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햄릿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에디션 (오디오북)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정진새 기획, 극단문 낭독 / 민음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제목 : 햄릿

◎ 지은이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옮긴이 : 최종철

◎ 펴낸곳 : 민음사

◎ 2021년 12월 10일 2판 1쇄, 226쪽

◎ 한 줄 평 : 이 긴 대사들을 외우려면 배우들이 고생깨나 하겠군.

알라딘과 민음사의 콜라보.번역을 맡은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zoom 강의까지 한다고 했다. 세련된 표지도 눈에 확 들어온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있었던가? 어릴 때 읽었고, 커서도 읽었지만 희곡 형식으로 읽은 기억은 없다. 희곡은 가독성이 떨어지니 친절하게도 쉽게 풀어서 편집을 잘 해준 책으로만 읽었을 뿐. 그래, 이런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지. 이참에 제대로 읽어보자.






친절이 과하다. 애들도 아니고 이런 게 필요할까 싶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고마운 정리일 수도 있겠다. 이것 말고도 셰익스피어 그래픽이라는 이름 아래 그의 연보, 비극의 플롯구조, 셰익스피어가 초연한 글로브 극장 구조, 셰익스피어 비극에서 죽음의 원인, 빅데이터로 본 셰익스피어, 빅 데이터로 본 4대 비극, 햄릿의 플롯 다이어그램, 키워드로 읽는 햄릿까지 할 수 있는 건 죄다 해놓은 느낌이다.

존재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맘속으로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난의 바다와 맞서다가

끝장을 보는 건가? 죽는 건 자는 것

그뿐인데, 잠 한 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마음의 고통과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바로 경건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104~105쪽, 햄릿의 대사 중에서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역자가 '사느냐 죽느냐'로 옮겼다. (최재서의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와 이덕수의 '과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강우영의 '삶이냐, 죽음이냐'는 예외이다.) 그런데 원문의 To be, or not to be는'사느냐 죽느냐'를 포함하는 존재와 비존재를 대립시키고 있기 때문에, 또 이 독백이 살고 죽는 문제를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명시하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쉽고 모호하며 지극히 함축적인 일반론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사의 직설적인 선택으로 옮김은 미흡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원문의 뜻에 가장 적합한 순수 우리말은 '있다'와 '없다'의 적당한 변형이 될 것이고, 필자는 앞선 번역에서 이 부분을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옮겼다. 그러나 있음과 없음에 아직 역사적, 철학적, 언어학적 무게가 충분히 실리지 않아 역자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이번에는 원문의 뜻에 가장 가까운 '존재'라는 한자어를 쓰는 번역으로 바꾸었다.'(105쪽 역자 주석에서)

내 생각에는 '사느냐 죽느냐'로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셰익스피어와 희곡 연구를 바탕으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고, 전 작품을 번역하신 분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내 감흥까지 학습된 느낌이다. 신선함이 떨어지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분명한 건 희곡은 무대에서 감상할 때 가장 빛이 난다는 것이다. 읽는 동안 무대를 꾸미고 그 위에 배우들을 올리는 상상을 해야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연히 의사에게서 옛 친구가 남긴 삶의 기록을 받아든 포펠 씨. '그처럼 규칙적인 사람도 해내는 걸 보면 죽는다는 건 아주 평범한 일임이 틀림없겠군. 하지만 분명히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겠지. 아마 삶에 애착이 있었으니까 자서전을 썼을 게야.'(9쪽) 이런 마음으로 그가 남긴 글을 읽어가기 시작하면서 액자 속 이야기가 드러난다. (그런데 말이지 '돌아가고 싶지는'이 아니라 '죽고 싶지는'으로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

덜컥거림이나 비통함이 없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다고 해서 부족한 삶일까? 그 대신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고,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임을 완수했다. 나의 삶은 전체적으로 보아 행복했고, 소심하지만 목가적인 삶에서 발견한

조그맣고 규칙적인 행복은 부끄러울 게 없다.

