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가 지구를 구해요 - 나무 심기 파티
펠릭스와 친구들 지음, 김시형 옮김 / 노란상상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때, (아니 내가 학교를 다닐때는 국민학교였다.)

내가 배우던 교과서에 주요 등장 인물은 철수와 영희였다.

그래서인지, 난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뭇 '철수와 영희'라는 이름에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 감정 이입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밤 한 철수 씨는 백의 종군하여 그렇게 내 곁을 떠나갔고,

이제 한 영희 씨가 나오는 일요일밤 '거지의 품격'만을 기다리는데,

그것도 어째 예전같지 않고 심드렁하다.

 

엊그제 누군가에게

'하긴 단거 별로 안 좋아하나 보더라, ㅋ~.'

하는 문자를 보냈더니,

'단거...위험...'

'danger'

이런 답장이 돌아왔다.

내가 '혈당수치도?'

이렇게 되묻자,

'혈당완전정상'

'근데 danger 그래서 깜.놀.'
'썰렁개그'

'단 거'

'환자를 많이 봐서 내가 자꾸 걱정되나분데'

그때서야 난 '아하~, 그 당거..., ㅋ~.'할 수 있었다.

 

비단 환자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몸의 건강 상태는 살뜰하게 챙기면서,

그 몸 건강 상태의 근간이자, 기본이 되는 몸 아닌 다른 것들...

흔히 인간과 대응되는 개념으로서의 자연, 다시말해 지구에 대해서는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

 

"지구를 잘 대접하라. 이 땅은 너의 부모가 준 것이 아니라 너의 아이들에게서 빌린 것이다. 지구는 우리 조상이 물려준 것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 빌려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디언 속담(39쪽)

 

라는 속담을 많이 접했으면서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책 제목 '나무 심기 파티' -'이제 우리가 지구를 구해요'의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다.

이 책은 알라디너'감은빛'님의 소개에 혹하여 구해 보게 되었는데,

'헐~' 어린이 용이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다.

나무를 심는 것과 지구를 구하는 게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조목조목 따져놓았다.

지구온난화, 온실 효과, 그때 만들어지는 온실 가스 등 , 그 중에서 가장 흔하고 중요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순환과정이 사진과 도표들과 함께 실려있어서 보고 이해하기 쉽게 되어있다.

난 읽고 제대로 감동받아 주시기만 하면 될 뿐이다, ㅋ~.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면 다들 이렇게 말해. "기후 변화 때문이야." 또, 한여름에 집중호우가 내리고 강물이 흘러넘치면 TV에서 종종 이렇게 얘기해. "이번 날씨는 기후 변화가 원인입니다."

하지만 날씨가 미쳤다고 해서 곧바로 기후 변화와 관계있는 것은 아냐. 기후와 날씨는 전혀 다른 말이거든.

ㆍㆍㆍㆍㆍㆍ한마디로 기후라는 건 30년 동안 지구 전체의 날씨를 모두 합쳐 평균을 낸 거야. 그래서 날씨, 즉 기상은 느낄 수 있지만 기후는 느낄 수가 없어.

하지만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지 않아요?

그래, 날씨와 기후는 대기권에 일어나는 물리적인 현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같긴하지. 하지만 이 두가지는 아주 다른 거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40쪽)

 

기후 변화를 늦추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죠?

기후를 바꾸는 요인은 크게 두가지야. 자연과 인간이지. 자연이 하는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제외해야 겠지. 그러나 인간이 하는 일은 충분히 바꿀 수 있어.ㆍㆍㆍㆍㆍㆍ지금 쓰는 에너지를 아끼는 것도 중요하고, 대체 에너지를 쓰는 것도 중요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 우선, 내가 하는 작은 일들이 모두 기후 보호에 큰 보탬이 된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해. 그래야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실천에 옮길 수 있어.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두 손 놓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 돼. 남이 크고 멋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걸 부러워할 필요도 없어. 환경을 지키고 자연을 보호하며 사는게 훨씬 멋있으니까.(42쪽)

 

암튼,

이책을 통하여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작은 것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지만 올바른 행동이 모이면 '긍정적인 흡인력'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이었고,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것은 '집에서 할 수 있는 기후보호' 란 장이었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대신 자전거를 탄다든지, 절전형 조명등을 쓴다든지 하는 얘기는 한번쯤 들어봤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냉장고로 하는 기후보호 분야에서,

냉장고를 가스레인지나 화기 옆에 놓는 것은 안 좋은 생각이라는 얘기는 어찌보면 당연하게 들리지만,

냉장고를 설치하는 장소가 주방이고,

우리나라의 집 구조상 주방이 그리 넓지 않은 것에 미루어,

가스렌지 등의 화기와 냉장고를 떼어놓는 건 미리 염두에 두지 않으면 쉽지 않다.

아직 따뜻한 음식을 냉장고에 곧바로 넣는 것은,

갑자기 냉장고 내부 온도가 높아져서 그 열을 식히려고 전기를 많이 쓰기때문에 안 좋은 방법이고,

난방을 하지 않는 베란다에 냉장고를 놓는 건 좋은 방법이란다.(냉장 온도를 2도만 높게 설정해도 15%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단다.)

 

반대로 요리를 할때도 기후를 보호할 수 있는데, 방법을 잘만 지키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가장 쉬운 건 냄비 뚜껑을 덮고 요리하는 거다.

