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미스 프랭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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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피에트라 강가에 앉아 나는 울었노라>,


연작 3부작 중 마지막이라는 데 서점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고른

나는 마지막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려나, 책을 읽는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니..


90일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곡식이 여물 때까지 기다리고, 추수하고, 건초를 곳간에 넣고,

양을 치고, 양털을 깎는 등의 일을 모두 끝내야 한다.

'겨울 아홉 달에 지옥 석 달'이라고 칭하는 그곳, 베스코스

소위 말하는 한물 간 지역인 베스코스에는 281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변화를 느낄 수 없는 그곳에 낯선 이방인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금덩어리를 가진 그 남자 앞에 한 몫 잡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자 미스 프랭이 다가선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젊은 여자. 샹탈 프랭.

"나는 그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길 바라오"

금덩어리를 걸고 일 주일 동안 누군가가 죽은 채 발견되기를 바라는 이 남자

그래서 세상이 악의 소굴이라는 게 증명되길 바라는 이 남자


이 책은 일 주일동안 샹탈이 마을 주민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기를 고민하면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결단을 내리는 일 주일 동안의 일을 다루고 있다.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버리러 가는 여정보다는 덜 힘들었지만

역시나 프랭이 이 거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고민하는 과정은

같이 힘겨웠다. 천사와 악마의 싸움.


너나 할 것없이 돈으로 압박을 받는 우리 앞에 금덩이를 던지면서

악마와 거래를 하라고 한다면?

영혼 따위는 될 대로 되라지 Or 내게는 아직 양심이란 게 있어.

어느 쪽이 될까?


사람답게 사는 일이 참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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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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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속에 들어있는 책을 슬쩍 보고 지나치는 순간 기본적인

줄거리가 생각나면 참 좋은데 ‘결말이 어떻게 되지?’

하고 되묻게 되면 그 순간부터 짜증이 시작된다.

이 책이 그랬다. 2년 전에 읽었으니까 정도로는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보기 시작했다. 새 책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나 요즘 들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책을 왜 읽는가’

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회색 표지에 흰색의 눈 결정을 으스스하게 나타난 책 표지는 앞으로 내가 읽게 될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 것인지를

말해 주는 듯하다.

빛의 전달자인 엔보이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카르하이드로 돌아가는 길은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반지를 버리러 가는 그 길고 지루한 여정을 닮았다.

거긴 뜨겁고 여긴 무척 차갑고의 차이가 있을 뿐...


겐리 아이는 행성 겨울(게센)을 우주에 존재하는 83개의 행성들과

교역을 하라고 권유하기 위해서 파견되어 지구(에큐멘이라고 지칭되는)에서 온 사절(엔보이)다. 그가 도착한 행성 겨울은 아주 특이한

인류가 존재한다.

양성..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갖고 있는데 보통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아무런 성적 욕구를 느끼지 않다가)

케머주기(약 26일)가 되면 상대편에 의해 남성으로든, 여성으로든

성이 구현되는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어떤 때는 여성이 되어 아이를 낳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빠가 되는 이 과정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여성으로, 남성으로 구분지어 상대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이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지.


행성 겨울에는 카르하이드와 오르고린이라는 두 나라가 존재하는데 어딜 가나 끊이지 않는 권력 싸움에 휘말려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카르하이드에서 왕에 의해 쫓겨났던 에스트라벤이 구원의 손길을

주어 그 넓고, 춥고 황량한 고브린 빙하를 함께 넘게 되는 것이다.

어둠의 왼손은 그 모든 것을 가두고 있었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 사람들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남성과 여성, 사랑과 미움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다 그 반대편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그런 면에서는 <어린왕자>가 이야기했던 부분과

닮아 있다.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아. 진짜 중요한 건 눈으로 보이지 않아.”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케머 연인처럼

함께 누워있다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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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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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라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10개월 동안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는 일도 내 맘대로 안 되고,

움직임도 편안하지 않지만 그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

힘든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는 망각 증세 덕분에

여자들은 다시 임신을 한다.

