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그의 삶이 보여지는 것처럼 단순하지도, 그렇게 예의바르고 조용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도 밝혀진다. 짐승냄새가 나는 더러운 오두막에서 그때의 그 소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열망도, 지나치게 정숙하기만 한 아내를 짓밟고 싶었던 마음도, 일 잘하는 다부진 젊은이가 아니라 역장 눈에 들어 출세하고픈 사내였다는 것도, 전쟁 중에 그저 독일인 아내를 골탕먹이고 싶어서 했던 영웅놀이도 모두.
-가끔 나는 놀랐다.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 하루에 기차 두 대가 오가고, 끊긴 선로에는 풀이 덮이고, 그 바로 뒤에는 병풍 같은 우주가 나타나는 것이. (82쪽)
-네가 누구든 나는 너를 알아본다. 우리 각자가 어떤 다른 가능성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나의 무수히 많은 자아이다. 네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건 내 속에도 있는 거야. (239쪽)
우리는 누구나 살아보지 못한 삶을 상상한다. 그 길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식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며 '만약'이라는 낱말을 한 번씩 얹어보는 것은 후회인 동시에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꿈을 꾸는 순간이며 그 자체로 도피인 것이다.
나는 얼마나 자주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과거로, 아주 먼 과거로 도망을 쳤던가. 내 속에 있는 자아는 몇이나 되려나? 세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몇씩이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인공처럼 하나씩 억누르며 시간이 흐르는대로 내버려뒀을 따름이다. 꽁꽁 숨어있는 그 애들도 죽음이 다가오면 슬금슬금 나와줄까?내 삶의 주류를 이끌어온 자아는 뭐라고 명명하면 흡족해하려나. 주인공처럼 '평범한 자아'라고 하는 대신 '뾰족한 자아'라고 불러볼까. (이런 명명은 '넌 왜 그렇게 가시를 세우고 살아?' 란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남이 보기엔 평범한 인생이지만 들여다보면 누구도 평범하게 살아가진 못한다는 말이 하고 싶었을까?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내었다는 평가를 받는 카렐 차페크의 글이건만, 내게 다시 한 번 읽을 기회를 가질 거냐고 묻는다면 금방 그렇다는 대답을 하기는 어렵다. 심리를 파고든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완전히 젖어들어 읽지 못했다. 거울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였던 것도 같다. 외면하고 싶은 거울 속의 나 (필터를 써서 예쁘게 만든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거친 나)를 어디서건 마주친다는 건 유쾌한 일은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