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차게 흔들어! Shake - 말하지 않아도 당신을 웃게 해줄 거예요
칼리 데이비슨 지음, 김수림 옮김 / 미디어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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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당신을

웃게 해줄 거예요

 

웃을 일이 없다?

그렇다. 요즘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사회적인 분위기든, 개인적인 이유이든 심적으로 지친 요즘 "당신을 웃게 해줄 거예요."라는 문구에 이 책을 선택했다.

 

 

한쪽 눈을 윙크하며 '힘차게 흔들어'를 눈으로 가르켜주는 견공의 표정부터 미소 짓게 한다.

나는 견공을 좋아한다.

지금은 집이 좁은 이유로 키우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면 첫 번째 할 일이 자~~알 생긴 녀석 하나 데려올 계획이다. 간혹 충성하고 반겨주는 견공을 두고 사람보다 낫다고 한다.

 

그렇다.

때론 매정한 사람보다 무한 애정을 표현하는 견공들이 더 좋을 때가 있다.

비록 주고받는 대화는 없어도 견공과 느끼게 되는 정은 아는 사람은 안다.

이런 견공을 모델로 한 사진집을 보게 되었다.

 

구구절절한 설명도 없다.

책을 펼치자마자 각각의 표정으로 몸을 터는 찰나의 모습을 찍은 견공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하지만 말이 없어도, 설명이 없어도 읽는 내내 웃음이 터진다.

침을 흘리고 털이 날리는 지저분한 모습도 있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견공들의 순간의 모습은 호탕한 웃음을 연발하게 한다.

 

 

견공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정은 참 묘하다.

식구들이 잠을 자는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와 어두운 현관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견공은 잠을 안 자고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오랜만에 찾아가는 시골집에 도착하면 차가 보일 때부터 세울 때까지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는 녀석도 있다. 때론 울적한 마음에 꼼짝 안 하고 있으면 바닥에 배를 깔고 짧은 뒷다리를 쭉 뻗으면서 사람보다 더 불쌍한 표정으로 배를 밀면서 다가온다.

사람들은 견공을 키우면서 사랑도 느끼고, 정도 느끼고, 그리고 웃음도 한껏 얻게 된다.

<힘차게 흔들어>는 이런 견공들의 모습을 글보다, 말보다 사진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저자 칼리 데이비스는 사진작가자 동물 조련사이다.

그녀는 이 작업을 하기 전에 강아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놀이를 하고, 사진 작업도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했다. 작가는 한 장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견공들을 조련하기 보다는 마음을 얻는 신뢰를 먼저 쌓고 그들과의 교감을 보이면서 작업을 했다.

여기에 모델로 서게 된 견공들은 유기견으로 포틀랜드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인 판다 포즈 동물구호센터가 구조한 아이들이다.

시작은 사람이 했으면서도 버려지고 고통을 받는 것은 견공들의 몫이 되어 버린 현실을 보게 됨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은 전 세계 동물 애호가들에게 부치는 편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동물 애호가들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책임지지 못 하고 버려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들을 다시 구조하는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순종견보다는 유기견을 입양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어떠한지 조금씩 돌아봄은 어떨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무심히 넘기기에는 세상에 버려지는 유기견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다.

 

 

작은 생명과 더불어 가는 것.

작가가 이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을 사진 작업은 바로 이 작은 생명과 함께 더불어 가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 아닐까?

재미있는 웃음과 함께 따뜻함도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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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 그리고 강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김세나 옮김 / 이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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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고대부터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역사는 남성이 우선이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신'보다는 인간 본연의 사고를 인정하기 시작했었던 그 시대에도 여성은 늘 뒷전이었고, 인정받지 못했다. 역사의 여러 곳을 들여다보면 여자는 그저 남자들의 속박에 사는 한낱 장식 같은 존재로만 남아있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할라치면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여성들의 소리를  묻어 버리곤 했다.

 

남성은 여성이 자신의 품 안에서만 존재하기를 원했다. 기사도 정신을 베풀던, 레이디 퍼스트라는 매너를 보이건 이것은 여성들이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남성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로 대접하는 듯하지만 이것의 실제 모습은 여성은 남성의 손아귀에 있어야 한다는 남성 우월주의가 깔린 표현이 아닐까?

 

우스갯소리로 레이디 퍼스트의 유래를 보면 알 수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참일 때 적군에 급습적인 피해를 주기 위한 지뢰 매설이 활발했고, 전쟁터에서 적과 싸워야 하는 남성을 아끼기 위해 전쟁에 필요없는 여성으로 하여금 먼저 길을 걸어서 지뢰의 유무를 확인하도록 했다는 것이라는데, 결국 여성 먼저 우대하고 배려한다는 의미를 가진 '레이디 퍼스트'는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한, 남성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을 총알받이 용도로 이용했다는, 여성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았던 남성의 잘난 우월감을 보게 된다.