20쪽

소목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조용하고 착한 아이로 자란 주인공은,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갔고 철학을 공부하려던 계획은 같은 방 동무 영향으로 틀어져 시를 쓰는 것으로 바뀐다. 아버지가 경제적 지원을 거절하자 철도청 하급 공무원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삶은 철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역장의 눈에 들어 그의 딸과 결혼하고 자기만의 역을 가진 역장이 되었으며, 전쟁때는 영웅이 되기도 했고 남들 보기에 반듯하고 완벽한 공무원으로 평생을 보낸다. 주인공의 평범한 삶은 이렇게 끝나가는 것만 같았다.

-어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유희가 있었는데, 직업에 종사하고 가사를 돌보고 조그만 마을을 영위하는 놀이였다. 이제 모두가 성인이 되어 함께 유희를 즐기는데, 우리 기차역을 운영하는 놀이를 하는 것이다. (96쪽)

차분하게, 혹은 숨막힐 정도로 지루하게 이어지던 삶의 기록은 또 한 차례의 심장발작을 겪은 후 달라지기 시작한다. 숨어 있던 여덟 개의 자아가 튀어나온다. 평범한 자아, 억척스러운 자아, 우울증을 앓는 자아, 시인, 가난한 거지, 영웅, 낭만주의자, 그리고 언급되지 않았던 무언가까지. 그리고 이 자아들은 두더지잡기게임처럼 하나가 튀어나오면 하나가 들어가고 어디서 뭔가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주인공은 그렇게 서로 튀어나오는 것을 억누르려고도 하지 않아 마치 말싸움이 한창인 모임을 보는 것만 같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세 개의 삶은 서로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었으나 조화를 이룬 셈이었다. 평범한 자아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일을 했고, 억척스러운 자아는 그 일을 상품화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이 일은 하고 저 일은 하지 말라는 지침을 정해 주었으며, 우울증 환자인 자아는 가장 괴로워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았고 모든 일을 적당히 처리했다. (202쪽)

-인생은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며, 그중에서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는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써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213쪽)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며, 가능성이기만 했던 것은 현실이 된다. 나를 제한하는 이 자아가 내가 아니면 아닐수록 나는 더 많은 존재가 된다. 이 자아는 도둑이 가지고 다니는 손전등처럼 그 불빛의 반경 안에 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240쪽)

그리하여, 그의 삶이 보여지는 것처럼 단순하지도, 그렇게 예의바르고 조용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도 밝혀진다. 짐승냄새가 나는 더러운 오두막에서 그때의 그 소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열망도, 지나치게 정숙하기만 한 아내를 짓밟고 싶었던 마음도, 일 잘하는 다부진 젊은이가 아니라 역장 눈에 들어 출세하고픈 사내였다는 것도, 전쟁 중에 그저 독일인 아내를 골탕먹이고 싶어서 했던 영웅놀이도 모두.

-가끔 나는 놀랐다.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 하루에 기차 두 대가 오가고, 끊긴 선로에는 풀이 덮이고, 그 바로 뒤에는 병풍 같은 우주가 나타나는 것이. (82쪽)

-네가 누구든 나는 너를 알아본다. 우리 각자가 어떤 다른 가능성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나의 무수히 많은 자아이다. 네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건 내 속에도 있는 거야. (239쪽)

우리는 누구나 살아보지 못한 삶을 상상한다. 그 길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식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며 '만약'이라는 낱말을 한 번씩 얹어보는 것은 후회인 동시에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꿈을 꾸는 순간이며 그 자체로 도피인 것이다.

