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정호승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설해목/정호승

천년 바람 사이로  
고요히
폭설이 내릴 때
내가 폭설을 너무 힘껏 껴안아
내 팔이 뚝뚝 부러졌을 뿐
부러져도 그대로 아름다울 뿐
아직
단 한번도 폭설에게
상처받은 적 없다 


별들은 울지 않는다/정호승 

자살하지 마라
별들은 울지 않는다
비록 지옥 말고는 아무데도
갈 데가 없다 할지라도
자살하지 마라
천사도 가끔 자살하는 이의 손을
놓쳐버릴 때가 있다
별들도 가끔 너를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다 


왼쪽에 대한 편견/정호승
 
한쪽 날개가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채
겨울 하늘을 나는 청둥오리가 더 아름답다
한쪽 어깨가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더 아름답다
나는 젊은 마음의 육체를 지녔을 때부터 왼쪽 길로만 걸어가
지금 외로운 마음의 육체마저도 왼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기울어진다는 것은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기울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멀리 사람을 바라볼 때
꼭 왼쪽에서 바라본다
왼쪽에서 바라본 사람의 옆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벽돌 /정호승

위로 쌓아올려지기보다 밑에 내려깔리기를 원한다
지상보다 먼 하늘을 향해 계속 쌓아올려져야 한다면
언제나 너는 발밑에 내려깔려
누구든 단단히 받쳐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어느날 너와 함께 하늘 높이 쌓아올려졌다 하더라도
지상을 가르는 장벽이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산성이나 산성의 망루가 되기는 더더욱 바라지 않는다
그저 우리 동네 공중목욕탕굴뚝이나 되길 바란다
때로는 성당의 종탑이 되어 푸른 종소리를 들으며
단단해지기보다 부드러워지길 바란다
쌓아올린 것은 언젠가는 무너지는 것이므로
돌이 되기보다 흙이 되길 바란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인사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말하는 밥은 사심이 담긴 접대를 얘기하기 때문에,이들이랑 같이 밥먹는 자리가 편할 수만은 없다.
오래전부터 밥을 같이 먹자는 이를 크게 인심쓰는 양 따라 나섰다.
"이 밥은 우리 회사가 사는 게 아니라,내가 사는 거예요.
내가 평상시 먹는 것처럼,따뜻한 국밥 한그릇 먹자구요."
고급 레스토랑이나 고깃집 대신 시장에서 순대국 한그릇을 얻어먹었고,
100원 주고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 입가심으로 한모금씩 나눠 먹었다.

더 비싼 밥을 얻어먹고도 입을 잘 닦던 내가 
밥값을 하려고 '밥값'시집과 애기들 보라고 동화책 몇 권을 구입하였다.


나는 너무 모진 사람도 싫지만,너무 착한 사람도 싫다.
정호승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착해지는 것 같다.
뭐랄까,두루두루 모두에게 착한 만병통치약 같다.
난 때로 때때로 나만을 위한 맞춤처방,맞춤 시 하나 정도 있었으면 좋겠다.

'벽돌'이라는 시를 읽다가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중 '바빌론의 탑'이라는 짧은 소설을 인용하면 이렇다. 

이제는 왜 야웨가 탑을 무너뜨리지 않고,정해진 경계 너머로 손을 뻗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는지를 뚜렷이 알 수 있었다.왜냐하면 인간은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결국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몇십 세기에 걸친 인간의 노력도 천지 창조에 관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것을 밝혀 주지는 않았다.그러나 인간은 그런 노력을 통해 상상을 초월한 야웨의 에술성을 흘끗 보고,이 세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다.이 세계를 통해 야웨의 창조는 밝혖고,그와 동시에 숨겨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우주에서의 자기 위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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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11-12 20:14   좋아요 0 | URL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시인의 마음이 전 너무 좋아요.^^ 너무나 인간적이지 않나요? ㅎㅎ
괜찮아는 우리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책이네요. 지하 100층짜리집도 있군요.ㅎㅎ

sslmo 2010-11-13 00:57   좋아요 0 | URL
친구라면 이렇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시집이예요.
"넌 왜 바보 같이 착하기만 한 건데...?"

김제동 모친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가식도 10년이면 예절로 봐준다.