 

그렇다고 시대에 눌려서 여성의 목소리를 전혀 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루이 16세 시대의 올랭드 드 구즈는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꾸리려 했던 여성들의 요구를 시도했고, 19세기의 여류작가 샬롯 브란테는 자신의 작품 <제인에어>에서 19세기 중반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여성 해방은 단순히 정치적 평등을 이루려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들이 삶 속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는 그만큼의 자유를 여성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문 중에서)

 

여성 해방의 문제는 지금 현재까지도 꾸준히 투쟁하고, 벽을 깨야 하는 진행형이다.

성공과 만족스러운 삶을 얻기 위해서 여성은 남성의 여건보다 몇 배의 노력과 편견에 부딪혀야 한다.

오래전부터 여성에게 억지로 씌워진 온순한 생각을 해야 하고, 수동적으로 운명을 따라야 하고, 침착한 영혼을 지녀야 한다는 무언의 벽을 온몸으로 부딪혀서 깨야 하는, 그렇게 해야만 변화를 위한 기회를 겨우 얻어내는 것에 대해 현실을 사는 지금의 나도 간혹 답답함과 절박함을 느낄 때가 있다.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그리고 강하다>는 22명의 강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1장 반항하다, 2장 힘을 갖다, 3장 '나'를 쓰다, 4장 여자라서 가능하다는 꼭지를 통해서 그녀들이 세상을 향해 외쳤던 생각을 읽어보게 된다.

15년을 가택연금에 갇혔던 버마의 민주주의 대표인물이고 비폭력 투쟁의 산 증인 아웅 산 수 치, 이웃 나라와의 국경분쟁,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의 종교전쟁, 빈곤과 무지와 기아를 능란하게 수습한 인도의 어머니 인디라 간디, 근대 물리학의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흥미로운 시작과 끝을 장식한 마리 퀴리 리제 마이트너등 그녀들이 시대적인 고립(여성에 대한 편견)과 맞서 어떤 결과물을 얻어 냈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몇몇 인물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인물을 소개하다 보니 그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보다는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건, 업적을 위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참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루 안드레아스살로매가 가진 남성편력은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남성과의 교류로 얻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것이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과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 '제2의 성'으로 그녀가 세상에 외치려고 했던 여성 운동의 공통점, 그 밖에 한나 아렌트, 시몬 베이유 등의 인물들은 생소하고, 전혀 모르는 인물들이라 그들의 업적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성 운동에 대해 초보적인 지식을 가진 독자들이 읽어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시각으로 보면 아웃사이더라는 점이다.

결코, 그 시대에서는 쉽게 융합되지 못하거나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더 배척을 받았을 그런 아웃사이더.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것을 좀 더 넓게, 멀리 이어지게 했다는 점이 아닐까.

물론 이들의 견해와 주장이 모두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다. 때론 역사에 남을 강점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면에서는 오점으로 남는 부분도 역시 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저자가 표현했던 그들이 전투적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나서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전투적인 결과를 얻어냈다는 점이다.

그들이 역사에서 한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들의 행동으로 그 뒤에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는 것, 또한 그녀들이 얻은 결론이 전투적인(나는 이것을 남성 사회가 느끼는 압박감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다) 것이라는 점을 읽어보고 싶었다.

 

여성 해방에 선봉이 된 22명의 행적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전체 여성의 의식 구조나 생활이 바뀌지야 않겠지만, 현대를 사는 여성이라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현대의 여성들이라면 그들이 남긴 그 흔적, 그 가치, 그리고 자신을 내놨던 그 용기를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국적에, 다른 스타일에 그리고 맞섰던 편견의 벽도 모두 다르지만, 그들이 세상과의 격돌에서 부딪히며 남겼던 상처와 그것으로 얻어낸 성과는 분명 뒤를 이어가는 여성들의 의식에, 삶에 변화를 주었고 또 다른 기회를 주었고, 전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여성의 대변인이 되었던 그녀들이 후세 역사와 여성들에게 많은 지침이 되고, 방향 전환에 앞장섰음은 당연하다.

 

책을 읽으면서 숙제가 남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묵직한 부담감이 참 오랫만이다.

