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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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치르는 것마냥 다 읽은 뒤 다음 책을 위하여 책을 덮고 있던 커버를 벗겨냈다.

앞표지에 좌회전 표시(우리의 주인공 나복남 씨가 사고 이후 하지 못해서 쩔쩔맸던 좌회전이다.)를 발견하고

무심코 뒤집어 뒤를 읽어봤다가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신형철 교수가 말한 데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지만 이거라도 남겨두자.

들어 보아라.

이것은 이 땅의 황당한 독재자 중 한 명인

전두환 장군의 통치 시절 이야기이다.

11쪽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연루되어 삶이 망가진 사람 중 한 명인 나복만.

이름과 달리 박복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간 우리의 주인공은 고아로 자라 김순희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의 인도 아래 택시 운전사가 되었으며 돈을 차곡차곡 모아 결혼하는 게 꿈인 사람이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는 것을 감춘 채 어찌어찌 겨우 면허를 땄지만

운전 중 뭔가를 분명히 친 것만 같고 그후 좌회전을 할 때마다 그 느낌이 전해져 괴롭다.

결국 자수를 하러 경찰서에 갔으나 글을 모르니 강력계에 발을 들였고

빨갱이 사건에 혈안이 된 형사 하나가 그의 이름을 잘못 엮는 바람에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더불어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도.

분명 나복만이 주인공이지만 그가 주인공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린다.

그가 왜 주인공이 되어야만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각색하고 연출한 사건의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나는 이 책이 거북하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나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김박사는 누구인가』에서 보여주던 대로

이기호식 문장은 여전히 재기발랄하지만 (그래서 책장은 휙휙 잘도 넘어가지만)

글을 몰라 진술서도 쓰지 못한다 하면 면허를 잃을 게 두려워 그저 고문을 당하고만 있는 가여운 나복만처럼

그 진실 안에서 분명히 숨을 쉬고 살았던 나는 거짓뉴스에 가려진 '진실'을 모른 척 외면하고 살았던 게,

굳이 찾아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미안해서 목이 멘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 만난 이 부분이 나를 전율케 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나복만이 아닌 '수배'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그 말인즉슨 나복만에게 일어났던 운 없는 사건들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연속적으로 벌어진다면,

당신도, 나도, 그 누구도, 별수 없이 나복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소리이다.

설령 그 누군가가 전두환 장군이라 할지라도……. 30년이 흘렀지만 변함없이.(12쪽)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읽고 넘어간 부분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무섭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소심한 나는 '이렇게까지 썼다가 작가가 진짜 국정원에 끌려가는 거 아냐' 라는 걱정을 했더랬다.

이런 걱정 따위는 절대 할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라고 누가 말해줬음 좋겠다.

또한, 차남들의 세계가 아니라고.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의 핵심을 그대로 단정지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 (전문용어로 '눈먼 상태' 되시겠다.)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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