾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달리고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가족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힘들고, 가족이나 주변의 사람들과 소통이 어긋나는데도 '행복'을 위해서라고만 우겨야만 할까?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은 이런 혼란함을 겪는 나에게, 나의 아픔을 쓰다듬어주는 그런 책이다.
거창하게 심리학적 해석을 말하지 않아도 좋다.
당신이 지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때론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모두 나의 속에 있는 상처와 아픔과 외로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 모든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이란다. 나 혼자만의 잘못됨이 아니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위로를 받지 않아도 내가 나를 쓰다듬어 주는 것, 내가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 내가 나의 외로움을 들어주는 것.
이것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을 얻고. 진정한 나를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나는 불안증이 참 많은 사람이다. 까칠한 사람이기도 하다. 특히 요즘은 매사에 흥미가 없이 우울함에 버둥대고 있다.
나도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나의 감정은 겉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가족들은 나의 표현에 당황한다.
지병 때문이라는 것도 한두 번의 핑계이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나의 요즘 모습에 가족의 분위기는 냉랭해진다.
이런 집안 분위기를 만들기 싫어서 억지로 마음을 다스려보곤 한다.
책도 읽어보고, TV 드라마를 뚫어져라, 보면서 다른 곳으로 나의 감정을 흩뜨려버리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그때뿐이다. 뭔가는 해야 하는데 그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나의 상황을 <하루 3분, 나만 생각하는 시간>에서 답을 찾아본다.
자존감의 이유이고, 결핍의 이유이다. 그리고 트라우마 때문이다. 나에게 따뜻함을 보내질 않는데 내가 무슨 행복함을 느낄까.
나는 나를 소중히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을 거창하게 우리 가족을 위해서 참아야 한다라는 말은 잠시 접어두고 오직 나를 위해서 답을 말하고 싶다.
내가 화를 자주 내는 것은 전문적인 말로 하자면 뇌의 '관계 예민도'가 증가했을 뿐이다. 이것은 뇌가 전투 상태라는 것이다.
뇌를 쉬게 해야 한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던지, 예쁜 딸아이와 영화를 보러 가던지, 듬직한 아들이랑 둘만 나가서 피자를 사먹던지. 때론 남편을 졸라 잠시 일을 쉬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여유를 느끼러 나가던지..쉬어야 한단다.
팔자 좋은 소리라고? 그렇단다. 뇌가 '팔자가 좋구나'하고 느껴야 화를 내지 않는단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불만의 소리, 불만의 감정등을 숨기려고 한다. 이 감정들이 나쁘다, 옳지 않다는 편견때문에 일부러 숨기려하고, 부끄러워하고, 창피해 한다.
그런데 이것은 옳지 않은 감정이 아니다. 단지 나를 좀 아프게 하는 감정일 뿐이다. 그리고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똑같은 감정이다. 단지 관계와 관계에서 어긋나는 시점에 표현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뿐이다.
 
'그래..그동안 너 참 고생했다. 여기까지 살아오느라 참 애썼고 고생했다'는 말로 나를 보듬어 본다.
묘하다.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니까 그냥 좋다.
 
 
우리는 무의식중에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살아오고 있다. 물론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이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나를 그 규칙이나 규범에 억지로 집어넣을 필요는 없다. 그 억지스러움이 나를 화나게 하고, 지치게 한다. 겉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는 또 다른 규칙, 참아야 좋은 사람이라는 규칙 때문에 나의 마음은 상처를 받아가고 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는 것, 마음이 불편하면 때론 거절할 줄 아는 것이 나를 챙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라는 타이틀에 나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시간이 있다면 조금씩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챙겨주는 시간은 어떨까?
 