그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에 대해서, 그리고 거창하게 여성운동이라는 것을 배제하고라도 세상을 향해 움직이는 여성들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참 모르고 살았구나. 외면하고 살았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녀들이 시대에서 분명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는 생각을 하고, 그리고 강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 내는 용기를 자신에게서 끌어냈다는 점이 참 멋지지 않은가.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그리고 강하다> 어렵지만 또 다른 개념에 대해 충분히 생각을 거듭할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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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 - 드라마 에세이
노희경 극본, 김규태 연출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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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의 병인지를 모르고 방치한 탓에 슬픔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달래지 못하고 극적인 표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게도 해가 되고, 주변 사람에게도 해를 주는 너무나 무서운 일들이 많이 생기곤 합니다.

마음의 병이라는 것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춘기 같은, 피부 위의 작은 딱지 같을 수도 있지만, 인구의 80퍼센트가 다양한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하는 통계를 본다면 그저 잠깐의 아픔이라고 말하기에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고, 이젠 그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인정해야 하는 그런 현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을 치유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이 의학적 표현인 정신과 운운하게 되면 외면하고 말아버립니다.

정신과적이라는 표현이 극단적인 행동, 이를 테면 집착이나, 소유, 과격한 행동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절대 나에게서 나타나서는 안 되고, 내 주변에 나타나도 안되는 일종의 금기시 되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다른 면으로 이야기하자면, 요즘은 힐링이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왜 이 단어가 이슈가 되고, 관심을 얻을까요?

그것은 마음의 병이 깊어지고, 많아지기 때문에 치유해야 한다는 일종의 몸부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힐링을 찾는다는 것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싶어하는 무의식의 표현이 아닐까요?

 

 

얼마 전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가 종영되었습니다.

인기 배우 조인성과 공효진의 케미때문에 입소문이 난 것도 있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정신과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병.

드라마에 나오는 여러 마음의 병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공효진이 맡은 역은 쿨하고 시크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타인의 정신 상담과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이지만 그녀 역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것을 치유하지 못하고 그저 못 본 척 방관하고 있습니다.

남주인공 조인성이 맡은 역은 미남에 능력 있는 인기작가입니다만, 그 역시도 상당히 깊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단순히 청춘 남녀의 연애로만 보여지겠이겠니 예상을 했지만,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마음의 병에,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을 보면서 가슴도 아프고 큰 다행이라는 마음에 마음이 울컥해서 눈물이 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무슨 눈물을 흘리느냐, 중년의 아줌마가 드라마에 빠진다더니 그런 거냐고 놀릴지도 모르겠지만,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이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의 여운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을 때 <괜찮아 사랑이야>의 드라마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드라마의 주요 명대사나 주요장면 그리고 배우들의 미공개 화보가 담겨있습니다.

주옥같은 드라마를 만들어낸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감독의 인터뷰와 조인성, 공효진의 인터뷰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독자들이 너무 좋아할 드라마의 멋진 현장 메이킹 포토도 담겨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가 들여다보게 되는 마음의 병은 무엇일까요?

의붓아버지에게 맞던 재열은 싫었습니다. 맞는 것도 싫고, 엄마가 맞는 것도 싫고, 엄마를 보호하지 못하는 자신도 싫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웠습니다. 해수는 엄마가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와 20년 넘게 불륜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 때문에 섹스는 사랑하는 남녀가 가장 뜨거움을 표현하는 방법인데 나쁜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인지할 사이도 없이 발병할 투렛증후군을 앓는 박수광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살인사건의 목격자였지만 동생을 살리기 위해 위증을 합니다만 그것으로 마음에 분노가 가득한 재열의 형 재범이 있습니다. 19살인데 제 멋대로입니다. 학교 안 가고, 삥 뜯고 애들 때리고 결국 학교도 그만두고 품행장애라는 마음의 병을 가진 오소녀라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뿐일까요? 살기 위해서 남편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했던 엄마도 있고, 작은아들을 위해 큰아들의 억울함을 모른척하는 엄마도 있습니다. 결벽증 환자의 이야기도 있고, 트렌스젠더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환시 환자와 집착증 환자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약에 그때, 병을 앓게 되었던 그 원인이었던 그때 누군가 조금만 마음을 거들어 주었더라면, 누군가 '괜찮니'라고 물어봐 주었더라면, 그리고 내가 나를 조금 더 사랑하였더라면 마음의 병이 그토록 깊어졌을까요?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병이 내 마음속에 가라앉은 상태로 같이 늙어가지 않게 그 침전을 걷어냈으면 좋겠습니다.

 

트라우마에 얽매여 평생 묶여 사는 낙타가 되지 말았으면 합니다.

태양이 뜨면 뜬 줄 알아야지. 내 과거는 지나갔다! 없다! 난 자유다. 강하다! 무지 강하다!