또 보통냄비보다 압력솥을 쓰면 40%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오븐도 잘 닫고, 너무 자주 열어보지 않는다.

한번 열어볼때마다 20%의 열손실이 있단다.

뜨거운 물을 끓일때는 가스레인지보다 전기주전가가 낫다.

 

쓰레기를 줄여도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단다.

쓰레기를 줄이면 수거 요금도 줄어들지만 1kg마다 320g의 이산화탄소가 덜 생기는데,

아예 쓰레기가 안나오도록 노력하면 기후 보호는 더 잘 될테지.

 

여기서 사소한 차이가 나지만, 결과적으론 큰 차이가 나는 중요한 용어를 알게 됐는데,

재사용과 재활용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유리병 재사용 횟수는 8번으로,

독일 50번, 핀란드 30번, 일본 32번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페트병은 독일,네덜란드, 덴마크 등에서는 재사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재활용되지만 유리병처럼 재사용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는 곳을 바꿔도 기후 를 보호할 수 있는데,

건물과 집을 잘 짓고 수리해도 기후를 지킬 수 있단다.

여기서 '잘'이란 단열 창문, 단열 마감재 같은 기술적인 내용을 얘기한단다.

 

그밖에도,

전기를 친환경대체에너지로 바꾸는 방법,

밥상 위의 기후 보호라고 하여 칼로리가 적은 밥상, 유기농밥상, 기후 보호 밥상에 대하여 언급한다.

시장바구니 속 기후 보호라고 하여 '로컬 푸드(local food)'즉 '지역 먹을거리'를 얘기하고 있다.

'지역먹을거리'를 얘기할때는 '우리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재배된 것'

에 덧붙여 '제철에 자라고 수확한 것'이라는 '기후친화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런 행동을 실천하기에 앞서, 책임감을 갖고 절약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아끼고 사용하는 것이 생활의 당연한 일부가 되어야 한다. 물어보거나 고민하고 따질  필요가 없이 그런 태도가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지금보다 몇 십 배의 효과가 생길거란다.

 

이 책의 103~104쪽에는 우리 친구들이 말도 안되는 공격에 멋있게 대처하는 법이 소개되어 있고,

독일의 아홉살 펠릭스가 시작한 것이, 어떻게 학생운동 Plant-for-the-Planet으로 발전했는지의 과정도 나와 있다.

지금은 전 세계 수많은 나라가 동참하는 국제 네트워크 운동으로 발전했으며,

이제 Plant-for-the-Planet은 나무만 심지 않고,

어린이 세계시민으로 공정무역과 착한 초콜릿 등,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온힘을 다하고 있다.

 

그 밖에 우리나라의 나무 심기 운동 이야기에 대해서도 잘 정리되어 있다.

식목일의 유래와

소년환경 운동가라고 할 수 있는 조너선 리와 '어린이 평화 숲'에 대한 얘기가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의 '추천사'를 마지막으로 이렇게 끝맺음하고 있다.

얼마 전 유엔에서 나온 '세계 행복 보고서'를 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나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회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돈만 아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를 걱정하고 나부터 실천하는 사람이 기후 변화 같은 것은 모른 체하면서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보다는 행복할 것입니다.(199쪽) 

 

이 말을 요즘 내 삶에 대입시켜보면 이쯤이 될것 같다.

철수 씨와 영희 씨에서 위안과 희망을 얻으려 하지 말고,

(다시 말해 다른 사람 핑계 대지 말고~--;)

내 스스로 철수 씨와 영희 씨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겠다.

그런데, 현실의 난...

지금 내겐 그 어느때보다도 얘네들이 위안이고 희망이다, ㅋ~.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2-11-25 04:48   좋아요 1 | URL
사람들이 제대로 못 느껴서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나 큰도시에 몰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니까
이 몰린 사람들이 쓰는 지구자원 때문에
지구가 아프답니다...

'조선일보'에조차 기사로 나온 이야기이던데,
서울 강남에서 한여름 30분만 냉방기 온도를 2도인가 낮추어도
핵발전소 두 군데를 안 돌려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서울사람이 '문명'을 얼마나 덜 누리려 하느냐에 따라
참 크게 무언가 달라진다는 소리가 되기도 해요...

양철나무꾼 2012-11-27 14:01   좋아요 1 | URL
말이나 글로 하긴 쉽지만...실천하긴 참 힘든 일들을 실천하고 계신 된장님을 보면서 배워야 할텐데 말예요~, 꾸벅(__)

감은빛 2012-11-26 12:02   좋아요 1 | URL
밥 먹으러 나가기 전, 노래 잘 들었습니다.
역시 양철님께서 정리해주시니 쉽게 이해가 잘 되네요! ^^

양철나무꾼 2012-11-27 14:03   좋아요 1 | URL
헤헤~^______^
정리는 감은빛님이 쉽게 잘 해주신거죠.
저는 걍 옮겨적기만, ㅋ~.
암튼 대박 나셔서...담 쇄에는 꼭 이름 석자 실리시길~!

2012-11-27 16:16   좋아요 1 | URL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작은 것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작지만 올바른 행동이 모이면 '긍정적인 흡인력'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좋은 말이에요.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지구에 폐 덜끼치는 세목' 잘 배우고 갑니다. ㅎㅎ
마지막, 파란 위안- 예쁘네요.^^
 
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터키'속담도 있다지만,

사랑을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 듯 느껴진다.

