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기린의 말 - 「문학의문학」 대표 작가 작품집
김연수.박완서 외 지음 / 문학의문학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 책제목 : 깊은 밤, 기린의 말

◎ 지은이 : 김연수 외 9명

◎ 펴낸곳 : 문학의 문학

◎ 2011년 5월 10일 초판 3쇄, 382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반가웠던 책이다. 김연수 <깊은 밤, 기린의 말>, 박완서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이청준 <이상한 선물>, 이나미 <마디>, 권지예 <퍼즐>, 이승우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 윤후명 <소금창고>, 조경란 <파종>, 이명랑 <제삿날>, 최일남 <국화 밑에서> 이렇게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엄선했다고는 하지만 내 입맛에 다 맞는 건 아니라서 몇 작품은 인상까지 쓰면서 읽었으나, 김연수, 박완서, 이청준, 이승우의 작품은 내 나름의 감탄사인 '역시'와 고개끄덕임을 동시에 꺼내게 만들었다. 원래는 하루에 한 편씩만 읽고 차분하게 정리를 하려고 했으나 좋은 작품들이 줄줄이 있으니 읽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기 힘들어서 그대로 마지막 장까지 달려버렸다. 그렇다고 10편을 다 정리하기는 지루하니 (다음 책도 이미 책상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며 재촉을 해대고 있고) 표제작이면서 가장 좋았던 작품인 <깊은 밤, 기린의 말>만 해보기로 하자.

전반적인 발달장애 의심이란 진단을 받은 태호를 데리고 죽을 생각으로 집을 나선 그 밤에, 엄마는 태호가 관심을 보였던 강아지를 입양하고 '기린'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특정한 소리에 민감하고 서로를 좋아하며 비슷한 점이 많은 태호와 강아지 기린.

잡지의 신인상 공모에 시가 당선되어 정식으로 시인이 된 엄마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기린을 본 엄마의 친구는 기린에게 장애가 있음을 알려주었고, 화가 난 아빠는 기린을 애견센터에 돌려주고만다. 그 기린을 구하려고 밤 12시에 태호와 쌍둥이 누나들은 집을 나선 참이다. 가게를 못 찾고 어두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기린이라는 말에만 반응하던 태호가 아무 것도 없는데 계속 좋아하는 걸 보고 어이가 없던 그때 애견센터가 나타난다. '애견센터의 쇼윈도에는 기린이 앉아서 애처로운 표정으로 보이지 않는 거리와 그 거리를 걸어가는 우리 쌍둥이와, 그 사이에서 마냥 좋아하는 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42쪽) 말하지 않는 태호와 보이지 않는 기린, 두꺼운 유리에 막혀 들릴 리 없는 기린의 소리를 듣는 쌍둥이들은 서로가 온 마음으로 소통하고 있었던 것일 게다.

장애를 가진 아이도, 그 부모도, 또 그 가족들도 힘들 것이다. 누나인 쌍둥이들은 엄마가 태호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것때문에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반응 없는 태호를 돌보는 게 힘겨워서 시 쓰는 일에 기대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가 한 마음으로 사랑하기에 이들은 기린과 함께 서로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걸어갈 것을 믿는다.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해준 이 작품. 특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 머리 위에는 거대한 귀 같은 게 있을 거야 .(중략) 그런 귀가 있어 깊은 밤 우리가 저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들은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거야. (26쪽) 이 부분은 시도 때도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이 들어버린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울컥했다.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외로워하지 마.' 하는 것만 같아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해도 서로의 말이 들리지 않을 것이고, 내가 보는 것을 똑같이 볼 수도 없으므로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만남을 줄여왔더니 요즘 부쩍 혼잣말이 는 모양이다. 그저 태생적인 외로움이라고 나를 달래보고 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 보이지 않는 길, 잡히지 않는 손…… 우주는 한없이 넓다고 했으니 어딘가에는 그런 것들로만 이뤄진 세계도 분명히 존재하리라. 그런 곳에서는 보이는 길은 우리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못하리니, 그런 곳에서는 모두들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망하는 곳에 이르리라. 심지어 우리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만약 우리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잡히지 않는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28~29쪽) 나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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