동화책을 골라본지 넘 오래라...잘 골랐는지 모르겠어요.

반딧불이 2010-11-12 23:42   좋아요 0 | URL
저는 '설해목'이 좋네요. 이 시도 정호승의 시인가요? 아님 양철나무꾼님의 시인가요?

sslmo 2010-11-13 00:59   좋아요 0 | URL
아웅~ㅠ.ㅠ
당근 정호승 님이죠,전 시 못 써요.
(시 제목 마다 정호승 님 이름 또박또박 적어 넣었어요.)

생각해보니,시 한편 쓰고 싶은 밤이긴 합니다여~^^

반딧불이 2010-11-13 01:21   좋아요 0 | URL
하하..아깐 없었자나요.머. 시는 좋은데 동아일보에 실렸던 천안함사건 발언 이후 실망이 좀 있었죠.

이참에 한편 올려주시죠~

sslmo 2010-11-13 12:38   좋아요 0 | URL
뭐해?
독서.
청소나 좀 하시지.
독서나 청소나 같은 라임이니까 아무거라도 하면 되지!

뭐해?
으응,시 한편 쓰려고.
엄마 피곤하면 먼저 주무세요,시는 내일 쓰고.
피곤하긴 누가 피곤하다고 그래,잠시 명상 했다니까.
엄마 우리 국어샘이 그러시는데 시를 쓰려면 주변이 깨끗해야 한대.

시가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청소 먼저 해야겠습니다.

2010-11-13 00:29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정호승시인의 시집 {밥값}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이렇게 올려놓으신 시편들을 읽으니 사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지난 해 말에 시에 목말라 며칠간 십여권의 시집을 사서 읽고는, 비평가 정효구 선생의 시론집들도 구해 목마름을 푼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무렵 며칠 동안 얼마나 행복했던지요. 아, 다시 시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 시작하는군요!

sslmo 2010-11-13 01:04   좋아요 0 | URL
진짜 다독이시군요~

저도 연말이면 유독 시집을 찾는 것 같아요.
시에 목마르다는 건,영혼이나 마음이 목마르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어요.
정효구 시론집은 몰라요.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글샘 2010-11-13 10:50   좋아요 0 | URL
기울어짐은 아름다운 것이란 말은 정말 맘에 들지만...
정호승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건... 글쎄요입니다. ㅎㅎ
착한 것은 오른쪽에 가깝잖아요. right, 옳은 쪽...

sslmo 2010-11-13 12:42   좋아요 0 | URL
정호승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건 정호승의 생각이겠죠.
그 사람 주변엔 착한,오른쪽 성향의 사람들이 많을테니...
혹 줄세우면 그 사람이 가장 왼쪽에 서게 될지,ㅋ~.

마그 2010-11-13 21:08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죠? ^^ 인사차..들렸습니다. 요새는 일도 바쁜데다 마음도 바빠서 통 여유가 없습니다. 시를 보니...제가 좋아하는 시들이 몇개 생각나네요.. 성산포에서..가 제가 외울수있는 유일한 시에 가까운거 같네요. ㅎㅎ
하신말씀에 동의해요 너무 착한사람도 부담스럽고 너무 나쁜사람도 싫어요.
그냥 다들 적당히 이기적인채 사는 서울살이에... 익숙해 졌나봐요.
나이가 참... 사람을 무디게 만드는 군요. 왠지 말해놓고 나니 서글퍼요 흙흙

가을이 다익어서 이제 겨울이 되었네요. 감기조심하시구요~ 또 놀러올게요 ^^

sslmo 2010-11-14 00:49   좋아요 0 | URL
어머머~~~~~넘 반갑네요.
전 정호승의 <문득>이라는 시를 외울 수 있습죠~

문득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성산포 앞바다는 잘 있는지
그때처럼
수평선 위로
당신하고
걷고 싶었어요

전,나이가 사람을 적당히 무디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님도 감기조심 하시구요~^^

