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터키'속담도 있다지만,

사랑을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 듯 느껴진다.

사랑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은 다른 것들에도 똑같이 열정적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단다.

 

그런데 가끔 열정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뜨뜻미지근한 태도, 성의없는 말투, 냉담한 눈길 같은 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상대방의 그것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도,

'애정이 식은거야~--;'라고 표현하는걸 보면,

사랑을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것이,

사랑은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좋은 게 정석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뜨겁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온도가 높아야 뜨거운 것이 되는 것일까?

마음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온도가 조금쯤 올라가는 듯 느껴지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고 겉으로 표현하는 것만 사랑이고,

그렇지 않은 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적어도 그런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아프게 읽었다.

너무 아프게 읽어서, 한동안...

리뷰를 쓸 수 있을까, 느낌이란 것이 나와줄 수 있을까 싶었었다.

뭔가 느낌이나 감상을 얘기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한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법이니까.

구구절절, 사무치고 아팠다.

내내 울었고 앓았다.

 

사랑의 온도, 그것은 어쩜 누군가를 태우기도 하고

누군가를 아프게도 하지만, 누군가를 치유하기도 한다.

나는 오랫동안 갈망하였고, 넉넉히 받았고, 그리하여 치유받았다.

다시 말해 울고 앓고 주저앉는데서 멈추지 않고,

책을 통하여 치유받고 훌훌 떨고 일어날 수 있었다.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소설의 특징인 개연성을 확보하는데서 실패했고,

그래서 다소 진부하다 비춰질 수가 있겠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소한을 지키기가 이렇게도 어려운데 왜 우리는 최대한의 욕망에 휘둘려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7쪽)

 

지금은  병ㆍ의원의 업태가 '서비스'라는 단어가 빠진 '의료업'이지만, 한때 '의료ㆍ서비스업'으로 분류되던 때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정이 많은 부류였지만 내 눈에는 계산적인 여자로 보였다. 상반된 두 단어는 오늘날 같은 말이다. 정이란 보이지 않게 계산된 이익의 가시적인 산출량인 것이다.(10쪽)

이 문장을 내 마음대로 해석해 보자면, 정(情)이란 것도 보이지않게 계산된 것이라는 얘기쯤 될테고,

그래서 '의료'에 '서비스'가 붙은 순간 지극히 계산적이 되어버리는 걸 눈치챈 사람들이,

야박함과 상술을 내세워 '서비스'라는 단어를 뺀 것일 테지만,

정(情)도 가시화하여 계산하는 사람들이 의료에 '서비스'를 붙이는 것 정도야 애교이지 싶다.

 

이 소설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쓴 그녀가 쓴 또 다른 사랑이야기라고 해야 하려나?

줄거리는 간단하다.

치매에 걸린 새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가 남기고 간 통장을 전해주기 위하여 남겨진 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ㆍㆍㆍ ㆍㆍㆍ사람은 한 번에 하루씩 살아야 하고, 한 번에 한 끼씩 먹어야 하는 법이다. 새엄마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나는 것일까. 사람의 머릿속에는 저마다 깊은 우물에 종이배 하나가 까닥까닥 떠 있는 게 아닐까. 심연에서 심연으로 연결된 어느 부두에서 매일 자신이 접은 종이배에 홀로 승선하고 홀로 하선하는 당일 여객들ㆍㆍㆍ ㆍㆍㆍ. 한번에 하루를 사는 인생, 하루에 하나의 종이배를 접는 일은 살아가는 자체여서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16~17쪽)

작중화자는 어린시절 오빠와 작당을 하고 새엄마의 딸인 이복동생을 집에 들이는게 싫어 어딘가에 버려두고 도망친 과거가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번에 여러가지 업무수행이 가능한 '멀티테스킹'형이 있기는 하더라.

멀티테스킹이라고 하여, 어느 하나 소홀하지도 않은 걸 보면 한번에 하나씩 차근차근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과하면 과부하가 걸리거나 체하게 마련이고,

과부하나 체하는 걸 감당할 수 있는 힘은 '부모'라는 이름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부모도 이전에 사람이고, 모두가 과부하나 체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지. 자기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과 자신의 미움을 지키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78쪽)

'사랑'을 지키는 것과 '미움'을 지키는 것은 어쩜 상반된 의미의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깊어져 미움이 된 것이지,

사랑이 없는 사람은, 미움도 없고...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 지킬 게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뜨거운 것은 차가운 것과 어쩜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할 것은, 무심함이 아닐까?

