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불교를 숭상한 덕분에 괜찮았으나
조선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 먹고 살 터전을 갖기 위해선 땅을 개간해야 했고
그렇게 호랑이가 살던 산까지 점점 침범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살자니 그 터전의 주인인 호랑이를 잡아야 했는데
심지어 <경국대전>에 호랑이를 아무나 잡아도 된다고 했다니 호랑이 수난시대가 열린 셈이다.
1416년에는 착호군(착호갑사)라는 것을 만들어 호랑이를 잡게 했는데
그 수가 1만 명에 이르렀다 한다.
'당시 40냥이면 좋은 초가집 한 채를 구입할 수 있었는데, 가장 큰 수컷 호랑이 포상금은 40냥,
중간 크기는 20냥, 심지어 새끼 호랑이도 잡으면 10냥을 주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새끼든 어미든 닥치는 대로 사살했다.' (25쪽)
'조선은 수도에 배치한 착호군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병영에 호랑이를 사냥하는 군사를 두었다.' (28쪽)
결국 호랑이를 멸종에 이르게 한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산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지만
산에 불을 질러 계단식 논과 밭을 만들었으니 호랑이들은 갈 곳이 없어
결국 인간의 마을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얼마 안 남은 호랑이까지 싹쓸이한 것은 일제의 짓이지만
그전에도 우리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호랑이 사냥을 해왔고
그것을 신문에 대서특필하면서 호환을 없앴으니 잘했다고 칭찬만 한 것이다.
누구도 호랑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범 호(虎), 그저 '범'이라 불렀지만
일본이 조선을 합병한 후 '범 호(虎)에 늑대 랑(狼)을 붙여 호랑이라 불렀단다.
아무 생각 없이 호랑이라고 불렀는데 이름을 다시 범으로 돌려줘야만 할 것 같다.
우리가 말만으로도 범과 이리를 이종교배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1940년 함경북도에서 잡힌 호랑이를 끝으로 한반도에서는 더 이상 호랑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112쪽)
그런 호랑이를 1988년도 올림픽 때 마스코트로 끌어냈고
그게 우리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여태까지 잡아 죽이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던 우리들이 아닌가.
호랑이나 표범 고기를 먹으면 병에 안 걸린다고 먹고,
비가 안 온다고 기우제를 지내며 호랑이 머리를 잘라 한강에 바치고,
가죽은 벗겨 양탄자를 만들어 깔고,
발톱으로 노리개를 만들면서도
갖가지 물건에 호랑이 그림, 호랑이 문양을 넣어
귀신에게, 나쁜 꿈에게, 나쁜 병에게서 보호해달라 빌기도 했으니
이렇게 이중적이기도 참 어렵겠다.
자기밖에 볼 줄 모르는 게 또 인간인지라 이런 일을 저지른 건지도 모르겠다.
'호랑이는 인간의 모든 생활 속에 침투해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