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연루되어 삶이 망가진 사람 중 한 명인 나복만.
이름과 달리 박복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간 우리의 주인공은 고아로 자라 김순희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의 인도 아래 택시 운전사가 되었으며 돈을 차곡차곡 모아 결혼하는 게 꿈인 사람이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는 것을 감춘 채 어찌어찌 겨우 면허를 땄지만
운전 중 뭔가를 분명히 친 것만 같고 그후 좌회전을 할 때마다 그 느낌이 전해져 괴롭다.
결국 자수를 하러 경찰서에 갔으나 글을 모르니 강력계에 발을 들였고
빨갱이 사건에 혈안이 된 형사 하나가 그의 이름을 잘못 엮는 바람에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더불어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분명 나복만이 주인공이지만 그가 주인공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린다.
그가 왜 주인공이 되어야만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각색하고 연출한 사건의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나는 이 책이 거북하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나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김박사는 누구인가』에서 보여주던 대로
이기호식 문장은 여전히 재기발랄하지만 (그래서 책장은 휙휙 잘도 넘어가지만)
글을 몰라 진술서도 쓰지 못한다 하면 면허를 잃을 게 두려워 그저 고문을 당하고만 있는 가여운 나복만처럼
그 진실 안에서 분명히 숨을 쉬고 살았던 나는 거짓뉴스에 가려진 '진실'을 모른 척 외면하고 살았던 게,
굳이 찾아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미안해서 목이 멘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 만난 이 부분이 나를 전율케 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나복만이 아닌 '수배'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그 말인즉슨 나복만에게 일어났던 운 없는 사건들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연속적으로 벌어진다면,
당신도, 나도, 그 누구도, 별수 없이 나복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소리이다.
설령 그 누군가가 전두환 장군이라 할지라도……. 30년이 흘렀지만 변함없이.(12쪽)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읽고 넘어간 부분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무섭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소심한 나는 '이렇게까지 썼다가 작가가 진짜 국정원에 끌려가는 거 아냐' 라는 걱정을 했더랬다.
이런 걱정 따위는 절대 할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라고 누가 말해줬음 좋겠다.
또한, 차남들의 세계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