나 자신에게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울어야 할 때면 울었으면 좋겠습니다. 화를 낼 때면 화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묻어두는 것이 좋은거라고 무조건 가슴속에만 담아두면 나중에는 더 걷잡을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납니다.

병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립니다.

 

 

 

사람을 위한 배려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 더 편하게 하는 것, 내 옆에서 조금 더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배려가 아닐까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슬픔 때문에 눈물이 난 것도 있지만 안갯속을 헤매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그것을 품에 안고 자기 자신에게 미소를 ㄸ끼는 그 모습에 마음이 울컥함이 많았습니다.

 

나만 힘들 게 아니다. 너도 힘들었구나. 나만 외로운 게 아니었구나.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게 외로운 것이었구나.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었던 것이구나. 나도 너도 알고 보니 참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조금 특별했구나.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렇게 칭찬하고 안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했어. 오늘도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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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독
박완서 지음, 민병일 사진 / 열림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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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곳.

지리적 고립뿐 아니라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던 곳.

히말라야 산맥과 높은 고원에 둘러쌓여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에서 중국의 탄압과 달라이 라마의 독립 운동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

오체투지로 사원 순례를 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인 불심이 가득한 나라.

티베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이다.

 

<모독>은 고 박완서 작가님이 20년전에 방문했던 티베트 여행기이다. 지금은 중국화로 변한 티베트 모습이 아닌 그 이전의 모습을 그려낸, 척박한 땅을 발판삼아 이어간 티베트의 자연과 바람과 불심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구나 <모독>은 1997년 출간되어 15년이 넘도록 도서관과 책 수집가들 사이에서 희귀본으로 보관되어 왔고, 일반 독자들에게는 소문으로만 전해오던 귀한 작품이라고 하니 2014년 재출간된 작품을 결코 놓칠수가 없다.

 

'너무도 엄혹한 자연환경 때문에 내 생에서 가장 고된 여행이 되었다. 노구를 이끌고 다닐 데가 아니로구나. 자주 나이를 의식해야 하는 것도 괴로웠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장소의 특성상 무척 고된 여행길이었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도 호기심의 일부이지만, 무엇보다 예순 중반의 작가가 고산병을 감수하며 그 곳을 디디고 봤던 그것을 남겨놓은 여행기이니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은 독자라면 당연한 것 아닐까. 작가에 대한 열렬함이 덜하더라도 작가의 담담함 글세계를 읽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모독>을 펼쳤다.

그 속에 담겨진 티베트의 사진은 함께 여행을 한 민병일님의 사진이 가득하다.

비록 사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 적막함과 광활함에 감탄만 저절로 나온다.

늘 뒤에 처지는 민 시인을 기다리며 몰래 사진 찍다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연환경에 대해서야 그런 제약이 없지만 너무 자주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바람에 구박도 받아가며, 그러고는 매일같이 코피를 흘리고 다닌 시인을 생각하면 지금도 안쓰럽다 -작가의 말 중에서-

얼마나 고된 여행이었나라는 생각을 담고 사진을 보노라면 그 진한, 파란 하늘과 화려함이 압도되는 부처상과 진한 티베트 사람들의 피부색이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하늘에 가까이 있는 죄(?)로 식물한계점을 넘은 산은 녹색을 거부한 오로지 짙은 흙빛만으로 첩첩 산중을 이루고 있다. 그 산이 주는 황량함은 마치 온 산을 벌목으로 깍아 내다 못해 뿌리까지 캐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이다.

산이라면 푸르름이 가득한 그것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티베트의 산은 풀 한포기 안보이는 천연의 갈색, 천연의 땅 색, 벌거숭이 산 그 자체로 여행객에게 자신을 보여준다.

식물한계선을 넘은 높이에 있는 이곳 산은 눈을 이고 있지 않으면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맨몸이다(p49)

 

하지만 그 뒤의 느낌은 또 다른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흙 산과 맞닿은, 우리나라의 높은 가을 하늘보다 더 높고 새파랗게 깊은 하늘이 그 끝에서 시작된다.

극과 극의 풍경이다.

티베트의 하늘은 그때의 우리 하늘빛보다 더 가깝고 더 깊에 푸르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p128)

 

바람 또한 어떠한가.

천지를 자욱하게 한 바람에서도 작가는 단순히 먼지 모래라는 것보다는 태초의 혼돈을 떠올린다. 나뭇잎도 없고, 휴지조각도 섞이지 않은 광활한 대지에서 부는 바람에 먼지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이 모습은 마치 생명 이전의 땅덩어리만 존재했던 그것 아닐까라고 말한다.