사랑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은 다른 것들에도 똑같이 열정적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단다.

 

그런데 가끔 열정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뜨뜻미지근한 태도, 성의없는 말투, 냉담한 눈길 같은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상대방의 그것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도,

'애정이 식은거야~--;'라고 표현하는걸 보면,

사랑을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것이,

사랑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좋은 게 정석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뜨겁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온도가 높아야 뜨거운 것이 되는 것일까?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 듯 느껴지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고 겉으로 표현하는 것만 사랑이고,

그렇지 않은 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아프게 읽었다.

너무 아프게 읽어서, 한동안...

리뷰를 쓸 수 있을까, 느낌이란 것이 나와줄 수 있을까 싶었었다.

뭔가 느낌이나 감상을 얘기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한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법이니까.

구구절절, 사무치고 아팠다.

내내 울었고 앓았다.

 

사랑의 온도, 그것은 어쩜 누군가를 태우기도 하고

누군가를 아프게도 하지만, 누군가를 치유하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갈망하였고, 넉넉히 받았고, 그리하여 치유받았다.

다시 말해 울고 앓고 주저앉는데서 멈추지 않고,

책을 통하여 치유받고 훌훌 떨고 일어날 수 있었다.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소설의 특징인 개연성을 확보하는데서 실패했고,

그래서 다소 진부하다 비춰질 수가 있겠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소한을 지키기가 이렇게도 어려운데 왜 우리는 최대한의 욕망에 휘둘려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7쪽)

 

지금은  병ㆍ의원의 업태가 '서비스'라는 단어가 빠진 '의료업'이지만, 한때 '의료ㆍ서비스업'으로 분류되던 때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정이 많은 부류였지만 내 눈에는 계산적인 여자로 보였다. 상반된 두 단어는 오늘날 같은 말이다. 정이란 보이지 않게 계산된 이익의 가시적인 산출량인 것이다.(10쪽)

이 문장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 보자면, 정(情)이란 것도 보이지않게 계산된 것이라는 얘기쯤 될테고,

그래서 '의료'에 '서비스'가 붙은 순간 지극히 계산적이 되어버리는 걸 눈치챈 사람들이,

야박함과 상술을 내세워 '서비스'라는 단어를 뺀 것일 테지만,

정(情)도 가시화하여 계산하는 사람들이 의료에 '서비스'를 붙이는 것 정도야 애교이지 싶다.

 

이 소설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쓴 그녀가 쓴 또 다른 사랑이야기라고 해야 하려나?

줄거리는 간단하다.

치매에 걸린 새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남기고 간 통장을 전해주기 위하여 남겨진 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ㆍㆍㆍ ㆍㆍㆍ사람은 한 번에 하루씩 살아야 하고, 한 번에 한 끼씩 먹어야 하는 법이다. 새엄마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나는 것일까. 사람의 머릿속에는 저마다 깊은 우물에 종이배 하나가 까닥까닥 떠 있는 게 아닐까. 심연에서 심연으로 연결된 어느 부두에서 매일 자신이 접은 종이배에 홀로 승선하고 홀로 하선하는 당일 여객들ㆍㆍㆍ ㆍㆍㆍ. 한번에 하루를 사는 인생, 하루에 하나의 종이배를 접는 일은 살아가는 자체여서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16~17쪽)

작중화자는 어린시절 오빠와 작당을 하고 새엄마의 딸인 이복동생을 집에 들이는게 싫어 어딘가에 버려두고 도망친 과거가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번에 여러가지 업무수행이 가능한 '멀티테스킹'형이 있기는 하더라.

멀티테스킹이라고 하여, 어느 하나 소홀하지도 않은 걸 보면 한번에 하나씩 차근차근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과하면 과부하가 걸리거나 체하게 마련이고,

과부하나 체하는 걸 감당할 수 있는 힘은 '부모'라는 이름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부모도 이전에 사람이고, 모두가 과부하나 체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자기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과 자신의 미움을 지키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78쪽)

'사랑'을 지키는 것과 '미움'을 지키는 것은 어쩜 상반된 의미의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깊어져 미움이 된 것이지,

사랑이 없는 사람은, 미움도 없고...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 지킬 게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뜨거운 것은 차가운 것과 어쩜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할 것은, 무심함이 아닐까?

(종교에서 무심해야 득도하고, 도통한다고 했는데...아웅~--;)

"난 사람에 대한 나름의 측도가 있어요. 자기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 그게 사람의 의리지요."

 나는 은밀한 죄의식을 뱃속에 꿀꺽 삼켰다. 헛배가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유란의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그런 일이었다. 허은경은 내 뱃속을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 사랑을 못 지키는 사람은 인생에서 모멸을 당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내 엄마 같은 사람, 유란이 엄마 같은 사람요."(235쪽)

책에선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자기의 사랑을 지킬 수 있고 없고,가 자기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좀 심하지 싶다.

