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털 파카에 관한 한 생각
-유하

귀 떠날라가는 한겨울, 에스에스 패션
오리털 파카를 두둑이 입고
보송보송 걸으며 어쩌다 쩨깐한
오리털 하나처럼 삐져나오는
생각, 무리지어 뚱구적 뚱구적 걸어가는
도날드들의 떼죽음, 달궈진 철판 위에
동그랗게 오려진 육시을 지글지글 태우고
깃털마저 빼앗긴 원혼들이 내 주위에서
추위에 떨며 꽥꽥거리는 느낌이야
산 목숨 하나 뻑적지근하게 덥히기 위해
이렇게 많은 죽음이 필요했다니
아니, 이 헤아릴 수 없는 죽음으로
고작 산 몸뚱어리 하나 덥혔다니
그래, 세상엔 파카 속에 숨겨진 오리털만큼 많지
수없는 원혼들의 입김으로 자기 뱃가죽 하나
따땃하게 보온하는 자들 그런
한 생각 골몰히 일으키다보면 어느새 어린 날,
해로운 새라고 쩝쩝 처마를 뒤져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던 참새들의 시신들이 와아악
목구멍 가득 떼거리로 올라와, 걷다보면
짱짱한 바느질의 천 틈으로 삐져나와 사뿐
눈송이처럼 땅 위에 내려앉는 오리털 한 개
죽음도 바득바득 누벼논 생의 바느질 틈새로 기어이
삐져나와 터럭처럼 차디차게 내려앉을 것을,
나는 늘 새털 같은 환희의 나날 쪽으로
등 따숩게 훨훨 날아가는 꿈만 꾸었지
숱한 怨의 오리털 옷을 지으며

***

솜으로 누벼, 빨기만 하면 이리저리 뭉쳐다니는 패딩 점퍼로 만족해야 했던 시절
멋지게 살짝 구부러진 나이키 상표와
입학하고 딱 1년만을 입은 교복 대신
갖가지 상표, 소위 말하는 메이커를 입은 아이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시절
오리털 파카를 입은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심지어 가끔씩 삐져나오는 그 오리털까지 멋져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갖고 싶은 물건들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아무 것도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았다
이것저것 사들이면서 나는
학창시절 너무나 부러워했던 그 물건들에 대해 느끼던 애정을 찾고 있었다
물건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애정.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은 자기 물건을 챙기지 않는다
몇 번 채근해야 겨우 공책이나 교재를 가방에 넣을 뿐이다.
항상 연필과 지우개는 굴러다닌다
너무 흔한 것, 애정이 없는 물건들은 여기에도 버려질 뿐이다.

몸이 안 좋은지 계속 추웠다.
오리털 파카 생각이 간절할 만큼 추웠다.
하지만 나는 이제 오리털 파카는 입지 않는다.
하나씩 삐져나와 완전히 빠지지도 않고 덜렁거리는 그걸 잡아 뽑는 것도 귀찮거니와
부~하게 둥실 뜬 것 같은 파카를 입으면 그렇지 않아도 짜리몽땅인 나는
완전히 땅에 붙고 말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필통 속 내 물건을 다 쏟아 놓은 채 열심히 싸인을 해서 붙이고 있다.
애정을 붙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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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프란스 인을 나서며 - 강화읍 선원면 신정리에서

-유인채


여기 더리미 마을에 종鐘소리 울리는데
내가 돌을 던졌구나
네 가슴에 쩡-금가는 소리

마음이 팍팍하다
그동안 저기 저 모래사장에다
사랑을 쌓았던가
여윈 바람에도 마음은 쌀겨같이
스르륵 스르륵 날려다녔던가

어스름 대낮, 하늘 빛은 온통 잿빛이다
우리는 톱밥난롯가에 앉아
아무 말 없이 톱밥 한 줌 불에 던진다
불꽃이 타다닥 튀면서
먼저 섭섭했던 내가 섭섭해하면 안된다고
윽박지르득시 지지지직- 타버린다
바닥에는 땅콩 껍지이 널려 있다
땅콩을 까서 탁자에 올려 놓는다
심통난 땅콩이 데굴데굴 굴러가며
그건 고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수였다고
말하면서 휙 토란진다

예상대로 눈이 오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 세상이 하얘졌다
나는 점점 굵어지는 눈발을 보며
잿빛이 순백색이 되는 비결과
세상을 일순 순백으로 만드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래, 저 언덕을 내려가기 전에 너와 나는


****
오늘 같은 날은, 갤러리 프란스 인엘 가고 싶다
강화도 길을 돌아가면 조용하게 서 있는 그곳
조각하는 사람을 따라 몇 번을 가 본 곳
아주 늦은 가을녁에 한 번, 더운 여름 날에 한 번
그리고 동생과 아이들을 데리고 또 한 번
맨 나중에 갔을 때 거긴, 문을 닫아 둔 상태였다
왜 그랬을까?
얌전한 화장실 뒤로 낮은 담장과 그 담장 너머로 보이는
깨끗하고 순박한 시골길이 정겨워서
찾아가면 급한 볼 일도 없으면서 화장실 그 담을 먼저 갔었는데...