 

책의 곳곳에 있는 불상의 화려한 모습과 하늘로 치솟은 사원은 모습에 화려했을 옛 역사를 가늠하게 하지만, 반면 자연과 어울리는 삶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하고 수수해서 한편으로 남루하다는 느낌일 들 정도의 그들의 삶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떤 것이 티베트의 모습인지 혼란스럽게 한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그들은 꾸미기를 좋아한다. 자신들의 머무는 집의 창문이며, 그들이 키우는 야쿠에게도 장식으로 꾸미고 있다. 그들의 부처님과 사원도 꾸밈의 극치를 보인다.

이런 모습은 티베트가 극과 극의 나라가 아닐까라는 질문도 던져본다.

 

예전에 TV 교양프로에서 티베트의 오체투지 순례자의 모습을 보았었다.

온 몸을 바쳐 부처님께 귀의하는 뜻의 오체투지를 하는 이들의 모습은 참 놀라웠다.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길바닥에 온 몸을 내던져 한 발 한 발 부처님께 다가가는 모습은 나의 모든것을 부처님께 맡긴다는 의미도 알겠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감히 누구도 못하는, 이를테면 성직자 정도의 사람들이겠거니, 아니면 신심이 무척이나 강한 사람들이 하겠거니라고만 생각했었다.

광활한 대지의 먼지와 때로 온몸에 딱지가 앉아도 그들은 오롯이 오체투지만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온 몸을 던져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오로지 신심으로 부처님께 다가가고픈 그 마음뿐이라고 해도 그 불심에 대해 경외로우면서도 의아스러움이 앞서기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몸에 걸친 것이 전부이고 자연에서 얻는 것이 전부인 이들의 불심의 결과는 너무 거대하고 화려해서 바라보는 이들이 더 혼란스럽다.

그들의 사원은 황량한 땅에 어떻게 그렇게 크고 화려하게 솟았을까, 그들의 삶은 먼지속에서 야크똥을 말리고 불피우면 살아가는 소박함에 살고 있으면서도 부처님 발아래 버터기름을 쏟아붓고, 찬란한 비단으로 꾸미는 그 화려함은 또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자신들의 삶은 어떻게 되던 오직 불심만 챙기면 된다는 뜻일까.

불심을 챙겼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의 삶은 그럭저럭 살아도 내세를 보장 받을 수 있을거라는 믿음 때문일까.

 

<모독>에서도 말한다.

부처상의 붉은 입술은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 하는 듯하고, 온몸을 금빛으로 두르고 있는 것은 힘이 넘쳐 보인다. 부처님 주변의 대좌나 기물들은 귀한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고, 여기저기 늘어진 휘장과 칸막이, 부처님을 둘러싼 것은 울긋불긋한 비단 천으로 감싸고 있다.

또한 부처님의 합환상은 우리네의 무념무상의 사찰과 비교를 한다면 놀랍고 민망할 지경이다.

 

<모독>에서 사람이 오히려 더 부처같고, 부처가 사람같은 모습을 한것은 아닌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나같이 무욕하고 겸손하고 착해 보이기만 하는 이곳 사람들을 바라보며 문득 혼란스러워졌다. 부처와 인간, 성(聖)과 속(俗)이 헷갈렸다. 내가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저 사람들이 부처로 보이고 절 안의 부처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들이 부천에게 그리도 열렬하게 그리도 겸손하게 갈구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인간적인 욕망을 초극하려고 몸부림치듯이 저들은 저절로 주어진 성자 같은 조건을 돌파하려고 몸부림치는 게 아닐까 하고.(p47)

 

'불교는 티베트의 모든 것이다'라고 한다.

티베트인에게 불교는 삶의 전부이고 불교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물질적 만족은 순간이며 온전할 수 없다는 가르침과 전생과 내(來生)을 믿는 신앙이기에 내생을 준비하려면 종교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 민족이다.

이런 티베트를 중국은 가만히 두질 않는다. 중국은 서남공정을 통해서 티베트를 속국으로 만들려하고, 티베트는 유혈시위까지 불사하기도 한다. 중국의 이민정책으로 티베트에는 중국의 한족이 유입되었고, 자본을 발판삼아 티베트에서 그들은 거만한 삶을 살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외국에서 망명을 하며 독립 운동을 하고 있고, 중국이 내세운 또 다른 법왕이 있는 현실, 중국이 티베트를 중국화 하려는 것때문에 티베트는 고스란히 희생될 수 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 외신에서 종종 보곤 한다.

 

<모독>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 아닐까?