나는 얼마나 자주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과거로, 아주 먼 과거로 도망을 쳤던가. 내 속에 있는 자아는 몇이나 되려나? 세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몇씩이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인공처럼 하나씩 억누르며 시간이 흐르는대로 내버려뒀을 따름이다. 꽁꽁 숨어있는 그 애들도 죽음이 다가오면 슬금슬금 나와줄까?내 삶의 주류를 이끌어온 자아는 뭐라고 명명하면 흡족해하려나. 주인공처럼 '평범한 자아'라고 하는 대신 '뾰족한 자아'라고 불러볼까. (이런 명명은 '넌 왜 그렇게 가시를 세우고 살아?' 란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남이 보기엔 평범한 인생이지만 들여다보면 누구도 평범하게 살아가진 못한다는 말이 하고 싶었을까?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내었다는 평가를 받는 카렐 차페크의 글이건만, 내게 다시 한 번 읽을 기회를 가질 거냐고 묻는다면 금방 그렇다는 대답을 하기는 어렵다. 심리를 파고든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완전히 젖어들어 읽지 못했다. 거울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도 같다. 외면하고 싶은 거울 속의 나 (필터를 써서 예쁘게 만든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거친 나)를 어디서건 마주친다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 책제목 : 플라멩코 추는 남자

◎ 지은이 : 허태연

◎ 펴낸곳 : 다산책방

◎ 2021년 9월 17일 1쇄 발행, 274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 작은 팻말이 붙어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책이다.

작가도 생소한 데다, 세비야 스페인 광장이 틀림없을 배경과 그 앞에서 배를 탄 두 남녀.

표지 그림과 이 제목이 주는 가벼움이라니!

이런 식의 표지를 한결같이 싫어하는 내 취향 탓이지만

까놓고 말해서 어딜 봐도 '로맨스 소설이오' 라는 냄새를 폴폴 풍기지 않는가.

그러나, 집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향기가 난다.

이래서 첫 인상은 믿을 게 못 된다. (그러나 첫 인상은 얼마나 중요한가! 이 아이러니!)

67세의 주인공 남훈 씨는 굴착기 기사였다.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주기로 결심한 그는 차도 렌트로 줘버리고

오랜 세월 책장 속에 들어 있던 '청년일지'를 꺼내

그동안 해보고 싶어했던 일을 찾아낸다.

과제 1. 남보다 먼저 화내지 않기

과제 2.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

과제 3. 외국어 배우고 해외여행 하기

과제 4. 건강한 체력 기르기

이것들에 따라 그는 화내는 성격을 누그러뜨리고, 양복을 맞추고,

플라멩코와 스페인어를 배운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첫째 딸 보연의 존재.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보연을 여태 잊고 살다가

일을 그만둔 지금 시점에야 떠올린 것이다.

딸이 열일곱일 때 이후 처음인 어색한 만남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런 딸을 위해 스페인 여행을 함께 떠나고 거기에서 비로소 남훈은 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계획대로 맞춤 정장을 입고 광장에서 무희와 함께 플라멩코를 춘다.

여기까지 썼어도 괜찮았을 텐데 사족이 붙었다.

작가는 남훈과 보연의 관계가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보연은 휴대폰에서 아버지가 굴착기 공사 후 찍은 사진들을 보고

직접 그 장소를 찾아가 완공된 건물을 다시 찍어 보낸다.

그리고 'Te quiero, hija mía.(사랑한다, 내 딸)'이라는 문자에

Yo también, papá. (나도요, 아빠)라고 답해준다.

아빠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말과 함께.

남훈 씨는 벅찬 마음으로 마지막 과제를 이렇게 적는다.

과제8. 한 달에 한 번은 꼭 보연을 볼 것.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걸 알기에

남훈 씨가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리만족이 되기도 했다.

몸치인 내가 절대 배우려 하지 않을 춤과 스페인어라니.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버킷리스트>라는 영화도 자연스레 떠올라

잠시 책은 엎어두고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지금은 완전 잘 한 일 중 한 가지로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지만

20년간 장롱면허였던 운전을 다시 시작할 때도 큰 결심이 필요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몇 가지 일들에도 그런 결심이 필요할 테지만

67세의 남훈 씨도 했는데 그보다 훨씬 젊은 내가 못 해낼 일이 뭐가 있으랴.

(라고 말은 하지만 벌써부터 덜덜 떨린다. 이 겁쟁이!)

"남훈 님, 플라멩코와 요리의 공통점을 아세요?"

곱슬머리 강사가 물어보았다.

"글쎄요."