(종교에서 무심해야 득도하고, 도통한다고 했는데...아웅~--;)

"난 사람에 대한 나름의 측도가 있어요. 자기의 사랑을 지키는 사람, 그게 사람의 의리지요."

 나는 은밀한 죄의식을 뱃속에 꿀꺽 삼켰다. 헛배가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유란의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그런 일이었다. 허은경은 내 뱃속을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 사랑을 못 지키는 사람은 인생에서 모멸을 당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내 엄마 같은 사람, 유란이 엄마 같은 사람요."(235쪽)

책에선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자기의 사랑을 지킬 수 있고 없고,가 자기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좀 심하지 싶다.

인생에서 모멸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제 사랑을 못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제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세상에는 얼마든지 차갑고 냉정하게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쪽 왕이 왜 아내에게 잠드는 약을 먹였느냐고 묻는데, 그들은 욕망의 휘황한 암흑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은 비극 뒤에 자초하는 고독의 엄정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고 슬픔의 깊고 쓴 달콤함과 우수의 가벼움과 평온을 모르는 사람이다. 상처에서 염증이 걷히며 단단하게 응결되는 비극의 자긍심을 모르는 사람이다.(100쪽)

이 책이 슬펐던 것은,

사랑의 정도를 자꾸만 온도와 비례해서 풀어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ㆍㆍㆍ ㆍㆍㆍ부엌이 없으면 몸이 마르는 느낌이 들어요. 마음도 그렇고요. 여자들은 다들 그렇지 않나요?"(138쪽)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방식은 뭘까?

사람이 사람을 머릿 속에 넣어 기억하는 방식 말고 다른 것들도 있는 것 같다.

몸에 밴 습관처럼, 몸이 먼저 반응하는 그런 방식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는걸 두고 심장이 기억한다고 할 수도 없지만, 심장에서 '찌릿~'하고 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엉뚱한 답이 될것 같다.

"이렇게 다른데도 내가 너를 한눈에 알아보다니, 이건 눈으로 알아보는 게 아닐 거야. 우리가 모르는 다른 방식이 있는 거야. 심장이 발산한다는 자기장으로 서로 알아보는지도 몰라. 너 아니? 심장에 기억이 있다는 거. 심장이 발전기처럼 전기를 만든다는 거. 심장이 자기장을 2미터 이상이나 멀리 보낼 수 있다는 거."

  심장이 기억한다면 심장에도 뇌가 있다는 소린가. 심장도 생각을 하는 걸까. 심장이 자기장을 2미터나 보낼 수 있다니, 가슴에서 가슴으로, 같은 노래 가사가 괜한 소리는 아니었던 것이다.(209쪽)

이쯤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친구로 만들 수 있을 남자였다. 그러니까, 사랑할 여자 하나조차 남겨놓지 못하고 모두를 친구로 만들 남자였다. 예전에 내가 그를 거절했던 이유를 이제 알게 된 셈이었다. 그가 외로운 얼굴로 역에 앉아 있는 이유도. 그때 나는 왜 친구가 될 수 있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211쪽)

내가 경계하려던 것은 사랑의 온도가 아니라,

사랑의 밀도라고 해야할까, 순도라고 해야 하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밀도나 순도라는 것들은, 팥으로 메주를 쒀도 믿는 '믿음'과 관련된게 아닐까 싶다.