인생에서 모멸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제 사랑을 못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제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세상에는 얼마든지 차갑고 냉정하게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쪽 왕이 왜 아내에게 잠드는 약을 먹였느냐고 묻는데, 그들은 욕망의 휘황한 암흑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비극 뒤에 자초하는 고독의 엄정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고 슬픔의 깊고 쓴 달콤함과 우수의 가벼움과 평온을 모르는 사람이다. 상처에서 염증이 걷히며 단단하게 응결되는 비극의 자긍심을 모르는 사람이다.(100쪽)

이 책이 슬펐던 것은,

사랑의 정도를 자꾸만 온도와 비례해서 풀어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ㆍㆍㆍ ㆍㆍㆍ부엌이 없으면 몸이 마르는 느낌이 들어요. 마음도 그렇고요. 여자들은 다들 그렇지 않나요?"(138쪽)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방식은 뭘까?

사람이 사람을 머릿 속에 넣어 기억하는 방식 말고 다른 것들도 있는 것 같다.

몸에 밴 습관처럼,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방식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걸 두고 심장이 기억한다고 할 수도 없지만, 심장에서 '찌릿~'하고 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엉뚱한 답이 될것 같다.

"이렇게 다른데도 내가 너를 한눈에 알아보다니, 이건 눈으로 알아보는 게 아닐 거야. 우리가 모르는 다른 방식이 있는 거야. 심장이 발산한다는 자기장으로 서로 알아보는지도 몰라. 너 아니? 심장에 기억이 있다는 거. 심장이 발전기처럼 전기를 만든다는 거. 심장이 자기장을 2미터 이상이나 멀리 보낼 수 있다는 거."

  심장이 기억한다면 심장에도 뇌가 있다는 소린가. 심장도 생각을 하는 걸까. 심장이 자기장을 2미터나 보낼 수 있다니, 가슴에서 가슴으로, 같은 노래 가사가 괜한 소리는 아니었던 것이다.(209쪽)

이쯤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친구로 만들 수 있을 남자였다. 그러니까, 사랑할 여자 하나조차 남겨놓지 못하고 모두를 친구로 만들 남자였다. 예전에 내가 그를 거절했던 이유를 이제 알게 된 셈이었다. 그가 외로운 얼굴로 역에 앉아 있는 이유도. 그때 나는 왜 친구가 될 수 있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211쪽)

내가 경계하려던 것은 사랑의 온도가 아니라,

사랑의 밀도라고 해야할까, 순도라고 해야 하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밀도나 순도라는 것들은, 팥으로 메주를 쒀도 믿는 '믿음'과 관련된게 아닐까 싶다.

"ㆍㆍㆍ ㆍㆍㆍ그런데 남자친구가 그러더래요. 거짓말이면 어때? 넌 신화와 설화를 믿니? 다 지어낸 이야기인 거야. 불교의 핵심이 그거잖아. 인생도 그래. 다 지어내는 거지. 사랑도 다 지어내는 거야. 하지만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가는 일이지ㆍㆍㆍ ㆍㆍㆍ."(245쪽)

 

"그 사람은 자꾸만 확인하려고 해요.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아니면 자기만 나를 사랑하는 거냐고요. 전 그게 두려워요. 전 사람들이 말하는 뜨거운 사랑을 모르겠어요. 그냥 함께 생활하는 것이 사랑이면 좋겠어요. 그 사람도 그정도면 좋겠는데, 그 사람은 열렬해요. 그리고 나를 의심하는 거 같아요. 나더러 차다고 해요. 그래서 난 상냥하게 대하려고 애를 써요. 전 혼자인 이 상태를 이제 견디기가 어려워요. 올겨울은 영하 15도까지 예사로 기온이 내려갔잖아요, 정말 얼어붙은 것처럼 춥고, 외롭고 무서워요. 올겨울이 지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어요. 좀 의지할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명서는 조급하게 말했다. 자유로운 사람을 찾아 의지하고 싶어하는 불가능한 모순을 명서 자신은 모르는 것 같았다.

 "가끔 부딪칠 때가 있는데, 그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는 당황스러워요.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번번이 무마하기 위해 사과하지요. 그는 사실은 나를 전혀 몰라요. 나에 대한 무지를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얼버무리려 하죠. 그런데 사랑이 뭐죠? 그런 게 정말 있나요?"

  명서는 마치 소문으로만 들은 괴물에 대해 묻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이 본 적도 없고 느낀 적도 없는 그것이 실제로는 없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무서워요."

  명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딘가로 힘껏 던지려던 돌멩이를 제 싸늘한 가슴에 툭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명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차가워 보이는 새하얀 손이었다. 명서의 심장도 시리도록 차가울 것 같았다.(250쪽)

 

ㆍㆍㆍㆍㆍㆍ감정 없이, 감각 없이 살아야 하는 그게 의사 처방이었어요. ㆍㆍㆍㆍㆍㆍ마치 술이나 담배가 심장에 해로우니 끊으라는 처방처럼 사랑을 끊고 고독해지라고 처방한 거예요.((284~285쪽)

 "어릴 때 버림을 받아서 그러는 거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버림받는 것이 가장 두렵잖아요. 두려워서 더 엉겨붙게 되는 거죠. 유란은 그게 더 심해요. 자기를 해치면서까지 끌어안는 사랑을 하니까요. 아마도 가장 믿었던 엄마에게서 버림받아서 그런 거 같아요."(288쪽)

 

 감정이나 감각 없이 사는 건...살아있어도 사는게 아닐 것이다.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건...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가는 노력의 과정이 아닐까?

때문에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교훈은,

이 책이 깨닫게 해 주려고 한 교훈과는 좀 다른데...

