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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의 씨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평점 :
◎ 책제목 : 석류의 씨 Pomegrante Seed
◎ 지은이 : 이디스 워튼
◎ 옮긴이 : 송은주
◎ 펴낸곳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발행, 247쪽
◎ 수록작품 : <편지>, <빗장 지른 문>, <석류의 씨>, <하녀의 종>
◎ 내 마음대로 별점: ★★★★☆
네 편의 비교적 짧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이 책은 책장을 덮고나면 참으로 허무해진다. 도대체 뭐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고 그 다음에는 결과를 얘기해주지 않는 작가가 미워지면서 동시에 무한한 애정이 솟구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흡인력이 대단한 이야기들이다. 매력적인 단편이다. 마지막 부분이 애매하다는 걸 빼놓고는 결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 때문에 별 하나가 흐릿할 수밖에 없다.)
<편지>
리지 웨스트는 유명한 미국 화가 빈센트 디어링의 딸 줄리엣을 가르치다가 그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는 아내가 갑자기 죽으면서 미국에 남겨놓은 아내의 유산을 따라 아이와 함께 가버린다. 그리고 계속되는 그녀의 편지에도 묵묵부답. 그렇게 3년이 흘렀고 그 사이 리지는 어느 친척의 유산을 받아 풍족한 삶을 살게 된다.
'그녀는 되는대로 넣은 가구가 있고, '일단 보고 마음에 들면'사기로 한 장식품들이 끝없이 들어오는 정리가 덜 끝난 집의 소유자 같았다. (39쪽)
그런 그녀 앞에 디어링이 초라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마법에 이끌리듯 그와 결혼하여 아이를 둔 리지. 친구인 앤도라와 함께 아이를 돌보다가 미국에서 보내온 디어링의 낡은 가방 하나를 보게 된다.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은 뜯어보지도 않은 리지의 편지들. 분노가 그녀를 뒤덮지만 지금의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아 혼란스럽다.
'너무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토대에는 항상 피가 섞여 있는 법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것은 감춰둔다.' 고통과 악의 어두운 비밀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 그리고 그런 보호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어느 누가 메두사의 얼굴을 보고도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68쪽)
결국 그녀는 그를 용서할 것이다. 아니, 용서한다는 말보다는 지금의 행복 속에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게으르고 나태한 그와 함께.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행복을 위해 많은 시간들을 포기하는 것 같은 그녀가 안타깝다. 길게 보면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실망도 많아질 게 뻔하다. 알몸으로 쫓아버려도 시원찮을 인간이구만.
<빗장 지른 문>
'생기 없는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는 (기계적인 몸짓을 또 하루 수행해야 한다는) 공포가 다시 그를 사로잡았다.' (86쪽)
휴버트 그래니스는 글을 써서 유명해지고 싶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어느 날 변호사인 애스첨을 불러 자신이 10년 전에 유산 상속을 위해 사촌인 조지프 렌먼을 죽였노라고 실토한다. 이런 고백에도 애스첨이 믿지 않자 신문 편집자인 오래 된 친구 로버트 덴베에게, 또 지방검사에게, 신문기자에게 차례로 털어놓지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다. 3월의 어느 날 길을 걷다 낯선 소녀에게 말해보려했지만 소녀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는 경찰에 붙잡힌다. 그렇지만 그는 살인죄로 체포된 것이 아니다. 우연히 경찰서 안에서 기자인 피터 매캐런과 그의 지인에게 자신의 진술서를 들려주고 다시 한 번 봐달라고 한다. 기자는 지인에게 그가 진범인 것을 알게 되었지만 결코 말할 수 없다며 그가 경찰서 안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아, 아시는군요. 제가 유죄인 줄 아는군요!" (141쪽)
누군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인정해주길 바라는 그래니스의 절박한 심정이 드러난 문장이다. 양심 때문일까? 결코 아니다. 그는 후회한 적이 없노라고 했다. 그저 실패한 삶이 싫었고 죽을 용기 또한 없었을 뿐이다.
