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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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이 10개였다면 10개 모두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동화를 만났다.

<봉쥬르, 뚜르>에서도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펼쳐 나를 놀라게 하더니

이 책 <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또다른 매력을 지녀서 반갑고 부럽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을 다루면서 선봉에 섰던 전봉준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은 채

열세 살 보부상 아들인 아이를 앞세워 그 많은 이야기를 뭉뚱그려 말하고 있는데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안에 동학농민운동이 다 들어있다.

 

북한산 암자에서 노스님께 받은 서찰을 전라도에 전하러 가는 아버지.

'아주 중요한 서찰이다.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는

말씀만을 남기고 수원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에 아이는 서찰을 전하기로 한다.

서찰에는 아이가 모르는 10개 한자가 씌어져 있고 아이는 그 내용을 알기 위해

값을 치러가면서 조심스럽게 두 글자씩 물어보는 영리함을 보인다.

 

북한산 암자 근처 샘에서 마신 물이 발휘한 영험함으로 노래에 약이 깃든 아이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댓가로 잠자리를 제공받거나 옷을 받아가며

조금씩 서찰주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드디어 서찰주인을 만난 그 자리에서 아이는 그간의 고단함과 아버지 생각에

왈칵 눈물을 흘리는데 나도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역사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간 만화로 된 역사책을 권해줬었는데

이렇게 감동을 주는 동화로 만나는 역사이야기가 많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본디 배움이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진짜 제 것이 되는 것이니라.'

한자를 알려주던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두 자에 한 냥씩 가로챌 땐

얄밉기도 했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이런 수고로움이라도 있어야 약올라서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법이다. 배움에는 그만큼 정성이 깃들여야 한다는 말과 같다.

재미있는 동화를 읽는 수고 한 번으로 역사를 훤히 알 수 있는데다 감동까지 함께 받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니 영리한 아이들이여, 모두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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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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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한다.

다독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라고,

카프카의 말을 통해  책이 얼어붙은 내 머리의 감수성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밤에 잠이 안 와서 읽기 시작한 책은  내 머리를 도끼로 팬 것같은 찌릿함으로 다가왔다.

1시를 넘어선 걸 확인한 다음엔 고달픈 '내일'을 견뎌내지 못할 내 나약한 몸을 의식해

애써 책장을 닫고 잠을 청해야만 했던, 오랜만에 만난 즐거운 책읽기.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켜던 컴퓨터도 안 만지고 전화기도 멀찌감치 떨어뜨려놓고

다 읽고났더니 수첩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이 즐비하다.

광고일을 하는 사람답게 뭐 하나 허투루 보는 법이 없다 싶은 생각이 든다.

분명히 내가 읽은 책인데 이런 문장이 있었던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심지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들마저 다시 읽어보고 싶게 꼬신다.

설득하고 있는데 장사꾼 같은 얄팍함이 없어 꼬심을 당하는 내가 오히려 즐거워지니

그는 최고의 장사꾼임에 틀임이 없다.

 

비록 그처럼 한 권의 책을 읽고 빼곡하게 밑줄을 긋는다든가, 좋은 구절들을 따로 정리해놓는 식의

독서법을 따라할 생각은 없지만 다독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라는 그 말은 계속 나를 흔드는 중이다.

하긴, 지금껏 읽었던 이런류의 책들이 말하는 건 다 비슷하긴 했다. 내가 건성으로 들었을 뿐.

 

아는 만큼 보인다.

내가 아는 건 그 덕분에 조금 더 많아졌으니 앞으로 책을 읽을 때 더 넓어진 시야가 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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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침묵 블랙 캣(Black Cat) 11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미정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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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작가 이름도 출생지도 참 낯설다.

전혀 모르는 작가를 만나는 방법치고는 약간 치졸하긴 하지만

북유럽 최고의 범죄소설에 주는 글래키 상과

2005년 영국추리작가협회 황금단도상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이 책을 골랐다.

결론을 말하자면 꽤 즐거운 책읽기였다.

 

어느 날 생일파티에서 아기가 잘근잘근 씹던 게 사람 뼈라는 걸 알게 되고

그걸 주운 흔적을 따라 가다가 반쯤 짓다 만 주택 공사장에서

유골을 발견하게 된다.

대략 70년 전쯤으로 보이는 그 유골을 파헤치는 건 고고학자를 위시한 발굴단에 맡기고

에를렌두르 반장과 올리, 엘린보르그는 신원파악과 동시에 사건경위를 밝혀나간다.