 
가뜩이나 마음의 힘듦 때문에 이 책이 궁금한 독자라면 그냥 쉽게 쉽게 읽어나가면 좋다.
저자도 그랬다.
좋은 이야기에 줄 그어가면 삶에 적용해 열심히 살아야지 하지 마시고, 그냥 쭉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줄을 그었다. 내가 또 나를 주체 못할 때 딱 적용하는 한 구절을 빨리 찾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말하는 책이니 그냥 쉽게 쉽게 읽으면 좋다.
읽고 또 다른 이유로 마음이 쳐졌을 때 읽으면 좋다.
하루 3분이라는 시간이 짧지만, 눈을 감고 심호흡하는 시간으론 충분하다.
나를 잠시 나른하게 하는 것.
이것이 필요한 나에게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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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영혼이 향기로웠던 날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안내하는 마법
필립 클로델 지음, 심하은 옮김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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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떠올릴 때, 추억을 떠올릴 때 흔히 그 시간의 공간과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느낌과 풍경으로 그려내면서 추억을 더듬고 사람의 기억을 더듬게 된다.

하지만 조금 더 잔잔하게 생각을 해보면 그 속에는 늘 향기가 있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 잊었던 향기에 대한 추억, 향기에 대한 기억을 필립 클로델의 <향기>를 통해서 떠올리게 된다.

 

사르트르와 카뮈, 파트릭 모디아노를 잇는
프랑스 현대문학의 진수, 필립 클로델 산문집
가장 뛰어난 산문에 수여되는 장자크 루소 상 수상!(2013년)

 

영화감독이기도 한 그의 작품을 읽어본다. 개인적으로 프랑스 작품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프랑스 작가의 산문이라는 점이 궁금하다.

추억을 떠올리는 향기는 어지간하면 좋은 향기, 이를테면 달콤한, 고소한, 향기로운, 꽃향기처럼, 은은한 향수 냄새 등등의 어휘를 떠올리게 된다.

좋은 향기로만 표현되는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싶은 심리랄까?

하지만 향기라는 것이, 추억이라는 것이 좋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정작 그 아름답지 못한 부분에 대해, 때론 부끄러운 부분에 대해 은근슬쩍 숨어버리게 된다.

 

<향기>는 그런 모든 것을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야기의 주체를 알파벳에 맞춰서 떠올리는 향기와 그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푼다.

물론 길지 않게, 간단하게.

때론 독자들이 단어와 작가의 기억을 추리해야 하는 또는 그와 연관된 나의 추억을 꺼내야 하는 노력도 요구하는 그런 산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풍경 속에서 추억을 떠올린다.라는 것보다는

우리는 수많은 향기 속에서, 매일 맡게 되는 향기 속에서 기억 속의 그것을 꺼내본다고 하면 <향기>라는 작품이 설명되지 않을까?

 

꿀벌과는 달리 날개 없는 우리 작은 인간들은 가장 낮은 가지에서 연한 크림색의 무거운 송이들을 찾는다. <중략> 이제, 아주 재빨리, 끓은 기름 속에 넣어야 한다. <중략> 입속으로 봄이 한가득 들어온다. (아카시아 중에서)

 

우리는 갑자기 멘톨과 감귤의 도도한 향기에 습격당한다. 알코올 때문에 더 강렬해진 향기는 공중에서 소용돌이치며 코를 찌른다. <중략> 아버지가 나를 향해 몸을 구부리고 불타는 듯한 두 뺨을 내어주면, 나는 입을 맞춘다. (애프터셰이브 중에서)

 

그 아름다운 옛 아침의 빛 속에서 온몸에 햇살을 받으며, 신선한 공기에 섞인 볶은 커피의 향기를 맡으며 오래도록 보도에 머물렀다. (커피 볶기 중에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면서 맡게 되는 향기는 아버지의 냄새가 아닌 여자들에게서 나는 냄새와 약 냄새가 풍긴다. 포르말린과 백분, 파운데이션과 장뇌 제품이 혼합된 기묘한 냄새. (죽음 중에서)

 

향기로운 아카시아를 꿀벌보다 더 빠르게 따와서 입안에 그 향기를 물고 있는 것은 어릴 적의 고향의 기억과 엄마의 요리가 떠오른다.