사랑의 온도로 사랑의 정도를 판단하려 할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랑의 방법이 서툴다고 해서 사랑의 순도를 의심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1-09 19:11   좋아요 1 | URL
오랜만예요. 양철나무꾼님.^^
인용하신 문장이 모두 굉장한 걸요? 전 왜 전경린을 한 권도 안 읽었었을까요?! / 사랑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든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함께 하는 게 사랑인데, 혼자서 그러는 것도 의미있는 건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양철나무꾼 2012-11-14 16:35   좋아요 1 | URL
섬님~, 잘 지내시죠?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이긴 하지만, 책은 더, 더, 더, 굉장해요. ㅋ~.
사랑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든다는 말과 관련하여...
그래서 사랑을 혼자 하면 거짓말쟁이, 둘이하면 마법사가 된다고들 하잖아요, ㅋ~.

아이리시스 2012-11-12 20:1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거기 온도는 어때요?
남쪽에서 북쪽의 온도를 떠올리는 건 잘 되지가 않아요..

양철나무꾼 2012-11-14 16:37   좋아요 1 | URL
아이리시스님, 이 책 읽으셨어요?^^
댓글이 꼭 이 책 읽으신 분 같아요, ㅋ~.
오늘, 올들어 젤 춥대요.
전 추운 건 싫어요.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살고 싶어요, ㅋ~.

아이리시스 2012-11-14 17:06   좋아요 1 | URL
아니 이봐이봐, 양철나무꾼님은 천재예요!!
(저는 읽은 티 안낼라고 쓴 댓글인데요?!)

천재님, 남쪽나라 온기를 제가 계속 드리겠어요. 금방 따뜻해지실거예요!
 
시작은 키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감수성이 좀 촌스럽고 덜 아트스러운건지 모르지만,

아트로 분류되는 프랑스 영화나 소설이랑은 좀처럼 친하지 않은데,

우연한 기회에 '시작은 키스'라는 영화를 보고 (난해하여) 구해 두었던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작가가 직접 연출을 했다는데,

제목을 '시작은 키스'라고 생각하고 봤을 때와,

원제 'La delicatesse'(델리카테스)와 연관시켰을 때, 느낌이 완전 달라졌다.

 

영화로 봤었을 때는 '델리카테스'에 대해선 생각조차 못했었고,

그래서 '시작은 키스'라는 다소 감각적인 제목과는 안 어울리는 내용의 어설픈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영화를 '감성적 코미디'라고 분류해 내다니,

역시 내 감수성은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서 좀 촌스럽고 덜 아트스러운가 보다 하고 체념하려던 차였다.

책으로 봤을때는 원제 'La delicatesse'(델리카테스)에 대해 장(章)을 따로 만들어 비중있게 언급을 해서,

적어도 내용을 함축하는 제목을 적절하게 뽑아냈다는 느낌이 들어 안도했다.

만약, 나에게 우리 정서대로의 제목을 뽑아보라면 '짚신도 짝이 있다' 내지는 '제 눈에 안경'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ㅋ~.

 

델리카테스를 이해하려면,

'델리카테스'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부족하므로 '델리카'의 사전적 정의도 살펴보아야 한단다.

델리카 delicat

형용사

1. 아주 섬세한, 세련된, 그윽한.

ㆍ델리카한 얼굴, 델리카한 향기.

2. 허약한, 취약한.

ㆍ델리카한 건강상태.

3. 다루기 어려운, 위험한.

ㆍ델리카한 상황. 델리카한 조작.

4. 아주 민감한, 예민한, 세심한.

ㆍ델리카한 남자. 델리카한 주의력.          (67쪽)

 

내가 '시작은 키스'보다 차라리 '델리카테스'가 낫다고 한 것은...

예쁘고 능력있고 성격도 좋은 여자가,

잘 생기고 돈 많은 자신의 상사인 사장의 구애를 마다하고,

못생긴 파견업체 말단 직원과 잘 연결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제목으로써 비교적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나라 정서에 대입시켜 봤을때는 비현실적이고,

그러다 보면 논리적 오류에 빠지게 되고,

여기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거나 방향을 혼동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예쁘고 능력있고 성격 좋은 여자여도 한번 결혼한 경력이 있고,

남자는 아무리 못생겼다 하더라도 결혼은 커녕 이렇다할 데이트조차 못해본 걸로 그려지고 있다.  

샤를은 다시 기운을 차렸다. 어쨌거나 그에게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얘기할 권리가 있었다.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죄는 아니니까. 사실 그녀와는 모든 게 부담스러웠다. 남편과 사별한 그녀의 처지 때문에 많은 일들이 복잡해졌다. 만약 프랑수아가 죽지 않았더라면 샤를은 훨씬 수월하게 그녀를 유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작자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네 부부의 사랑을 공고히 해놓았다. 자신들의 관계를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엇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여자를,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상에 살고 있는 여자를 무슨 수로 유혹한단 말인가? 정말이지 그 작자가 자신들의 사랑을 영속시키기 위해 일부러 죽어버린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어떤 이들은 열렬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치닫는다고 생각하니까.(74~75쪽)

책에서는 나탈리의 사장 샤를을, 그녀에게 추파나 던지고 찝쩍거리는 무뢰한인것처럼 묘사했지만...영화에선 나름 쿨하고 멋진 면모도 가지고 있다.