느린산책 2010-11-13 23:07   좋아요 0 | URL
너무 모진 사람도 싫지만 너무 착한 사람도 싫다.
완전 x100 공감이어용 :)

sslmo 2010-11-14 00:42   좋아요 0 | URL
그쵸~?
근데 생각해보니 적당히 둥글어도 가슴에 비수 하나쯤 간직하고 살게 되더라구요.
마음을 갈고 닦을 게 아니라...가슴 속 날선 비수를 둥글게 갈고 닦아야 겠어요~^^

L.SHIN 2010-11-13 23:17   좋아요 0 | URL
"내 팔이 뚝뚝 부러졌을 뿐
부러져도 그대로 아름다울 뿐
아직
단 한번도 폭설에게
상처받은 적 없다"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모든 가지를 다 잘라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sslmo 2010-11-14 00:44   좋아요 0 | URL
땅에 뿌리만 제대로 내리고 있으면,가지는 또 다시 누군가를 향하여 뻗어나가게 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L.SHIN 2010-11-15 21:13   좋아요 0 | URL
멋지군요!
당신..멋져요.
이제부터는 '나의' 나무꾼님이에요.(웃음)

sslmo 2010-11-16 16:27   좋아요 0 | URL
저 그 노래 잘 부를 수 있어요.
"오~나으~여신이여~"^^

cyrus 2010-11-14 00:36   좋아요 0 | URL
위에 소개하신 정호승 시인의 시들도 멋집니다만,,,
뭐니뭐니해도 이보다 더 인상 깊었던 시는 댓글에 남긴 나무꾼님의 시였네요.
수많은 댓글들에 시가 가려 있는줄 아시겠지만,,
저는 다른 분들이 댓글까지 보는 편이라,, 나무꾼님의 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시 내용이 재미있었습니다. 댓글을 추천할 수 없는 시스템이 없어서 아쉽네요ㅎㅎ


sslmo 2010-11-14 00:46   좋아요 0 | URL
cyrus님,시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까지 읽는 꼼꼼함이시라뇨~^^

2010-11-14 0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6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4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6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1-15 15:53   좋아요 0 | URL
나두 술 한잔 하자.. 를 인사처럼 하는데.
도무지 지키지를 못 하니, 이 페이퍼를 보고 쿵할 밖에요. ^^

읽으며 스친 생각이 있는데, 감기와 섞인 두통에 홀랑 잊어버리고,
테드 창의 인용 글에 있는 말들이, 내가 좋았던 부분과 똑같네 라고 붙이고 갑니다.

sslmo 2010-11-16 16:03   좋아요 0 | URL
내가 과민 반응하는 인사말이 두개 있어요.
'밥 한번 먹자'랑 '안녕하세요'랑...

감기 다 나았어요?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어야 할텐데...ㅋ~.

마녀고양이 2010-11-16 17:12   좋아요 0 | URL
ㅇㅇ, 분식이나 부침개로 먹어주겠어요.
웨스턴 돔 근처에 지난번 얘기한 전집,, 맛나더라.
특히 김치부침개가. 동그랑 땡두. ^^

sslmo 2010-11-17 12:38   좋아요 0 | URL
어느 겨울비 오는 저녁에 내가 쳐들어 갈지도~~~~~^^

감은빛 2010-11-16 00:11   좋아요 0 | URL
'언제 밥 한번 먹자' 해놓고 정작 연락 못한 수많은 사람들 얼굴이 눈 앞을 스쳐갑니다.

솔직히 정호승 시인, 너무 유명해진건 아닌지,
그래서 너무 목에 힘이 들어간건 아닌지,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뭐 그냥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sslmo 2010-11-16 16:05   좋아요 0 | URL
전,안치환 과 같이 작업했던 그 앨범 중 풍경달다 라는 곡이 넘 좋았어요.
시도 좋았고,이에 얽힌 얘기도 좋았고,안치환의 노래도 좋았고...
그래서 그 기억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것 같아요.