아버지의 면도하는 모습과 늘 그것을 부러운 듯 또는 범접할 수 없는 남자의 그 넓음에 매료되는 아이가 떠오른다.

커피의 향기는 배고픈 예술가가 사기꾼으로 전략하기 직전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캠프파이어 횃불의 냄새를 함께 맡았던 친구들과의 여름, 몽롱하고 뜨거웠던 댄스파티와 성적 긴장이 감도는 체육관 특유의 냄새, 낚시를 배우고 함께한 마을 어른들과 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 대마초에 탐닉했던 자유분방한 친구들, 잠든 아이의 숨결에서 시작되는 생명의 향기와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집에서 아버지가 죽은 뒤 사라져버린 삶의 향기까지도 라는 말처럼 <향기>는 작가의 모든 것, 삶의 모든 것의 느낌을 전하고 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향기는 어떤 것이 있던가.

어릴 적 엄마와 함께 갔었던 목욕탕의 향기는 엄마가 되어 나의 아이를 데리고 가는 지금의 향기와 똑같다.

향수를 뿌리지 않았어도 엄마의 옷에서는 늘 좋은 냄새가 났었다. 문득 내 옷장을 열었을 때의 그 향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엄마의 옷에서 여러 가지 반찬 냄새가 풍길 때는 좋지 않지만, 그런 날은 맛있는 요리가 차려진다.

어느 날 문득 스쳐 가는 시어머니에게서 좋은 향기가 아닌 고개를 돌리게 되는 향기가 난다. 이젠 늙었다는 증거일까? 삶의 끝에 왔다는 표시인가?

늘 달콤한 아이 냄새를 풍길 줄 알았던 아들에게서 이젠 남자의 향기가 퍼진다. 때론 좋기도 하지만, 때론 냄새가 고약하다.

이런, 너도 이젠 다 커가는구나.

과자 향이 늘 풍기던 딸아이에게서 향긋한 화장품의 향기가 풍긴다. 너도 이젠 엄마의 품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애프터셰이브의 향기를 풍기던 남편에게서 때론 찌든 담배 향이 더 강할 때가 있다. 이 사람, 이젠 나에게서 더 많은 보살핌을 받아야 할 때인가 보다.

그렇다면 나의 향기는 어떨까?

좋을까? 향기로울까? 아니면 삶에 찌들어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는 이들의 그런 찌든 향이 나고 있을까?

내가 나이가 들어서는 어떨까?

나의 후손들이 나에게 안길만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을 건가? 아니면 코를 쥐어짜고 피해버리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을 것인가?

지금의 나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미래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글이기도 하다.

현재의 향기에서 과거의 기억과 정서를 떠올리게 된다.

참 묘한 매력의 책이다.

가을의 한 켠에서 읽어보는 가을 같은 <향기>이다.

작가의 말처럼 공기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그 냄새들은 고스란히 기억과 정서 속에 남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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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
하명희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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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속상하고, 서럽고, 때론 원망의 골이 깊어진다.

따뜻한 말 한마디면 다 되는데, 따뜻하지는 못하더라도 날이 서지 않는 평범한 말 한마디면 되는데, 우리는 왜 이런 간단한 습관조차 갖고 있지 않아서 서로의 감정이 아파야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까.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말을 듣는 것도 부담스러워지는 요즘이다.

나만 그럴까? 아니면 시간이 변해서 세상이 변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변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까?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라는 제목으로 왠지 마음이란 존재가 포근하게 다가옴을 느끼게 되는 단어이다.

책 제목이 이러하니 어떤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궁금해진다.

책의 글이 마음으로 다가온다면 책 속의 사진은 눈으로 다가온다.

사람들과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사진이 있다.

