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자전거를 배웠었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 밖에 안하는 나의 노년을 심히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길래,
'내 파란 세이버' '스피드 도둑'등의 만화책을 두루 섭렵하며 심사숙고 끝에 택한 운동이 MTB였다.
장비에, 복장에, 자전거에, 다른 사람을 다칠까봐 보험도 들고 구색을 갖추고 보니,
내가 글쎄 산악자전거는 고사하고 자전거도 타지 못하는 위인인거다.
빨리 배우고 싶은 욕심에 강사를 붙여 일 대 일 개인 레슨을 받는데도 잘 늘질 않았다.

난 안되거나 못하는게 있으면 밤잠이 안 오는 스타일이다.
혼자서 땀 흘리고 피 터지게 노력하면서, 겉으론 아닌 척 우아 내지는 내숭을 떠는 습성도 몸에 뱄다.
게다가 남편은 자기는 어릴 적 안장에 앉으면 페달이 닿지도 않는 짐자전거를 서서 타고 다녔다는 둥,
자기가 가르친 아들은 슝슝 잘만 날라다닌다는 둥,
전문 강사에게 배운다면서 만날 넘어지는 법을 배우냐는 둥,
혼자 안으로만 움추러 들길래 운동을 하라고 했더니 선택한 운동이 또 혼자 노는 운동이냐는 둥,
하루하루 다양한 레파토리를 골라가며 나를 놀려 먹으며, 혀를 끌끌 차거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근데 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종목을 막론하고 좀 되어보거나 잘 해본 적이 없다.
놀림을 받거나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혼자 입술을 깨물어 아픔을 참고,
손 붙잡아 일으켜주는 이 없어도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오기가 발동, 지난 월요일 저녁 퇴근 후 혼자 자전거를 가지고 나갔다.
안전수칙 외우는 거야 누구보다도 잘 할 자신이 있었고,
누군가가 가르쳐 준 원 포인트 레슨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잘 새겨 두었었다.

자전거는요...
먼 데를 보고 타야 해요.
넘어질까봐 무서워하면 안 되지만,
난 달릴 수 있어. 왜냐면, 세상에서 나보다 멍청한 것들도 자전거를 다 타걸랑요.
그런 맘으로,
밑줄 좍, 그어야 할 부분은, 먼 델 보는 거예요.
먼 데를 보고, 거길 향해서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자전거는 무조건 가요.
개도 본능적으로 헤엄치듯이...
그리고 스톱할 때는 브레이크를 천,천,히... 잡는 거죠.
운전도 급브레이크 밟으면 쏠리잖아요. 관성의 법칙!!
목적지로 정한 곳 가까이 가면 넘어질까봐 두려워지잖아요. ㅋㅋ
그러기 전부터 브레이크를 살짝살짝 잡아서 속력을 줄여야 해요.
그러다가 정지 지점에선 아주 느리게 서는 거죠. 그럼 획, 자빠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분명, 먼데를 보고, 거길 향해서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신.기.하.게.도, 자전거는 무조건 갔다. 
계속 먼데를 보고 갔다.
근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내리막길이 보였다.
아뿔사!
내리막길은 아직 배우지 않았는데...어쩐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새겨둔 원 포인트 레슨대로,
스톱할 때는 브레이크를 천, 천, 히...잡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천~'에서 그만 아래로 구르고 말았다.
 
결국,
태어나서 처음 내 사정으로 병원 응급실에 가보게 됐다.
왼쪽 머릿속에서 피가 철철 나고 상처가 깊어 스테이플러로 네군데를 깁고,
몸 곳곳의 타박상과 왼쪽 발목 염좌로 걸음도 걷기 힘들다. 


한동안 편두통을 호소하던 남자가 있었다.
항상 바쁘다, 바쁘다 해서 내 퇴근시간까지 한시간 이상 늦춰가며 해결을 해줬더니,
마지막 날 가면서 개업 명함이라고 내미는데 보니, 근처라서 황당했었다.

중이 제머리는 못 깎는다고,
왼쪽 발목을 그 사람에게 맞겨 볼까 하여 찾아 갔더니...
ankle triangular lig.손상이라고 얘기했는데, 그 자리에 침부항을 하겠다고 사혈침을 갖고 달려든다, 내 참~ㅠ.ㅠ 

아들은 내 머리의 땜빵 자국을 보더니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놀려댄다.