좀 서글플 때도 있었는데,그건 덮기로 하죠~^^

다이조부 2010-11-16 16:52   좋아요 0 | URL

정호승 시 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너무 목에 힘이 들어간지는 잘 모르겠네요 ^^

sslmo 2010-11-17 12:26   좋아요 0 | URL
전 모든 건 상대적이라고 생각해요.
시를 읽으면서 목에 힘이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를 떠올릴 필요는 없겠지만...
그가 한 행동 하나 한 마디 말이 단초가 되어...시를 읽으면 자꾸만 그의 삶이 연상되고 그런 시인들이 몇 있습니다~^^
정호승 님이 언젠가 동아일보에 '특별'기고한 글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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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46명의 수병들을 보내며

봄비가 내린다. 연사흘 줄곧 내리는 이 비는 통곡의 봄비다. 적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한 채 서해에 수장된 천안함 장병 46명이 흘리는 통한의 눈물이다. 어찌 이 봄비가 새봄을 알리는 생명의 봄비일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 내걸린 조문 구절이 허사(虛辭)처럼 느껴진다. 결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말이라기보다 이번만은 꼭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말처럼 들린다.

마음속으로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원수를 반드시 갚아드리겠습니다’라고 고쳐 읽어본다. 답답했던 속이 좀 풀린다. 그러나 한순간일 뿐이다. 추모 행렬 속에 줄을 서 있다가 국화 한 송이를 장병들의 영전에 정성껏 바쳐도, 이 꽃 한 송이가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없다. 희생 장병에게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지만 죽음을 대가로 한 것이기에 삶보다 더 큰 영광이 될 수는 없다.

묵념을 한 뒤 침묵의 영정을 바라본다. 입대 4개월 만에 희생된, 시신조차 찾지 못한 천안함의 막내 정태준 일병 영정은 차마 바라볼 수 없다. 전직 대통령 한 분께서는 “군에 가서 썩는다”고 했지만 이들은 군에 가서 아예 죽어서 돌아왔다. 아니, 시신으로도 귀환하지 못한 산화자가 6명이나 된다. 옷가지나 머리카락, 손발톱만으로 장례를 치르는 이 국가적 비극 앞에 누구의 무슨 말이 진정 위로가 될까. 신조차 어떤 이의 운명 앞에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때가 있다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시신 없는 영결식에 절망하기보다 분노해야 한다. 눈물을 흘리기보다 분연히 결의해야 한다. 주검으로 돌아온 천안함 장병은 국민과 대통령의 눈물을 원하는 게 아니라 단호한 응징을 원한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순식간에 천장이 바닥이 되는 순간,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고 했을 장병들의 죽음의 순간을 상상하면 그렇다. 그들은 군인이었으므로 그 죽음의 순간에 “아, 북에게 당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20여 일이나 주검으로 놓여 있었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게 과연 자랑스러운 일인가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적이 기습해 함정이 두 동강 나고 46명의 장병이 수장되었는데도 한 달이 다 되도록 적이 누구인지 말 못하는 나라. 그것도 누구의 소행인지 뻔히 알면서도 말할 수 없는 나라. 그 나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돌다리를 두들기고 또 두들긴다 한들 ‘그 돌다리가 바로 그 돌다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답답하다. 언제까지 북한의 눈치를 보며 오늘을 살아야 하는가. 북한을 향한 분노의 경고 한마디가 그렇게 두려운가. 이는 마치 북한이 칼자루를 쥐고 남한이 칼날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칼자루를 쥔 자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칼날을 쥔 자는 계속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국가안보 비상사태의 원인을 예단해야 할 고유한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 발발 초두에 섣부른 예단과 막연한 예측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북한이 기습 공격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짐작만 하기에는 오늘 조국을 위해 전사한 천안함 장병의 슬픔은 너무 크다.

부처는 어디선가 독 묻은 화살이 날아와 허벅지에 박혔을 때 먼저 그 화살부터 빼라고 하셨다. 허벅지에 독 묻은 화살이 꽂혀 있는데도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왜 쏘았는지, 활을 만든 나무가 뽕나무인지 물푸레나무인지 먼저 알고 싶어 한다면 그것을 알기도 전에 온몸에 독이 퍼져 죽고 말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 꼭 우리가 그런 상황이다. 한마디 격노의 일성도 없이 물증을 찾는 데 시간을 보내고, 북한 소행이다 아니다 서로 갑론을박하는 동안 독은 점점 대한민국이라는 온몸에 퍼져 결국 우리를 죽게 만들 것이다.