다만, 나탈리의 죽은 남편 프랑수아가 처음 나탈리에게 반하여 말을 거는 과정에서...

커피숍에서 복숭아주스를 시켰던 그런 '델리카테스'를 기억하고 있다면,

남편 프랑수아도 델리카테스한 사람이었고,

나탈리도 델리카테스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쿨한 사장을 택하기보다, 델리카테스한 마르퀴스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자연스런 이치가 아닐까?

  마르퀴스는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탈리는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아직 흘러내리지는 않았지만, 복도로 나가자마자 주르륵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눈물을 참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탈리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바보 같아 보일 테니. 그러나 이제 뺨을 타고 흘러내리려 하는 그 눈물은 그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가 여자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은 이번이 세번째였다.(113쪽)

 

ㆍㆍㆍ ㆍㆍㆍ 그는 그녀를 세심하게 배려했다. 그녀의 집 앞에서 그는 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리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 즉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탈리는 이 남자의 배려 하나하나가 델리카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정말로 행복했다.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그에게 고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전등을 껐다.

 

두사람의 첫 저녁식사 후 나탈리가 마르퀴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는 짤막한 답장을 보냈다. '그 시간을 아름답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로서는 좀더 독창적이고,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이고, 더 낭만적이고, 더 문학적이고, 더 러시아적이고, 더 연보랏빛을 띤 답변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그 한마디가 그때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잠자리에 들기는 했지만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방금 꿈에서 깨어났는데 어떻게 또 꿈을 꿀 수 있겠는가?(142~143쪽)

다시 말해, 나탈리의 사람을 택하는 기준은 '델리카테스'인 것이다.

사별한 남편 프랑수아는 델리카테스한데다가, 얼굴까지 잘 생겼었던 것이고,

현재 마르퀴스는 델리카테스하지만, 얼굴은 아닌것이고...

나탈리의 사장님은 얼굴은 어떨지 모르지만,

성격이 델리카테스하지 않고 쿨하신 관계로다가...

나탈리의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고 말이다.

"글쎄요.내가 아는 것은 당신과 함께 있는게 좋다는 것, 당신은 꾸밈없고ㆍㆍㆍ ㆍㆍㆍ친절하고ㆍㆍㆍ ㆍㆍㆍ나에게 델리카하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고요. 그래요."

"그게 다예요?"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158쪽)

나탈리와 마르퀴스는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나,

마르퀴스는 개인의 과거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중, 나탈리와의 만남에서 실수를 하게 된다.

 

사랑이 뭘까?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의 이렇고 저런 점들은 나와 닮았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상대방의 이렇고 저런 점들은 나와 다를 수도 있고,

그래서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

"나탈리, 당신한테 말한 그대로예요. 다른 의도는 없어요.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 그게 전부예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는 목에 쥐가 나지 않겠어요?"

"마음보다는 목이 아픈게 나아요.'(169쪽)

마르퀴스는 나탈리로부터 실수를 이해 받지 못할까 두려워 마음을 닫아 걸려고 한다.

'그래서' 좋거나 싫은건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거나 싫어야 하는데,

마르퀴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좋아해 준 적이 없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나와 다른 점이나,

상대의 단점이 좋아 죽겠는걸 두고 '롤랑 바르트'도 뭐라고 했었는데,

한마디로 눈에 콩깍지가 씌는 수밖에 없다.

빗줄기가 나탈리의 얼굴을 따라 흘러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르퀴스에게는 그녀의 눈물이 보였다. 그는 눈물을 읽을 줄 알았으니까. 나탈리의 눈물이라면 더더욱. 그는 나탈리에게로 다가가 그녀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마치 그 고통을 꽁꽁 묶으려는 듯이(258쪽)

그리고 이들은 제대로 콩깍지가 씌었다.

그런 이들을 두고,

'그래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지나 '그런가보다'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귀뜸하는건 좀 사악한가~--;

 

'델리카테스'하다는 걸 알고 읽는다면, 묘미가 느껴지는 예쁜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 - 맑고 쉽게 살려 쓰는 한국말
최종규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쉽게 읽을 책은 아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쓰인 책을 이렇게 휘리릭 읽어 넘긴다는 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줄 안다.

하지만, 휘리릭 쉽게 읽어넘길 책은 아니어도,

참 좋은 책이라고 침 튀겨가며 칭찬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본다.

 

책의 취지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사자성어를 한국말로 번역하여 '맑고 쉽게 살려 쓰기 위해서'란다.

<교수신문>은 해마다 새 '사자성어'를 하나씩 내어놓습니다.ㆍㆍㆍㆍㆍㆍ그런데 대학 교수이든 지식인이든 기자이든, 새해를 맞이해 새로운 '사자성어'는 뽑을 줄 알지만, 막상 새로운 '한겨레 말글'은 빚을 줄 모릅니다.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알차고 아름다이 빚는 길을 열지 않습니다. "올해를 빛낼 한국말"을 빚어 널리 알리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요.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 책은 '한국말로 예쁘고 즐거이 꾸리는 빛나는 삶'을 생각하고 싶은 꿈을 담으려 합니다. 한국사람이기에 쓰는 한국말입니다. 한국땅에서 살아가니까 쓰는 한국말이에요. 껍데기만 한글인 한국말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알맹이는 없으나 겉차림만 한글인 한국말로는 내 넋을 살찌울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알맹이로부터 빛나고 아름다운 말이요 글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삶을 담는 줄거리가 빛나는 말이면서 글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자성어'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사자성어 가운데 한국말로 받아들일 낱말이 더러 있을 테지만, 사자성어는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어는 영어이지 한국말이 아니거든요. 영어 가운데 한국말로 받아들일 낱말이 더러 있으나, 영어는 한국말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영어 가운데 '한글'이나 '김치' 같은 낱말이 스며들 수 있어도, 영어는 영어여야지 한국말이 되지 않고, 될 수조차 없어요.  (6~7쪽, 부분 발췌)

