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바람이 살을 에인다.
갑자기 마음까지 가난하고 추워진 듯 하다.
길가 붕어빵집,호떡집,포장마차 따위에 가면 따뜻한 온기와 더불어 넉넉함을 얻어 가지고 올 수 있을까 싶어 그냥 지나지 못한다.
하지만,채 하나를 다 먹지 못하고 아들이랑 남편이 생각나 나머지는 싸 가슴에 품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한다.
<심야식당>,이 책은 기대했던 만큼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
읽으면서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짝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처연함으로 가슴이 살짝 멍들고 눈이 흐려진다.
레시피가 있는 화려한 진수성찬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추억이랑 얽혀 빛을 발하는 음식들이다.
추억을 가진,그들만의 성대한 리그이고 향연인 것이다.
어쩜 사람들은 그곳에 허기를 채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 줄 귀가 필요해서 가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얼굴에 상처까지 가지고 있는 마스터가 '심야식당'의 주인이다.
그는 무던하고 수더분하게 얘기들을 그저 듣기만 한다.
누가 재료를 공수해 오면 마다않고 음식을 만들어 주지만,
대단한 요리사는 아닌 것 같다.
자기색깔이 없다는 건,무색무취랑 동의어니까 말이다.
그걸,책 날개 안쪽에서...
<심야식당>에는 영웅도 귀여운 아가씨도 나오지 않고, 읽어서 도움이 되는 만화도 아닙니다. 제 자신이 그런 만화를 읽고 싶어서, '알 수 있는 사람만 알아주면 되지 뭐' 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불혹의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했다는 건 덤으로 알게 됐다.
그림도 밋밋하기만 하다.
만화는 그림체도 한몫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림체가 너무 평이해서 어디선가 본 듯 하고 누구든 좀 흉내낼 수 있는 그림들이었다.
공들인 그림 한컷 나와주지 않고,
심지어 5권 마지막에 가서는 국수를 그리기 싫다고 투덜대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의 만화가들이랑 비교한다면,혀를 끌끌 찰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음식을 시켜놓고 앉아서 자는 이 아가씨였다.
이 아가씨의 지난함에 책을 보며 목이 매였다.
(실은 나도 이러고 졸 때가 있다~ㅠ.ㅠ)

아,우리나라에도 이런 심야식당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이 책 은근히 야하다.
1권,
낫토로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것과 관련,
'매일밤이어서 몸이 못 배긴다.'는 알듯모를듯한 표현을 한다.
입술이 명란젓이랑 닮았다는 표현도 있다.
한밤중의 라면이 어울리는 여자는 복이 없다구요.
(난 한밤중에 간혹 라면을 먹는데,어쩌라구~ㅠ.ㅠ)
2권,
꽁치소금구이 편에서,
생선을 잘 발라먹는 남자는 멋있더라...같은 표현은 나도 그렇더라~.
소스 야키소바,달걀 프라이 얹어서 시만토가와의 파래김을 뿌리면 맛있다는 데...
재료도 구하기 쉽고 만들기도 어렵지 않으니 나도 한번 해먹어 봐야지 싶고,
3권에선,
싸워서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와서,
그래,치열하게 부딪힐수록,나중에 더 사이가 좋아지거든...
하고 웃을 수 있는 넉넉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원.
4권,
나는 가지를 별로 안좋아하는데,
'가을가지는 며느리에게 먹이지 마라' 는 부분에 혹해서
이 가을이 가기전에 가지를 꼭 먹어보고 싶어졌다.
'남자든 여자든 노골적이고 알기 쉬운 녀석보다 약간 수수께끼가 감돌고 어두운 데가 있는 편이 매력적인 법이다.'
나는 매력적이지 않아도 좋으니,노골적이고 알기 쉽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만두를 좋아해서 겠지만,
쌍절곤 솜씨가 끝내주는 아저씨의 만두이다.
(아니다,만두맛이 끝내주는 아저씨의 쌍절곤 솜씨가 보고싶다~^^)
가을이 얼마남지 않았나 보다.
난 늙은 호박을 하나 툭~ 잡아 호박죽을 끓여야겠다.
그러다가 생각난 책 한권이 <상위 1%두뇌를 만드는 집밥의 힘>이란 책이었다.
심야식당에 나오는 음식들이 하나같이,
집에서 할 수 있을 정도의 평범한 음식이어서 였을까?
집밥이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란 생각이 들었다.

감자:미래학자들이 추천하는 미래의 식량
고사리:스트레스로 인한 열독 배출에 탁월
돼지고기:학슴을 돕는 천연 미네랄 식품
대추:위장보호와 정서안정을 동시에
호두:탁한 뇌를 맑게
우유:우울증 치료효과까지
아직 책을 읽진 않았지만,여기에 내 기우를 보탠다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과해서 좋을 건 없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