외부의 사람들이 티베트라는 울타리를 넘지 않았더라면 그들 나름대로 자연에서 얻고, 자연과 어울리는 삶을 살았을진데,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순례라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괜한 경제의 얄팍함을 전한 것은 그들의 삶에 대해 모독을 한 것이고,

관광객들에게 애어른 할 것 없이 떼거지로 구걸하는 모습은 타국인이 니들보다 잘산다라고 그들을 모독하는 것일테고.

중국을 등에 없고 남의 나라에 버젓이 들어와서 마치 그들을 거지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한족 역시 티베트 민족을 모독하는 것이다.

순수의 땅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 경제의 변화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땅을 침범한 것, 천연 자연의 경험이라는 거창한 제목아래 그들의 삶과 그들의 문화를 신기한 듯 빤히 바라보며 구경하는 것.

이것이 작가가 느꼈던, 티베트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처음에는 베일에 쌓인 티베트를 바라봄이 신기했다.

그런데 신기하다라는 말이 오히려 그들에게 모독이 되는 것 아닐까 조심스럽다.

그들은 신기하지 않다.

그들은 그대로 살고 있었고, 그들의 불심으로 그렇게 표현했었고, 그들의 삶조차 신심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타인이, 타국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감히 척박하다, 남루하다라고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책의 후반부에 있는 <모독> 꼭지를 읽으면서 과연 티베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었는가 나에게 되물어 본다.

거창한 결론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에게 어떤 모독을 줬는가.

어떤 생각이 과연 그들을 모독하고 있는가.. 

 

그들은 오래전 이어오던 그들의 문화와 삶을 위해서 감히 목숨까지도 던지는 치열한 전쟁위에 있다. 그들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다는 경쟁력으로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책 후반부로 갈수록 안타까움이 든다.

굶고 살았던 적이 없던 그들은 관광객에게 떼거지로 몰려들어 구걸을 하고, 그들의 터전에 느닷없이 파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보시도 아닌, 적선도 아닌, 먹다 남은 음식을 섞어서 던져주는 한족 여자의 거만하고 오만한 행동의 글에서는 인간이 저럴 수가 있을까라는 분노도 공감하게 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티베트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들의 불심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것이 티베트를 지켜주는 방법이 아닐까.

 

티베트에 아련함은 히말라야의 최고봉 초모랑마와 자본주의에 물들어가는 네팔 여행에서도 읽을 수 있다. 달라이 라마 망명후 티베트를 떠난 사람들은 네팔의 카트만두에 정착해서 난민촌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그 곳에서 학교를 세우고 카펫 공장을 세워서 2세들에게 조국의 전통과 문화를 전승하고 있단다. (사실 티베트에 대한 느낌이 너무 강하게 남아있어서 그 뒤의 네팔의 자유로움, 여유로움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알아서 읽기를 바란다.)

 

가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하면, 가보지 못한 나라와 그 사람들에 대해 예의를 갖춰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어찌보면 무척 단순하고 소박한 그들이지만 또 어찌보면 살아남기 위해, 후손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남기기 위해 어느 곳에선가 싸우고 있을 그 순박한 사람들을 감히 상상해본다.

 

선생님이 남긴 짧은 문장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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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 -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실존의 문제 40가지에 답하다
김용전 지음 / 샘터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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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직장 생활은 어떠한지요?

좋은 직장이라서 오래오래 다닐만 합니까?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박차고 나와 더 나은 곳을 찾으려고 합니까?

그도 아니라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오늘도 잘 버티고 퇴근하셨습니까?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쳇바퀴 직장인의 삶은 그냥 그렇게 평범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의 애환이 무척이나 많다.

직장 동료와의 갈등도 분명 있고, 상사와의 갈등도 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지금 이 일을 과연 나의 노후까지 책임질 수 있게, 그때까지 끌고 갈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은 이런 직장인의 고민들을 함께 읽어보고 그 속에 담겨진 인생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는 책이다.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이라는 제목만으로 이 무슨 자기계발서냐..라는 반발(?)심이 생긴다.

언제부터인가 자기계발서는 직장인들이 필수로 읽어야하는 하나의 숙제가 되어버렸다. 물론 읽어서 나쁠것은 없다. 하지만 구구절절한 이야기 끝에 나오는 결론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꿈을 포기 하지 말아라' '꿈을 향해 뛰어가는 자만이 나중에 성공을 하게 된다' 등등 너무나도 긍정적인 마인드만 강조하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야 솔깃해서 책 속에 소개한 긍정을 모방하려고도 했지만 솔직히 지겹다.