안되거나 못하는게 있으면...손 털고 쿨하게 인정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애먼 몸이 고생이다.

나는,
나의 몸은 마음을,
나의 마음은 몸을,
위로하고 다독인다.
 
이런 내게,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이렇다 하게 아파본 적도, 다쳐본 적도 없는 내게 아픈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
 강풀 외 6인 지음, 김용민 사회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그리고 사혈침을 갖고 달려든 남자에겐,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권하고 싶다.
고미숙 님은, "건강이란 병이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병을 생(生)의 선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하시는데 말이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암튼,
덕분에,
항상 '바빠, 바빠~'를 연발하던 나도 시간이 나서...보고싶은 얼굴을 보러 갈 수 있으니 땡큐할 일이다.
벌써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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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10-22 15:44   좋아요 0 | URL
머리에 피가 철철이면 정말 많이 다치신 거네요 발목 염좌. 아유.
어떻게해요. 이상하게도 요즘 님생각이 참 많이 났었는데 다치셔서 더 그랬나봐요.
지난 여름까지 자전거 타고 한참 다녔었는데 저는 어릴 떄 혼자 다쳐가며 배워?ㅆ어요 그래서 그나마 타지만 잘 타지 못해서 아주 천천히 달려요. 그냥 무리하지 마시고 공원같은데 혹은 자전거 도로에서 천천히 달리면 바람을 느끼고 풍경을 느끼고 가을에 어울리는 것같아요.

프레이야 2011-10-22 17:43   좋아요 0 | URL
아휴, 님 괜찮으신거에요? 크게 다치셨네요ㅜㅜ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위로할 수도 없겠고..
아무튼 다음부턴 조심해서 타시기에요.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때가 생각나네요. 12살 때였지요.
지금은 전 자전거를 좀 타는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넘어지기를 잘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안 넘어지려 애쓰지 말고 '잘' 넘어지기.
요즘 자전거를 좀 안 탔는데 타고 바람을 맞고 달리면 좀 가슴이 뻥 뚫리려나요.


Shining 2011-10-22 17:48   좋아요 0 | URL
자전거가 이렇게 위험한 물건이었군요!
피 철철, 타박상에 염좌라니ㅠㅠ 게다가 그 상태(?)로 글을 쓰고 계시다니...
무리하지 마시고 부디 건강관리 잘 하셔서 얼른 회복하세요ㅠ
(항상 몰래 잠입해; 글만 보고 나가다가 걱정이 되어서 쑥스럽지만 글 남깁니다^^)

전호인 2011-10-22 20:06   좋아요 0 | URL
에공, 없는동안 잘 계시리라 철썩같이 믿었는데 자전거로 철썩사고를 치셨네요ㅠㅠ아니 안전장비는 안하셨어요?자전거를 타더라도 안전장비를 철저히 착용해야하는데ㅠㅠ안타깝게시리ㅠㅠ쾌유를빕니다.그나마 혼자만 다치신것이 불행중 다행. 과거 추돌사고가 난적이 있는데 의외로 크게 다쳤던 적이 있어요. 인전장비의 소중함을 이때 알았어요^^

마노아 2011-10-22 23:04   좋아요 0 | URL
어이쿠, 어쩜 좋아요. 많이 아프시겠어요.ㅜ.ㅜ 어여어여 깨끗하게 나으셔요.
그래도 자전거 타기 포기하지 마시고요.^^;;;

saint236 2011-10-22 23:42   좋아요 0 | URL
이런...전 어느날 출근하려 집 밖을 나와보니 전날 세워두었던 빨간 자전거가 가출을 해버렸더군요. 다른 것들은 다 있는데 내 것만 없어서 제가 살고 있는 빌라 근처를 열심히 찾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자전거를 끊었습니다.T.T

아이리시스 2011-10-22 23:52   좋아요 0 | URL
다친 김에 쉬어가시는 거죠! 그나마 안심이에요. 자전거도로가 필요한 거였군요. 그게 세상에 왜 필요하단 말이냐, 하는 쪽이였는데,, 오랜만에 소식 듣는데 아프시단 소식이라니, 슬프지만 곧 깨끗이 나아 더더욱 건강과 휴식의 소중함을 알게 되겠죠. 나무꾼님, 얼른 나으세요. 시간이 가면 낫는 거 맞죠?^^