"ㆍㆍㆍ ㆍㆍㆍ그런데 남자친구가 그러더래요. 거짓말이면 어때? 넌 신화와 설화를 믿니? 다 지어낸 이야기인 거야. 불교의 핵심이 그거잖아. 인생도 그래. 다 지어내는 거지. 사랑도 다 지어내는 거야. 하지만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가는 일이지ㆍㆍㆍ ㆍㆍㆍ."(245쪽)

 

"그 사람은 자꾸만 확인하려고 해요.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아니면 자기만 나를 사랑하는 거냐고요. 전 그게 두려워요. 전 사람들이 말하는 뜨거운 사랑을 모르겠어요. 그냥 함께 생활하는 것이 사랑이면 좋겠어요. 그 사람도 그정도면 좋겠는데, 그 사람은 열렬해요. 그리고 나를 의심하는 거 같아요. 나더러 차다고 해요. 그래서 난 상냥하게 대하려고 애를 써요. 전 혼자인 이 상태를 이제 견디기가 어려워요. 올겨울은 영하 15도까지 예사로 기온이 내려갔잖아요, 정말 얼어붙은 것처럼 춥고, 외롭고 무서워요. 올겨울이 지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어요. 좀 의지할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명서는 조급하게 말했다. 자유로운 사람을 찾아 의지하고 싶어하는 불가능한 모순을 명서 자신은 모르는 것 같았다.

 "가끔 부딪칠 때가 있는데, 그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는 당황스러워요.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번번이 무마하기 위해 사과하지요. 그는 사실은 나를 전혀 몰라요. 나에 대한 무지를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얼버무리려 하죠. 그런데 사랑이 뭐죠? 그런 게 정말 있나요?"

  명서는 마치 소문으로만 들은 괴물에 대해 묻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이 본 적도 없고 느낀 적도 없는 그것이 실제로는 없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무서워요."

  명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딘가로 힘껏 던지려던 돌멩이를 제 싸늘한 가슴에 툭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명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차가워 보이는 새하얀 손이었다. 명서의 심장도 시리도록 차가울 것 같았다.(250쪽)

 

ㆍㆍㆍㆍㆍㆍ감정 없이, 감각 없이 살아야 하는 그게 의사 처방이었어요. ㆍㆍㆍㆍㆍㆍ마치 술이나 담배가 심장에 해로우니 끊으라는 처방처럼 사랑을 끊고 고독해지라고 처방한 거예요.((284~285쪽)

 "어릴 때 버림을 받아서 그러는 거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버림받는 것이 가장 두렵잖아요. 두려워서 더 엉겨붙게 되는 거죠. 유란은 그게 더 심해요. 자기를 해치면서까지 끌어안는 사랑을 하니까요. 아마도 가장 믿었던 엄마에게서 버림받아서 그런 거 같아요."(288쪽)

 

 감정이나 감각 없이 사는 건...살아있어도 사는게 아닐 것이다.

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건...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들어가는 노력의 과정이 아닐까?

때문에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교훈은,

이 책이 깨닫게 해 주려고 한 교훈과는 좀 다른데...

사랑의 온도로 사랑의 정도를 판단하려 할 것이 아니라는 것과,

사랑의 방법이 서툴다고 해서 사랑의 순도를 의심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1-09 19:11   좋아요 1 | URL
오랜만예요. 양철나무꾼님.^^
인용하신 문장이 모두 굉장한 걸요? 전 왜 전경린을 한 권도 안 읽었었을까요?! / 사랑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든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함께 하는 게 사랑인데, 혼자서 그러는 것도 의미있는 건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양철나무꾼 2012-11-14 16:35   좋아요 1 | URL
섬님~, 잘 지내시죠?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이긴 하지만, 책은 더, 더, 더, 굉장해요. ㅋ~.
사랑은 지어낸 것을 사실로 만든다는 말과 관련하여...
그래서 사랑을 혼자 하면 거짓말쟁이, 둘이하면 마법사가 된다고들 하잖아요, ㅋ~.

아이리시스 2012-11-12 20:10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거기 온도는 어때요?
남쪽에서 북쪽의 온도를 떠올리는 건 잘 되지가 않아요..

양철나무꾼 2012-11-14 16:37   좋아요 1 | URL
아이리시스님, 이 책 읽으셨어요?^^
댓글이 꼭 이 책 읽으신 분 같아요, ㅋ~.
오늘, 올들어 젤 춥대요.
전 추운 건 싫어요.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살고 싶어요, ㅋ~.

아이리시스 2012-11-14 17:06   좋아요 1 | URL
아니 이봐이봐, 양철나무꾼님은 천재예요!!
(저는 읽은 티 안낼라고 쓴 댓글인데요?!)

천재님, 남쪽나라 온기를 제가 계속 드리겠어요. 금방 따뜻해지실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