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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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의사에게서 옛 친구가 남긴 삶의 기록을 받아든 포펠 씨. '그처럼 규칙적인 사람도 해내는 걸 보면 죽는다는 건 아주 평범한 일임이 틀림없겠군. 하지만 분명히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겠지. 아마 삶에 애착이 있었으니까 자서전을 썼을 게야.'(9쪽) 이런 마음으로 그가 남긴 글을 읽어가기 시작하면서 액자 속 이야기가 드러난다. (그런데 말이지 '돌아가고 싶지는'이 아니라 '죽고 싶지는'으로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

덜컥거림이나 비통함이 없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다고 해서 부족한 삶일까? 그 대신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고,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임을 완수했다. 나의 삶은 전체적으로 보아 행복했고, 소심하지만 목가적인 삶에서 발견한

조그맣고 규칙적인 행복은 부끄러울 게 없다.

20쪽

소목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조용하고 착한 아이로 자란 주인공은,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갔고 철학을 공부하려던 계획은 같은 방 동무 영향으로 틀어져 시를 쓰는 것으로 바뀐다. 아버지가 경제적 지원을 거절하자 철도청 하급 공무원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삶은 철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역장의 눈에 들어 그의 딸과 결혼하고 자기만의 역을 가진 역장이 되었으며, 전쟁때는 영웅이 되기도 했고 남들 보기에 반듯하고 완벽한 공무원으로 평생을 보낸다. 주인공의 평범한 삶은 이렇게 끝나가는 것만 같았다.

-어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유희가 있었는데, 직업에 종사하고 가사를 돌보고 조그만 마을을 영위하는 놀이였다. 이제 모두가 성인이 되어 함께 유희를 즐기는데, 우리 기차역을 운영하는 놀이를 하는 것이다. (96쪽)

차분하게, 혹은 숨막힐 정도로 지루하게 이어지던 삶의 기록은 또 한 차례의 심장발작을 겪은 후 달라지기 시작한다. 숨어 있던 여덟 개의 자아가 튀어나온다. 평범한 자아, 억척스러운 자아, 우울증을 앓는 자아, 시인, 가난한 거지, 영웅, 낭만주의자, 그리고 언급되지 않았던 무언가까지. 그리고 이 자아들은 두더지잡기게임처럼 하나가 튀어나오면 하나가 들어가고 어디서 뭔가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주인공은 그렇게 서로 튀어나오는 것을 억누르려고도 하지 않아 마치 말싸움이 한창인 모임을 보는 것만 같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세 개의 삶은 서로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었으나 조화를 이룬 셈이었다. 평범한 자아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일을 했고, 억척스러운 자아는 그 일을 상품화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이 일은 하고 저 일은 하지 말라는 지침을 정해 주었으며, 우울증 환자인 자아는 가장 괴로워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았고 모든 일을 적당히 처리했다. (202쪽)

-인생은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며, 그중에서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는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써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213쪽)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며, 가능성이기만 했던 것은 현실이 된다. 나를 제한하는 이 자아가 내가 아니면 아닐수록 나는 더 많은 존재가 된다. 이 자아는 도둑이 가지고 다니는 손전등처럼 그 불빛의 반경 안에 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240쪽)

그리하여, 그의 삶이 보여지는 것처럼 단순하지도, 그렇게 예의바르고 조용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도 밝혀진다. 짐승냄새가 나는 더러운 오두막에서 그때의 그 소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열망도, 지나치게 정숙하기만 한 아내를 짓밟고 싶었던 마음도, 일 잘하는 다부진 젊은이가 아니라 역장 눈에 들어 출세하고픈 사내였다는 것도, 전쟁 중에 그저 독일인 아내를 골탕먹이고 싶어서 했던 영웅놀이도 모두.

-가끔 나는 놀랐다.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 하루에 기차 두 대가 오가고, 끊긴 선로에는 풀이 덮이고, 그 바로 뒤에는 병풍 같은 우주가 나타나는 것이. (82쪽)

-네가 누구든 나는 너를 알아본다. 우리 각자가 어떤 다른 가능성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나의 무수히 많은 자아이다. 네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건 내 속에도 있는 거야. (239쪽)

우리는 누구나 살아보지 못한 삶을 상상한다. 그 길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식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며 '만약'이라는 낱말을 한 번씩 얹어보는 것은 후회인 동시에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꿈을 꾸는 순간이며 그 자체로 도피인 것이다.

나는 얼마나 자주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과거로, 아주 먼 과거로 도망을 쳤던가. 내 속에 있는 자아는 몇이나 되려나? 세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몇씩이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인공처럼 하나씩 억누르며 시간이 흐르는대로 내버려뒀을 따름이다. 꽁꽁 숨어있는 그 애들도 죽음이 다가오면 슬금슬금 나와줄까?내 삶의 주류를 이끌어온 자아는 뭐라고 명명하면 흡족해하려나. 주인공처럼 '평범한 자아'라고 하는 대신 '뾰족한 자아'라고 불러볼까. (이런 명명은 '넌 왜 그렇게 가시를 세우고 살아?' 란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남이 보기엔 평범한 인생이지만 들여다보면 누구도 평범하게 살아가진 못한다는 말이 하고 싶었을까?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내었다는 평가를 받는 카렐 차페크의 글이건만, 내게 다시 한 번 읽을 기회를 가질 거냐고 묻는다면 금방 그렇다는 대답을 하기는 어렵다. 심리를 파고든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완전히 젖어들어 읽지 못했다. 거울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도 같다. 외면하고 싶은 거울 속의 나 (필터를 써서 예쁘게 만든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거친 나)를 어디서건 마주친다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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