그동안 그의 책들을 받아봐온 나로써는,

자동 번역기와 메뉴얼(헉~, 혼나겠다~--;)등 갖가지 편하고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 판치는 시대에,

하나 하나 수작업으로 했음이 엿보이는 노고를 이런 방법으로라도 광고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웬만한 정성과 열정으론 할 수 없는 일을 한 그를, 격려하고 응원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이런 방법을 택했다.

 

이 책에 사자성어가 124개 정도 나오는데, 예문이 되는 책이 사자성어 하나 당 세권 정도만 실린다고 잡아도 만만치 않은 책이 등장한다.

예문이 다양하고 풍성하게 실려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의 다방면 독서이력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암튼, 그의 소망대로 한국말을  곱게 보살피길,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바라며,

그리하여 "올해를 빛낼 한국말"도 빚어 널리 알리며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1-06 0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머니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얼굴이 궁금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저자의 경우는 저자 어머니의 얼굴이 참 궁금했다.

(물론 저자의 얼굴은 책 날개 안쪽에 단정하게 실려 있고,

인터넷에 저자 이름 석자를 치는 수고를 해도 나오니까~^^)

그런데, 나같은 오지랖이 또 있었는지, 요번 작품에선 원없이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얼굴을 보면서 든 생각은,

"나도 참...그어머니에 그 아들이지 ...뻔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끔 판박이구만,

 뭐가 한참 다를 줄 알고 얼굴을 궁금해했나? ㅋ~."

속 좋은 듯 허연 이를 한껏 드러내고 눈꼬리에 자글자글 주름을 만들어가며 웃는 모습이 꼭 닮았다.

 

 

 

처음엔 모자의 웃는 모습을 쳐다보며 따라 웃다가, 이내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작년 초여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생각나서였다.

그러고보면, 어머니란 단어는 만국공통어쯤 되고,

어머니라는 발음만으로도 만인을 아우를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것인가 보다.

 

아니, 어쩜 한숨과 고초당초보다 매운 시집살이,농사일...

이 모두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공용어인지도 모르겠다.

 

한숨의 크기

어머니 학교 19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냇물 흐린다지만,

그 미꾸라지를 억수로 키우면 돈다발이 되는 법이여.

근심이니 상심이니 하는 것도 한두 가지일 때는 흙탕물이 일지만

이런 게 인생이다 다잡으면, 마음 어둑어둑해지는 게 편해야.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

 

어머니의 한숨 수를 세어봤더라면 아마 우리 남편이 일등 공신이 아닐까 싶다.

하루는 한숨을 쉬다 나한테 들키시곤 겸연쩍으신지,

'식용소다'라고 적힌 봉지의 흰가루를 한 숟가락 가득 떠서 입 안에 떨어넣으셨다.

"어머니, 그걸 왜 드세요?"

어머니는 눈을 곱게 흘기시며,

"이 신맛보다 더 신게 시집살이라는 데, 너도 한술 먹어볼래?"

 

한숨을 유난히 많이 쉬셨던 어머니.

한숨의 기전은 따로 있지만,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하는 이 시에서처럼이라면,

어머니의 마음 크기는 망망대해 같았을게다.

아니, 실제로 망망대해 같았다.

근심이니 상심이니 인생사 간난고초를 거두어 감추기만 하셨지,

한번도 흔들리는 부표처럼이라도 수면 위로 드러낸 적이 없으신 분이었다.

 

하늘 벼루

어머니학교22

 

 

너무 바쁘고 힘드니까

 

 

밤낮없이 밤밤이었으면 싶어.

 

 

하느님은 붓글씨 안 배운다니?

 

 

벌건 해 벼루 삼아 밤밤으로

 

 

흥건하게 먹이나 좀 갈지.

 

시인의 어머니는 '힘들다'는 말을 소리내어 하셨을까?

'힘들다'소리내어 말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한숨이 아니라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호탕하게 웃어 떨어버릴 수 있는 분이실게다.

어머니가 한번도 '힘들다'소리내어 말씀하시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랬었고,

임종을 눈앞에 두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그러셨다.

'너무 바빠서 힘드니까'내지는 '너무 바쁘니까 좀 쉬었다가 하게'가 되어도 좋겠다. 

 

언젠가 새벽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시는 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안좋아서,

알람 시계가 고장났다고 한 적이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서 움직이실 줄 알았더니 웬걸, 어머니는 밤새 못 주무시고 깨어 계셨다.

 

사랑

어머니학교 29

 

 

편애가 진짜 사랑이여.

논바닥에 비료 뿌릴 때에도

검지와 장지를 풀었다 조였다

못난 벼 포기에다 거름을 더 주지.