"최선을 다했다는 게, 최상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211쪽

플라멩코 강사의 말처럼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과정도 중요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호랑이 책 - 그 불편한 진실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2
이상권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제목 : 위험한 호랑이 책

◎ 지은이 : 이상권

◎ 펴낸곳 : 특별한 서재

◎ 2021년 8월 13일 초판1쇄 발행, 190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읽을 것을 종용했던 작품,

『아름다운 수탉』의 작가가 쓴 책이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궁금해졌다.

표지는 참 마음에 안 들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삼류 잡지책을 연상케 했다.)

동화일까, 분위기로 봐서는 정보책인 듯 싶었으나

일단 작가를 믿으니까 읽어보자.

지후, 시환 그리고 지민에게

너희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야생동물의 생존권이

헌법에 보장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너희들에게 보낸다.

서문에서

첫장에서 맞딱뜨린 순간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작가가 호랑이를 바라보는 시선이구나.

그리곤 내 짐작이 맞았다는 듯 곧바로 작가의 말에서 당당하게 밝힌다.

'조선시대 이후의 호랑이 이야기를 할 거야. 슬픈 호랑이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호랑이를 탄압하고 멸종의 길로 몰고 갔는지 냉정하게 밝히려고 해.

호랑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지만,

호랑이를 멸종시킨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이거든.'(8쪽)



호렵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33쪽

고려 때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불교를 숭상한 덕분에 괜찮았으나

조선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 먹고 살 터전을 갖기 위해선 땅을 개간해야 했고

그렇게 호랑이가 살던 산까지 점점 침범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살자니 그 터전의 주인인 호랑이를 잡아야 했는데

심지어 <경국대전>에 호랑이를 아무나 잡아도 된다고 했다니 호랑이 수난시대가 열린 셈이다.

1416년에는 착호군(착호갑사)라는 것을 만들어 호랑이를 잡게 했는데

그 수가 1만 명에 이르렀다 한다.

'당시 40냥이면 좋은 초가집 한 채를 구입할 수 있었는데, 가장 큰 수컷 호랑이 포상금은 40냥,

중간 크기는 20냥, 심지어 새끼 호랑이도 잡으면 10냥을 주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새끼든 어미든 닥치는 대로 사살했다.' (25쪽)

'조선은 수도에 배치한 착호군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병영에 호랑이를 사냥하는 군사를 두었다.' (28쪽)

결국 호랑이를 멸종에 이르게 한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산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지만

산에 불을 질러 계단식 논과 밭을 만들었으니 호랑이들은 갈 곳이 없어

결국 인간의 마을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얼마 안 남은 호랑이까지 싹쓸이한 것은 일제의 짓이지만

그전에도 우리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호랑이 사냥을 해왔고

그것을 신문에 대서특필하면서 호환을 없앴으니 잘했다고 칭찬만 한 것이다.

누구도 호랑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범 호(虎), 그저 '범'이라 불렀지만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후 '범 호(虎)에 늑대 랑(狼)을 붙여 호랑이라 불렀단다.

아무 생각 없이 호랑이라고 불렀는데 이름을 다시 범으로 돌려줘야만 할 것 같다.

우리가 말만으로도 범과 이리를 이종교배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1940년 함경북도에서 잡힌 호랑이를 끝으로 한반도에서는 더 이상 호랑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112쪽)

그런 호랑이를 1988년도 올림픽 때 마스코트로 끌어냈고

그게 우리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여태까지 잡아 죽이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던 우리들이 아닌가.

호랑이나 표범 고기를 먹으면 병에 안 걸린다고 먹고,

비가 안 온다고 기우제를 지내며 호랑이 머리를 잘라 한강에 바치고,

가죽은 벗겨 양탄자를 만들어 깔고,

발톱으로 노리개를 만들면서도

갖가지 물건에 호랑이 그림, 호랑이 문양을 넣어

귀신에게, 나쁜 꿈에게, 나쁜 병에게서 보호해달라 빌기도 했으니

이렇게 이중적이기도 참 어렵겠다.

자기밖에 볼 줄 모르는 게 또 인간인지라 이런 일을 저지른 건지도 모르겠다.