'그의 동기가 변호사를 납득시키지 못했다면 덴버에게는 훨씬 더 무게를 갖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둘 다 성공한 사람들이고, 성공은 실패의 미묘한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다.'(110쪽)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성공한 살인이 인정받길 원했다니 인간이 가진 인정욕구란 얼마나 무서운지.
<석류의 씨>
케네스가 뜨겁게 사랑했던 첫번째 부인 엘시가 죽은 지 2년 후 샬럿 애슈비는 그와 결혼한다. 하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처음 마주하게 된 회색봉투의 편지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시간들을 어지럽힌다. 남성적인 필체에 묻어나는 여성 이미지. 그런 편지를 받은 날이면 남편은 '몇 년은 더 늙어보였고, 생기와 용기가 다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듯했다.(153쪽)' 그리고 샬롯에게 트집을 잡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에게 설명을 요구하지만 케네스는 의뢰인이 보낸 편지라고만 한다. 그녀의 청대로 여행을 가기로 한 바로 전날 케네스는 교외로 나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고 불안해진 샬럿은 시어머니를 찾아갔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 또 회색봉투의 편지가 도착했음을 알고 샬럿은 시어머니와 함께 편지를 뜯어본다. 그리고 그 필적이 첫번째 부인이었던 엘시의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너무나 희미해서 아무런 내용도 발견하지 못하지만 시어머니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한다며 경찰에 전화를 걸라고 한다.
해설에서 <석류의 씨>는 케네스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죽은 아내를 따라 명부를 방문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지만 선선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처음에는 죽은 아내가 페르세포네처럼 석류 씨를 먹었기 때문에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들에 돌아오는 것일까 생각했으나 어디서도 그런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편지에서 도망가고 싶어하는 케네스는 죽은 아내를 만나 더 이상은 이승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러 간 것일까?
<하녀의 종>
하틀리는 장티푸스를 앓고난 뒤 브림프턴 부인을 소개받아 시골 저택으로 가게 된다. 하인들도 마님도 마음에 들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 결코 종을 울리지 않는 마님이건만 어느 날 종이 울리고 오랫동안 주인마님을 보필하다 죽었다는 하녀 에마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 뭔가 할 말이 있는듯 그녀를 마님의 친구인 랜퍼드 씨 저택으로 이끌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고 마님은 에마가 또 나타났던 날 죽는다. 그리고 주인인 브림프턴 씨는 장례식 후 바로 떠나버렸다.
누가 에마의 죽음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인지, 에마가 랜퍼드 씨 집으로 데려간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짜증이 난다.
아무리 열린 결말이라고 해도 <편지>와 <빗장 지른 문>은 그런대로 유추가 가능해서 완벽한 단편으로 보이지만, <하녀의 종>이나 <석류의 씨>는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작가가 옆에 있다면 '그래서요? 이게 뭔데요?' 라고 다그치고 싶을 정도다. 나만 이해를 할 수 없는 걸까?
'호러스 월폴의 《오트란토 성》(764년)에서 기원한 고딕소설은 음산한 중세의 성이나 수도원 등 고립된 장소를 배경으로, 유령과 같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대상을 주로 다루었다.
- 해설중에서. 240쪽-
고딕소설라는 용어는 친숙하지 않아도 매리 샐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어셔가의 몰락』을 비롯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도 고딕적인 요소가 있다니 어렴풋하게 감이 잡히기는 한다. 음산한 분위기와 유령 등장, 알 수 없는 힘에 지배되는 주인공.
'고딕소설의 정신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워튼의 말은, 그녀가 여성 작가로서 고딕소설의 잠재력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해설 중에서 241쪽-
이해하기 어렵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끝까지 얘기를 다 해줘야지(이건 억지를 쓰는 거지만). 좋아. 정 그렇다면 마음대로 생각해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