그래야 고른 들판이 되걸랑.

병충해도 움품 꺼진 자리로 회오리치고

비바람도 의젓잖은 곳에다가 둥지를 틀지.

가지치기나 솎아내기도 같은 이치여.

담뿍 사랑을 쏟아부을 때

손가락 까닥거리는 건 절대 들키면 안 되여.

풀 한 포기도 존심 하나로 벼랑을 버티는 거여.

젖은 눈으로 빤히 지릅떠보며

혀를 차는 게 그중 나쁜 짓이여.

요번 시집에서 내 마음에 가장 들었던 시는 이 시 '사랑'이다.

'편애가 진짜 사랑'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당신이야말로,

고른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분이다.

 

뛰어난 것을 북돋워주는게 사랑이 아니라,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곧추 세워 고르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담뿍 사랑을 쏟아부을 때,

쏟아붓는 당사자 외에는 수혜자나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선 안된단다.

존심이 걸린 문제란다.

사랑과 동정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함은 당근이다, ㅋ~.

 

가슴 우물

어머니 학교 48

 

 

허물없는 사람 어디 있겄냐?

내 잘못이라고 혼잣말 되뇌며 살아야 한다.

교회나 절간에 골백번 가는 것보다

동네 어르신께 문안 여쭙고 어미 한 번 더 보는 게 나은 거다.

저 혼자 웬 산 다 넘으려 나대지 말고 말이여.

어미가 이런저런 참견만 느는구나.

늙을수록 고양이 똥구멍처럼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한숨을 말끔하게 내몰질 못해서 그려.

뒤주에서 인심 나는 법인데

가슴팍에다 근심곳간 들인 지 오래다 보니

사람한테나 허공한테나 걱정거리만 내뱉게 되여.

바닥까지 두레박을 내리지 못하니께

가슴 밑바닥에 어둠만 출렁거리는 거지.

샘을 덮은 우덜거지를 열고 들여다봐라.

하늘 넓은 거, 그게 다 먹구름 쌓였던 자리다.

어미 가슴 우물이야, 말해 뭣 하겄어.

대숲처럼 바람 소리만 스산해야.

 

그동안도 그랬고, 요번 시집에서도 그렇고...

어머니를 옮겨놓았다는 그의 시를 통하여 느끼는 걸 하나로 압축시켜보면, '배려'라고 할 수 있겠다.

말을 할때고,

글을 쓸때고,

행동을 할때고,

상대방이 왜 그렇게 말하고 글 쓰고 행동했는지...를 한번만 생각해 본다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누구나 다 그 같은 시인이 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일흔 두 편 중 내맘대로 골라낸 네 편은 코끼리 뒷다리의 발톱 만지기이다.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시와 사진들이 시집엔 더 다양하다.

일독을 권한다.

난 한동안 이 시집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보듬고 쓰다듬고 어루만져야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1-0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02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11-02 06:57   좋아요 0 | URL
'배려'란 바로 '마음'이잖아요.
마음으로 어머니를 만나고,
동네 어르신을 만나고,
내 가까운 동무랑 이웃하고 인사하고,
그러면서
시가 태어나는구나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2-11-02 09:24   좋아요 0 | URL
맞다~, 된장님도 바로 그런 시인이시잖아요.
늘 그런 귀한 맘이 담긴 시들, 사진들 잘 받아보고 있어요, 꾸벅~(__)
아참참,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출간 축하드려요.
지금 읽고 있어요.
깜냥은 안 되지만 읽고 느낌을 끄적거려 보기로 하죠, ㅋ~.

hnine 2012-11-02 13:47   좋아요 0 | URL
이 시집 읽다가 시 두편 서재에 올려두고 검색해보니 양철나무꾼님께서 바로 어제 올리신 페이퍼가 있네요!
추울때마다 꺼내 읽으면 좋은 시들이 잔뜩이지요? 마음이 따뜻해질거예요.

양철나무꾼 2012-11-05 10:34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hnine님~^^
계절 참 빠른거 같아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더워, 더워~' 하며 시원한 곳을 찾아다녔는데 말예요.
가끔 들려 읽는 님 서재 글들은 계절에 관계없이 마냥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아 좋아요.
그쵸? 이정록 님 요번 시집도 정말 좋죠?^^

하늘바람 2012-11-02 15:54   좋아요 0 | URL
어머니 그림이 참
와닿는 책이네요
좋은 시들이 잔뜩이라니
언제나 님 서재에는 보물이 가득한 느낌입니다

양철나무꾼 2012-11-05 10:45   좋아요 0 | URL
보물이라고 봐 주시는 하늘바람님 눈에는 보물창고인거죠, ㅋ~.

블루데이지 2012-11-03 17: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서재에서 이.시집읽고 너무 가슴이 찡해 양철나무꾼님께서 올리신 글도 읽어보려고 왔어요!
추워지는.계절 가슴도 따뜻해지고, 삶도 더 진지해지는 글들.잘.읽고 얻어갑니다!

양철나무꾼 2012-11-05 10:47   좋아요 0 | URL
네, hnine님 서재는 언제 읽어도 따뜻한 글들이 많죠, ㅋ~.
전 블루데이지님 예전에 즐.찾.해 놓고 몰래 엿보곤했었는데...
이렇게 커밍 아웃해주시다니 반갑습니다여, 꾸벅~(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