 

사람을 멀리할 수는 없다. 내가 싫든 좋든 늘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게 되고, 싫든 좋든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되고, 싫든 좋든 그 사람의 말에 나의 감정이 조금은 건드려진다.

작가의 말처럼 살아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

맞다. 정말 많다.

내가 이렇게 살아갈 거야, 내가 이렇게 가족이나 아이들에게 지침이 되어줄 거라는 계획은 하지만 매번 그 계획은 수정되고 또 수정된다. 그러면서 나는 배운다.

처음에는 화도 나고, 감정도 상한다.

하지만 결론은. 그래 나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잖아. 나도 배우는 거네.라고 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겪었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배운 것인 양 타인에게 침을 튀어가면 설교를 한다. 때론 위로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주입한다.

그러면 뭐하나. 그때의 내가 느꼈던 감정은 지금 내 눈앞에 힘들어하는 이들의 감정과 다른 것인데....

현실은 그대로고 삶은 살아가야 되는 것인 걸(프롤로그중에서)

 

그런데 묘하다.

서로 아니라고 하면서도 때론 위로를 해주고 싶고, 때론 위로를 받고 싶다.

이래서 사람인가 보다.

이래서 정이 있는 사람인가 보다.

이래서 정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보다.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는 제목부터 차근차근 읽어보게 된다.

제목의 문장 하나에 그 모든 것이 담겨있음을 느낀다.

에세이가 그렇다. 그냥 내가 끌리는 그 부분부터 읽으면 좋다.

오늘은 이런 문구가 눈에 띄네 하면 그것부터 읽어서 좋다.

오늘은 이 말에 대한 의미가 뭘까? 라는 생각으로 뒤적거려도 좋다.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가 그런 에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거의 다 해놨는데 결과는 타인이 가져간다. 억울하다. 화가 났다.

그런데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다.

인생이라는 게 손해를 보면서 배우는 것도 있잖아. 실패하면서 배우는 것도 있고.

뭐. 구구절절한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이 문장 하나로 끄덕이게 된다.

 

마음은 따뜻하면서 강해야 합니다.

요즘의 나에게 가장 적합한 말이다.

수능을 치르고 결과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는 아들을 보는 나에게, 이 어려운 시기에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된 남편을 보는 나에게 가장 적합한 말이다.

내가 마음은 따뜻하면서 강하게 발에 힘주고 서 있다면 남편도, 아들도 위로를 받지 않을까?

엄마의 존재가, 아내의 존재가 이럴 때 이런 모습으로 남아주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일 테니까.

 

좋은 남자다. 자신을 괜찮게 만들어주는 남자는.

나는 이것을 읽고 눈물이 났다.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를 읽어주고, 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남편의 모습과 겹쳐져서 고마움의 눈물이 났다.

모난 내 성격을 변하게 해주고, 모난 내 성격이 상처 때문임을 알고 늘 들어주는 남편 때문에 나의 상처가 어루만져지고, 가시가 점점 없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 남편은 참 좋은 남자다. 나를 괜찮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마워. 같이 늙어가줘서.

혼자되신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옆에서 같이 나이 들어가는 남편이 눈에 띈다. 늘 꼿꼿하고 대쪽같던 성격이 혼자 된 이후로는 노인네의 고약한 성격으로 남겨지는 시어머니를 볼때마다 옆에서 같이 움직이고 같이 세상을 바라봐주는 남편이 있어서 좋음을 느낀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조용한 노후를 함께 보낼 때 내 옆을 지키는 남편에게 말할 테다.

고마워. 나랑 같이 이 세상 살아가 줘서. 라고

 

<따뜻하게 다정하게, 가까이>는 이런 에세이다.

내 마음속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는 그런 에세이다.

상처를 맞대기 싫어서 피하던 나의 진심에 가까이 다가가고, 원망 때문에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가게 하는 그런 에세이다. 있는지도 몰랐을 상처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던 이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그런 에세이다.