적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도 물증을 찾아야만 항의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나는 우울하다. 햇볕정책의 결과가 바로 이것인가. 그동안 남한이 북한에 보낸 ‘화해의 햇빛’은 지금 ‘기습공격의 그늘’이 되어 우리 아들들을 수장시키고 말았다.

어떤 이는 그럴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화해무드로 애써 조성해 놓았는데 이명박 정부가 그 무드를 해치는 바람에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고. 그래서 원인 제공은 이 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에 있다고. 설령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북한은 우리 장병을 저렇게 떼죽음 당하게 해야 하는가. 그들은 왜 북한의 잘못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잘못부터 먼저 생각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천안함 사건만이라도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주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잊기 잘하는 국민이다. 지금 천안함 장병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어쩌면 곧 잊어버릴지 모른다. 살아서 영웅이 되지 못하고 죽어서 영웅이 된 천안함 장병들이여! 부디 눈 감지 마소서. 두 눈 부릅뜨고 행여 우리가 당신을 잊지는 않는지 면면히 살피소서. 그리하여 당신을 잊으면 벼락처럼 야단치소서.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적을 응징하지 못하고 유야무야 잊고 말 때에 천둥처럼 소리치소서. 그러나 오늘 이 영결의 순간만은 편히 쉬소서.

정호승 시인

gimssim 2010-11-16 21:26   좋아요 0 | URL
연말이 되니 정말 그동안 '밥값'을 하고 살았는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저는 마음맞는 사람과 밥 먹기를 좋아 하는 편이에요.
우리도 언젠가는 '밥 한 번 먹을 때'가 있기를!

sslmo 2010-11-17 12:28   좋아요 0 | URL
ㅎ,ㅎ,ㅎ...저도 맘 맞는 사람이랑 밥 먹고 차 마시는 거 좋아해요.
맘 맞는 사람이랑 술 한잔 하는 것도 좋구요~

언제가 될지...즐거운 상상 인걸요~^^

쟈니 2010-11-17 10:40   좋아요 0 | URL
글을 보니, 함민복님의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이되는 '노동'을 생각해봅니다. ^^

일부를 옮겨봅니다. ^^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sslmo 2010-11-17 12:33   좋아요 0 | URL
읽고 읽고 또 읽었어요.
참 좋아요~^^

아침 뉴스를 들으며 밥을 먹다가
맘이 뭐랄까 좀 쌀쌀했었거든요.
이런 시 한편이,그래도 살아갈 지표가 되는 것 같아요.

같은하늘 2010-11-17 17:34   좋아요 0 | URL
정호승 시인님의 시 정말 따뜻하네요. 저도 이참에 한권~~~
구입할때는 꼭 양철나무꾼님께 Thanks to를~~

저는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 제일 싫어해요.
저는 그럼 그러지요? 몇 월 몇 일 몇 시에? (이렇게 띄어 쓰는게 맞나?!?)
제가 얘기할 때는 "몇 월 몇 일 몇 시에 밥먹자"라고 하지요.ㅎㅎ

sslmo 2010-11-18 04:26   좋아요 0 | URL
올려주시는 리뷰 만큼이나 똑 부러지시는군요~^^

어렸을 때 그런 놀이 많이 했었는데 말이죠.
'몇 시 몇 분 몇 초'까지 들먹이는 놀이요~

요즘은
'내가 너랑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 백가지를 대 봐~'
이러고 논다는 군여~^^

머큐리 2010-11-18 09:26   좋아요 0 | URL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정호승 시인의 동아일보 기고글에 저는 정호승 시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글은 정말 맘에 들지 않았거든요..^^;

sslmo 2010-11-18 14:08   좋아요 0 | URL
그런 분 앞에 왼쪽에 대한 편견을 떡 하니 가져다 놨으니,얼마나 생뚱맞았을까요,아웅~ㅠ.ㅠ

잘잘라 2010-11-18 10:51   좋아요 0 | URL
시를 외운다..
노래방 덕에 노래 한 곡도 다 외우지 못하는 시대에,
시를 외우는 양철나무꾼님, 뭔가 있어보여요.

sslmo 2010-11-18 14:10   좋아요 0 | URL
허수아비라면 지푸라기가 있다고 얘기할텐데...
양철나무꾼이어서,뭐...벨거 없어요.(아웅,땀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