 

하지만 만약 20개월 동안 임신인 상태로 지내야 한다면?

흠..생각도 하기 싫다.

뭐, 여자와 남자의 생각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남자가 밀실에서 사라진 일보다는 '20개월째 출산을

못하는' 이 부분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누구인지 아직 모르는 상태의 '그녀'가 불쌍했다.

 

1950년대. 

소설가이며 삼류 기사로 연명을 하는 세키구치와

고서점을 운영하며 귀신을 떼어내거나 악령을 퇴치하는

부업을 갖고 있는 박학다식한 교고쿠도.

그가 보던 책에서 '우부메'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겁을 한

세키구치는 

'회임을 했으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은 자를 그대로 들에

내다 버려, 태내의 아이가 죽지 않고 들판에서 태어나면

어머니의 혼백이 형태를 이루어 아이를 안고 기르며 밤에 돌아다니는데, 그 아기의 울음을 우부메가  운다고 한다. 그 모습은 허리

아래는 피에 젖어 있고, 힘이 약하다.'

라는 설명을 보다가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세키구치 주변의 독특한 인물인 탐정 에노키즈와

형사 기바 들의 등장으로 사건은 좀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오래된 가문인 구온지가에 아름다운 두 딸 교코와 료코.

 

-관측한 시점에서 성질이 결정되는 걸세

-관측을 할 때까지는 확률로밖에 인식할 수 없는 거야

-자네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유령처럼 환상일 가능성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과 똑같이 존재하는 걸세.

 

교고쿠도의 이 말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밀실에서 사라진 그 남자는 사라진 게 아니라

집단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 집안 사람들과 세키구치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교고쿠 나츠히코는 이 작품이 처녀작이라고 했다

처녀작치고는 굉장히 치밀한 구석이 있다.

물론 내가 잘 모르는 일본 민속학에 대한 것들 때문에

일일이 각주를 보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그거야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부합하는 책이다.

내가 점점 이상해져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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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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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90쪽에 달하는 자그마하고 간단한 이 책은

어딘가 묘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겉표지에 보이는 여인의 모습

때문인 듯 하다.

(연약한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억센 이미지인데

단추가 목까지 달린 매우 답답한 하얀 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사진인 듯 보이기도 하고, 그림인 듯 보이기도 하는 이 여인은

어깨가 지나치게 넓어 머리를 길게 덧붙여 놓은 남자같이 보인다)


에스터는 사랑하는 남자 라요스를 언니에게 빼앗기고 난 후

홀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누누라는 먼 친척과 함께 하는 삶은 고즈넉하고 평온하기만 한데,

어느날 조카들과 일련의 이상한 사람들을 대동하고 라요스가 돌아와


'우리는 서로 용감하게 사랑하지 않았소.

그게 바로 문제였고, 그건 당신의 잘못이었소.

남자들이 사랑에서 보이는 용기는 하잘것없기 때문이오.

사랑, 그것은 당신네 여자들의 작품이오.

사랑할 때 당신들은 위대하오

그런데 당신은 실패했소. 그리고 당신이 실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든 것도 물거품이 되고 의무와 임무,

알맹이 없는 삶이 되고 말았소.

남자들이 사랑에 책임이 있다는 말은 맞지 않소.

당신들이 영웅적으로 사랑해야 하오.

그런데 당신은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을 했소.

당신은 자존심이 상해 도망쳤소. '


이렇게 말하고는 의무를 다 할 것을 종용한다.

결국, 에스터와 누누가 살아가는 터전이었던 집과 정원을

몽땅 주게 된다.


평생 거짓말과 허풍으로 일관한 이 남자, 라요스를 보고 있노라면

윤흥길의 작품 <백치의 달>에서의 ‘영무’를 떠올리게 된다.