누군들 그걸 모르나. 모르니까 책이라도 파보면 답을 얻을까 싶지만, 사실 직장인들이 책을 읽어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부려가면서 나의 훗날을 찾아가기란 버거운것도 사실이다.

왜냐고? 직장생활은 전쟁터이기 때문이고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책을 읽고 마음의 여유를 찾기란 솔직히 부담스럽다.

 

남들보다 좋은 스펙을 가져보겠다고 전쟁같은 학교 생활을 해대고, 전쟁같은 수능을 보고, 그리고 졸업해서 직장을 구하는 것도 전쟁처럼 덤볐다. 이런 시절을 보냈기에 직장에 들어가면 정말 그렇게 그리던 신의 직장이 되어야 저축도 하고, 좋은 반려자도 만나고, 노후를 대비할텐데,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다.

전혀 다른 사람들, 전혀 다른 업무들, 전혀 다른 성향의 상사들과 부대끼다보면 내가 직장을 다니는게 잘하는 건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라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그냥 이렇게 참아야 하는가, 아님 사표 던질 생각을 하고 저 밉상이랑 한 판 붙어야 하는가라는 갈등을 하곤 한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그리고 하나하나 마음에 드는 문장에 줄을 그어가면서 읽게 되는 것은 직장인의 전후 상황만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직장의 일이 결국 인생의 일, 삶의 일도 함께 연관된 우리의 인생과 한 줄로 연결되었음일 글에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처세와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는 철학과 명상 없이 행복할 수 없다.

 

나 역시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워킹맘이다.

경력년수가 늘어갈수록 수월하게, 요령있게, 군더더기 없이 마무리하는 일처리 능력은 인정을 받고 있다. 분명 나도 초년 시절에 열정이 있었고, 새로운 업무를 맡을때 목적의식이 분명 있었다. 관리자로 업무를 할때는 오너가 너무나도 좋아할  주인 의식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이 풋풋함, 꿋꿋함, 뜨거움은 옅어지고 지금은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잘 참다가도 느닷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이 놈의 회사 때려치운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다음날이면 다시 나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괜찮아. 다른 회사도 별 다르지 않을거야. 그냥 여기서 버텨보자'라는 자조적인 결론을 내릴때도 있다.

'꿈의 직장? 미래의 계획?'은 진즉에 버렸졌다. 꿈을 꾸기는 커녕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고민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것뿐인가. 직장에서의 연봉이 내년에 단 몇%라도 인상되면 정말 감사땡큐이다. 왜냐고? 나는 나이가 들어서 점점 퇴직 명단으로 걸어가고 있는 반면 실력있고 쌩쌩한 후배들은 자꾸 치고 올라온다.

내 경력에 한줄이라도 보탬이 되려면 저 밉상스러운 팀장의 비위를 맞출 수 밖에 없다. 잦은 야근에, 지겨운 회식에도  '싫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결론은 '그래...참자'

밉상인 사수의 웃기지도 않는 유머에 리액션도 열심히 해줘야 한다.

욱하는 성격을 훅~하는 한숨과 함께 억지로라도 벗어야 다. 왜? 다음달 청구될 지출금액이 머리속에서 맴맴 돈다. 욱하는 성격으로 사표를 던지는 상황을 만들수는 없다. 또 참자를 연발한다.

이런게 바로 지금 직장인들의 얼굴이다.

이게 바로 직장인들의 마음이다.

 

 

 

 

이런 직장인들의 고민을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에서 함께 들여다보면 어떨까?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면을 고민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책 속에 나온 답변처럼 더 나은 방향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지, 오로지 나만의 감정과 힘듬을 주장하면서 더 큰 세상을 안보고, 지금 이 시점에 주저앉아 있는지 나에게 되물어 보면 어떨까?

 

저자는 고등학교 선생님을 했었고, 교육 기업의 창립 멤버로 승승장구하는 경력도 있다.

잘 나가던 회사에서 조기 퇴직도 해봤고, 작가로써 책도 써보고, 물론 지금은 귀농인으로 농사도 짓고 있다.

또한 저자는 저자가 커리어 컨설턴트로 라디오 방송에서 직장인과 관련된 코너를 맡아 6년째 방송도 하고 있다.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은 저자의 경험담도 있고, 방송에 고민을 의뢰한 직장인들의 경험담을 담고 있다.

 

뻔한 자기계발서라고 말하기에는 인생의 또 다른 고민과 해결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하고 싶다.

식구들보다 더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고, 성격을 부대껴가면서 지내는 직장은 '직장, 회사'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 그리고 인간적인 관계가 어우러져있다.