쉽싸리 2011-10-23 08:50   좋아요 0 | URL
앗! 헬멧썼는데도 머리쪽을 다치신 거예요? 학교 운동장 같은데를 신나게 달리는게 가능한 다음에 도로로 나서야 하는데요. ㅜㅜ
저도 제대로 자빠진적 있어요. 다행히 무릎밑 찰과상만 입는 수준이었죠.
잔차 타다가 넘어지면 아무래도 몸이 움추려드는데요. 만약 가파른 언덕이 나오면 내려서 가세요. 까짓것... 뭐 어떻습니까? 그래도 자전거가 나를 타는것은 아니잖아요? 그전에 일단 학교운동장을 신나게, 매우 빨리, 달릴수 있도록 하고요!! 헬멧은 필수!!

pjy 2011-10-23 11:30   좋아요 0 | URL
어이쿠, 자전거타다가 응급실이라니 쫌 무섭습니다~ 이왕 넘어진김에 쉬어가세요^^; 괜찮다고 일찍 자리털고 일어나지마시고! 괜히 날씨도 어정쩡하니 푹~~~ 쉬셔야되여~
신기하게 롤러스케이트나 인라인은 타는데요ㅋ 자전거는 못타요, 세발은 너무하고ㅋ 보조바퀴달고 4발로 나중에 한참뒤에 배워볼까 생각만 합니다^^

잘잘라 2011-10-23 14:40   좋아요 0 | URL
운전할 때 주의사항과 비슷하군요.

'먼 데를 보고!'

(먼 데, 어디까지가 '먼 데'인지, 보이는 데 까지를 말하는 건지, 보일락 말락 하는 데 까지를 말하는 건지, 그렇담 시력 2.0인 사람의 '먼 데'와 시력 0.1인 사람의 '먼 데'는 너무나 차이가 많은거 아닌지, 아니지, 시력 0.1인 사람이 운전하면 안되지. 자전거도 안되지. 눈이 그렇게 나쁘면 안경점 부터 가야지! 아니 내가 지금 남의 서재에서 뭐하는 거지!!!)

rosa 2011-10-23 21:55   좋아요 0 | URL
아이고~ 많이 다치셨군요.
한동안은 고생하실텐데..
서재 메인에 글 뜬 거 보고 놀라서 달려왔네요.
주말, 좀 쉬셨는지요? 얼른 나으시길..

고백하자면.. 저도 자전거 못탄답니다.
몇 번 시도는 했어요. 그런데 너무 무서워서(어릴 때 시골 놀러갔다가 논바닥에 패대기쳐진 기억 때문인지..쩝~) 매번 실패했어요. 경주로 놀러갈 때마다 커플도 아니면서 커플 자전거를 타게 되는 비련의 녀성이랍니다. 흐..
그래도 나이를 핑계대지 말고 늘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양철나무꾼님의 도전이 이번엔 다소 아픔을 동반했지만 그래도 부럽고 격려해드리고 싶습니다.^^

blanca 2011-10-23 22:10   좋아요 0 | URL
응급실까지 가셨어요? 세상에나. 저희 남편도 자전거 타다 크게 다친 적이 있어서 자전거가 때로 참 위험한 운동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도 꼭 배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괜찮으신거죠! 그러셔서 한동안 뜸하셨군요.

yamoo 2011-10-24 19:54   좋아요 0 | URL
자전거를 못타셨군요! 나이 먹어서 배우면 자전거 타는 것도 힘들답니다..
몇 년 전에 자전거로 한강 나들이하는 거에 맛들렸을 쯔음에...자전거 타다가 언덕 내려오다 다쳤습니다. 갑자기 택시가 나오는 바람에 급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언덕의 경사가 워낙 급한지라 앞으로 고꾸라 졌는데 붕~날라서 앞으로 떨어졌습니다. 팔로 모든 충격을 막아야 했던지라, 결국에는 팔의 인데가 늘어나 한달 동안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그땐 정말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는..자전거 탈때는 꼭 보호대를 하고 타야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딸은 때였습니다..

양철나무꾼님의 쾌차를 빕니다~

순오기 2011-10-27 04:26   좋아요 0 | URL
어이쿠~~~~ 이런 일이 있었다니, 몸조리 잘해서 어여 쾌차하길 바래요.

내가 초등학생 때, 자전거 배우다 끌어안고 넘어진 후~~~~
지금까지 자전거에 올라보질 못했지만 후회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