사기꾼이면서도 지나치게 순수하게 보이는 인물,

그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

정말 닮은꼴이다.


작가가 남자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사랑이 여자들의 책임이라니...

‘사랑할 때 당신들은 위대하오 ’여자들을 추켜세우는 척하더니

결국에 가서는 몽땅 책임을 전가하려는 비열한 수작이다.

따귀를 한 대 올려붙여주고 싶은 놈, 라요스

어느 한 쪽만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고 해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터에

감정적으로 우세한 여자들이 사랑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에이..마음에 안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작품은 매력이 있다.

그의 다른 작품 <열정>에서도 설정은 똑같다.

죽음을 앞둔 장군 콘라드에게 절친했던 친구,

그러나 자신의 아내와 함께 자기를 배반한 친구가 돌아오는 것이다.

하룻밤 동안의 기록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두 사람만의 대화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적극 추천이다.

한 시간 정도만 투자한다면 서점에서 볼 수도 있을 테니..

굳이 두 권 중 한 권을 추천하라면,

<열정>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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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뗏목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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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두 번째다.

앗! 소리 나게 특이했던 그 책이 다시 생각난다.

<돌뗏목>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전력이 있는 만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들이 제법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겨우 두 권 읽어놓고

그의 작품세계가 어쩌니 저쩌니 말할 수는 없지만

두 권을 읽은 결과 내가 느낀 건

주제 사라마구는 인간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세운 다음

혼돈 속에서 인간 본성을 찾는 걸 즐기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극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의 심리 조명이 탁월하다.


<돌뗏목>은 이베리아 반도가 유럽에서 떨어져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베리아 반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두 나라가 위치해 있으면서

대체로 1차 산업에 치우쳐 개발은 뒤떨어진 곳.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은 제각기 맡은 바 책임이 있는데

차례차례 자신이 등장해야 할 때를 정확히 연습한 줄인형을 닮았다.

1. 주제 아나이수 : 찌르레기 떼가 따라다니고

2. 조아킴 사사 : 돌을 바다에 던지가 파도가 해변에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3. 페드로 오르세 : 발로 바닥을 세게 구르는 바람에 땅이 떨리다

4. 조아나 카르다 : 느릅나무 가지로 땅에 금을 그었더니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5. 마리아 과바이라: 파란 양말을 풀기 시작했는데 그 실이 양 백 마리의 털을 깎은 듯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

그리고 성대 없는 개,


각기 다른 지역에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그들은

어느 순간 모두 함께 모여 여행을 떠나게 된다.

각자가 행한 일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기도 하고,

반도가 떠다니는 모습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인생은 지속된다.

(아니다. 돌뗏목 위에서 -반도는 그 순간 흐르고 있는 배와 같았으니)


주제 사라마구는 때때로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느냐고

엄살을 부리기도 하고,

쉼표나 마침표만 쓰는 게 미안하기도 했는지

가끔은 안 해줘도 되는 안내방송을 다시 한 번 하는

버스운전사 같기도 하다.

한 번에 끝까지 읽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중간에 느낀 흥미진진함을 끝까지 끌고 가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그리고 낱말이 가진 의미를 일일이 주석을 통해 알아야 한다는 건

언제나 짜증나는 일이다.

우리말처럼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의미 파악이 된다면

나는 훨씬 더 즐겁게 이 책을 읽었으리라


유럽 속에서 이방인처럼 겉돌던 두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떨어져 나와 헤매는 동안 희망을 갖게 된다.

모든 여자들이 임신을 했다. 새 생명은 희망이다.

그 희망을 바탕으로 두 나라는 떠돌기를 멈추고

유럽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힘차게 전진하게 되겠지.



'중요한 건 그 순간이다. 우리는 오직 그 순간에만 우리 역할을 하오'

책 속 페드로 오르세가 한 말이다.

이 순간에 내 역할을, 나는 제대로 해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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