 

에세이를 읽고 마주치고 싶지 않던 나의 진심을 마주하고 바라보게 되는 창밖의 가을 햇볕이 유난히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에게

따뜻하고 다정하게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 때문아닐까.

오늘의 이 따뜻함을 내일은 나의 남편에게, 그 다음 날은 나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또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열어 보여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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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7 리커버 한정판 나무 에디션)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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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이라는 사람에 대해 몰랐었다.

우연히 보게 된 프로에서 들어본 그의 몇 마디에서 속이 시원함을 느낀 적이 있다. 그의 첫인상은 느낀 그대로 말하자면 여고 때 괜히 후까시 넣고 다니던 날라리 오빠 같은 그런 모습을 한 사람인데 내뱉는 말은 나름 꼿꼿하고 톡 쏜단 말이지. 게다가 한 예능프로에서는 아이들과의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서 눈물 죽죽 흘리는 모습을 보니 늘 까칠하기만 한 것은 아닌 모습에 더욱 궁금해졌다.

어떤 계기가 되었던 '허지웅'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궁금하던 차에 그가 쓴 에세이를 읽게 된다.

이 사람..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떤 글을 풀어낼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작가에 대한 이력은 인터넷을 뒤져보시고~)

 

난 이 제목이 참 좋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쓴다.

버티는 삶이란 웅크리고 침묵하는 삶이 아닙니다. 웅크리고 침묵해서는 어차피 오래 버티지도 못합니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지금 처해있는 현실과 나 자신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얻어맞고 비난받아 찢어져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저 오기가 아닌 판단에 근거해 버틸 수 있습니다. 요컨대, 버틸 수 잇는 몸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나도 참 많이 버티고 살았고. 지금도 버티고 살아간다.

버티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 보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짜증 나는 일상이 될 때도 있지만, 또 달리 생각을 해보면 그 버텨본 시간 덕에 융통성도 더 생기고 욱질도 자제하게 되고, 옆에서 잔꾀를 굴리는 것을 보면...얘야~그래 봤자다...라는 시선도 생겼었다.

그래서 나는 '버틴다'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삶의 진한 맛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하고 싶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작가의 개인적인 일상이야기도 있고, 그의 직업적인 시선에서 말하는 이야기도 있고, 그리고 누군가는 기억할 또는 누군가는 무심하게 버렸을 시대의 이야기도 있다.

독자가 기억하고 느끼는 것은 어떤 글이든 간에 남겨지는 글에는 쓰는 이의 감정과 생각을 고스란히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쓰는 이 서평에서도 오롯이 나만의 생각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글에서 묻어나는 글쓴이의 평범하지만, 또 다른 삶의 방식과 글쓴이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너는 그런 생각이었니? 나도 그런 생각인데...라던지. 넌 왜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그건 아닌데..라고 생각의 생각을 하게 되고, 좀 더 글에 대한 의미를 두자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또는 내가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작은 깨우침을 얻는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에세이가 좋다.

작가가 좋다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써가는 글 속에서 내가 되짚어보고 싶었던 그 무엇을 종종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도 그렇다.

어머니 이야기이며, 영화 이야기이며, 그리고 작가의 잡다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난 그 속에서 마음에 두는 구절 몇 개를 짚어냈다.

내가 모른척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 내가 애써 피하려고 했던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대필한 것이라고 할까?

 

<버티는 삶에 관하여>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저 편하게 흘러가는 시간처럼 읽으면 좋다.

자기계발서만 마구 쏟아내는, 그리고 그것을 숙제처럼 읽어대는 청춘들이 봤으면 좋겠다.

어차피 버텨내야 그다음을 진행하는 인생이라면 내가 왜 버텨야 하는지, 무엇을 느끼면서 버텨야 하는지 잠깐의 숨 고르기가 되지 않을까?