 

느긋하기 짝이 없는 발굴단처럼 사건은 천천히 드러나는데

그러는 동안 에를렌두르 반장의 딸 에바가 중환자실에 누워 깨어나지 못하고

올리는 결혼하고 싶어하는 애인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붉은까치밥나무 세 그루가 서있던 곳에 살던 사람들과 사건이 관계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그들의 행적을 캐나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 집을 빌려주었던 집주인과 약혼녀 이야기, 어린 세 아이들과 살던 수수께끼의 인물들.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처음엔 복잡한 듯 보이지만

작가가 굉장히 섬세하게 조율해놓았기 때문에 금세 작품에 빠지게 된다.

대충 그럴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도 긴장하게 되는 독특한 추리소설이다.

 

가끔 머리가 아플 때는 이런 책을 읽는 것도 정말 도움이 된다.

아무 생각없이 책에 빠질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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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컬링 (양장) - 2011 제5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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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이라는 말은 뻔뻔하도록 무책임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시크하게 들리는가!

그 시크한 매력 덕분인지 요즘 무슨 일인가에 대한 이유를 물으면

그냥 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냥교'라도 생긴 모양이다.

교주는 베일에 가려 절대로 알 수 없으니 처벌도 불가하다.

애벌레들이 그랬다지. 꼭대기로 기어오르는 이유가 뭐냐니까

얘들이 그러잖아. 나도 따라 하는 거야.

이유도 없는 따라쟁이들은 어디나 있는 거니까.

 

<그냥, 컬링>도 이런 이유로 내 외면을 받다가

어느 날 우연히 나도 '그냥' 사버렸다.

워낙 생소한 경기인 컬링을 어떻게 풀어갔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그냥의 뻔뻔함을 이겼기 때문이긴 하지만

나도 시크하게 그냥이라고 외쳐보련다.

 

아무튼 튀지 않고 적당히 묻어서 살아가려는 고등학생 차을하(일명 으랏차)는

화장실에 분노의 비질을 하다가 며루치와 산적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컬링동호회에 들어오라는 것.

컬링이라는 경기 같지도 않은 운동을 뭐하러 하냐던 을하는 점점

컬링의 매력에 빠져든다. 10월에 있는 경기에도 참가신청을 내고

산적과 며루치가 얽혀있는 야구부와 골치 아픈 일이 터져버리지만

그들은 이겨낸다.

버스 안에서 을하는 생각한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전혀 중요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하고 있다, 컬링.

(캬, 이 도치법 완전 마음에 든다.)

이 어둠 속, 혼자가 아니라서 좋다. 달려간다. 함께 하기 위해서.

아마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컬링, 우리는 하고 있다.

 

스스로를 '억지로 어른인 척하고 있지만 엉망진창인 십대에 가까운 편'이라고

고백한 걸 보면 상당히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작가임에 틀림 없다.

거침없지만 거칠지 않고 유머가 살아 있는 문장들이 마음에 든다.

혼자가 아닌 함께 무언가를 하는 즐거움을 잊어버린지 오래인 아이들에게

이 책이 신선한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즐기는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잊어버린 어른들에게도

반성할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도 꿈꾸는 어린시절이 있었음을 제발 기억해내시길,

기억해냈다면 아이들을 그막 닥달하기를 바라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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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른베르크의 별 

                                     -김광규

 

 

밤마다 북녘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처음에는 이름 모를 붙박이별인 줄 알았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불빛

나중에는 그것이 중세의 고성인 줄 알았다

그러나 슈테른베르크 산봉우리에 올라가보니

그것은 산정에 구축한 레이더 기지였다

밤마다 하늘에서 반짝이던 별

갑자기 땅으로 떨어지고

산정에서 빛나던 고성의 불빛

꺼져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가보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마음속에서 반짝이며 빛나고 있을 것을

 

**

 

만약에 내가 20대 그 시절에 고집을 피워 내 멋대로 살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고 혼자 살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게으름 피우지 않고 매일 글을 썼더라면,

만약에 내가...했었더라면

 

매일 이런 만약을 떠올리며 산다.

가고 싶은 길도 많았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매번 그냥 돌아서고 다른 길을 가면서 남겨 두었던 일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 때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하던 그 여우처럼

'저 포도는 실 거야.' 한다.

마음 속에서나마 반짝이는 별로 남아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게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이 '만약에'가 쌓여만 가니 그 무게에 눌려 점점 키가 줄어들 지경이다.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야 그렇다치고

실현가능한 일들은 '만약에 목록'에서 좀 빼야겠다.

마음 속에서 빛나던 별들을 꺼내 하늘에 올려놓을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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