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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올리브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10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올리브는 여전했다. 무뚝뚝하고 남이 들어서 기분 좋은 말 따위는 할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 그러면서도 <빨간머리 앤> 속 ‘마릴라’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 애정이 넘쳐나는데 그걸 깨닫는 이는 몇 안 되는 사람이 올리브다. 그리고 ‘사람들은 뭔가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지 알지 못하거나, 정말로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올리브 키터리지가 그리운 이유였다.(17쪽)’ 잭이 말하듯 올리브는 솔직한 게 매력이다.
올리브는 이 책에서 주인공이자 ‘크로스비’라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 속 숨겨진 조연이기도 하다. 이제는 사라진 줄 알았던 계급 문제 -심지어 노인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서도 스스로 상류층이라 생각하는 하버드 출신자들이 다른 이들을 무시하는 태도들에서 아직도 볼 수 있는-나, 치매를 겪는 사람들, 가난, 배우자의 외도, 노인 문제, 가족간의 소외 문제에 조언자로 등장하거나 배경처럼 스쳐 지나가며 존재감을 뿜어낸다.
어찌 보면 딱 <전원일기>같은 이 소도시의 이야기에 마음이 울리는 것이 어떤 이유일까 생각해보다가 다음 문장들에서 답을 찾았다.
‘배브콕의 집에서는 치료제가 없는 외로움의 악취가 나는 것 같았다. (76쪽)’ ‘잭은 너무 무서워서 의자에 앉아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무서운 것은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혹은 뭘 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었다. (266~267쪽)’ ‘올리브는 깨달았다.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음을. 그녀는 의자에서 조금 뒤척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459쪽)
사는 모습은 이름이 어떻든, 사는 곳이 어떻든, 생긴 게 어떻든 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후회하는 이유까지도. 단지, 내가 누구와 함께(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인생을 걸어가느냐와 얼마나 만족을 하느냐 못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잭이나 올리브가 느낀 저런 감정들이 내게 쿵쿵대며 걸어오는 것은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감정을 들켜서 나는 죽도록 창피해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심장발작을 일으킨 뒤 잭의 집(그와 함께 부부생활을 한 집이건만)에 사는 것이 싫어서 노인들만 사는 메이플트리아파트에 입주한 여든세 살의 올리브.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타자기로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460쪽)’ 이 문장을 써놓고는 친구인 이저벨과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일어선다. 그리고 갑자기 훅 돌아서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넌 잘 살아라. 후회하지 말고.”
그녀는 이후로도 한참을 더 올리브답게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