버틴다는 것은 작가의 말대로 웅크리고 침묵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에 대해서 더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만이 다음 시간을 얻기 위해 지금 버티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이 책을 설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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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 -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손정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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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가장 구석에 있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찬란한 통일신라를 세웠음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는 부분이고.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부분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그때의 고구려와 백제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연개소문의 독재와 귀족 간의 내분, 그리고 의자와의 실정이 함께 진행되고 있었음도 알고 있다.

굵직한 역사의 사건을 알고 있지만, 그 속에 남아있던 평범한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까?

내 나라가 위협을 당하고, 내 나라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각각의 백성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왕경>은 이런 통일 신라 이전의 혼란스러웠던 삼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라 화랑의 풍월주 김유, 백제 소녀 정, 그리고 고구려 귀족 진수. 이 세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어쩌면 필연적인 운명에 놓인 혼란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임금의 총애를 받고 실권자 중의 한사람인 영명부인의 아들 김유는 어머니의 수완과 재력을 바탕으로 화랑으로, 그리고 풍월주로 승승장구하는 인물이다. 위로 있는 두 형을 제치고 어머니의 기대치에 오로지 신라를 위해 살아가는 운명이다.

고구려의 신두수 대제로 뽑힐만한 인재 중의 인재였던 진수는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제우의 의문의 죽음으로 본의 아니게 도망을 치게 되고, 김유의 노비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던 백제의 장군 딸인 정이라는 소녀는 지식과 서역에 대한 갈망을 품고 영명부인의 밑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미천한 백성이야 그저 잘난 귀족들이 하라는 대로하고, 먹을 것이라도 해결되면 되는 어찌 보면 그저 단순하면서도, 가장 순박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거짓을 부릴 것도, 적국과의 긴장에 몸서리 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사람은 각각의 나라에서 한 몫을 하는 위치에 있지만 나라가 어수선하고 권력자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국에서 자신의 신변을 숨기며, 자신의 울분을 감추며 긴장 속에 살아간다.

이들의 주 배경은 왕경이다. 왕경은 가장 화려했던 경주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화려하다 못해 음탕하고 질퍽했던 그때의 왕경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정과 진수는 자신의 나라가 몰락하는 소식을 접하면서 고뇌에 빠지게 된다. 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자신의 상황에 번민에 빠지면서도 늘 눈앞에 있는 또 다른 여인, 또 다른 사내 때문에, 그리고 각각의 마음을 불태우는 욕망 때문에 괴롭기만 하다.

왕경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 삼국의 젊은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여러 역사를 보여준다. 나라의 운명을 고뇌하는 젊은이이자. 자신의 이상을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용기, 때론 사랑의 열병 속에 있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차가움과 함께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뜨거워지는 아슬아슬한 로맨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결론은 세 사람은 딱히 뭘 어떻게 했다는 것이 없다. 이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하더라도, 이들의 로맨스를 처음부터 언급해온 것에 대한 답변이 너무 없다고 해야 할까?

저자는 이 책을 위해 2년간 취재를 했다는데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방대하고 지면은 너무 적기 때문에 그런가 이야기가 중간 중간 급하게 넘어가는 듯함이 아쉬웠다.

좀 지루할지는 몰라도 왜 그런 상황이 되어야 했고, 사건 당사자들의 미묘한 심리에 대해서 좀 더 그려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야기 속에서의 현실과 등장인물이 떠올리는 과거의 시점에서 정확한 구분이 없이 모호하게 이어지는 부분에는 문장을 다시 읽어봐야 했다.

영명부인은 고귀하면서 지략가의 모습을 한 여인이면서 뒤로는 젊은 화랑과의 로맨스를 찾는 여인의 모습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지.

차라리 영명 부인을 권력을 쥐고 싶어하는 야심가로서만 남아 있었더라면, 그리고 느닷없는 반전이 좀 얼떨떨하다.

삼국 통일 이전의 짧은 시기를 묘사한 왕경이기에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개로 속도전은 괜찮았지만, 그 속의 절절한 사연을 너무 밋밋함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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