카페도 하나 붙어 있는데 거긴 주인을 불러 문을 열고 들어가야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그래..2000년 2월 20일이다.
박수근 판화전이 열렸다.
거기서 38개월 된 우리 명호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질문 던지기에 바빴다.
결국 엽서 한 장 고르랬더니 아주 귀엽게 생긴 호랑이 그림을 골랐다.
지 이름에 '호'자가 붙은 걸 알고 있었던 듯.
기념으로 그 엽서에 내가 글을 쓰고 코팅을 해 놓았다. 나중에 크면 보라고..

이 시에는 별로 갤러리 프란스 인에 대한 느낌을 많이 살려놓지 못했지만
선배에 대한 예우로 한 번 올려봤다
연휴도 끝나가고 몸이 조금 편해지니까 여행이 가고 싶은 모양이다
거기서 마시던 대추차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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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
-황지우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 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奇蹟 아녀

**
이렇게 쓸쓸할 때는 나도 가끔 터미널에 나간다
가서, 가보지 못한 곳들의 지명을 눈으로 훑는다.
보성, 진주, 철원, 남원, 문경, 통영, 충무....
그러고는 표를 살 것처럼 가격도 보고 떠날 시각도 본다.
개찰구 앞 가장 줄이 긴 곳에 서서 한 사람씩 줄이 줄어드는 광경 속에 잠입한다.
내 차례가 올 때 쯤 슬그머니 줄에서 이탈해
화장실이 급한 사람처럼 종종걸음으로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끝내고 온다.

지금도 난 터미널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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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였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박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겨울이 되면 김장하는 것과 연탄 쟁여 놓기가 가장 큰 일이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집 광은 여름에도 거뭇거뭇하게 연탄 들어선 자국이 있었거니와
어김없이 겨울이면 시커먼 그 놈들이 제자리 찾은 듯 진득하게 서있던 기억도.
새벽에 일어나거나, 낮에 하거나 간에 연탄 가는 일은 참 싫었다.
매캐한 가스를 맡으면서 구멍을 맞추는 일도 어려웠고
두 장의 연탄이 맞붙으면 그걸 떼어내는 일도 어려웠다.
가끔은 깔끔하게 떼어지지 않고 한 쪽이 부서져 지청구를 듣기도 했지.

나중에 버리려고 내놓았을 때
깨끗하게, 완벽하게, 하얗게 다 타버린 연탄이 되지 못하고
군데군데 거뭇거뭇한 기운이 남은 채인 것은 보기 싫다.
아쉬움이 덕지덕지 붙은 것 같아서
삶에 애착이 묻어 있는 듯 해서 정이 가지 않는다.

내 연탄은, 지금 반쯤 탄 내 연탄은 어떤 모양으로 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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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민

밤새 시달리며 돼지꿈 꾸고
이름 바뀐 복권 한 장을 산다
시대는 빛나는 은유법의 컬러 색깔이지만
우리들의 꿈
이장 집 담 너머 해바라기 모가지로 보던
'여로'의 눈물 젖은 흑백 테레비다

주택복권에다 밀레니엄 복권 혹은....
시대는 때 맞춰 적당한 이름과
알맞은 옷차림으로 변신하지만
우리들 꿈은 늘상 보릿고개 넘던
시절처럼 남루하다.

신문 혹은 라디오에서
잠시 신바람 내던 수식어들은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시들어버리고
부자가 천국가는 길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성경말씀은 사기를 친다

그래도 떨어진 복권으로
황소바람 부는 구멍 때우듯
딱 한 번만
황홀한 부자의 꿈?

***
밤새 꿈을 꾸긴 했다.
정신없이 어디론가 가는 꿈이기도 했다가
느닷없이 사람들이 바뀌기도 하고
제일 싫어하는 뱀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버스 의자가 너무 작은데도 나에게 딱 맞는다고 우기던 동생도 있고
아무튼 꿈자리 한 번 요란하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라고, 모닝콜이랍시고 핸드폰에서 울려대는 닭소리까지..

어떤 녀석은 일기에
'왜 나는 꿈을 안 꾸는 걸까?
정신이 이상한 건 아닐까? 그래도 행동은 아직까지 이상하지 않아 다행이다'
이렇게도 썼더만.
난 전혀 반대로 꿈을 좀 안 꿀 수는 없는 걸까 고민한다.
꿈을 많이 꾸고 나면 너무 피곤하다
그것도 색깔까지 선명할 때는...
누구 말대로 아직 어려서(?) 그런가?
어쨌든 난 그 많은 꿈 중에 돼지를 등장시킨 적이 없다.
돼지꿈 한 번 꾸고 나서 복권 사면 좋을 텐데.

복권 당첨 되면 뭘 할까 하는 생각은 언제나 재미있다.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역시 여행이다.
그리고 내 서재를 아주 근사하게 만들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예쁜 사설 도서관을 하나 만들고 싶다.
애들한테 동화도 읽어주고 글쓰기도 가르쳐주는 그런 곳.
아참..동맹을 맺은 몇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나는 돼지꿈을 꾸지 않아도 일 주일에 한 번 복권을 산다.
누구 말대로 일 주일치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다.

오늘도 나는 복권을 사러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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