'호랑이는 인간의 모든 생활 속에 침투해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190쪽)

114쪽

이 책 곳곳에는 호랑이 관련 그림도 많고 자료들도 많다.

호랑이를 잡은 뒤 자랑스럽게 찍은 사진도 있고

왕실에서 사용했다던 호랑이 가죽 깔개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신기했다가 나중에는 반성하게 된다.

처우가 많이 개선되긴 했다지만 아직도 동물원에는 갇혀 있는 동물들이 있고

반려동물 몇 만 시대를 살면서도 휴가철마다 버려지거나 학대받는 동물 이야기를 듣고 산다.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다시 한 번 묻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제목: 『대성당』

-지은이: 레이먼드 카버

-옮긴이: 김연수

-펴낸곳: 문학동네

-내 마음대로 별점: ★★★★

-수록작품: <깃털들>, <셰프의 집>, <보존>, <칸막이 객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비타민>, <신경써서>, <내가 전화를 거는 곳>, <기차>, <열>, <굴레>, <대성당>


-마음에 드는 작품: <대성당>,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2편의 단편이 실린 책 중에서 두 편이나 마음에 들었으면 성공이다. 사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괜찮은 편이지만 우리와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어 완전 몰입이 어렵다. 두 번째로 읽는 것임에도 어렴풋하게 기시감이라도 발휘된 건 역시 마음에 들었던 두 작품이다.

추리소설 대가 중 하나인 레이먼드 챈들러를 좋아한 탓에 레이먼드라는 이름을 가진 작가의 이 책을 (단편집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려고 마음 먹었다면 책을 읽는 동기 치곤 웃긴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숨김 없는 사실이다. (나도 참 이상한 데 잘 꽂히는 경향이 있다.) 물론 김연수의 번역이라는 엄청난 미끼도 한 몫을 했는데 결론은 김연수의 작품들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이다. 그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보라!

책에서 냄새가 날 리는 없지만 4D 영화를 본다치고 생각해보면 이 책에서는 술과 가난, 실패와 괴리감, 상실 등이 떠돈다. 그래서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한 리얼리즘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표작'이라고 거창하게 내걸었겠지만 또한 그 이유로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이런 상실의 느낌은 그만 받고 싶다. 그래서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갈등이 최고조를 향해 달리는 드라마는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설사, 상실의 느낌을 갖고 있다고 해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처럼 작은 따스함이라도 전달받고 싶다.

아이의 생일에 케이크를 받기로 주문해놓았지만 하필 그날 아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맨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빵집 주인은 전화를 걸어놓고는 케이크라고만 얘기한다. 아이가 죽은 뒤에야 마침내 케이크를 떠올린 부부는 이른 새벽 빵집에 찾아가 원망을 늘어놓고 미안해진 빵집 주인은 갓 구운 빵을 꺼내 부부에게 대접한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27쪽

따뜻한 빵 한 조각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그들을 다시 일어서게 할 힘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진정으로 내민 손길은 이토록 힘이 된다. 상실과 구원을 짧지만 강렬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다.

<대성당>은 조금 독특하다. 아내의 맹인친구가 하룻밤 묵으러 오는데 아내는 잠이 들고 주인공인 나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대성당을 설명하려다 한계에 부딪힌다. 맹인은 종이 위에 그려보라고 하고는 그가 쥔 펜을 함께 잡아 느낌으로 대성당을 바라보고 주인공 역시 눈을 감고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운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 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

<대성당> 303~304쪽

'내겐 귀가 있으니까'라는 이 구절이 퍽하고 가슴을 때렸다. 귀뿐이랴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으니 그만큼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을 텐데 늘 게으름에 지고 마는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하나. 그래도 하나 다행인건 늘 나 자신을 한심해하고 실망을 해도 새롭게 시작할 마음은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편집은 오래 씹어야 맛이 느껴지는 거친 빵과 같다. 급하게 먹으면 도무지 뭘 먹었는지 알기도 전에 목구멍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다시 손을 뻗어줘야만 한다. 『대성당』을 두 번 읽은 것도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