인생의 선배를 만나기도 하고, 내 인생에 괜히 끼어든 진상을 만나기도 하고, 나의 회사를 위해 내가 주인처럼 움직여야 할때가 있고, 반대로 내가 주인이 되어 하나라도 더 이익을 내야하는 때도 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저 가족대신에 직장 동료이고, 나의 집 대신에 회사라는 공간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멀리 가야 하는가, 높이 올라가야 하는가?

불려야 하는가, 줄여야 하는가?

섞일 것인가, 구별될 것인가?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밖으로 나가야 하나?

유연해야 하는가, 강직해야 하는가?

이끌 것인가, 따를 것인가?

참아야 하는가, 맞서야 하는가?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은 이렇게 8가지의 꼭지로 정리를 해본다.

짧은 문장만으로도 직장에서나 삶에거 가지고 있는 고민을 다 내뱉은 것 같다.

저자는 고민자에게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해결점을 일러준다.

이런 점은 초심을 잊었던 직장인들에게 지금 현재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생각하게 하고, 저자의 오랜 경험담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는 사회 초년생들이 미리 알고 있으며 조직 생활에서 더욱 열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힌트가 될 수도 있다.

 



 

 

조직에서 리더의 자리오 올라가는 승진 심사를 할 때는 실적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그 사람의 화합력을 중시한다. 즉 혼자서도 잘하지만 남들하고도 잘하는가, 또는 남들도 잘하게 만드는가를 중시한다는것이다(p31)

 

실제로 회사의 고위직을 보면 극도로 말을 아낀다. 또한 고위직이 아니라 하더라도 현명한 사람들은 섣불리 나대지 않고 침묵의 성전에 칩거하는 경우가 많다(p90)

 

칭찬은 잘한 결과를 가지고 '잘했다'라고 하는 것이요, 인정은 결과에 상관없이 정말 잘하려고 애썼던 그 마음과 노력만은 '알아주라는 것'이다. 공부를 못해서, 취업을 못해서, 승진을 못 해서, 떼돈을 못 벌어서 어깨가 처져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가? 인정해주어라. 그러면 그는 힘을 얻을 것이다(p105)

 

나는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을 직장인의 관점 보다는 엄마, 아내, 그리고 오너로써의 시선으로 읽었다.

앞으로 취업을 앞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회초년생으로 세상에 발을 디딜때 조금이라도 조언을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얼마전 자신의 일을 시작한 남편에게 또 다른 관점으로 지혜를 찾고, 처세를 해야하는 아내의 마음으로, 그리고 남편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만나게 될 수 많은 사람들과의 처세와 사업적 협력을 해야하는 오너의 마음으로 읽어보게 된다.

 

물론 오랜 직장 생활로 얻게 된것도 많다.

하지만 그때는 '월급쟁이'로써만 지내온 시간이었다면, 얼마후 시작하는 내 사업, 내 직장, 내 일터라는 의식이 투철(과감하게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해야 하는 두려움과 꼭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 책의 내용을 더욱 공감하게 만들었다고 해야할까?

시선을 달리하고 읽어보니 하나하나 내가 알아아 하고 다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 많음을 느낀다.

그동안 내가 툴툴거리면서 다녔던 직장의 경험도 나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노하우가 되었음을 다시 일깨우는 독서가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 홀로 살아갈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 직장에서 이직이나 퇴직을 고려하고 있는 독자라면 그 전에 책의 일독을 권한다.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줄을 그어가면서 읽어본다면 내가 놓치고 있던, 무심결에 버렸던 직장과 삶의 이야기를 다시 재활용해서 나의 노하우로 만들 수 있는 팁을 주는 책이라고 하고 싶다.

 

인생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생각만 하면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 삶을 열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 해도 누구든지 과감하게 그 길로 나서지 않겠는가?(p227)

 

그래.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쥐고 있던 불안감을 과감하게 떨쳐보려고 한다.

이 책 읽고 무슨 다짐이 거창하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책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절대 안 읽을것 같은 주제의 책도 나의 절박함에 하나하나 머리속에 각인이 될 때도 있고, 도움을 받으리라 하는 책이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이야기할 때도 있다.

 

<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은 전자에 속한다.

시덥잖게 시작한 독서였지만, 나에게는 결론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다져보는 그런 책이었다.

물론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기에 독자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제 겨우 초년생의 딱지를 뗀 직장인들에게 권해보고 싶다.

 

"여보세요..후배님들..직장이라는 것이 다 그렇단다. 뻔한 말 같겠지만, 다 길이 있고 답이 있단다.

오늘도 사표를 던지려고 했던 분들..나의 꿈을 찾고 싶은 분들..이 책을 통해서 단 몇개의 팁이라도 얻는다면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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